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길 2002-03-13 23:42:01 read : 1741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삼상13:13-15,15:21-23
오창우
2002-01-20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입니다. 목적 성취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그런 말 아니겠어요? 정말 그런가? 그래도 되나?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야할 길만 가야해요.
오늘 이 시대가 게이트 파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영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1976년도 박동선 사건 이후에 워싱턴 포스트가 코리아 게이트, 그 말부터 게이트가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뭐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저도 이 게이트가 의문이 되서 여러 군데 찾아 봤지만 정확한 대답들이 없어요. 암튼 권력형 비리 할 때, 게이트라는 말을 쓴다 하는 말밖에는 없습니다. 영어 사전에 보니까요, 게이트는 문, 출입구란 말이죠. 또 하나는 미국의 속담에 가운데 "Get the Gate" 또는 "Give the gate" 이렇게 쓰면서 해고하다, 퇴출하다 라는 의미로 쓰더라구요.
이걸 보면서 게이트 사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 많은 꿈과 비젼들이 다 무너지고 또 과거에 했던 일까지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걸 보면서, 참 이런 건 없어야 하겠다. 경제가 경제가 아니에요. 왜냐햐면 정치논리가 너무 앞서기 때문에 경제가 안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경제가 잘되려면 정치적인 논리부터 없어져야 한다 이것이 연구 결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겁니다.
검찰이 검찰이 아니에요. 법이 바로 서지 않습니다. 정치 검사 때문에 그렇대요. 죄 없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특검제 하니까 죄 있다고 그러고, 검찰 총장이 옷을 벗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줄줄이 옷을 벗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정도를 잃어버린 사회에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려고 그려요.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러잖아요.
저는 비행기표를 사던지, 극장에 가서 표를 사던지 할 때, 안내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참 좋아해요. 그래야 확실하거든요. 실수 안하거든요.
지난 금요일날 대전에 갈 일이 있어 기차표를 사서는, 모자도 쓰고 있고, 정복도 입고 있고, 나이 지극한 여자분이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기차표를 보여드렸어요. 그랬더니 여기 서래요. 그래서 제가 거기 설라고 보니까 마산이더라구요. 같이 가는 일행이 있는데, 제가 거기 섰더라면 또 얼마나 망신이에요. "저는 서울 가는데요" 그랬더니 짜증을 내면서 하는 말이 "그럼 절로 가요" 저는 교회가야지 절 가면 안되는데...... 저쪽에 가서 섰지만 아무리 봐도 서울로 가는 표시가 없어서 한참 좀 해맸어요.
그런데 이 분이 그 좋은 정복 위에다가 이런 조끼를 하나 입었는데 거기 뭐라고 써있었냐 하면, `민영화 저지 사수결사대` 그러니까 국영인데 민영화 되면 안된다 그런 말이에요. 그래 결사적으로 저지하는 사수대라는 말이죠. 그래서 저한테 절로 가라 그래서 속으로 그랬어요. `빨리 민영화 되면 좋겠다`
자기 임무가 뭐예요. 안내하는 거거든요. 좀 친절하게 못해요. 자기 임무를 잃어버렸어요. 정도를 잃어버린 거예요. 그 자리에 공무원 된다 하는 것은 나라 위해 살겠다, 국민 위해 살겠다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살거든요.
버스 기사가 차를 몰고 가는데, 버스전용차선에 자가용차가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용차선에 자가용차가 가니까 비키라고 크랙션도 좀 누르고 라이트도 켰어요.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자가용 운전사가 화를 내면서 안비켜주는 거예요. 그러니 상황이 어떻겠어요. 빵빵거리고 안가고, 결국은 두 차가 섰어요.
자가용차 운전사가 내려 가지고는 막 욕을 해대는 거예요. 그리고 성에 못이겨 가지고 문을 열고 버스에 올라왔어요. 그리곤 막 욕을 하는데, 버스 운전기사가 할말을 잃은 것 같아요. 말 안하고 가만히 있더니 버스 타고 올라온 그 문을 탁 닫아 버렸어요. 그러더니 버스를 뒤로 빼더니 앞으로 냅다 달리는 거예요.
