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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기도를 하라
    2002-03-13 23:49:16   read : 218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눅11:5-13
    오창우
    2002-03-10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은 기도의 방법에 대한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방법은 하나님과 친해져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 말씀부터 7절 말씀까지 보겠습니다. 같이 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아멘.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친구 대접을 해야 되겠는데 준비된 음식, 떡이 없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형편으로 보면 빵이라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만들 시간이 없습니다. 옆집에 가서 먹을 것을 빌려 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옆집에 찾아가야 할 시간은 깜깜한 밤중입니다. 밤은 잠자는 시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잠자는 시간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안된다 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왜냐하면 그 집의 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자곽처럼 네모나게 생긴 집이 20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집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이 뭐냐면 낮 동안에 일하던 나귀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오리 같은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집은 송아지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복층으로 집의 전체 3분의 일쯤 되는 곳에다 약간 계단을 만들어 놓고 위에다가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밥도 해먹고 잠도 자고 그러는 데, 엄마 아빠 따로 자지 않고 같이 잡니다. 그러니 밤에 누가 가서 문을 두드리게 되면 어느 한사람만 지금처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다 깨야 합니다. 그것 뿐아니라 짐승들까지 다 깨나니까 이거는 하루 밤에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깜깜한 밤에 이런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니까 밤중에 누구의 집을 찾아간다고 하는 것은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만이 그 집을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대학 간 아들한테 대학생활 하는데 대해서, 이런 가르침을 줬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이 있어서 생활 지도를 했어요. 알아서 지도를 하는데 칭찬도 하고 책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가게 되면 전혀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교수님과 친해지도록 관심을 끌어라 그러면 점수가 달라지고 외국 유학갈 때 추천서도 잘 써준다. 아빠가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100명 넘게 앉아있는데, 그 아이들 출석 부르려면 대단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을 보게 되면 앞자리에 앉는 학생들은 출석을 부르면서 그 이름이 다 기억되더라, 또 앞자리에 앉는 학생들은 대부분 열심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일찍 와요. 그리고 교수님을 그냥 대하지 않습니다. 자판기 커피가 100원인데, 커피 뽑아다 놓고 교수님 드세요 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교수님 드세요, 하고 박카스 사다가 놓고 조그맣게 메모를 써놔요, 교수님 사랑합니다. 누가 줬느냐? 보면 누가 줬는지 알아요. 그러면 그런 학생들은 제 마음 속에 각인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대학교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사지선다형 아니잖아요. 주관식이잖아요. 채점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아이들은 벌써 이름 보면 점수가 나오는 거예요. 내용을 보면서 5점짜리도 6점, 7점 가게 될 것 아니겠어요? 친해져야 되요. 친해지면 다른 거거든요.

    여러분,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장사꾼들의 신조가 있어요. `물건을 팔지 말고 사람을 사라` 는 거예요. 우리는 물건 팔아서 많이 남느냐 적게 남느냐 이 얘기 하지,만 그 사람은 단골 만드는 게 우선이거든요. 사람이 친해지면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물건을 팔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음식적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남을 사먹을 생각을 하지 마세요. 나는 음식점 주인하고 음식점의 종업원을 사야 합니다. 그래서 팁을 많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은 음식을 가져올 때 받아먹는 입장에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습니다` 이 한마디만 해도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 가져올 때 왜 이리 늦게 가져오느냐 그릇을 탁탁 놓느냐 여기에 뭐가 들었느냐 이거부터 따지기 시작하거든요. 그런데요, 저는 가능하면 사람 살라 그래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밥을 늦게 가져와도 불평하지 않아요. 안에 혹시 머리카락이 있을 수 있고, 뭐 원치 않는 것 있을 수 있잖아요. 뭐 큰일 난 것처럼 그래요. 집에서도 그럴 수 있잖아요. 그저 집식구 생각하는 것처럼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모르는 척 머리카락 끄집어내서 버리는 거예요. 사람을 사야 되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자리가 달라지고 반찬이 하나라도 달라지는 것 아니겠어요.

