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사람 2002-03-13 23:44:03 read : 193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출4:10-17
오창우
2002-02-03
지난 1월 한달 동안에는 영적 성숙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2월 한달 동안에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변화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인의 명마, 가장 가치 있고 이름 있는 말은 아라비아말입니다. 이 아라비아말은 한 20억 내지 비싼 것은 30억이 간답니다. 대단하지요. 이 아라비아 명마가 만들어지게 된 동기가 있더라구요. 한 부자 상인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말은 사드렸어요. 100마리를, 그리고 이 100마리를 사다가 훈련을 시켰습니다. 근데 한번은 일주일 동안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주질 않았어요. 그러니 말들이 난리가 난 거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의 문을 열었습니다. 말들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곳은 시냇가였습니다. 바로 그 때에 주인이 호각을 `휙` 불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말들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앞을 향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4마리의 말이 그 자리에 서더니 주인의 신호에 따라서 다시 주인 앞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주인은 96마리의 말을 과감히 처분해 버리고 4마리 말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라비아 명마입니다.
좋은 말은 잘 달리는 말이 아니라 순종 잘하는 말입니다. 잘 달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순종 잘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회사에서도 직원을 채용할 때 실력을 보는 것은 1차 시험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중요한 것은 인성 검사를 합니다. 그것도 안되면 면접까지도 합니다. 실력은 믿는데 사람은 못 믿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회사에 귀한 특허 낸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거 같이 개발하고는 다른 회사에 정보 팔아먹고 다른 회사로 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성품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군대에서도 훈련이라는 게 뭡니까?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이 군대 가면 일년 훈련하고, 박사학위 받은 사람은 1시간만 훈련합니까? 아닙니다.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명령대로 하는 것이에요. 상관의 명령을 잘 듣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학교 교육이 실종됐다 그래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안 받아요. 그 이유는 높은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무서운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말 안 듣는 겁니다.
요샌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는 데 좋은 학원일수록 엄격하고 매도 든다고 하더라구요. 무서운 사람이 있어요. 그래 교육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께 순종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모세는 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40년 훈련을 받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하버드나 옥스퍼드 이상 가는 최고의 교육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는 기본기가 안돼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는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 목사님이 말하는 모세의 생애는 이와 같습니다. 모세가 120년 살았는데요, 이 120년을 40년, 40년, 40년 3단계로 구분해서 설명을 이렇게 하십니다.
`모세는 처음 40년 동안에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음 40년 동안에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 동안에는 아무 것도 아닌 자를 하나님이 들어 권능자가 될 수 있음을 아는 삶을 살았다.`
모세는 처음 40년에 애굽에서 왕자였습니다. 대단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고 성장하면서 `이 다음에 내가 커서 힘이 생기면 저렇게 고통받는 내 동족 구출해야지` 하면서 성장을 했습니다.
드디어 40세가 되던 해에 히브리민족 해방 계획을 세우고 백성들 앞에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떤 것입니까? 애굽사람이나 동족들에게 살인자다 하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실패입니다. 그의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에 실패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40년, 그것은 광야 사막에서의 목자의 40년입니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애굽 나라에 있어서 가장 비천하고 손가락질을 받고 하대받는 직업이 뭐냐? 목자입니다.
지금도 말입니다, 모세가 목자 하던 그 곳에 가면 세상에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사는 환경이 너무나 나쁩니다. 맨 바람 먼지에, 뜨거운 사막에 뭐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때는 어떠했겠습니까? 오죽하면 히브리민족, 야곱의 70가족이 애굽에 가 살 때에 `우리는 양치는 목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센, 그 한적한 땅을 주고는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자로서의 모세의 삶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자에서 이 시간에는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대단할 때에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이 때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성경에 본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 성경에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그는 띨합니다. 10절에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말해야 될 지도자가 선지자가 말더듬이입니다. 말 장애인이에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란 말이에요. 말이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함께 하겠다 걱정말라 가라` 그래도 안가는 거예요. `보낼 만한 사람 보내세요. 나같은 사람 보낼 사람 아닙니다` 그러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는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모세는 지도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어요. 말도 못하지요, 부정적인 사람이지요, 카리스마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지도자는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못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지도자로 부적합한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쓸려고 하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이 시간 완전히 변화가 된 사람입니다. 대단한 자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된 사람, 아무 것도 아닌 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는 거예요. `널 일군으로 쓰겠다`
아닌게 아니라 모세의 인생의 절정기가 언제냐 하나님이 그를 쓰실 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순종하게 될 때 그 40년 동안,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삶을 사는 겁니다.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키는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이 땅에 모세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온유함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민수기 12장 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온유라고 하는 말은 잘 길들여진 상태입니다.