내 차는 저기 있는데, 자가용운전사가 어땠겠어요? 막 화가 난거죠. 그 때는 크랙션 왜 눌러 하고 욕하던 사람이 "차 안서 안서" 하고는 막 야단을 해댄 거죠. 그랬더니 버스 운전기사가 뭐라고 했겠어여? 버스 운전기사가 안다는 말이 "그러면 벨을 누르셔야지요?" 벨이 뭔지 알아요? 버스에서 내릴려면 누르잖아요. 할 수 없이 누른 다음에야 겨우 내릴 수 있었대요. 큰 소리쳐도 안되는 것은 안됩니다.
여러분, 목적이 좋으면 수단과 방법도 좋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요,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왕이 되었어요. 많은 사람 가운데 초대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다는 거예요. 왜 무슨 나쁜 짓을 해서 하나님이 버리시나?
성경에 가만히 보면, 죄라면 제사드린 죄 밖에 없고요, 예배드렸단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좋은 제물 준비한 죄 밖에 없어요. 우린 그럴 거예요? 그것도 죄냐? 정말 그렇습니까?
블레셋 나라가 쳐들어왔어요. 병거가 2만이고 마병이 6천이니까 얼마나 많은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사울왕은 긴장이 됩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 싸우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데 예배를 드려야 되겠는데 제사장이 안오는 거예요. 아무리 가다려도. 블레셋은 곧 쳐들어와 망할 것 같은데, 그래 이거 어떻해요? 사울이요, 자기가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이까짓 제사, 나도 한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짓는데, 나도 제사 드릴 수 있다` 그래 그가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의 명분은 분명해요. 전쟁에 나가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예배를 드려야 된다. 여러분, 잘했어요? 못했어요? 신앙이 좋아요? 나빠요?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는 책망을 하는데, 어느 정도로 책망을 하느냐? `너 이제 끝장났다. 이제 하나님 너 같은 놈 버리실거야.` 막 화를 냅니다.
왜 그랬어요? 자기가 해야할 일을 왕이 뺏어서 그랬을까요? 그건 아니란 말이에요. 왜 제사를 드렸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됐다 그 말이에요.
말씀드렸잖아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나무 밑에 가서 절하면서 백날을 정성을 드리는데, 하나님이 백날을 하라 그랬어요? 오십일을 하라 그랬어요? 자기가 정하는 거거든요. 자기의 정성이에요. 또 산에 가서 절을 하는데 허리가 아플 정도로 절을 했어요. 누가 그렇게 하라 그랬어요? 자기가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도, 제사를 드리는 것도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 줄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입니다. 나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신앙 좋은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를 없는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만 높히고 하나님의 뜻만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이사야서 61장 3절에 보면요, `이사야 선지자가 재 대신 화관을 씌우신다 그랬어요` 여기 재라고 하는 말은 말 그대로 재예요. 나무를 태우든지, 제물을 태우든지 재입니다.
재는 아무 쓸모가 없어요. 그런데 그 재를 머리에 쓰는 거예요. 얼굴에 바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나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기다 흙도 바르기도 하고 고통과 회개의 표시로 옷을 찢기도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지요. 흙에서 온 인생 난 가지고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 없이 그렇게 왔다 그 말이에요.
그래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재를 쓰고 난 다음에 화관을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라고 하는 말의 뜻이 히브리어로 `캐랙` 그러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면 무릎을 꿇는다는 거예요. 나보다 하나님을 높히는 거지요. 우리는 이 시간 철저하게 무릎을 꿇여야 해요. 하나님을 높여야 해요. 그게 진짜 예배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겁니다.
