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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귀한 것으로/김운용
    2002-02-18 16:01:59   read : 193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삼하 23:13-17 <2002. 1. 20.>



    □ 만남의 축복

    우리 인생은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만남을 갖느냐에 따라서 삶의 내용과 질이 결정됩니다. 좋은 만남은 그들의 삶을 복된 삶이 되게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만남은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늘 좋은 만남을 주시도록 기도하고는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만남의 축복"을 주시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좋은 선생, 좋은 친구, 좋은 신앙의 선배, 좋은 배우자, 좋은 직장 동료, 좋은 직장 상사...를 만나는 축복을 주옵소서! 이것보다 귀한 축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출세하고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서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 젊은 날의 대부분을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기가 막히는 것은 그의 장인이 군대까지 동원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들로 산으로도망 다니면서 수년을 헤매야 했습니다.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기에 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힘든 삶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장래가 없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곤고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한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 만남의 축복이었습니다.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었고 미래가 없어 보이는 삶이었지만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혜자들"도 있었고, 의리가 있는 "신실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용맹한 장수들"들도 있었습니다. 참 귀한 만남의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 다윗의 간절한 바램과 강한 용사들

    오랜 도망 생활 때문에 그는 수년동안 고향에를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부모님이 계시는 베들레헴은 언제나 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고향, 수많은 추억들이 서린 고향이었기에 단숨에라도 달려가고 싶은 곳이었고, 꿈에라도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오늘 그의 생활은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더더군다나사울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날 뛰고 있을 때, 블레셋이 침공해와서 베들레헴과 그 주변을 점령해 버렸기에 이제 고향 땅은 적군의 진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영 갈 수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손꼽아 보니 고향에 간지가 벌써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어린 소년기에 고향을 떠났기에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더했습니다. 며칠 후면 구정이어서 그날은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작전 회의를 마치고 다른 장수들은 다 돌아가고, 오른팔과 같은 세 장수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향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윗은 중얼거리듯 그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고향 생각이 많이 날까? 오늘은 유난히 늙으신 어머니가 보고 싶네, 그려. 고향마을 앞에 있는 우물의 물이라도 한 모금 먹었으면 한이 없겠어!"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가 세 장수들은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데, 부르는 소리에 다윗은 눈을 떴습니다. 지난밤 늦게 돌아간 세 장수들이 밤이슬에 젖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들 손에는 물 한컵이들려 있었습니다. 그 밤, 그들은 그들의 진영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적군의 진지를 뚫고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까지 가서 다윗이 원하던 물을 길어온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요새화 되었고, 블레셋 군대의 총본부(headquarter)가 있던 곳이었기에 경비가 얼마나 삼엄했을 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적진을 뚫고 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에 물 한 모금 떠오기 위해 세 장수들은 그 일에 그들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스승이기도 한, Columbia 신학대학원의 유명한 구약학 교수인 Walter Brueggemann박사는 그의 "사무엘서 Interpretation 주석"에서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그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용기와 충성심의 모델과 같은 사람들이었다"(They are "the model of courage and loyalty).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용기와 충성심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섬길 때,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이렇게 감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섬긴 것입니까? 8-12절에 의하면 성경은 그들이 "강한 용사"였다고소개합니다. "강한 용사!" 그 이미지를 그려보십시오. 얼마나 듬직하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모습입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강한 용사"라고 서슴치 않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그들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었기에 용사였다고 말합니까? 실버 스텔론과 같이 근육질로 가득찬 몸매를 가졌기 때문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최근 작품성이나 예술성과는 별 상관없이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조폭 사모님"에서와 같이 힘으로 밀어 부치는 근력 때문에 강한 용사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출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겁을 모르는 용감한 사람들이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전투에 나가서 싸움을 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남다른 "충성심," 남다른 "사랑함,"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 생활 하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용사가 되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충성심'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용기'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난주간 저희 장신대에서는 신대원 신입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심층면접과 인성검사를 했습니다. 그들이 기록한 자기 소개서와 신앙고백서 등을 꼼꼼이 읽고 이것 저것을 묻고 확인했습니다. 참 좋은 직장과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굉장한 비전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틀을 면접하면서 깊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분별하여 선발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좋은 학벌과 학위를 가졌다고, 높은 사회적인 지위를 가졌다고, 혹은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하나님의 좋은 용사가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강한 용사는 얼마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졌고, 재력을 가졌느냐로 결정되어지지 않습니다. 강한 용사는 얼마나 주님을 뜨겁게사랑하는 사람이냐로 결정됩니다. 강한 용사는 얼마나 간절하게 주님을 섬기느냐로 결정됩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영적 싸움을 하는 용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용사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날마다 계속되는 영적 전투에서 날마다 깨지고, 쫓기고, 두둘겨 맞고, 날마다 얻어터지며, 날마다 KO 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승리하는 하나님의 용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는 충성스런 용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경험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한다할지라도 그는 하나님 나라 밖에 서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갓난아이와 같이 영적으로 새롭게 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진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용사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며, 예배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렇게 성숙해 가면서 가져야 할 그 다음 단계는 "하나님의 강한 용사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진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오늘 하나님 나라와 그 사역을 위해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몇년전 여름 시카고 외곽에 있는 윌로우크릭교회를 갔더니 넓은 주차장에 안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보면서 알게 된 것은 주차장에서 안내해주는 그분이 명문 시카고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현직 교수들 가운데서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은 대학이지요. 시카고대학의 교수는 생업을 위한 직업이고, 오늘 교회를 통해서 주어진 자신의 사명은 주차장에서 주차안내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0도가 넘는 더위와 싸워야 합니다. 한 겨울에 미시간 호수에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명 감당하는 일은 우리의 땀을 요구합니다. 우리들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우리들의 수고를 요구합니다. 때로는 희생을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손해를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사명의 길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일꾼들, 헌신된 일꾼들은 그러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성경은 "강한 용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들을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 생명을 건 헌신

