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요소 2002-03-13 23:40:59 read : 1736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전2:6-3:3
오창우
2002-01-13
어떤 며느리가 교회 다닌다고 시어머니한테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어요. 이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오는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혼자 있을 때면 늘 찬송가 395장을 불렀어요. `너 시험을 당해 죄 짓지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다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는 승리하라` 어때요? 믿음 좋지요.
그런데 이 시어머니는 건넌방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이 찬송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를 내다 못해 치를 떠는 거예요. "아이구, 저 독한 것, 내 세상에 보다 못해 저렇게 독한 것은 처음 본다" 이러는 거예요. 이 때 어떤 사람이 시어머니한테 마실을 오자 이 시어머니가 며느리 흉을 보는데 또 찬송이 들려오는 거예요.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이 찬송소리가 들려오자 시어머니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하는 말이 "저 소리 들리죠? 저 찬송소리, 이 시어미가 야단치면 반성도 좀 해야 될텐데, 웬 노래를 저렇게 부릅니까? 아예, 시어미를 이길려고 그래요. 저 노래가사 좀 들어 보세요.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어미 오나 겁 없네` 예수를 믿으면 시어미도 겁이 안난다 말입니까? 그 뿐인 줄 아시오? 조금 아까 이렇게 노래를 했어요. `너 시어미 당해 용기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어미 당해 새 힘 얻고 늘 승리하
라`" 제대로 듣지 못하니까 오해도 하고 불평도 하고 원수도 삼고 그래요.
1.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보는 것 제대로 보고요, 듣는 것 제대로 들어야 되요. 다시 말하면 분별력이 있어야 되거든요.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분별력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하는데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어냐? 월드컵 경기장이 될 거냐 말 거냐가 아닙니다. 요즘에 TV에 신문에 월드컵 앞두고 이런 일 잘하자 하는 것 중에 무엇이 있어요? 침 뱉지 말자 쓰레기 버리지 말자 창피한 일 아닙니까?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래요. 바가지 씌우지 말자 세계에서 술 제일 많이 먹는 나라 하면 대한민국이에요. 비싼 술 제일 많이 먹어요. 담배는 어느 정도로 피우냐면 초등학생 중학생 여학생 고등학생 세계 1위랍니다. 그냥 술 취해 사는 거예요. 정신이 없어요.
이 시대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냐면 일생동안 정치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이렇게 먹었다 저렇게 먹었다 줄줄이 다 감옥 가잖아요. 얼마나 바쁜 세상인데 그런 일 해야 되냔 말이에요.
강남에 킴스클럽 갔을 때 목격한 일이에요. 피자 집 앞에 사이다 콜라가 흥건하게 젖어 있어요. 웬일인가 봤더니 5살 정도의 어린애가 콜라 기계에 손을 내밀고 있어요. 기계를 누르니까 콜라 사이다가 줄줄 흐르는 거예요. 그리고 킬킬대고 웃고 있어요. 그러니까 종업원이 나와서 야단쳤을 것 아니에요. 애가 울지요. "아니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이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계속해서 하는 얘기가 "종업원 주제에 누구를 야단쳐. 지배인 나와" 여러분, 상황이 어떻게 됐겠어요? 지배인이 와서 사과하고 종업원이 찔찔 짜면서 사과하고 일이 끝났어요. 계속 들리는 건 뭐냐면 종업원 주제에, 종업원 주제에..... 자기 아이 기 살리겠다고 난리법석을 하는 것을 보았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구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있는 청년들 다 누가 가르친 겁니까? 누가 기 살린 거예요? 음식점에 가도 조용히 식사를 해야 되는데, 왔다갔다 뛰어 다니는 것 말리지 않아요. 누가 가르친 거예요. 예배 시간에 아이들이 왔다갔다 뛰어다녀도 그냥 내버려 두어요. 뭐 꼭 그렇진 않겠죠. 누가 가르친 거예요? 너무 분별력이 없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모른단 말이에요.
콜럼비아 대학에 성적이 참 좋은 우리 교포학생이 입학신청을 했어요. 성적이 뛰어난데 떨어졌어요. 왜 떨어졌냐? 헌혈 한번 안했다는 거예요. 결국 그것 때문에 대학에 못들어가요. 이게 선진국 아니에요. 적어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실력있는 사람이에요. 모든 것 할 수 있다고 그런 것 아니란 거예요.