화관을 쓴다고 하는 말은 뭐냐면 여자들이 머리에 치장을 하는 건데요, 이 중동 사람들 머리에 터번 쓰잖아요? 그걸 색깔 있게 쓴다구요. 여기에 꽃도 좀 꽂구요, 거기다 향수병을 놓기도 합니다. 아름답게 만드는 거지요.
하나님이 재 대신 화관을 쓰여주신다 그 말이에요. 우리가 할 일은 무어냐 우리는 재만 쓰면 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화관을 씌워 주신다 말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것은 재를 쓰는 시간이에요. 철저히 내가 무너지는 시간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화관을 씌워 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오늘 15장에 보면요, 사울임금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거든요 "내가 너를 전쟁에 승리하게 할테니까 너는 전리품 하나도 가져오지 말아라" 전리품 하나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쳐들어왔던 다섯 왕과 싸워서 이깁니다. 많은 전리품을 얻지요. 소돔 왕이 얘기를 합니다. "여보시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당신에게 이 전리품을 주겠소" 아브라함이 뭐라 그래요. "안가져 가겠다" 한마디로 거절하죠. 왜? "너 때문에 내가 부자 되었다는 소리 듣기 싫어" 거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복주셨다는 얘기만 듣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오늘 사울은 어떻게 하느냐? 그 전리품 가운데 좋은 것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칠려고" 하면서 내버려 두는 겁니다.
그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지요?", "예, 했습니다", "전리품 남기지 말라고 하셨지요?", "예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려고 그러지요. 너무 좋아서" 하나님 버리라는데, 그거 가지고 오는 겁니다.
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교회에 뭘 해놓겠다 할 때, 쓰던 물건 좀 갔다 놓지 마세요. 경제적인 논리로는 언제든지 갔다 놓을 수 있어요. 교회 돈 안쓰니까 헌 거라고 갔다 놓고 쓰면 되지. 교회는 경제적인 논리로 교회가 살아서는 안되는 거거든요. 정치적인 논리는 되겠어요? 안되는 거거든요. 신앙의 논리를 가지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누구에게 선물할 때, 쓰던 것 갔다가 선물합니까? 그게 정말 높은 사람한테 그렇게 합니까? 사람 앞에 선물을 해도 경제적인 논리나 정치적인 논리로 하지 않아요. 뭘로 해요? 당신을 높힌다고 하는 최대한 높히는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렇죠? 그까짓 것 제사 지내는데 아무 거나 좋은 것 갔다 하면 되지.
사울이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높혀야 되는데, 높히지 않는 거예요. 그의 마음에 신앙이 없어요. 제사는 드리지만, 제물은 준비하지만, 신앙이 없어요. 단 하나 경제논리, 정치논리 이것 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 뭐라 그러셨어요? "나 이제 너 버린다. 네 마음이 나 버렸지. 나도 이제 너 버려" 우리 이렇게 되면 안되는 거잖아요. 사무엘이 뭐라 그래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그러잖아요. 제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한다고 하는 것은 딴 거 아닙니다. 순종하는 겁니다. 영적으로 성장을 하려면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영적으로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야 하는데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밖에 없어요. 순종입니다. 순종해야 되요.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다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두 번씩이나 하나님을 떠났어도 그를 축복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그래요.
다윗이 그렇게 잘못을 해도 하나님이 말씀만 하면 그냥 무릎꿇고 눈물을 흘리고 잘못했다 그러고 순종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시려 하는 거거든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아버지가 순종하는 걸 보니까 그는 평생 순종하면 살지요. 생명과도 같은 우물, 그 사막 지역에 우물이 얼마나 귀한 거예요? 돈으로 따져도 엄청난 건데요. 그래도 하나님이 모든 걸 하시지, 순종하잖아요. 우물 한 번 뺏기고, 두 번 뺏기고, 세 번 뺏기고, 사람들한테 바보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그는 그랬을 거란 말이에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순종하는 사람 그냥 내버려두지 않지요. 그에게 우물 다섯 개가 아니라 여섯 개까지 받게 하는 축복을 내려 주시잖아요. 거기다가 그를 호위하는 호위병까지 두시잖아요. 자발적으로 `내가 너를 지켜주겠습니다` 그러잖아요.
