고난 중에 있을 때 2002-02-25 11:13:11 read : 144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욘 2:1-9> 2002년 2월 24일
□ 고난 중에 있을 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요나 2:1-9>
이번 명절에는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교통 사고를 입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 이억배 권사님의 아들 김사국군도 그만 명절 전날 밤 교통사고를 당하여 지금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이지만 중태에 있습니다.
더욱이 가해자는 면허도 정지된 자요, 보험도 없는 상태인데 알아본 즉 사업하던 것이 부도가 나서 이천만원 전셋집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란 딱한 처지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억배 권사님은 남편을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고 아들이란 하나뿐이었는데, 그런 사고를 만났으니 지금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답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나님이 믿음으로 사는 가정에 그런 시련을 주시는가? 얼른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왜 하필 보험도 없는, 그리고 재산도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치었는가?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더욱 더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 병원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참으로 난감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욥기>서를 읽노라면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고난은 두 가지 길로 우리에게 옵니다.
하나는 나의 과오와 실수와 죄로 인하여 받는 징치(懲治)의 고난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닫고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경우와 같이 남의 잘못으로 인하여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지난번 명절에 고속도로에서 큰 화물차 운전기사가 술을 먹고 운전하면서 중앙분리대를 넘어서 마주 오는 귀향 길에 버스를 들이받아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그런 경우를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본인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이 아닙니다.
크게 보면 북한의 동포들이 굶어 죽게된 형편을 보면,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기근이 아니란 말입니다. 불의한 정권 하에서, 독재정권 하에서, 인권을 무시하는 정권 하에서, 당하는 고난이란 말입니다.
이런 고난 중에 있을 때, 누구나 한번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보려고 했고,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의심 속에 빠질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남북의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지만, 눈물로 고향을 그리다가, 몽매에도 잊지 못하다가 죽어간 많은 실향민들의 고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고난 중에 있을 때 자칫 잘못하면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바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고난 중에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1. 고난 중에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성산에서 준비해 놓았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준비해 놓았을 것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더 큰깨달음과 더 큰 사명을 감당케 하려고 할 때에 고난 중에 예비하십니다.
보통 때 느끼지 못하였던 것을 느끼게 하고, 보통 때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치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모리아 산에서 예비한 제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버린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주기 위한 연단이란 말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體質)을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예화> 우리 집 손자 놈들을 볼 때 같은 핏줄을 이어 나왔지만, 한 놈은 착하디 착하고 둘째 놈은 보통이 아닌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 고집이 뚜렷하고, 자기의 비위에 틀리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울어댑니다.
그러니 부모들도 아예 그놈의 체질을 알고 있기에 성격대로 대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자식의 체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유를 먹이면 배탈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놈은 위장이 좋지 못하다느니, 저놈은 조금만 피곤하면 편도선염을 앓는다느니 이렇게 어머니들은 자식의 체질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나님도 바로 그런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과 연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시고, 또 시험 당할 즈음에 그 시험을 이겨 낼 수 있는 힘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시는 큰 은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네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하였습니다.
또 히브리서 12:5-13절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난은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고, 고난 중에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가는 3일 동안은 그야말로 고민과 번민과 고통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벌써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깊은 교훈을 깨달아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2. 고난 중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고난 중에 부르짖을 때, 가만히 계시기만 하는가?
아닙니다. 응답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언제 만나게 되는가?" 묻는다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고난 중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평안할 때 하나님 만났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고난 중에 있었을 때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적군과 나가 싸울 때 고난 중에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저들에게 나타나 응답하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아말렉은 본래 잘 훈련된 군대조직을 갖춘 나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목민이었고,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합지졸과 같은 무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세의 팔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였고 팔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향한 도움의 요청입니다.
성도는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2:2)
요나가 도망치다가 고래 뱃속에서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자녀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원수 사탄과 싸워 승리하게 하십니다.
자녀들이 울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육신의 부모들도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그런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왜 부르짖는 자들에게 응답하지 않겠습니까?
3. 고난 중에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참된 성도의 감사는 고난 중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도가니 속에서 연단 되는 순금과 같이 찌꺼기들이 떨어져 나가야 참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재물이 있을 때는 감사할 줄 몰랐는데, 그 재물이 다 날아간 후에야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감사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건강할 때는 감사할 줄 몰랐는데, 병원에 입원 중에 있을 때 도리어 감사하게 됩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제일 가까이 계심을 알아야합니다.
육신의 부모들도 자식이 아파할 때 제일 가까이 있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고난 중에서 회개할 때 그 회개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아직도 우리가 너무나 고집이 센 고로 회개하지 않고 있기에 고통 중에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통회하는 자들과 가까이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시34:18)라고 하였습니다.
고난 중에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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