어제 뉴스에 보니깐요, 회사에서 사원을 채용하는데 공개채용이 점점 줄어든대요. 사원이 추천하는 사람을 뽑겠대요. 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실력은 좋은데 인간성은 어떤가? 모르겠다는 거예요. 잘 융화하느냐 서로 잘 돕느냐 정말 회사에 유익이 되느냐 그런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 회사에다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60%이상이 앞으로 공개채용은 하지 않고 사원추천제로 하겠다 그러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사람이 공부 열심히 했는지, 얼마나 인간성이 좋은지 그거 보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요, 내 아이 기 살리는 것이 잘 사는 비결이 아니에요.
이제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는 더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아는 사람, 모든 것 다 할 수 있어도 나의 유익이 된다 할지라도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 선택해서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거예요.
오늘 고린도교회는요,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끄러워요. 늘 큰소리가 나는 거예요. 니편, 내편 갈라 싸우는 겁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이런 교회를 보면서 성경에 뭐라 그랬어요? 딱 한마디 해요. `어려서 그렇다.` 젖을 먹으니까 그렇다, 밥을 먹어야 되는데, 그래야 어른인데 이 사람들은 그러기 때문에 내가 더 큰 은혜를 얘기할 수가 없다. 맨날 그 얘기만 하는 거예요. 젖 먹는 얘기에요. 율법의 지배를 받는 얘기, 성장해야 되는데 성장하지 않아요. 더 큰 일해야 하는데 더 큰 일 안해요. 더 큰 복을 받을 수가 없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는 젖 먹는 단계에서 시작해서 밥 먹는 단계가 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성숙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시키는 것만 하는게 아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상태가 아니에요. 스스로 하는 거예요.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이 가르치시는대로, 그래서 분별력을 가지는 거예요.
2.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오늘 성경은 이걸 가리켜서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면 신앙이 좋은 분들은 다 하나님의 지혜로 살았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아는 분별력이 있었단 말이에요. 요셉이 형들한테 팔리어서 애굽의 노예가 되었어요.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에요?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면 그럴 수가 없어요. 형들은 쳐죽일 놈들이에요. 그러나 성령의 사람인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깨우쳐 주시는 분별력이 있는 거예요. 원망, 불평 안해요. 그래서 감옥에 죄수가 되도 원망 안해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겸손한 거예요. 하나님이 여기까지 오게 하실려고 나를 이곳에 보내셔서 훈련시키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있는 거예요.
사도행전 20장 21절에 보면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갈 계획을 세울 때, 성령의 계시를 받아요. 동시에 제자들도 성령의 계시를 받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겠다 그러고 사도바울의 제자들은 가지 말라고 그래요. 왜그래요? 성령이 이 사람한텐 이렇게 얘기하고 저 사람한텐 저렇게 얘기하고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성령의 계시는 딱 하나예요. 뭐냐?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선택이에요. 사도바울은 그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를 받고 그래도 나는 가겠다 하는 거였구요, 제자들은 가지 말라는 것이에요. 안가면 일은 안생겨요. 그러나 사도바울은 가는 걸 선택을 해요. 그리고 유럽의 교회들이 모아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얻지요. 아닌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고난받고 붙잡힙니다. 그러나 붙잡히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이 그렇게도 원하는 로마가 보고 싶었는데 로마로 인도해 가
시는 거예요. 배타고, 많은 호위병 거느리고, 비록은 죄수의 몸이지만...... 그리고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어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가졌던 그런 용기 말이에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승리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어요?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사람이에요. 순종하는 거예요, 그럴 때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 그 말이에요.