    누가 그래요. 목사님은 참 복도 많다고. 목사이기 때문에 복이 많은 게 아니에요. 일년에 한 두번 가는 곳에서도 냉면에 사리 하나 더 주는 것은 사람을 샀기 때문에 그렇다고 나는 믿어요. 어떤 집에 가면요, 냉면 먹으러 갔는데 갈비찜까지 갔다 준다니깐요. 사람을 사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을 사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물건으로 만나지 않고 음식으로 만나지 않더라구요. 속 깊은 얘기를 해요. `목사님, 사실은 내가 이런 일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관계가 맺어지더라구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물건을 파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되요. 사람을 사야 되는 거예요. 친하게 지내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내가 기도했으니까 주세요 이런 식으로 예수 믿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하고 친해져라 이 말이에요.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여러분, 8절 말씀 보십시다. 같이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아멘.
    더 자세한 얘기는 조금 있다 하겠습니다만 이 말씀이 오해가 많아요. 벗인대도 안주는 데 간청 때문에 준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내가 길 지나가는 데 어떤 사람이 옷을 찢고 눈물 흘리며 달라 그런다고 내가 줄 것 같아요. 조금 동정 삼아서는 주겠지요. 그러나 내 친구가 달라 그러는 것하고는 달라요.
    또 마지막 절에 보게 되면 부모와 자식간의 얘기를 하면서 자식이 달라 그러면 왜 안주겠느냐 얘기하거든요. 자식이 내게 달라 그러는 것 하고는 다른 거예요. 길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리 옷 찢고 눈물 흘리고 머리를 산발하고 아무리 달라 그래도 주는가? 안줘요.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과 친해져야 하나님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친해지는 것이 관계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관계하는 것의 반대는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먹듯이 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자판기는 내가 필요할 때 돈 넣고 커피를 꺼내먹는 기계예요. 기계 앞에선 언제나 일방적이죠. 내가 주인이에요. 내가 원하는대로 기계는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자판기에서 저보고 오늘은 커피 들지 말고 율무차 드세요 이런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냥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먹는 거예요.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사람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기계예요.
    이런 자판식 기도는요, 우상 섬기는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의 목표는 딱 하나예요. 내가 원하는 것 이루어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오늘 나한테 복 주고, 오직 나한테 건강 주고, 오직 나한테 길만 열어주면 그만입니다. 이런 기도를 가리켜서 기복신앙이라 그러는 겁니다. 이런 신앙에는 나의 소원성취만 있을 뿐 사람의 변화는 기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리지만 물건을 사러 갔다가 사람을 사면 인격이 변화가 되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가까운 사이가 되거든요. 나도 변하고 그 쪽도 변하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 안에 살게 되면 하나님 안에 살게 됨으로서 내 신앙의 인격도 변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나 이런 기복신앙적이고 자판기식 기도하는 사람은 인격이 변화된다는 것 기대할 수 없어요.
    여러분 무당들의 인격, 점쟁이 인격을 한 번 보십시오. 소위 경지에 오르고 용하다는 사람들 좀 보세요. 얼마나 교만한가. 나는 용하기 때문에 내가 못 고치는 게 없고 내가 굿해서 문제 해결되지 않을 게 없고, 내가 점쳐서 안맞는 게 없다 봐라 자기 능력 자랑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기복신앙의 인격의 특징이 뭐냐 교만해지는 거예요.
