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앙생활의 특징 2002-03-28 23:05:47 read : 1724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본문 : 고린도전서 16:13-14 방송 듣기
세상을 살아갈수록 건강이 제일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도 건강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재능, 물질, 재산, 자녀가 있어도 내 몸 하나 상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에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고 찬양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쉽게 시험에 들고 질병에 걸리면 불행합니다. 힘듭니다. 불만과 원망의 늪에 빠져들고 맙니다. 21세기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지내기 위한 예방조처 겸 주의할 생활수칙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건강한 신앙생활은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주님은 강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하면 튼튼해지고 영적 심장이 강해집니다. 성숙하게 되고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초롱초롱해집니다. 반면에 주님과 멀어지면 불행해지고 위험해집니다. 주님과의 거리가 행복의 거리고 건강의 거리입니다. 예수와 하나되지 않는 틈새에 어려움이 들어옵니다. 자동차 기계의 이음새가 허물허물해 지면 언젠가는 사고가 납니다. 사고가 예정됩니다. 그래서 정비소에 가면 기름을 주고 조여줍니다.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성령께서 우리의 딱딱해진 심령의 이음새에 기름을 쳐주셔서 유연하게 해주십니다. 아마도 예배 전에 회의하면 회의가 긴장 때문에 딱딱해지고 고함이 터져 나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의 회의는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속에 스무스하게 진행하기 위해섭니다. 교회는 사람의 혈기로 지혜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권능으로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기름을 치시고 나사를 조여주심으로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또 한 주간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나라 위해 고난을 참고 말씀과 함께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받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닫히고 강팍해지면 곧 어려워질 징조입니다. 징계받을 신호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망한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멸망직전에 경고의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소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주님과 언제나 밀접하게 살아가십시오. 예수 안에는 흉년도 없고 불행도 없고 죄도 없고 슬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 모든 좋은 것을 다 감추어 두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 그 안에 있는 보물과 보화를 꺼내어 소유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보물찾기라고 풉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 사십시오. 사람은 어느 바위엔가 안겨야 삽니다. 사람은 어느 바위엔가 숨어야 안전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보고도 산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반석 틈에 두고 주께서 지나도록 주의 손으로 그를 덮었기 때문입니다(출 33:21-23). 찬 464장에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큰 바위의 틈새에 나를 숨기시고 주님의 손으로 덮으시면 안심입니다. 예수 품에 안기면 가장 평안합니다. 가장 행복합니다. 가장 좋습니다. 할렐루야! 찬 476장,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를 다같이 부릅시다.
주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강렬할수록 좋습니다. 사랑의 욕심은 죄가 아닙니다.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사랑 받고 사십시오. 건강하지 못한 신앙은 언제나 반쪽 신앙입니다. 예수도 보고, 세상도 보고, 물질도 좋고, 예수도 좋고, 양쪽을 보려니까 하나도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자주 시험에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고생이 많습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우리는 선을 분명히 긋고 살아야 합니다. 물질보다 예수가 좋다는 증거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향락보다 예수가 좋다는 증거가 주일성수입니다. 이 두 가지가 건강한 신앙생활의 바로메터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두 말없이 예수께 나와서 그에게 들어가 그의 의로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원하지 못한 우리는 예수께로 들어가야만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1세기에는 꼭 예수와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면 교회에 다닐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은혜로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건강한 신앙생활은 쉽게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약 1:14절에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기도문에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한 것을 보면 시험에 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따금씩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순종하는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시험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심하면 시험하고 또 시험해서 우리로 하여금 곤란하도록 심기가 상하도록 하시지는 않습니다. 보세요,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조금 기온차가 나고 바람만 불어도 콜록콜록 감기가 들지요. 시험이 안되는 것도 꼭 시험을 만들어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내고, 오해하고, 낙심 잘하는 분들은 늘 시험에 들어 사는 분입니다. 이 일 때문에 속이 상해 있다고 해서 한참후에 이제는 나았겠지 하고 물어보면 어느새 또 저 일 때문에 속 상해 하고 있습니다. 연속적인 시험가운데 있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분들은 속으로 시험에 드는 것이 약이라고 생각하시는 줄 모르지만 결코 약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우리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겠습니까?
시험들만한 것에 시험들면 괜찮습니다. 그로 인해서 연달한 사람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험될 것도 아닌 시시한 말 한마디 때문에, 작은 일 하나 때문에, 연속적으로 시험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크게 하시고, 넓게 하시고, 강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오직 기도와 믿음으로, 성령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때로는 좀 더 잘 믿는 사람을 가까이 함으로 되기도 합니다. 걱정하는 분과 함께 있으면 자꾸만 걱정이 생깁니다. 시험에 든 교인과 만나면 나도 시험에 듭니다. 사람은 사람과 동화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과 만난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 속에 분노와 의심이 생기면 보통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고 난 다음에 마음에 평화와 감사가 생기면 성령이 역사한 것입니다. 웃는 사람과 가까이 하십시오. 감사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십시오. 좀 더 좋은 사람, 나이도 많은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런 사람과 동화되어야 자기 발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늘 낙심하고 좌절하고 조그마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저버리고 배반하면 하나님께 영광되지 않습니다. 믿음생활이 퇴보합니다. 21세기에는 우리 교회에 더욱 좋은 성도, 더욱 은혜로운 성도가 많아질 줄 믿습니다.