어제 목욕탕에 갔다가 이웃 교회 장로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이 장로님은 저를 만나면 하는 얘기가 있어요. `교회일 열심히 하면 축복받는다.` 지난번에 한번 들었는데 또 하시더라고요. 얘기인 즉, 이 말이에요. 자기가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술 먹고 담배 먹고, 하는 그때 나왔는데, 얼마 되지않아 집사가 됐대요. 그리고 회계를 맡으라고 그러셨대요. 억지로 맡게 됐데요. 아무 것도 모르니까 전임회계한테 물어봤데요. 어떻게 하냐고, 그런데 안가르쳐 주더래요. 그런데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는데, 자기가 교회 행정학 책 사다가 열심히 공부해서, 회계를 하고 예산을 짰답니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까 늘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아요. 언제나 적자란 말이예요. 그래서 목사님 생활비도 드리지 못할 정도가 됐데요. 그때 왜 회계장부를 안보여 주는지, 알았다는 거예요. 왜 그게 자기한테 왔는지 알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아내하고 고민을 했대요. 자기가 받은 생활비를 먼저 목사님의 생활비로 드리고, 자기는 빚 얻어서 썼다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 안있다가 목사님 사택을 옮기게 됐는데, 자그마치 200만원이 더 필요 하더래요. 돈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은행에서 빌리려고 했더니, 다 얘기가 됐는데 정부에서 정책상 동결 그래서 못 받았대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아무래도 돈 빌릴 때가 없는데, 누구도 낼 사람이 없는데, 그래서 자기가 자기 집 전세 뽑아가지고, 월세로 놓고, 월세로 자기가 들어가고, 한달에 3만원씩 내면서 목사님 사택을 해 드렸대요. 그런데 참 거기까지 오니까 오기가 생기더래요.
뭐냐, 내가 술, 담배 먹으면서 회계 집사 계속 할꺼냐, 하나님이 깨닫게 하셔서 술을 끊고 자기 술친구인 복덕방 할아버지를 전도하기 시작했대요.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없구나 했대요. 집값이 한참 올라갈 땐데, 자기보고 어느 날 갑자기 오더니 그냥 도장만 내놓으래요. 그래서 도장을 찍으면서 이제 이집 니가 계약한거다. 돈 내놔라 그러더래요. 돈이 어디 있어요. 한푼도 없는데, 월세 사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적자 나는데, 수입이 많게 하시더니 50만원을 주시더래요. 그래서 50만원가지고 계약을 하고, 그 다음에 가니까 또 50만원 줘서 또 계약을 하고 그래서 중도금까지 치뤘는데 그 다음에 보니까 돈이 없어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하느냐 그런데 그 사이에 집값이 또 올랐대요. 한 몇 백만원 벌었다 팔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리더래요. 안된다. 그러더니 어떤 분은 십만원 어떤 분은 30만원이웃집에서 빌려다가 이거 3부 이잡니다 주더래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그 집을 자기가 갖게 됐더래요. 그래서 그 집이 많이 올라가지고 부자가 됐다는 거지요.
그분은 저한테 단호하게 이야기 하더라구요. 내가 억지로 일을 하지만은 하나님이 그 안에 그 집사는 계획을 가지신 것은 난 몰랐단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교회일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저한테 47분동안 얘기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어요. 그러나 일하는 것이 축복인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는 거예요. 그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의 지혜에요. 하나님의 계획은 비밀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오늘 성경 7절에 있는 말씀 보세요.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하나님의 지혜는 은밀한 가운데 있어요. 감추어 졌어요. 그래서 아무나 이것을 모르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굉장히 공개적이에요. 예수를 믿었다 그러면 새생명 얻었어요. 누구나 다 알아요. 예수를 믿었다 죄 사함 받으면 우리 성령이 와요. 누구나 아는 거예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뭐냐 성령이 내 안에 오시지만 중요한 것은 성령이 내 마음을 변화시키셔야해요. 그래야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있어요.
사람들은요 이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참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하고 짜증도 내요. 모든 일이 다 그래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은 절대 그러지 않아요.
저희 장인 어른이 올해 팔십이신대요. 아직도 청계천에서 장사를 하세요. 지난 50년의 세월동안 그 자리를 잘 지키고 계세요. 그래서 자녀들 교육도 시키구요. 자기 신념대로 부동산 투기도 안하구요. 그저 주시는거 감사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이분이 일제시대 때 선린 상고를 나왔어요. 그리고 은행에 취직해서 일도 잘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더 큰일 해야지 해서 남의 지금 같은 가게 종업원으로 들어갔어요. 자그마치 5년이에요. 배울만큼 배웠어요. 알만큼 알아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꽤 똑똑한 사람이였어요. 은행에 취직했으니까 그런데 장사할려고 5년을 종업원 노릇했어요. 거기서 장사 기술을 배우겠다는 거에요. 지금도 대학 다니는 사람이 가정가지는 사람이 7년동안 그 밑에서 장사기술 배우겠다고 있어요.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예요. 우리는 장사하면 가게 얻고 물건 얻고 손님 있으면 팔면 되지 하지만 천만에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은 뭔가가 있단 말이에요. 노하우가 있다구요. 하나님의 비밀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지혜도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잇단 말이에요. 우리 그것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비밀을 어떻게 알 수 있냐 그랬더니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10절에 있는 말씀 다같이 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거기 이렇게 말씀했어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이 보여주셔야만 본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오직이에요.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의 성령만이 알려주시는 것을 세상적인 경험으로 이것을 해석할라 그래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끄러운 거에요.