    이 용감한 이 세 용사들은. 다윗 군대의 30명의 지휘관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용사들로 표현됩니다.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들이었습니다. James Bond가 전속으로 출현한 007시리즈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다. "007 Never Die"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습니다만 정말 주인공 007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는 웬만한 전투와 적진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들러리들은 멀리에서 터진 폭탄 파편에 맞아 죽지만, 주인공은 기관총을 난사하는 그곳을 지나가도 총알이 다 피해갑니다. 혹 총탄에 맞았어도, 적의 손에 붙잡혀도 걱정이 없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해도 걱정이 없습니다. 다 살게 되어 있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공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본이 살게 되어 있기 때문에 빗발치듯 날아오는 총알을 뚫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으로 잠입한 세 용사들에게 Happy Ending의 각본이나 보장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왕을 위해서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물길으러 가면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서, 주의 일하면서 하나님과 Bargain(협상)하려고 합니다. 내가 헌금을 얼마를 하고, 내가 무슨 봉사를 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하면 하나님은 이만큼 축복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축복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헌신, 드리는 봉사가 진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윗의 고향 앞에 있는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러옵니다. 그들이 들고 온 물 한 잔은 단순한 물 잔이 아니었습니다. 왕궁의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생명을 담아온 핏잔이었습니다. 세 용사들은 너무 용감해서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어서 뛰어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술이 뛰어나서 적진을 뚫고 갈 만큼 용감무쌍한 용사들이었기 때문에 달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헌신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헌신된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이십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SMU)의 Iliff School of Theology라는 신학부가 있는데, 그곳의 유명한 설교학 교수인 Thomas Troeger박사가 그의 설교 가운데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산군이 점령해 들어오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산군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반동분자들을 색출하여 현장에서 처형하기 위해 신문하던 공산군은 사로잡혀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무엇하던 사람이야? 예수쟁이지?" 그들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그리스인들에게 주님을 부인할 것을 위협적으로 요구합니다. 함께 붙잡혀온 그의 어린 아들에게까지도 총을 겨누면서 위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들의 귀한 헌신, 그들의 눈물의 헌신, 그들의 목숨과 자식의 목숨까지도 드리는 피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고, 한국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헌신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복음을 위해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썩어져 없어질 인생과 그 향락을 추구하는 일에 인생의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사역을 위해서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교회는 살아납니다. 교회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논리 정연한 '머리꾼'이 아닙니다. 교회의 행정을 잘 알고, 교회 정치를 잘 아는 '이론가'가 아닙니다. 목사의 설교는 어떻고, 교회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정확한 논리와 판단력으로 잣대질하는 '비평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에 필요한 것은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어떤 어려움에도, 어떤 손해 앞에서도, 어떤 여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뛰어가는 "헌신된 믿음의 용사들"이 필요합니다.

    □ 헌신된 사람들이 가졌던 확신.