그러면 야생마는요,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에 힘도 좋고 잘 달립니다. 그러나 야생마를 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타는 즉시 재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야생마 안타고 잘 길들여진 말을 타게 되어 있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도 온유한 자를 쓰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75세에 무자식일 때 하나님 그를 부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 100세가 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아들을 낳게 하는 겁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는 사람을 쓰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뭐라고 얘기해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힘이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함이라` 그럽니다. 이 사도 바울은 사람은 다 질그릇이라는 거예요. 흙으로 만든 그릇이라는 거지요. 떨어뜨리기만 하면 깨지고 부서지고 금가고 상처 나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다 그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한 존재이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금 담으면 금그릇입니다. 물 담으면 물그릇입니다.
오늘 우리는 보배이신 하나님을 담고 있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가치를 결정해주시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는 질그릇이 되면 돼요. 온유한 자가 되면 됩니다. 순종하는 자가 되면 하나님 우리를 들어 쓰시는 거예요.
우리 신앙의 목표는 뭐냐? 바로 온유한 자가 되고 순종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란 그 말이에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구원이었어요.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게 해야 되겠다. 마귀의 종노릇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야 되겠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난 다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딱 하나, 온유한 자가 되는 거예요. 쓰임 받기에 좋은 변화된 사람이지요. 어떻게 우리를 온유한 자로 변화시키십니까? 하나님이 가장 많이 쓰시는 방법은 실패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실패하게 하셔서 온유하게 만드셨어요. 40세에 시도했던 히브리민족의 해방 계획은 이것은 의로운 일이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에요.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방법도 없고 하나님의 뜻도 없고 순전히 모세 자신의 법대로 생각대로 자기 의지와 신념가지고 했습니다. 그 결과 실패하는 거예요. 의도의 실패가 아니라 방법의 실패란 말이에요.
그러나 이 실패를 통해서 모세는 온유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권능자가 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119편 71절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는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는 거예요. 어떻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패가 온유하게 만들지는 않아요.
애굽의 바로는요, 실패가 강팍으로 이어져요. 마음이 굳어지구요, 오히려 독해지구요, 오히려 더 반항적이 되구요, 완전히 망가집니다. 이것은 큰 재앙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재앙입니다.
인간이 질그릇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 안에 보배를 모시지 않을 때에 이것은 재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요, 실패 당할 때, 어려움 당할 때, 내가 원하는 일대로 되지 않을 때, 이때에 하나님 앞에 온유한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팍한 자가 되면 망하는 길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실패를 주실 수도 있고 반대로 성공과 형통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닙니다. 온유한 자가 되는 거예요. 쓰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어려움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이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계속적인 실패나 계속적인 성공은 없어요. 성공과 실패는 교차해서 오는 것이란 말이에요.
무엇이 축복이냐? 온유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가 된다는 사실을 꼭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이것이 바로 성화되어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 성화가 뭐예요? 거룩해지는 게 뭡니까? 딴 거 아닙니다. 내가 질그릇임을 인정하고 내 생각, 내 경험 다 부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그거 철저하게 의지해 가는 것, 이것이 성화고 이것이 변화되어 가는 사람임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 변화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나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요, 원칙입니다. 기본이에요. 원칙의 반대는 변칙입니다. 변칙은 잠시는 잘 할 수 있어도 계속 잘할 수 없어요. 결국 흔들리고 무너지고 맙니다.