이런 걸 보고 크니까 아들이 보기에 아버지가 너무 바보같이 살거든요. `난 좀 똑똑하게 살야야지` 그 아들 야곱은 악착같이 살잖아요. 악착같이 돈 벌지만 그게 자기를 지켜주지 않지요. 재물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니까 그 때 살려 주시잖아요.
이걸 본 아들 요셉은 또 어떻게 살아요? `그렇지. 악착같이 산다고 되는 게 아니지? 하나님이 은혜주셔야 되지` 그래서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죄수가 되도 그냥 순종하잖아요. 하나님이 높이시잖아요.
여러분, 신앙이 좋다고 하는 것은 제사를 어떻게 드리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얼마큼 우리의 마음을 드리느냐 하는 거란 말이에요.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도, 사도 바울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서 순종하며 살았거든요.
제가 지난 금요일날 대전에 간 것은 처 외삼촌, 장모님의 오빠되시는데요, 팔십 세에 하나님 부름 받으셨어요. 대학교 법학부를 나오시고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정보부에서 1960년에서 80년까지 21년동안 일하셨어요. 자그마치 21년이에요. 시작부터 은퇴할 때까지. 그 분이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집에 살고 계시는데, 25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계세요.
발인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데, 많은 남자 분들이 울음바다가 되었어요. 정보부하면 얼마나 대단해요. 그 당시에. 그 권력가지고 좋은 일에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사상범으로 몰려 죽을 사람들을 많이 살려줬어요. 그 사람들이 예수 믿고 그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울고 있는 거예요. 나를 살려주셨다고.
교회장으로 발인예배를 드리는데, 장로님이 기도를 드리는데 그 얘기를 구구절절히 다 하시는 거예요. 장로님 때문에 산 사람이 몇인데요? 21년을 정보부 책임자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그렇게 살아왔어요.
교회는 어때요? 어떻게 섬겼는가는 보지 못해서 잘 몰라요.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한 것은 성경책이요, 빨간 색 파란 색 그냥 낡았어요. 나라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분이었어요.
그 아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남겨줬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라구, 순종 잘하라구, 겸손하고 인내하라구, 온유하라구, 이것을 가르켰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이 신앙 안에 잘 살겠습니다" 인사하더라구요.
그 자손들이요, 다 잘되요. 큰 아드님은요 지사장으로 나갔다 와서 부장으로 오래 있었는데 이사가 안됐어요. 명퇴했잖아요. 그래 나와서 개인 사업하는데, 두달도 안되서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자회사가 있는데 상무로 일해주시겠습니까?" 상무로 가서 일하고 있어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들 그 자손이 잘될 수 밖에 없어요.
여러분,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이것이 영적 성장의 길임을 깨달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순종한다는 게 뭐예요? 첫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의 반대는 뭐냐면 내가 나를 인도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이라는 것은 영적인 삶을 위한 삶이지 육적인 삶이 아닙니다. 영적인 삶의 기본자세는 뭐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거예요.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는 하나님이 인도하는 거냐 내가 인도하는 거냐 바로 이 차이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랬어요.
예수님 앞에 아무도 올 수 없다는 거예요. 이끌지 않으면, 여기 이끌다는 말은 스스로 한다 자발적으로 한다 그런 말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는 거예요. 이게 뭐겠어요? 성령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이건 내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지식이 많고 돈 많고 배운 것이 많아서, 아닙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병들어서가 아니에요. 성령이 이끄실 때에만 예수를 믿을 수 있어요.
우리가 예수 믿는 동기를 보세요. 특별한 거 없거든요. 그냥 믿은 거예요. 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경력이 오래됐다고, 직분이 있다고 하는 거 아닙니다. 경험이 있다고 하는 거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안되요.
