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전도에 착념하라 2002-03-28 23:33:34 read : 158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본문 : 디모데전서 4:6-16 방송 듣기
현대생활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자극 받는 것도 많고 충격받는 것도 많다 보니까 모두가 어리둥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너무 감동을 많이 받다가 볼 일 다 보는 것 같아요. 은혜받을 때마다 해야 할 일도 너무 많고, 회개해야 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깨닫고 원하다가 보면 막상 중요한 일은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쁘지 않다. 바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고 바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도 목회적으로, 실천적으로 너무도 정밀하게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읽으며 감동받고는 이래서 되겠나 탄식하다가 그저 그렇게 끝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지금 곧 실천해야 할 중요 과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고 시작해 보도록 하십시다.
첫째로, 전반부 특히 7-8절의 요점은 한마디로 경건의 연습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요즈음 같이 분요한 시대는 이 중요한 신앙의 기본태도가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늘 생각하다가 종칩니다. 머리로 하는 신앙으로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다 놓치고 쓸모없는 일에 분요하다가 귀한 시간 다 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13-16절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전하라 가르치라 읽으라 이 일에 참념하고 삼가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한마디로 복음전도입니다. Peter Wagner박사는 복음전도를 세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① 임재전도 ② 선포전도 ③ 설득전도, 임재전도란 예수 믿는 사람의 삶, 존재 자체가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받는 중요한 도전이 생활의 순결과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사람들은 우리의 삶속에 있는 생명과 빛,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복음진리를 분명하게 입으로 선포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준다는 것, 잘하면 굉장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100% 그렇게 사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모두가 부분적이고 미숙합니다. 실패하는 가운데 배우고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 그분의 복음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것, 그 복음은 유일하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임재전도가 복음전도의 예비가 되고 토양이 된다면 선포전도야 말로 전도의 절정입니다. 우리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영화롭게 해주십니다. 그 다음 설득전도란 신자들이 계속 말씀 안에서, 지식 안에서, 사랑 안에서 자라가도록 양육하고 교육하는 훈련과정입니다. 설득전도는 제자훈련(사도화 훈련)을 통하여 천국일꾼을 양성하는 전도의 결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권하라, 가르치라는 말씀은 목회자의 측면에서나 교사의 입장에서는 성도들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고 모든 신자들에게는 제자 삼는 일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들의 주님과 구세주로 믿도록 가르치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 할 급선무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먼저 사람들을 제자삼는 것이 교회의 1차적인 사명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대로 지켜 살게 하는 것이 교회의 2차적인 사명입니다. 그래서 행 5:42에 "사도들이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고, 6:4에는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우리가 해야 할 신앙생활의 요점이 어디 있습니까? 기도하기와 전도하기가 아닙니까? 기도하기가 없으니까 힘이 없고 맹한 신앙생활이 되므로 쉽게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그런가 하면 전도하기가 없으니까 생명이 없고 생산이 없으므로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엎드리면 기도, 일어서면 전도 이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와 전도중에 어느 것이 앞장서는 것일까요? 일의 순서로 말하면 기도하기가 먼저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중요한 두 가지 요절이 있습니다. 첫째, 시 85:6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기도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고 요구합니다. "당신께서 먼저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셨으므로 우리가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지금도 먼저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 가운데서 당신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당신의 일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주님이 초자연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내가 변합니다. 우리 이웃이 변합니다. 교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삶이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얼마나 겸손하며 정직한 태도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일과 사건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주여! 우리를 오늘도 새롭게 하사 당신의 뜻을 기쁘게 순종하게 하소서. 하나님이시여! 오늘도 우리들에게 새 힘을 주옵소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선을 행하기에 지치지 않게 하옵소서."
둘째, 겔 36:37의 말씀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으면서 변명하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안 구해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 안해도 알아서 다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을 희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는 이에게 대한 관계요 관심입니다. 그분에게 요구하는 것, 그분의 뜻을 아는 것, 그것이 믿고 사랑하는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주실 수 있지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살 집을 주었다고 다 끝난 것입니까? 필요할 때마다 구하고 우리는 다시 줍니다. 그것이 삶의 보람이요 사랑의 기쁨이 아닙니까? 서로 교제하고 감사하고 느끼고 대화하는 것, 나의 소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그 과정이 사랑과 믿음의 시요 미학입니다.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도 우리가 기도로써 말로써 구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경건생활의 기초요 영적생활의 호흡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성경공부는 이따금 쉬어도 죄라고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봉사도 부득이한 사정이라 잠시 쉰다고 해서 죄라고 까진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삼상 12:23)고 했습니다. 그 다음 기도를 전도하기와 관련해서 말씀드린다면 기도는 전도의 부분도 아니고 절반도 아닙니다. 기도는 전도의 전부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이방신의 제사장들과 싸우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왕상 18:30-38).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돌을 취하고 번제물과 나무 위에 열두 통의 물을 통 넷씩 세 번 붓고 난 다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가 끝마치자 마자 불이 임하여 도랑의 물을 핥아 버렸습니다.