셋째, 건강한 신앙생활은 겸손하게 자기를 반성할 줄 아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하고 은혜받고 능력받으면 더욱더 나의 부족을 알게 됩니다. 누구에게 잘못을 지적받을 때 그 말귀를 알아듣고 신속하게 회개하는 사람은 보통으로 은혜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또 자기도 모르게 잘못합니다. 그럴 때 누가 와서 지적해 주는 것을 호의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건강한 성도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지탄합니다. "당신은 지금 남의 양새끼를 가로채고 있소!" "아니 이 정도 훔친 것이 무슨 죄가 됩니까? 그 정도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은 그렇게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되 크게 지어야 죄가 아닙니다. 조금 짓는 것도, 조금 잘못한 것도 죄입니다. 이것을 즉각 알아채고 반성하는 것은 그 신앙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 사도는 평생 시험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하나님 앞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데,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고 살아난 마당에 누구를 비판하겠는가?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특별사면과 보호를 받고 사는 마당에 남을 향하여 손가락질 할 배짱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 회개할 것이 많습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품안에 들어가서 안길수록 "나는 죄인 중에 최고 죄인입니다. 내 탓입니다." 이렇게 더욱 작아집니다. 이렇게 나의 부족이 더욱 드러납니다. 오직 긍휼과 통곡과 눈물이 가득한 깊은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찬 141장을 부릅시다. "웬 말인가…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먼저 깊은 회개를 체험한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새신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찬 337장, "인해하신 구세주여… "도 부릅시다.
욥이 고난받을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나는 허물이 없는데 왜 내가 이런 고난 당해야 하나?" 그럴 때 시련이 계속되었습니다.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할수륵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상황도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변론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고난받은 나중에 42장에 이르러 드디어 욥의 입에서 회개가 나왔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보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3-6).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모르고 실수했습니다." 그때부터 은혜가 내리기 시작하고 위로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곡식이 익으면 고개를 숙입니다. "주여! 내가 부족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잘 몰랐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회개합니다." 신속하게 회개하는 사람, 겸손하게 자기를 비우고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태양이 떠오르고 축복의 햇빛이 비쳐오는 것입니다.
넷째, 건강한 신앙생활은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눅 17장에서 10명의 문둥이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9명은 병 고침을 받았지만 다른 걱정들이 그 감사를 눌러 버렸습니다. 병이 낫자 먹고 사는 일을 책임져야 합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가정 걱정, 옷 걱정, 결혼 걱정, 생활 걱정, 모든 걱정들이 뱀처럼 머리를 들고 일어나자 감사할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정작 감사해야 할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할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런데 한 명은 병 고침을 크게 보았습니다. 다른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그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이 큰 은혜로 다 소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다른 은혜를 주시지 않아도 문둥병만 고쳐 주셔도 다른 것은 살면서 열심히 일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와 위로와 용서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큰 은혜 한 가지로 다른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한 가지로서 다른 것을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하늘나라의 스톡옵션은 성령 자신입니다. 성령의 생명, 성령의 은혜, 성령의 사랑, 그분의 도우심과 보호하심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한 가지 은혜로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도와주기 시작하시면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한번 사랑하시기 시작하시면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잘되어야 감사할 수 있다면 일평생 한번도 감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 때문에 감사하려면 재벌총수가 되기까지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진들은 다 어렵고 부족한 가운데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하루 세 번씩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어려웠습니다. 부족했습니다. 적들은 호시탐탐 악한 계교로 그를 꽁꽁 조여 왔습니다. 완전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자굴에까지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는 눈에 차는 사건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신앙의 날개가 달립니다. 힘을 얻습니다. 뜹니다. 솟구칩니다. 다니엘은 감사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다 받아냈습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한 가지 은혜로 다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은혜라도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 아내를 천사보다 귀하게 봅니다. 어떤 분은 남편을 최고로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랑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니까 천사처럼 보이고 최고로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나요? 그런데도 늘 남과 비교하고 남을 부러워하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속아온 것은 아닌가요?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히 행복한 사람도 없고 완전한 낙원도 없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내게 주신 큰 은혜 한 가지 가지고 모든 일에 승리하는 것 뿐입니다. 감사가 환란을 극복합니다. 감사가 환란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하나님의 손길을 불러들입니다. 이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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