주님도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에 나아가서 기도하시잖아요. 사도 바울은요, 자기가 배운 학문, 명예, 재산 다 배설물처럼 여겼다 그랬어요. 왜? 성령의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신앙의 선배들은 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그런 말이에요.
사무엘 선지자는 오늘 다시 한번 얘기해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요즘 경배와 찬양이 신앙성장과 교회성장의 한 표시로 중요시 여겨져요. 손을 들고 감정을 쏟으면서 찬양하는 모습보면 참 은혜로와요. 그러나, 경배와찬양이 신앙의 목표는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하는 순종이란 말이죠.
이사야 1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타깝게 여기는 말씀이 있어요. 제사해라 이거 아닙니다. 제사 그만하고. 너무나 많은 제물에 내가 배가 부르대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선행하고 학대받는 자를 도우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네가 죽으라 희생하라 그겁니다.
예수님이 누구예요. 예수님은 사람이고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으신 거예요. 십자가 지신 거예요.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신 거예요. 이게 모두 다 성령의 역사요,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한 것이란 말이죠.
어느 집사님의 상관으로 어느 부장님이 왔는데, 좋지 않는 부장님이 오셨어요. 얼마나 괴롭히는지 못 견디는 거예요. 주일날도 예배당 못 가게 할 정도까지 됐어요. 상담을 했지만은 뚜렷한 게 안 나타나요. 그랬더니 옆에서 누가 하는 말이 "그 부장님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했어요.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부장님이 변하지 않고 더 짜증나게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기도하다 보니까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게 자기가 변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장님이 불쌍한 마음이 들고 사랑하는 말음이 들고 그 분의 말씀 잘 듣다 보니까 사랑 받는 직원이 되고 성공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일을 주시던지 어려운 일을 주시던지 다 기회에요. 성령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 내가 변해야 해요. 세상이 변해서 내가 잘되는 일은 없어요. 복권 맞으면 잘될 것 같죠. 복권 맞은 사람 치고 잘 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다 그지 된다구요. 내가 변해야 되요. 세상이 변해서 내가 복 받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변해야 내가 이 세상에서 복 받는 인생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리빙스턴 아시잖아요. 아프리카의 유명한 선교사. 이 분이 어려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어느 정도 가난했냐하면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행상을 했어요. 그러니 얼마나 가난해요. 학교도 못다니고.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곁눈질로 글을 배웠어요. 그렇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로 하여금 방직공장에서 돈을 받으면 어머니한테 다갔다 드리면 몇푼 받는데, 그돈 가지고 책을 사서 보게 하고,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밥먹을 시간에 밥도 안먹고 책을 보고요, 밤에 와서 남들 잘 시간에 촛불 켜놓고 공부를 했다 그래요. 그런 중에도 교회 열심히 나가고 어머니 신앙 본받아서 신앙심이 두터웠다는 거지요.
그는 미개한 나라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게 꿈이었어요.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는 뒤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에 가난과 고생이 아프리카 선교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내가 죽어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역시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하면 자라고 싶습니다." 세상에 고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해요. 이것을 통해 나를 더 크게 만드실 줄로 믿습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성령이 내게 역사하시는 뜻이 있단 말이에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게 주시는 은혜가 예비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성령에 순종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비밀을 알게 하시고 그 분별력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성경에 보면 우리 신앙인들을 나무에 비유했습니다. 나무는 땅에 묻혀있으면 사는 거예요. 우리가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믿고 그것에 뿌리 박으면 하나님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거예요. 그리고 주신 기회를 통해 승리하는 거란 말이죠.