한국 축구의 문제가 뭐냐? 오늘 아침 새벽에 캐나다하고 경기를 했는데, 2대1로 졌답니다. 그랬더니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가 기본기가 안되어 있다 그런얘기합니다. 기본기가 안되어 있다. 기본기가 안된 기준이 없는 변칙은 월드컵 예선은 통과할수 있어요. 그러나 16강도 쉽지 않고 우승은 더더욱 안되는것입니다. 원칙이 되야 돼요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삶에 원칙이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어요. 여러분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 좋아하는 숫자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7자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근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침 7시 7분 7초예요 이야~ 오늘은 뭐가 될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이제 버스를 타러 갔어요. 근데 버스가 착 왔는데 777번 이예요.이야~오늘은 이거 정말 되겠다. 그래가지고 경마장으로 갔어요. 전 재산을 다가지고 간 거예요. 보니까 이야~될라구해서 그런지 말도 그날은 말두 7마리가 달리는 거예요. 몇 번을 선택했겠어요? 7번을 선택했어요. 어떻게 됐을까요?이망했어요.왜망했냐.그랬더니 7번이 7등 했대요. 내 생각에는 7번이 대단한 거 같아 보여도 그것은 내 감정이고 내 생각이고 내 뜻일 뿐입니다. 우리 인생에 성공은 하나님 말씀에 있음을 깨닫고 그 말씀 안에 순종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시대가 어두울수록 혼탁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왜 이렇게 어두워요? 법대도 살지 않기 때문이에요. 영적으로 어두운 이유 딱 하나예요? 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에요.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하루는 아이언사이드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설교하고 내려오니까 한사람이 찾아와서 묻더래요.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진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까?` 묻더래요. 나는 설교하고 내려왔는데. 목사님 뭐라고 그러셨겠어요. `네, 믿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도 물었대요 목사님이. `당신은 예수의 재림을 믿습니까?` 그랬더니 `예, 믿습니다.` 그러더래요. 목사님이 한마디 더 물으셨대요. `그런데 재림을 믿을 만큼 어떻게 생활합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오고 이 세상이 종말이 온다매요,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사느냐 물었더니 이 분이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목사님, 누가 내 얘기를 목사님에게 했습니까?`
말씀대로 사는 게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 부족합니다. 말씀의 원칙대로 사십시다. 그러나 바리새인처럼 믿으면 안되지요. 예수님을 왜 십자가에 못박았어요? 왜 예수님을 그렇게 미워했어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안식일을 거역한다. 예수님 안식일에 병든 자 고쳐주었거든요. 그래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너 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데 하냐?` 예수님 답답해서 말하잖아요. `만약에 안식일에 네 집 소가 구렁텅이에 빠져 죽으면 너 안건지겠냐? 하물며 사람이 병들어 죽어가는 데 왜 안고치냐? 분명히 기억해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거지, 사람이 안식일 위해서 있는 거 아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바리새인들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신념, 자기 생각 그거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죽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왜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고, 그것이 나의 삶을 복되게 하는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말씀대로 사십시다.
두번째는 변화되는 사람은 나의 감정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만 주시면 됐지, 왜 우리에게 성령까지 받으라 그랬습니까? 알아야 할 내용은 성경에 다 있습니다. 율법에 다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받는지, 어떻게 순종해야 되는지, 문제는 알면서도 행치 못하는 거예요.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행할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지난 한달 동안 여러분에게 영적 성장을 말씀드린 것은 무어냐면 영적 성장은 영적으로 성숙된 삶을 사는 거예요. 첫째,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거지요.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 가야할 것과 가지 말아야 할 일, 분별력이 있어야지요. 모든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 아니거든요.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어요.
두번째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이 깨우쳐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은 행할 때 역사하고 든든히 서 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무어냐 말씀을 깨닫게 하시려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성령의 깨우치심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잘못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병이 나면 병원에 가는 게 좋습니까? 안가는 게 좋습니까? 이게 다 성령의 깨우치심이에요. 나는 병원에 가요. 왜 하나님이 의사도 만드셨고 하나님이 약도 만드셨어요. 내가 힘쓸 일입니다. 병원에 가는 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요. `여기까진 내가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다음엔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께 맡길 일 따로 있어요. 내가 힘쓸 일과 내가 하나님께 맡길 일이 있습니다.