기도는 전도의 전부입니다. 기도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합니다. 갈멜 산의 승리, 전도의 승리는 엘리야의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기도의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열두 돌로 단을 쌓고 열두 통의 물을 부은 것은 모두가 그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선택한 자를 찾으시고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아멘 하신 순간이 불이 임한 순간이요 사람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전도에 관해 말씀하셨지요.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요 4:38). 우리는 사실 전도의 추수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직접 각 사람의 심령속에 복음을 뿌리고 심고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는 심부름하며 거두어들이는 추수의 한 부분에 참여한 것 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정말로 치밀하고 정교한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속에서, 기도와 함께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을 당신의 역사에 이끌어 들이시고 참여하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삼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개입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전선이 튼튼해야 전도의 전선이 열립니다. 기도의 전선이 무너지면 전도의 전선도 맥을 못춥니다. 먼저 기도의 전선이 있어야 전도의 전선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전도전선 이상 없습니까?"라는 질문은 "기도전선 이상 없습니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해서도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로서 준비된 수준만큼 하나님께서 깊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호 6:3). 봉사를 위해서도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주의 은혜로 찬송하게 하소서. 참 교사와 집사가 되게 하소서." 기도로써 예비된 수준만큼 하나님께서 큰 권능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께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은혜에 깊이 붙들린바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의 강을 건너 헌당의 언덕에 이릅시다. 전도사랑방의 다리를 건너 새로운 40년이 기다리는 가나안에 들어갑시다. 기도 가운데서 초자연적인 은혜와 자연적인 은총을 입읍시다. 좋은 일군들을 얻고 좋은 일군들이 됩시다. 전도에 승리합시다. 구역마다 최소한 두 개의 전도사랑방을 엽시다. 사랑방 순장훈련을 받으시면서 전도사랑방을 열고, 전도사랑방을 열면서 사랑방 순장훈련을 받읍시다. 마 24:14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끝이 오기 위하여 반드시 천국 복음이 증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존재합니다. 교회가 복음증거를 게을리 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생활전도, 설득전도만 외치고 있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소극적이 되고 부정적이 됩니다. 영적인 문제에는 언제나 냉소주의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적 앉은뱅이가 되고 맙니다.
임재(생활)전도, 설득전도는 도피구가 아니라 반드시 따라오는 전도이기 때문에 모름지기 교회는 선포전도에 쉬지않고 매달려만 합니다. 그것이 정직한 태도입니다. 우리나라 남북한 인구가 7,000만인데 믿는 사람은 천만에 불과합니다. 6천만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삶의 전도나 제자훈련에만 매달린단 말입니까? 제자삼아야 합니다. 만민을, 이웃 모든 사람을 제자 삼는 것이 전도요, 복음선포요, 전도사랑방입니다. 우리 주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믿게 하고 세례받게 하는 것, 그 다음에 천국일꾼이 되도록 도와 주는 것, 그것이 교회의 1차, 2차적인 사명입니다. 우리는 복음전도를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십니까? 게릴라식 기도수준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살아있는 교회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새로운 기도에의 도전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기도와 전도에 착념합시다. 다른 것은 2차, 3차적인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아야 신앙생활에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초자연적인 복도 받고 자연적인 복도 받습니다. 영적인 복도 받고 물질적인 복도 받습니다. 건강의 복도 받고 형통한 복도 받습니다. 기도의 비밀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받되 직접받는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6-17).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것은 받은 사람만 알고 받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시는 가운데 하나님께 받고 더 많이 받으시는 사연을 많이 간직하는 교우님들이 되십시오. 찬 506장 "예수 더 알기 원함은…"을 부릅시다. 2002년 3월부터 실시되는 1, 2부 새벽기도회에 열심을 품고 참석합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헌당의 장엄한 유업을 상속하고 더욱 복된 40주년을 떳떳하게 맞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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