    만일 이런 사람들이 점쳐 주세요, 굿 해주세요, 그러는데 글쎄요, 제가 해서 될까요 그러면 아무도 복채들고 오지 않아요. 교만해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돈은 벌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세요. 교만한 자는 망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기복신앙과 점쟁이 신앙이 이렇게 망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부르짖고 간구한다 이것에 따라서 하나님이 응답할 거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런 것 아닙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기도자인 우리가 친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해져야 해요. 이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방법의 첫 번째 비결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친해질 수가 있어요.
    요한복음 15장 14절에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친구가 될려면요, 하나님 명령하신대로 해야 되요.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목표는 구원이에요.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기도의 목표는 회개하는 거예요. 돌아오는 거지요, 하나님께로. 그러나 믿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에요. 친해지는 거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거예요, 기도할 때. 기도하는 너는 누구냐? 누군데 나한테 기도하냐? 그 때 우리는 딱 한마디 해야 되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 천국백성입니다. 나 구원받은 아무개입니다. 나 예수 믿습니다. 이 얘기를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이거 묻는 거예요. 벗이냐? 내 자녀냐? 우리가 주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은 다른 거 아니에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것이란 그 말이에요.
    13절에 보게 되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얼마나 강조해요.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벗보다 더 가까운 사인데, 그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라는 거예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거든요.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말이죠, 무슨 얘기를 하면 친구가 뭐 어떻게 한다 이런 얘기를 잘해요. 그리고 친구 따라 가더라구요. 보면은 친구의 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오죽 하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그러겠어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부모가 하는 말은 잘 안듣는데,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말은 부모가 꼼짝못해요. 부모가 자식한테 하는 말, 자식은 잘 안들어요. 머리가 크면 더 안듣거든요. 그런데 자식이 부모한테 하는 얘기는 안들을 수가 없어요. 지금 안된다고 그래도 마음에 새겨져 가지고 언젠가는 그거 해줄려고 그렇게 애쓴다고요. 그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시집가면 끝이다 그러는 엄마들이 있어요. 왜 시집간 딸아이 봐주느냐고, 시집갔으면 그만 아니냐고, 그 애 좀 보지 말라고, 시집가면 그만이지, 왜 그러느냐고, 남한테 자꾸 뭐라 그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자기가 외손주 갖게 되면요, 그 손주 봐달라고 맡기면 거절하지 않더라구요. 그 때 가면 알아요. 여러분, 장담하지 마십시오. 자식이 부탁하는 거 거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내가 자녀로서 하나님에게 부탁할 때 하나님 절대로 거절하지 못하세요.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 안에 있다고 하는 것, 우리가 주님의 친구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 얼마나 당당한 일인지 몰라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그런 확신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관계의 기도의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6장 8절을 한번 보시겠어요.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것이 하나님 이시더라구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아이들이 등록금 달라, 뭐 달라 그러지 않아도 다 준비해요. 그것은 아버지의, 부모의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이 뭐냐면 홍해 바다예요. 이 바다를 건널 만한 힘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그런데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셔 가지고 홍해가 갈라져서 모세도 건너가고 백성들도 건너갔어요. 원망하던 사람들도 다 건너 주셨어요.