마지막으로 순종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에서 아는 것입니다. `백문이불역일견`이고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것 아니에요. 겉으로 봐서는 몰라요
여러분 누가복음 10장에 보면요, 여러분이 잘아는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하죠.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랬더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간단해 너 나 믿어" 이렇게 얘기하면 얼마나 쉽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얘기 안하거든요. "성경에 뭐라고 써있냐?" 그랬더니 줄줄이 외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면 그렇게 행해라"
그런데 이 사람이 가질 않고 또 질문을 하는 거예요. 성경은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이 사람이 옳게 보이려고`하고, 그런 다음에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더라구요. 누가는 그렇게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보면서 이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되요. 알기는 알아요. 머리 속에서 알기는 알겠는데, 진짜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거예요.
나는 부모님 뱃속에서부터 믿었다 그래서 모태신앙이라고 그러더라구요. 나 그러면 나 모태신앙입니다 그럽니다. `모태신앙` 잘못 발음하면 `못해 신앙`이 되요.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 못하는 거예요. 머리가 발달한 사람은요, 따지길 좋아한다구요. 그래서 이 지하도에서 구걸을 하면 백원짜리 하나 제대로 못줘요. 왜 못주냐면? "저 뒤에 분명히 깡패 조직이 있을 거야. 그러니 저 사람 돕는 것은 깡패를 돕는 거지. 돈 주지 말아야 돼" 그렇게 생각 안하셨어요. 누가 와서 도와달라 그러면 "저 사람 사지가 멀쩡한데 도와 달라 그러지. 저사람 게으러서 그래. 도와주면 안돼. 고생을 해봐야 일할라고 하지" 안도와줘요.
머리로 잘하는 사람들이 이웃이 별로 없어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외에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러죠. 그거 맞아요. 예수 믿는 사람만 만나니까. 그러나 좀 확대 해석하면 어때요? 그런 사람 친구해야 하는데, 친구 안하거든요. 너무 따지거든요. 안해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잖아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한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다 죽어간다, 제사장이 지나갔다 그냥 지나갔어, 레위인이 지나갔다 그냥 지나갔어,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고쳐줬어. 자 내가 너한테 묻는다.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누구예요?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주님 말씀하시잖아요. "너도 가서 그렇게 행해라. 그러면 살리라"
여러분,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예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강도 만났어요. 로마라고 하는 큰 강도를 만나가지고 먹을 거, 입을 거 다 뺏기고 지금 그러고 살아요. 우리가 일본 사람의 식민지 살 듯이 말이에요.
사랑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데 누가 이웃이냐구요? 누구를 사랑해야 하냐구요? 천지에 널린 게 도와줄 사람인데, 왜 이런 사람에게 안보이고 예수님에게만 보이냔 말이에요.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라매요? 이웃 사랑이 뭔대요? 그냥 주는 거예요. 때로는 속임을 당할 수도 있어요. 억울한 일 당할 수도 있다구요. 그러나 하라는 거예요. 따지지 말고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때서부터 역사하시는 거지요. 우린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을 잘 경험 못하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 믿기 때문에 믿어 주는 거예요. 그냥 믿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 역사하신다구요.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딴 거 아니에요. 그냥 하는 거예요. 그래도 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그리스도인을 사도 바울은 세 가지로 표현하는데, 군사, 경기장을 달리는 경주자, 수고하는 농부 그랬어요. 이 세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 이론가가 아닙니다.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이에요. 수고나 땀이나 훈련없이 군사나 경주자나 농부가 될 수 없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무어냐면 이들은 법대로 하는 사람이에요. 자지 뜻대로 하는 법이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내 판단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는 사람이에요.
군인이 뭡니까? 군인은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사람이에요. 만약에 명령을 어기면 군인은 쓸데없습니다. 자기 생활에 억매여서는 안되요. 명령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경주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법대로 규칙대로 해야 해요. 임춘애 선수가 달리기에서 2등 한 적이 있지요. 나중에 1등으로 메달이 바꿨어요. 왜? 앞에 달린 인도 선수가 금을 밟은 게 확인이 됐어요. 그래서 임춘애 선수가 1등이 됐습니다. 경주자는 철저하게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농부는 어떻습니까? 철저하게 때를 지켜야 해요.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두는 거예요.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여름에 뿌리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뿌렸다가 가을에 열매 거둘 수 있겠어요? 농부처럼 때를 잘맞추는 사람 없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게 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을 맞춰 가는 것이에요. 그게 순종이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겁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예요. 그 결과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면류관 주시고 열매 맺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실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고 이게 순종이라는 말이에요.
