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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충만한 생애가 중요하다
    2002-03-28 23:20:38   read : 1607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본문 : 창세기 50:15-26 방송 듣기

    우리는 흔히 성령충만에 대한 체험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은혜로우면 내가 상당히 은혜충만한 것 같다는 느낌때문에 다른 사람을 적당히 판단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내가 조금 시험에 들면 그만 열등감에 빠져들어 다른 사람을 치켜세우든가, 그 사람곁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현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파도처럼 흔들리지만 바다 물은 그냥 거기 있는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의 바다 속에 헤엄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은혜가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떼밀어 높이 들어 올리는가 하면 때로는 작은 파도에 떠밀려 숨이 탁탁 막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조용한 항구로 이끌려 갑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성령의 은혜의 절대치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받은 성령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구속의 성령이라고 부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은 족장 시대를 마감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대표적으로 잘 섬긴 인물입니다. 그는 성령충만을 체험했던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 한마디로 성령충만한 생애를 산 사람입니다. 그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신앙생활의 표준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창세기 족장의 신앙생활의 전통이 그에게 이어졌고 4천년을 건너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맥동하는 신앙의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합니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느 한 때 성령 충만하였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충만한 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일시적으로 방문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항상 동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요셉, 우리의 표준, 그의 영적 생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용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용서야 말로 사랑에 가장 가까운 낱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이 자기를 억울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빨리 죽었거나 폐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가 은혜의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그가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잘도 용서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용서의 양이 사랑의 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진정 성령충만한 장로님, 성도님들로 가득합니다. 남들이 제게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주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목회 잘 하고 있다."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견뎌내고 있다는 말보다 진솔한 표현은 없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쉽게, 그리고 얼마나 진실되게 용서하고 살았습니까? 열 사람의 형님들이 작당해서 그를 구덩이에 빠뜨린 하나의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 같으면 평생에 이를 갈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형들은 그를 애굽의 대상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원수를 갚아주소서." 하면서 원한을 품고 살았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오히려 용서하면서 기뻐하면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수인 이웃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늘 실수하고 범죄하는 자신도 용서하고 살았습니다. 지난 날만 용서하고 산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용서받으며 용서받은 감격속에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사 용서하십니다. 새롭게 사랑하시고 넘치도록 사랑하십니다. 그 용서의 사랑이 샘물처럼 솟아나기 때문에 늘 기쁩니다. 날 듯이 가볍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은 성령충만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았는가 하면, 거절했기 때문에 흠씬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여자는 한을 품든, 사랑을 품든, 자신을 위해서는 거짓을 지어내는 존재입니다. 뒤에 그가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자신의 결백을 들어내고 원수갚을 기회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수갚을 수 있는데도 갚지 않는 그것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칼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보다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할 때가 더 무섭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마음 속으로 두려움에 눌려 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칼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 그것이 용서의 힘이요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세요. 형들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두려워하면서 유언을 빙자하여 다시 한번 요셉에게 용서를 빕니다. 요셉은 형들이 아직도 자기의 용서를 믿지 못한데 대해서 안타까웠고 동시에 형들이 잘못을 정식으로 말해온데 대해서 고마왔습니다. 그날 이후부터는 한 아버지에게서 났다는 사실보다는 서로를 받아드린 이해와 사랑에 근거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일은 이전보다 더 굳은 결합을 가져옵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늘 잘못합니다. 그래서 나의 잘못을 인정할 때 그리고 서로를 용서해 줄 때 우리는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지게 됩니다. 잘못하고 섭섭하게 한 일에 대하여 정식으로 용서를 빕시다. 5년 전에 잘못한 것을 내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예전 당회원을 저는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의 고집도 잘한 것이 아니었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튼튼해지고 교회는 성령의 위로가운데 진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는 용서하는 생애였고 따라서 성령충만한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요셉은 형제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섬기는 것은 용서 이상입니다. 천국은 서로 섬기는 곳입니다. 지옥은 서로 판단하고 책임전가하는 살벌한 곳이지만 천국은 서로 위하고 약점을 서로 도와주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곳입니다. 누구를 위할까? 누구를 살릴까? 누구를 도울까? 누구를 기쁘게 할까? 누구를 편하게 해줄까? 따뜻한 인정과 깊은 배려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요셉은 타향살이를 오래 해본 사람입니다. 형제들이 이국 땅에 오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억압받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이 애굽으로 올 때 애굽 사람과 구분해서 살 수 있는 고센 땅을 허락받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배려였습니다.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창 46:33-34).