    우린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는 거예요. 기도하지 않아도 줘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고 그러는가?
    여러분,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세요. 오늘 말씀이 똑같이 거기에 있거든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아멘.
    기도해도 굉장히 세게 기도하란 말이에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왜 하나님이 기도 안해도 아시면서 왜 기도하라 그래요.

    여러분, 7장 6절 말씀 한번 보세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아멘.
    여러분,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왜? 그것을 밟는다 그랬어요. 여러분, 진주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걸 돼지한테 주면은 뭐라 그러냐면은 발로 밟는단 말이에요.
    여러분 이 말씀하고 구하라는 말씀하고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것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 어려서 말이에요, 아이들이 학교 갔다오면 엄마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 놓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애들이 그렇게 좋아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애들 보면요 돈주지 말아야지, 학교 갔다 오면서 꼭 불량 식품 사먹고 온단 말이에요. 불량 식품.
    그것을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더 맛있어 해요. 그거 아니면 못살 것처럼 생각하거든요. 불량 식품은 아이들에게 병을 들게 하고, 나쁘죠? 그러나 부모가 해주는 것은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사줘야만 그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주면 그것을, 진주를 줘도 그것을 우습게 알고 발로 밟는단 말이에요. 거룩한 것을 줘도 그것을 개가 발로 밟는 것처럼 발로 밟는다구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거예요.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면서 원하시는건 뭐냐면, 적어도 감사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녀가 돼서 성숙해 지는 것이 더 귀한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뭘 사다주면 좋아하는 자녀가 있는가하면, 왜 내가 원하는 것 아니라 그러고 그거 우습게 아는 애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감사하는 애는 자꾸만 더 좋은 거 사주고 싶어요. 그런데 감사하지 않으면 더 사주고 싶다가도 `에이, 그 놈 또 짜증낼텐데.` 안 사준다구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우리가 작은 거 하나도 감사하다 할 줄 알고 귀한 것 알고 그거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하나님이 더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진주를 발로 밟는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하지 말아야되겠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 되요. 그러나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감사함으로 은혜 속에 사는 성도가 믿음 있는 성도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홍해 바다를 건넌 다음에 기도한 모세는 물론 원망하던 이스라엘도 같이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그런데 조금 걸어가니까 목이 마른데, 샘을 하나 발견했거든요. 그런데 샘이 쓴 물이에요,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찬양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하나님 원망하는 거에요.
    그런데 모세는 원망 안해요. 왜? 기도해서 응답 받은 적이 있거든요. 쓴 물보다 더 큰일을 감당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을 놓고도 원망하지 않고 또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 응답하셔 가지고 `나무막대기 하나 집어넣어라 단물 된다.` 단물 돼서 먹었어요. 그거 보고 또 백성들도 또 같이 찬양하고 먹었을 거예요. 그러나 똑같은 물을 먹어도 모세가 먹은 물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먹은 물은 다르다구요.
    우리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주시고 그거 감사하고 그 은혜 속에 살아갈 때 하나님이 더 큰 은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즐거움이란 것은 다른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거거든요. 그래서 8절 말씀에 "벗됨을 인하여는 주지 아니하여도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그러셨어요. 벗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간청만이 귀한 것이 아니라, 벗이 사랑을 줘야될 그 대상이지만은 내가 원해서 얻으면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간청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관계의 기도는 굉장히 다이나믹한 기도예요. 굉장히 역동적이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여러분 기도의 세계가요, 얼마나 넓은지 몰라요. 그냥 자판기식 기도는요, 그냥 넣다 하면 싹 나와요.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없어요. 감동이 별로 없어요.
    여러분 자판기 커피 먹으면서 감동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아무 것도 없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커피점에 들어가서 그 주인이 커피를 `아, 그러시냐고 내가 직접 뽑아 드리겠다`고 그러면서 커피 알을 갈아가지고 쫙 뽑아서 향 내가지고 딱 갖다 주면 감동이 되거든요.
    커피 한잔 먹어도 자판기 커피를 먹는 거하고 그렇게 성의 있게 대접하는 커피 먹는 거는 감동이 다르거든요.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는 자판기식 기도하지 말라 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가 단순하지 않다는 거예요. 아주 기도의 세계는 얼마나 넓은지 몰라요. 이 넓은 세계를 우리가 경험해야 되거든요.

    여러분 세 사람이 죽었어요. 그래서 하늘나라 가는데 누가 물었어요. "지금 장례식을 치루는데, 지금 관에 넣으려고 그런다. 그런데 관에 넣으면서 사람들이 죽은 당신 보고 무슨 얘기를 해주면 좋겠냐? 한번 소원을 얘기 해봐라 무슨 얘기 해주면 좋겠는지"
    그랬더니 첫 번째 사람이 하는 말이 "이 분은 참 유능한 의사였고, 훌륭한 사람이였다. 난 이 얘기를 듣고 싶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두 번째 사람이 "나는 참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남편이였다. 이 소리가 듣고 싶다" 그랬어요. "어 그러냐"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나는 이런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슨 얘길꺼 같아요? 이렇게 얘기했어요. "오! 저 사람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났네."
    그래야 될 꺼 아니겠어요. 기도했더니 아무런 응답도 없고, 그냥 그런가 보다가 아니라, 기도했더니 살았다 하는 얘기 들어야죠. 기도했더니 응답 받았다. 놀라운 감격과 기쁨이 있는 기도를 해야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누구한테 부탁하면요. 그 부탁이 들어질 것을 기대하잖아요? 그런데 거절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세일즈맨 같은 경우에 자기 한 몸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데 무슨 부탁을 했다가 `아니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그런데 한 세일즈맨이요. 거절하면 거절할수록 그렇게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사람이 물었어요. 당신은 거절당하고도 그렇게 좋으냐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자기가 경험을 해보니까 첫 번 얘기해서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 13번 지나서 14번쯤 부탁하면 그때 들어주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했대요. `한번 찾아가서 거절하면 12번 남았네 또 두 번 찾아가서 거절하면 11번 남았네. 또 세 번 찾아가 거절하면 10번 남았네 아 이거 이 사람이 10번 찍어 안넘어 가겠냐` 그 말이에요. `지금 넘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있냐`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자기는 14번째 가면 꼭 들어줄 거라고 믿고, 그렇게 좋아했다는 거예요.