    그러나 헌신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세 용사들이 헌신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한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삼하 18:2-3 말씀을 보십시다. 다윗이 전투를 앞두고 군대를 편성하고 지휘관들을 세우고 작전명령을 내립니다. 어려운 전투에 임하는 군대를 편성하고 나서 다윗은 그도 전투에 나갈 것이라고 병사들을 독려합니다. "나도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그때 전투에 나가는 다윗의 군대가 보인 반응을 보십시오. 왕은 나가시면 안됩니다. 적군이 우리들 절반이 죽어도 주의하지 않지만 그들은 가장 중요한 왕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요한 분이시니 성에 남아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것이 우리를 가장 잘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왕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그들이 섬기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셔서 사용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다윗을 좋아했지만 하나님이 오늘 그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다윗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귀한 분이었기에 그분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종이 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대신 내놓고 있습니다. 세 용사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종이 그렇게 간절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의 샘물 한잔을 마시고 싶어할 때, 그가 귀했기 때문에 그들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왕 다윗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오늘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사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사람만이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소중한 분으로 아는 사람은 헌신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내 생에 있어서 주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온전한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주님은 무엇입니까? 다윗을 그들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세 용사들은 헌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더 놀라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드려야할 헌신,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들의 핏잔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들의 삶 전부를 담은 잔이었습니다. 1999년 미국 장로교회 한인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에 캘리포니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과 함께 강사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만 그때 그분은 그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가서 새로 건축한 교회에 입당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건축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LA의 에너하임 시 한복판에 10.8에이커(약 13,000평)의 대지에, 약 1000만 달러(약 140억)가 넘는 대공사를 마쳤다고 했습니다. 이민교회에서는 1000만 달러라면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 감동하지는 않았습니다. 2년 전, 1차 헌신 주일에 교인 1000여명이 537만 달러(약 80억원)를 헌금했다고 했습니다. 이민자들의 삶은 아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잘 압니다. 1불, 2불 때문에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다운타운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서 번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내놓은 헌금이기 때문입니다. 그 헌금은 그들의 생명을 걸고 얻은 핏잔들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헌금이요 헌신이었습니다. 이민 교회를 사역하고 있어서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엄청난 헌금을 했다는 것 때문에 감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헌금을 드리고 통성으로 기도하는데, 그러한 생명과 같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고 난 성도들이 울면서 하나님께 몸부림치면서 그런 기도를 드리더랍니다. "하나님, 더 드리고 싶은데, 드릴 것이 없어요." 그들의 고백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그 목사님도 울었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들은 그 성전을 Miracle Complex--"기적의 땅, 기적의 건물"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이루어 주신 자리라는 뜻에서 였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헌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을 계속하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적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적을 기대한다고 해서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의 삶을 살는 사람들 속에 오늘도 하나님은 기적을 계속해서 일으키십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실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십시오.

    용사들이 핏잔을 가져왔을 때 다윗을 그것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소중한 헌신을 누가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부어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로 드립니다. 그래서 다윗과 하나님이 만남의 축복을 주셔서 만나게 하신 세 용사들의 영광스런 예배가 시작됩니다. 그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장소는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아름다운 곳도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다윗의 궁궐에서 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굉장한 예물을 드렸던 희생 제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새벽, 다윗과 세용사가 아둘람 굴 앞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드렸던 예배는 최고의 예배였습니다. 그들이 드렸던 것은 물 한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피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놓았던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그 핏잔을 아무도 받기를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울면서 예배합니다. 감격하면서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되는대로 나오지 마십시오. 아무렇게 드리지 마십시오. 최고의 것을 드리십시오. 생명의 핏잔을 부어 하나님께 드리듯,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올 한해 가장 좋은 예배를 드리는 좋은 예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해보십시오. 오늘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충성스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헌신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기적을 원하십니까?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더 드리고 싶은데 더 드릴 것이 없어요!" 그 고백을 가지고 나아와 생명의 잔을 드리는 예배자들, 한 주간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믿음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핏잔을 주님께 부어드리며 예배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좋은 예배자들이 있을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기적들, 예배의 축복들을 허락하십니다.

    영국의 육상 팀이 1924년 LA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100m 경주에서 유력한 우승후보인 '에릭 리델'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오면서, 자기의 경기 일정이 주일로 잡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깊은 생각 끝에 그는 코치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저는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감독이, 대표팀 단장이, 심지어는 영국에서 황태자까지 찾아와서 설득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있던 그 시간 어느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며칠후 400m 경주가 있었습니다. 출전 예상자였던 친구가 자기는 도무지 우승할 가능성이 없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것을 에릭에게 양보합니다. 그는 단거리 선수이지 중단거리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단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신 출전했습니다. 그는 출발선에 엎드려 신호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나직히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달린다. 내가 달리고 달릴 때, 하나님은 나를 더 빠르게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해주신다." 그는 한번도 선수로 출전해 보았던 적이 없는 400m 허들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합니다. 에릭 리델의 이 이야기가 "The Chariot of Fire"(불수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81년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지옥과 같은 혹독한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전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선수들에게는 거의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금메달의 영예도, 사람들의 박수 갈채도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헌신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님을 위해서 포기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을 위해서 바칩니다.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올 한해가 가장 귀한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셔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넘치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H. B. Grose는 302장 찬송에서 그렇게 고백합니다.



    2. 주님께 내 귀한 것과 내 맘과 내 생각도 주 위해 온몸을 바쳐 힘 다해 섬기면
    독생자 보내신 성부 은혜로 갚아 주리. 그대의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

    3. 우리의 귀한 것 모두 주님께 바치어도 단번에 생명을 주신 그 사랑 못 갚네.
    하늘의 영광을 버려 우리를 구했으니 그대의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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