신앙이 좋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거냐 저거냐 하는 겁니다. 여러분 아니에요. 하나님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우리는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 맡겨야 될 일을 아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요해요.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맡기는데, 내가 힘쓸 일과 하나님께 맡겨야 될 일이 있잖아요.
성경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시든지 아니면 피할 기도 주신다 그랬어요. 나는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당할만한 능력도 주시고 피할 길도 주시고, 두개다 찾아야 돼요 시험 당할 때에. 오 주님 감당케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피할 길도 주시옵소서. 성령이 깨우치시는 거거든요.
송명희라고 하는 시인이 장애자이거든요. 전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자예요. 말도 잘 못해요. 그런데 그 분이 성령에 대해서 이런 것을 썼더라구요. 시예요. `성령은 아름다운 분` 이런 제목입니다.
성령은 아름다운 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아름답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아름다운 기도 하시며
은혜의 선물 채우시니
성령은 아름다운 분
자기의 처지와 자기의 몸과 자기의 상황을 보게 되면 원망 불평하고 살아도 누구 하나 말할 수 없어요. 왜? 너무나 힘드니까. 그러나 성령께서 그에게 깨우치심을 주는 거예요. `고난도 네게 유익이라` 영이 맑아요.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흔히 생각할 때에 정신만 맑으면 육체도 바르게 건강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거든요. 내 정신, 내 육체를 절대로 다스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대학교 교수님 얼마나 공부 많이 했어요.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요. 그래도 그 분들 가운데는 담배 그만큼 피우면 죽는다 그래도 술 그만큼 먹으면 몸 망가진다 그래도 계속 먹다 죽더라구요. 절대 정신이 이 몸을 다스리지 못해요. 몸이 정신을 삼켜 버리지요.
우리의 정신과 몸을 다스리는 것은 성령 밖에 없어요. 영이 살아야 돼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해야 되거든요. 그 분만이 우리를 살게 하고 그 분만이 우리를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고승을 찾아 갔어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한다가 `스님, 한 주간 어떻게 지나십니까?` 그랬더니 `월화는 여인이요, 수목은 명성이요, 금은 무요, 토일은 왕이니라` `스님, 월화는 여인이고, 수목은 명성이고, 금은 무고, 토일은 왕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랬더니 스님이 막대기 하나 들고 머리를 딱 치면서 하는 말이 `월요일 화요일은 여인천하요, 수요일 목요일은 명성황후요, 금요일은 없고 토요일 일요일은 왕건이다. 넌 그것도 모르냐?` 말되요?
뭐 그런 말 하셨겠어요. 이번 주 금요일은 전교인심야기도회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성령께서 깨우쳐주시기를 사모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사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나혼자 일하지 말고 함께 일하라. 모세한테 아론 붙혀주시잖아요. 혼자는 부족하거든요. 안되거든요. 동역자가 늘 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상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아 선지자들을 물리친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지만 혼자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약점인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는 이내 하나님 앞에 `나 죽여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을 위해서 우리에게 좋은 친구들을 붙혀 주시면서 우리에게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라 얘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 친구를 얘기하지만 우리들은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친구들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말씀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기도해주고 도움을 받는 것 말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도 언제나 그 옆에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믿음으로 키운 아들 디모데도 나이가 드니까 형제 디모데라고 호칭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적인 기준은 없어지고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나이 어린 사람까지도 내 형제로 여기면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삶을 사셨어요. 그럼에도 우릴 위해 십자가 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고 예수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됐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왜 강도 만났는지,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묻지를 않으셨어요. 그냥 도왔습니다. 내가 잘못한 거 없어도 도왔습니다.
여러분 부부가요, 왜 부부의 삶이 행복하지 못합니까? 예수 정신 없어서 그래요. 우리가 협력한다는 거 딴 거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했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죄인된 나를 위해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는 것처럼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간에 이웃간에 우리 믿음의 식구들끼리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원수 지고 살지 마세요. 십자가 정신으로 사십시요.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고 주님이 은혜 베푸시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이라고 붙힌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역하는 일을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의 성공과 실패 그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능력의 원천은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고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모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성격에도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온유한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낙심합니까? 무엇 때문에 교만해요?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의지하고 그 하나님 안에 승리하는 바로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