    오늘 하나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계획과 꿈을 바라볼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하라는 게 뭐예요? 구하라는 것은요,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이에요. 내가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기도 안하는 사람 많거든요. 기도하라는 거예요. 성경에 뭐라 그랬어요.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뭐예요? 기도하지 않기 떄문이라는 그 말이에요. 그래서 정욕대로 구하기 때문이라 그러거든요. 우리는 기도해야해요.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 할 것 뿐일세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도 주님 앞에 나가서 구해야 되는 것이란 말이죠.

    여러분, 우리 집에 개가 있는데요. 이 개가 들어가면 그렇게 반가워해요. 그런데 가끔가다가 말이죠. 절 찾아와서 코를 들이밀거나 끙끙거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다 알아요. 목말라서 그러는지 배고파서 그러는지 그런데 배고플 때는 얘기 안하더라구요. 배고픈 적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데 목마를 때는 꼭 얘기하더라구요. 끙끙거리면서 그러면 즉시 물 갖다 줘요. 그러면 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해요.
    그런데 마틴 루터가 지은 `탁상담론`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은 개 얘기가 나오는데요. 하루는 마틴 루터가 개한테 고기를 한덩이 줬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개가 그걸 그렇게 맛있게 받아먹고 또 달라고 말이죠. 그냥 혀를 날름날름 거리면서 눈은 그렇게 막 웃으면서 꼬리를 막 치면서 막 달라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고기를 주려고 했던 것은 계획이었는데, 자꾸 달라고 그러니까 어디 뭐 줄 거 없나 찾아보다가 또 줬다는 거예요. 저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해요. 뭘 뼈다구를 하나 갖다 주면 더 달라고 쫓아 다니거든요, 그러면 뭐 더 줄 거 없나 하고 이렇게 하는 게 우리 생각이에요.