여러분, 6절에 있는 말씀 보면요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의 지혜도 아니요" 여러분, 세상의 지혜, 통치자의 지혜도 하나님의 지혜를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 통치자의 지혜가 뭐예요? 우리 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의 일을 할 때,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뭐 경제를 얘기하고 교육을 얘기할 때, 혼자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 옆에는 언제나 경제 보좌관, 법률 보좌관, 교육 보좌관 적어도 이 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 옆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두뇌가 돼주는 거예요. 통치자의 지혜자의 지혜라는 것은 이 세상에 가질 수 있는 지혜 중에 최고의 지혜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 최고의 지혜까지도 하나님의 지혜를 모른다는 거예요.
예수 믿으면서 세상적인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은 어리석은 거예요. 절대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없어요. 상식으로 아는 게 아니에요. 연륜가지고 아는 게 아니에요. 성령이 알게 하실 때에만 아는 거란 말이에요. 겸손해야 되요.
그러기 때문에 8절의 있는 말을 보면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은 엄청난 잘못이에요. 그건 왜그러느냐?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서 그래요. 성령의 깨우치시는 은혜를 받지 못해서 그래요. 단지 하나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예수님 평가하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은 거예요. 우리가요, 이것을 다르게 얘기하면 우리가 교회일 하고 신앙생활 하면서 세상적인 경험을 가지고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단 그 말이예요. 성령이 내게 깨우치시는 그것, 그것만이 내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고 그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함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성숙해진다고 하는 거 그거 다른 거 없어요.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거예요. 어떻게 아느냐? 성령이 깨우쳐 주실 때에 아는 것이에요. 이런 거 보면요, 언제나 신앙인들은 겸손할 수 밖에 없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토레이 신부는요 우리에게 성령을 이렇게 설명하더라구요. 성령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 나에게 임한대요. 나하고 같이 있는 거예요. 이것이 외부에서부터 나에게 영향력을 주는 거지요. 이것이 세지게 되면 권능을 받아요. 은사를 행하는 거지요.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거예요. 궁극적인 목표는 성령이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깨우쳐서 성령의 인도함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릴 때에는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성령을 내 마음대로 주장하려고 그래요. 내 마음대로, 삼손처럼 말이죠.
여러분, 삼손 보세요. 하나님의 능력 받았잖아요. 힘이 있잖아요. 그러나 그 마음이 변화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거예요. 부인 얻고요, 자기가 잔치자리 가고요, 이렇게 썼습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됐어요?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 한 몸 주를 위해 쓰이게 하소서!` 그리고 죽었어요.
외부의 역사는 어린아이의 단계예요. 우리의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가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역사의 최고의 목표는 무어냐? 우리의 마음이 변화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길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든지, 충성하든지 이 모든 것들이 다 뭐냐? 하나님이 내게 축복주시기 위해서 이 자리로 오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갈망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예요. 왜 앞자리가 비워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 받아야 되는데, 뭐하러 그러세요. 왜 자꾸 지하만 고집해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핑계로 예배드리는 것을 좀 귀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은 아닌지 염려가 돼요.
예배는 여러분을 위한 축복이에요. 나를 위한 게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 아니거든요. 여러분을 위한 거예요. 알아야지요. 그게 하나님의 지혜예요. 성령이 그걸 깨닫게 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와 깨달음을 가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냐? 여러분 9절에 있는 말씀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같이 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위해서 준비하신 놀라운 축복이 있어요.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려면 성령의 깨달음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두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변화할려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변화되려는 마음이 하나님의 지혜를 갖게 한다. 마음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고정된 생각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깨달음을 받을 수 없어요.
