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2002-03-28 23:19:44 read : 185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본문 : 요한복음 14:1-4 방송 듣기
"너희의 마음에 더 이상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계속하고 또 나를 계속해서 신뢰하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과 거주할 집들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알고 있지 않느냐"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은혜롭고 평화롭고 마음에 안정과 힘이 생기는지 암송할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문득 이 말씀이야말로 나의 신랑, 내 영혼의 감독이신 분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구주시요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 친밀한 일상적인 표현을 빌리면 내 남편, 내 신랑입니다.
본문을 가만히 읊어보세요. "여보, 마음에 두려워 마시오. 슬퍼마시오. 부끄러워 마시오. 흔들리지 마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듯이 나를 신뢰하시오. 내가 여기 있지 않소. 당신과 내가 영원히 거할 아버지의 집이 있지 않소. 아버지의 나라에 우리들이 살 곳이 없다면 내가 그렇게 말했겠지요. 내가 가서 당신과 함께 살 곳을 준비하겠소. 때가 되면 내가 다시 오리다. 내가 다시 오면 당신을 영접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겠소. 내가 지금 어디로 무엇하러 떠나는지 당신에게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소." 얼마나 부드럽고 살뜰하게 설득하는지 남이 들으면 질투를 느낄 정도가 아닙니까? "내가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멸시와 천대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지만 성령의 임재가 있고 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는 길이 아니겠소. 당신을 위하여 우리 집을 위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강을 건너 구원과 승리의 길을 내가 개척하겠소.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마시오. 이 일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시는 일이요 원하시는 일이며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잠시 이별이 있고 잠시 성령의 시대가 있고 그 다음에 내가 다시 오겠소. 내가 다시 오는 목적은 오직 당신이오. 당신을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당신도 있게 하겠소."
사랑하는 여러분, 이보다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 어디 있으며 뜨거운 사랑의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 신랑, 예수 남편으로 인하여 무한히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두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써 "나는 네게 장가들었다"는 엄청난 선언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예수믿는 우리들의 선언으로써 "우리는 예수께 시집왔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예수께 시집왔습니다." 양은순씨가 쓴 책이 있지요.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 또 뮤지컬 제목이 있지요. "살짜기 옵서예, 당신의 아내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남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한결같은 우리 삶의 반석이요 우리가 기댈 영원한 언덕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리라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리라 진실함으로 장가들리라 네가 하나님을 알리라"(호 2:19-20). 주님은 당신의 속성대로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장가들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김으로 우리 죄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피남편입니다. 그리고 진실하신 당신의 성령을 세상끝날까지 우리 곁에 보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장가들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떠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결혼하고 나면 호적의 이름이 시집으로 옮겨옵니다. 우리는 예수믿고 구원받은 다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사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잃어버리거나 놓쳐버리면 당신의 이름에 수치가 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우리를 당신의 장중에 붙잡으십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여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멸망의 자식 외에는 모두가 구원을 얻습니다. 당신의 신부가 타락하고 멸망하면 당신의 불명예와 무능의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으로 끝없이 우리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 23:3). 우리는 오늘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20-30).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한 우리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부탁은 오직 하나입니다.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아비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할지라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시 45:10-11). 우리는 세상 문화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세상풍속보다 영적풍속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우리 왕, 나의 주,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듣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화속에 이미 들어왔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문화요 말씀의 문화요 성령의 문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께 시집왔습니다. 얼마나 잘 왔습니까? 신랑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택했습니다. 먼저 사랑했습니다. 찾아 오셨습니다(히 1:1). 그분의 짝사랑에 마침내 우리의 마음 문이 열리고 우리의 눈이 띄였습니다. 시집오는 색시는 보따리를 싸서 신랑집에 와서는 그의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안주인이 됩니다. 우리는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이사왔습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 주소의 이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예수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우리는 예수님께 시집와서 그에게 속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의 신부로 범사에 일컬음을 받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예수와 나는 하나입니다. 따라서 주의 것은 나의 것이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영적 사실에 대하여 환호하면서 예언합니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고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4-5). 우리가 주님께 시집와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장래 주실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했지만 그 기업의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엡 1:14).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을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할렐루야!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고 예수 믿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복음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실 뿐 아니라 구속의 날까지 그리고 천국 문안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문제의 응답은 없어도 언제나 최고의 응답이 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눈과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은 좀 부족해도 좋습니다. 세상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도 주 예수 신랑이 계시니, 그의 보내신 은혜의 성령이 계시니,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은 예수 시집살이와 같습니다. 신부의 행복은 신랑의 사랑에 달렸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이제 전적으로 신랑되신 예수님의 사랑에 달렸습니다. 그분이 행복해 하시면 우리도 행복합니다. 그분이 불행해 하시면 우리도 불행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현숙하고 조신한 신부입니다. 현숙하고 조신한 신부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주님을 속상하게 하지 맙시다.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합시다. 감사할 것을 헤아려 봅시다. 감사를 많이하면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행복해 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감사하는 신부에게 더 좋은 것을 아낌없이 신속하게 주십니다(잠 30:15-16). 둘째로, 시집식구와 잘 지냅시다. 하나님의 큰집인 교회에는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불러모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택하사 가까이 오게 하셨고 우리들을 연합시켜 주셨습니다. 시집 식구를 판단하고 흉을 보는 것은 바보스런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가족이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외에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21세기라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와 교회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큰 복을 받습니다. 나라를 바꾸는 사람을 누가 인정해 줍니까? 교회와 나라를 쉽게 바꾸면 헤아릴 수 없는 그윽한 복을 놓칩니다. 받기가 힘듭니다. 주님사랑과 교회사랑은 하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듯이 교회를 사랑해야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장엄한 복락을 대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어느 도심에 있는 교회의 장로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밀어내어도 나가지 않을 600명의 교인이 있습니다."
셋째로, 신랑이 시키는 일을 합시다. 사랑하면 수고가 괴롭지 않지요. 사랑하면 그를 기쁘게 하고자 열심히 일하고 싶어집니다. 남편에게 언제 아내가 제일 사랑스러운지 물어보세요. 열심히 집안 일을 할 때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교회의 일은 복음전도입니다. 복음전도를 위하여 마음을 쏟아 기도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자랑하는 성도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찬 204장 1절을 부릅시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넷째로, 신랑을 믿고 의심치 맙시다. 그분이 날 버리지 않을 것을 믿읍시다. 그분이 날 좇아내지 아니할 것을 믿읍시다. 세상 신랑은 미워하면 핑계삼아 이혼 증서를 써주지만 예수 신랑은 한번 약속하면 영원불변입니다. 내가 다 몰라도 내가 다 보지 못해도 신랑의 말씀을 믿고 성품을 믿고 하신 일을 믿읍시다. 그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야말로 믿을 만 합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그분의 하신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보다 힘찬 말씀을 나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찬 179장 1절과 3절을 부릅시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늘 의심하면서 안 믿는 자에게" 늘 의심하면서 안 믿었던 것을 회개합시다. "내가 다시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게 장가드신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예수께 시집왔습니다. 이 복된 신분을 잊지 말고 살아 가십시다. 예수 신랑, 그분은 초원의 빛처럼 사라질 영광이 아닙니다. 예수 남편, 그분은 영생의 빛으로 다가오신 우리 삶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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