    고센 땅에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봉양합니다. 고센 땅은 야곱의 Silver Town이었던 셈이지요. 형제들을 용서하고 안심시키기 위하여 요셉이 말합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 본문 23절을 보세요. 그의 인애가 얼마나 큽니까? 인간미가 철철 넘치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합니다. 용서 이후에 오는 인간관계의 친밀함, 양선과 온유가 교회생활의 요체입니다. 여러분이 평신도신학원 1학년 일때는 모두가 사나와 보였습니다. 그러나 2학년이 되고 졸업생이 되니까 천사처럼 보입니다. 얼마나 부드럽고 대범해졌는지 모릅니다. 평신도신학원의 교훈은 "배우고 크게 믿어 바로 살자" 입니다. 본교의 교수였던 정순행 목사님의 설교집도 "크게 믿고 바로 살자" 입니다. 평신도신학원은 평신도가 배울 수 있는 최고급의 선지동산입니다. 그 수월성과 세계성과 친밀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리가 새가족을 전도해 놓고 영적 고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구역의 담을 넘어 전도사랑방을 만들었습니다. 새가족사랑방에서 1개월 정도 익히고 난 다음에는 각 부속회에서 새가족도우미가 정착사역을 담당합니다. 교회 홈페이지를 보십시오. 새가족팀과 홍보출판팀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새가족과 인도자의 사진이 크고 멋지게 나오는가 하면 곳곳에 정성이 담긴 코너들이 있습니다. 방송국 음향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우리 교회를 다녀가신 분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영상팀은 주말을 희생하면서까지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장훈련을 받은 분마다 전도사랑방을 만들고, 부속회마다 도우미 팀과 장이 있어 정착사역을 책임집시다. 우리 교회 양육체계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믿음직스러우면 당신의 백성들을 우리로 하여금 기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요셉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꿈이나 꾸고 해석하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그 형제와 자녀와 자기 민족을 길렀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사람을 살리고 섬깁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기릅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배려하고 최고의 선을 베풉니다.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이 그러한 따뜻한 배려를 보고 그런 마음을 느끼기만 하면 우리의 전도는 성공합니다. 전도사랑방에서 바로 그러한 느낌을 주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부속회에서 그리고 구역과 전도사랑방에서 그런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전도는 쉽습니다. 가서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친구처럼 배려해 주면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마 11:28-30).

    셋째로, 그는 언제나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잘못된 권위 아래 눌려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는 무조건 반항적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무슨 각목든 데모가 필요합니까? 서로 다치게 되는 일 밖에 생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은 언제나 위에서 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국민은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경외해야 합니다. 요셉이 어디에서나 은총을 입은 까닭은 그가 근본적으로 권위 순종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심부름하던 아이가 커서 보디발 장군의 총무가 되었는가 하면 바로 정부의 총리가 됩니다. 그는 좋은 아들의 영을 받았고, 좋은 아버지의 영을 받았던(말 4:5-6) 것입니다. 권위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성령 충만의 현저한 특징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서로 복종하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어떤 목사님이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아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모질게 부대끼고 촌으로 쫓겨갔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 선배에 대해서 한 번도 욕하지 않고 좋은 말만 했습니다. 몇 년 후 오해가 풀렸을 때 그 선배가 "너야말로 은혜를 아는 몇 안되는 사람중의 하나"라고 칭찬하더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을 뛰쳐 나갔다가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의 샘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납니다(창 16장).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갈이 대답합니다.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 사자가 말합니다.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라 그 수하에 복종하라" 그것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권위가 싫어 도망가는 하갈을 다시 권위 아래 앉히셨던 것입니다. 여인들은 권세아래 있는 표로 머리에 수건을 썼습니다(고전 11). 롬 8:20에 바울이 말씀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요셉도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110세를 살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모든 사람에 대하여 또는 모든 시간에 대하여 굴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욕심도 제어하고 지배욕도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아래 자신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 질서에 순응할 때 아름다운 운명을 누립니다. 요셉은 그가 만난 사람들의 권위 아래 잘 순복하므로 성령충만한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평생을 소망가운데 살아갔음으로 세속을 이겨내었습니다. 애굽에서의 영광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상급인 가나안 땅을 사모했습니다. 가나안이란 소망의 영역이 언제나 그의 가슴 속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요셉이 유언합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 50:24). 그리고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자기의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도록 만들었습니다(창 50:25). 그로부터 근 오백 년이 지났습니다. 수 24:32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믿음으로 살다가 소망가운데 죽었습니다. 그는 성령충만을 외치고 말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생애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생애는 성령과 함께 이웃을 용서하고 섬깁니다. 항상 권위에 복종하고 소망가운데 끝나는 인생입니다. 성령충만의 체험에만 전전긍긍하지 마시고 성령충만의 연속성에 유의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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