로마서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돼요. 영적 예배를 드려야 돼요.그럼, 거룩한 제물과 영적인 예배가 뭡니까? 2절에서 계속 말씀하는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시간의 영적인 예배, 제물이 뭐냐? 마음이 변화할려고 하는 자세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해요. 내가 오늘 말씀 들으면서 뭘 변화시킬까? 이런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하나님의 깊고 온전하신 뜻이 무언지 분별하도록 하는 거예요. 누가 분별하느냐? 마음이 변화된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어린아이하고 어른의 차이가 뭐예요? 우리 교회 집사님 아이 가운데 한 아이는 헌 담요를 좋아해요. 젖먹을 때부터 덮어주었던 담욘데, 그렇게 좋은 가봐요. 언제든지 가지고 다녀요. 좋은 음식점에도 가지고 다니고 잘 때도 끌어안고, 너무나 새까맣고 달아빠져 가지고 참 부모가 속상해해요. 그래서 그거 몰래 감추고 새거 똑같은 사다 놨는데도, 새거 싫다는 거예요. 그게 좋다는 거예요. 아이들은요, 하나밖에 몰라요.
우리 작은애가 어려서 자랑하고 다녔어요. "난 아빠가 둘이다 니넨 하나지?" 아빠가 둘이야 놀래가지고 "네가 왜 아빠가 둘이야? 하나지. 내가 네 아빠야" 아니라는 거예요. 애는 뭐냐면 목사는 다 자기 아빤 줄 아는 거예요. 그 때 목사는 둘이었거든요. 오목사 이목사 근데, 지금은 안그래요. 아니까. 저보고만 아빠라고 하더라구요.
성장했다고 하는 것은 딴 것이 아니에요. 자기 고집을 버리는 것이에요. 새로운 것을 아는 거예요. 변화받는 거지요.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는 하나밖에 몰라요. 이것만 옳다고 그래요. 다른 생각 없어요. 그냥 우기고 자기 주장밖에 없어요. 마음에 여유가 없어요. 영적인 어른이 되면요, 이해할 줄로 알고 기다릴 줄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거예요.
여러분, 한가지 물어보겠어요? 부모하고 자식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누가 이겨요? 자식이 이기게 되어 있어요. 부모가 몰라서가 아니에요. 단 하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영적 어른의 마음은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저주기도 하는 거예요. 이해하려고 해요.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는 이해도 없고 인내도 없고 사랑도 없어요. 그냥 알아달라, 이해해달라, 사랑해달라고만 해요.
여러분, 어때요? 하나님의 지혜,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 분별력을 갖기를 원하면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해요. 집착하지 마세요. 성령의 역사는 새로운 역사예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된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부대는요, 염소가죽으로 만들어요. 가죽이 처음엔 얼마나 부드러워요. 탄력성이 있어요. 집어넣으면요, 용량 그 이상도 들어가요. 늘어나거든요. 그러나 헌 부대는 절대로 늘어나는 법이 없어요. 딱딱해요. 거기다가 새것 넣었다가는 부대도 터지고 포도주도 다 버리는 거예요.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 고정관념 속에 예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죽인 거예요. 세상 통치자들과 결탁해가지고, 결국 뭐예요? 예수님만 죽인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통해서 자기의 신앙도 다 팔아먹어 버리고 자기들의 설 자리가 없어요. 예수 안에서 설 자리가 어디 있어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비난받고 있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탄력성, 여유가 있어야 되거든요. 이게 새부대예요. 마음의 변화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늘 성령 안에서 깨우쳐 주시는 은혜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변화받으려고 하세요. 그럴 때, 하나님의 깨달음이 있고, 그럴 때,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속에 있고, 그래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두번째는 주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주님의 마음을 가질 때, 가질 수 있다. 여러분, 뭘 달라 달라 하지 마세요. 얘들이 어렸을 때는 무조건 달라고만 해요. 그럼 자기가 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잘하진 못해요. 부모만큼 잘 할 순 없어요.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에 2장 15, 16절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신령한 자 영적으로 성숙한자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갖는 거예요.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에요? 요한1서 2장에 보면요, 요한이 영적 성숙의 3단계를 이야기해요. 첫째는 자녀의 단계, 둘째는 청년의 단계, 셋째는 아비의 단계라 했어요.