    마틴 루터는 이걸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할 때 이렇게 구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은혜를 받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틴 루터의 이야기는 이거예요. 개가 주인만을 쳐다보듯이 우리도 어려운 일 있을 때 주님, 주님만을 찾아보고, 그 분에게 구할 때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구할 때 얼마나 기뻐하실까 를 상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찾으라는 거예요. 찾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내게 주시려고 하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여러분, 누구한테 매를 맞았어요. 매를 맞았다 하는 것은 큰 아픔이지요. 그러나 이것을 누구한테 맞았냐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나한테 이런 어려움을 주셨을까? 이것을 생각하면 이 어려움이 나에게 축복인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어요.
    우리는 그냥 자판기에서 커피가 적게 나왔다, 많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때는 의미가 있고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왜 오늘 하루를 나에게 주셨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성경공부반이 있는데, 그 성경공부반에서 목사님 설교를 받아써라 하는 숙제를 냈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와서 목사님 설교 받아쓴 것 가지고 발표를 하거든요. 그래 제가 물었어요. 설교를 쓰기 전하고 쓰고 난 후하고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랬더니 하는 말이 설교를 쓰기 전에는 설교를 들으면 그날 저녁으로 다 잊어버렸대요. 무슨 말씀 하셨지? 그런데 쓰니까, 일주일은 가더래요. 그런데 그 설교를 같이 나누니까 얼마나 더 오래 가겠어요.
    오늘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잖아요. 그 말씀이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찾는 거예요. 우리의 기도를 풍성하게 만든다구요. 그러니까 이런 걸 안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도가 10년전에 하던 기도나 지금 하는 기도나 차이가 없어요. 지난 주일에 한 기도나 오늘 한 기도나 차이가 없어요. 기도의 깊이가 없어지거든요. 얼마나 앝은 지 몰라요. 폭도 넓어지지 않아요. 이게 전부예요. 기도가 늘 똑 같아요. 그러면 안되거든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서 기도해 보세요. 얼마나 우리 기도의 깊이가, 또 맛이 생기는가 말이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런 뜻을 찾는 사람들은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몇 일씩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원치 않는 일 생겨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 나 겸손하라고 그러는 거구나, 내가 너무 말이 많으니까 말 좀 덜 하라고 그러는구나, 이게 좀 급한 일이니까 천천히 가라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면요, 하나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평안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야 되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거지요. 기도하고 하는 것이 단순히 무슨 말을 한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기도 속에서 왜 이런 기도를 해야 하는지 하는 뜻을 찾으면 그 깊이와 넓이와 그 길이가 더해지는 거지요. 높이가 더해지구요.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두드리라 그랬어요. 이것은 구체적인 행동과 결단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찾은 뜻을 가지고 부딪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뭐 밤 세워 기도 해보든지요, 또 금식기도를 해보든지요, 또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데 목사님이 왜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겠어요? 왜 우리 교회가 그런 일을 할까요?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 주신 은혜의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하고 나오면요, 역사가 있는 거거든요.
    아무리 멍석을 깔아나도 거기 앉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까 왜 하나님이 이런 기회를 만들었는가? 왜 다른 교회는 점점 사순절 기도회가 짧아지는데, 우리 교회는 안짧아지는가?
    그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을 위한 거거든요. 나와서 두드리세요. 말씀을 붙잡고 두드리고, 집에서 골방을 만들든지, 기도의 동역자를 만들든지 만들어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관계의 기도의 응답은 성령을 주시는 거거든요.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서요, 누가복음 11장 11절 말씀부터 13절까지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여러분요, 자판기식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 그냥 받아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는 분이 있거든요. 제일 큰 문제예요. 자기가 기도의 제목을 다 정해놓고 `이렇게 해주세요` 한다구요. 하나님은 그렇게 주시질 않아요. 왜냐면 우리에게 얼마큼 손해인가를 아시기 때문에 그래요.

    저희 집 아이 하나는 어려서부터 말이에요.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해서 "여기있다 돈 가지고 가라" 그러면 돈 안가지고 가요. 꼭 아버지하고 같이 가자고 그래요. 아버지하고 같이 가면 아이스크림 더하기 과자 더하기 초코렛 더하기 그래요. 그래서 과자 사달라고 하면서 꼭 아버지하고 같이 가자고 하는 거예요. 왜 그래요? 더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과자값만 가져가고 아이스크림 값만 가져가면 그것 밖에 못사요. 그러나 아버지하고 같이 가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어요.
    지금도 그 버릇을 못버리더라구요. 그 재미를. 요즘에는 어디 같이 못가면은 전화를 해요. "아빠, 내가 이 거 살려고 했는데, 이것보다 조금 더 좋은 게 있거든요. 그거 사면 안돼요" 여러분 같으면 거절하시겠어요? 거절 못해요.