여러분계시록 21장 8절에 보면 더 무서운 말씀이 있어요.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에 들어갈 자들" 지옥갈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의 부류가 이렇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자들,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 다른 건 다 이해가 되요. 그런데 제일 처음에 나오는 두려워하는 자들이 지옥과 불못에 간다는 거예요.
두려워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고의 위험에 두려워한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경건한 두려움을 갖는다 그런 뜻도 아닙니다. 여기 두려워한다는 말은 `데이로이스`라는 헬라말인데, 진리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이 났어요. 사람이 있어요. 구출해 내야 되요, 그냥 내버려 둬야 되요? 구출해 내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거 보고도 구출해 내지 않는 거 이게 두려워하는 거예요.
우리가 진리를 알아요.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 거예요. 오늘날 이 시대는요, 이 진리, 규칙, 이대로 안살아요. 길 지나다 침 뱉어야 되요. 뱉지 말아야 되요? 그런데 뱉거든요. 담배 꽁초 버려야 되요, 버리지 말아야 되요? 그런데 버리거든요.
이렇게 진리를 행하는 것을 두려워서 안하는 사람이에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성경이 뭐라 그랬어요. 성경대로 사는 거예요. 뭐 주일 성수해라, 십일조 생활해라, 교회에 충성해라 이게 복이다 그러면 그렇게 살아야죠.
그런데 사울이 뭐라고 얘기를 해요. 왜 제사 드렸냐 하니까 뭐라 그래요? `부득이 드렸다`그래요. 자꾸 조건을 달아요. 하나님 앞에 조건을 달거든요.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라고 하는 거예요.
이건 순종하는 게 아닙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거예요. 그대로 사는 거예요. 그 경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이고 이런 사람에게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요, 이 교회를 나오는 것을 백화점 오듯이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백화점에 가면 옷살려면 옷입잖아요. 이거 입고 저거 입고 하다가 안 맞으면 놓고 오잖아요. 음식점에 가서도 이거 고르고 저거 고르고 자기 좋은 거만 먹잖아요. 교회는 백화점이나 음식점이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 거든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시는 곳이예요. 가르쳐주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축복받는 것이란 말이에요.
나는 어떻게 영생을 얻냐 할 때, 예수님은 나를 믿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랬어요. 왜 나를 믿어라 안그랬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요 예수를 믿게 되어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안사니까 예수를 안믿는 것이라 말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높히실 때에만 높아질 수 있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우리는 버림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 드릴 때, 지금은 바른 자세로 드리지만 예전엔 이렇게, 졸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는 분이 있어요. 왜 그렇게 하냐 그랬더니 성경책이 위에서 내려가니까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이렇게 본대요. 이런 사람은 순종을 잘해 말씀에 은혜받아서 아멘 아멘 한다고 해요. 근데 요즘 사람은 그렇게 안봐요. 성경이 옆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 옆으로 본대요. 그런 사람은 고개만 옆으로 흔들어서 비판을 잘한다고 하더라구요.
요즘에 애들은 예배 시간에 막 비튼다고 하더라구요. 왜 비트냐고 했더니 처음에 성경을 위에서 아래로 된 거 보다가 나중에 옆으로 된 것으로 바꾼 부모가 낳은 자식이 그렇대요.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경을 보고 그 말씀대로 살면 거기에 축복이 있고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을 알고 그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 길은 딱 하나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예수 믿지 마십시오. 그냥 순종하는 것,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힘쓸 때, 하나님이 순종하는 자에게 복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울은요, 순종할 때 하나님이 세우셨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불순종할 때 하나님이 버리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 날마다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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