    언제나 아버지하고 함께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얻을 수 있어요. 때로는 아버지가 얘기를 하지요. "애, 네가 사려는 건 이거지만, 조금 더 좋은 것 사도 되겠다" 그러면 아버지가 돈이 많아서 그러겠어요?
    저는 `시장 가자` 그러면 짐꾼을 따라 나서야 되요. 킴스클럽 가면 여러 가지 사는데 제가 그거 끌고 다녀야 되거든요. 거기서 만난 분도 없지 않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가다 보면 애들 먹을 거 이런 거만 사지 제거 못 사요.
    제가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어서 놓았다가, "당신, 이거 먹고 싶어요? 사세요" 그랬다가는 다시 갔다 놓는다 구요. 왜냐면 부모가 다 먹고 자식에게 사줄 수는 없거든요. `나라도 참아야지` 그런 생각이에요. 딱 하나 사는 게 있어요. 번데기. 제가 어려서부터 번데기를 좋아했거든요. 그거 천원만 주면 사니까 그거 하나는 제가 사와요. 두 개 사오면 꼭 아들이 뺏어 먹어가지고 속상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기분 좋더라구요. 그러나 저는 그것 밖에 못사요. 살 수도 없고. 사달라 소리도 안해요. 형편 아니까. 그런데도 자식들이 뭐 사달라고 그러면 사주게 되어 있어요. 부모가 함께 하면 더 이상의 것 얻는단 말이에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세요. 성령은 하나님의 것이거든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사람들은 그래요. 왜 내가 원하는대로 주지 않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생선 달라는데 뱀 주겠냐? 알을 달라면 전갈을 줄 자가 있느냐? 뱀에 물려도 죽고, 전갈에 물려도 죽어요.
    그럼, 내가 원하는 걸 안주면 꼭 이것은 내 기도 안들으시고 나를 망하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 있거든요. 성령 주셔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성령은 함께 하시는 영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 보세요. 형들에게 팔려 가지고 애굽에 노예로 갔을 때, 기도 제목이 뭐였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기도했겠어요? "하나님, 원수 갚게 해주세요! 내가 여기서 빨리 풀려나 가지고 집으로 가게 해주세요!" 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성령이 함께 하시니까 그런 기도 안하더라구요.
    감옥에 갔거든요. 얼마나 억울해요. "원수 갚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 안하더라구요. 감옥에 가서도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노예생활해도 총리되고, 감옥생활해도 총리되더라구요.
    성령이 함께 하시니까 자기의 기도의 제목을 하나님께 다 맡기더라구요. "하나님,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가실 줄로 믿습니다" 하는 거예요.

    우리는 너무나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그런다 그래가지고, 기도 제목을 이거 아니면 저거 그런다구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 좋은 걸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비전을 보여 주신다구요. 비전을 보여 주세요. 그러면 비전 속에서 우리가 결단하게 되지요. `이것은 조금 시간이 걸리겠구나, 이것은 당장 주시겠구나`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 성령의 비전을 주시더라구요. 꿈을 꾸게 하시더라구요. 당장 눈 앞에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주는 비전이 생겨요.
    그러니까요, 그가 나중에 국무총리가 됐어요. 형들을 만났어요. 형들은 자기들한테 원수 갚을까봐 벌벌 떨고 있는데, `무슨 소리 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데, 그래 내가 이렇게 큰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오히려 감사하잖아요. 형들에게 감사하고, 책임져주고요.

    지나놓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감옥에 가게 하신 이유가 있더라구요. 여러분 그 감옥은요, 도둑질하는 잡범들이 모이는 감옥이 아닙니다. 사실 보디발의 집에서 그가 모함 받은 것은 간음죄입니다. 이런 사람은 잡범들이 가는 곳엘 가야 되요. 그런데 감옥에 가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냐?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에요. 이들은 다 정치인들입니다. 관리예요. 하나님은 거기에서 열심히 그들을 섬기는 가운데, 그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애굽의 정치를 배우게 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그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란 말이에요.

    성령은 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가를 알게 하신단 말이에요. 비전을 갖게 한다구요. 담대함이 있다구요. 두려움이 없다구요.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요. 그럼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나와 함께 해주세요" 오늘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될 제목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요, 기도는 주님이 어떻게 하라,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라는 거예요. 마지막 결론도 성령과 함께 친하게 지내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관계의 기도라고 할 수 있어요. 물건을 사지 말고 사람을 사는 거예요. 우리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기도의 응답, 자판기커피, 그거 하나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는 거란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알고, 그것을 통해서 기도의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성령이 함께 하시는 은혜, 그렇게 사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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