자녀의 단계는 딴 게 아니에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갓난쟁이 보고 "너 영어할 줄 아냐?" 묻는 사람 없어요. 영어할 줄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대도 안해요. 단지 하나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이쁜 거예요. 아이고 고물고물한게 얼마나 이뻐요.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을 때, 자녀의 상태는 무어냐?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그 자체만 좋아하고 자랑하는 거예요. 그게 대단스러워 보이거든요.
두번째는 청년의 단계예요. 요한은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너희는 말씀 안에서 거하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겼다` 그랬어요. 청년은요.,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경건함이 있어요, 거룩함이 있어요. 그리고 악한 자를 이겨요. 사탄을 이긴다고요. 그러나 청년의 어리석음은 무어냐 하면 남을 비판하는 거예요. 비판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 남을 비판해요. 청년들은 언제나 그래요. 자기가 아는 만큼 남을 비판해요. 너 왜 그렇지 않냐고 얘기해요.
그런데 마지막 단계는 아비의 단계예요. 아비는 어떤 사람이에요.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일을 알았음이라` 적어도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아비의 마음을 가진 자라 그 말이예요. 여러분, 아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에요.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아이들이 제게 날마다 올바른 행동하고 제 말대로 하기 때문에 먹여 살리지 않습니다. 사실 저희 얘들도요, 사춘기 때를 회상해보면 착한 거 하고는 거리가 멀었어요. 아버지 기준에서 그렇단 말이예요. 그런데도 나는 얘들을 먹여 살렸어요. 그 이유가 뭐예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신다 그것은 내 행위가 올바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은혜를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재차 강조하지만요, 영적인 성장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그것은 스스로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의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를 가진 아버지가 되어 보면은요 영적인 아버지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을 거예요.
구약에 보면, 호세아 선지자가 나와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요. 하나님만 섬기라는데 자꾸 우상을 섬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하는 말이 "너 결혼해라 그런데 창녀하고 결혼해라" 그래서 창녀하고 결혼했더니 이 사람이 자꾸 다른 남자에게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쫓아가서 잡아왔어요. 용서해줬어요. 살았어요. 또 가는 거예요. 그래서 가면 잡아오고 가면 잡아오고 용서하고 또 살고 그러는데 계속 그러거든요.
그래서 호세아가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 어떻게 저에게 이런 여자하고 결혼하게 했습니까?" 그런데 호세아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이런 마음을 가지시겠구나. 하나님이 그때서부터 호세아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한 아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가있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분별력이 있고, 그런 사람이 뭐가 옳고 그른지를 아는 것이란 말이에요.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가 나이가 팔십세가 되었을 때, 눈을 못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지요. 앞으로 어떻게 하나 하고. 그랬더니 그는 딱 한마디 했어요.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신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셨는데, 내가 눈을 감았을 때는 더 큰 사랑으로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변덕스럽지 않아요. 아무 불평하지 않아요. 그냥 평안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바로 이것이 주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의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이 뭐예요?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거예요. 하나님의 그 비밀을 아는 것이란 말이예요. 성령만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것이란 말이예요. 변화하도록 힘쓰세요. 마음에 고정관념 깨세요. 늘 변화되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깨우쳐 주실 거예요.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시를 하나 읽겠어요.
<보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
남을 비난하고 불평하기 전에
나의 못남과 어리석음을 먼저 보게 하여 주소서!
결점 투성이의 나를 보고 절망하기 전에
다시 한번 당신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소서!
다시 한번 당신께 믿음으로 눈을 뜨게 하소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과 분별력을 주소서!
살아서 눈을 뜨고 사는 고마움으로
언제나 당신 안에 보게 하소서!
오늘도 나를 샅샅히 살피시는
눈이 크신 주님
당신은 나에게 두 눈을 선물로 주셨지만
눈을 받은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눈이 없는 사람처럼 답답하게
행동할 때가 많았습니다.
먼지 낀 창문처럼 흐려진 눈빛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것들과 거리가 먼 헛된 욕심에 혈안이 되어
눈이 아파 올 땐 어찌해야 됩니까
보기 싫은 것들이 많아
눈을 감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웬만한 것쯤은 다 용서하고
다 받아들이는 사랑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야 돼요. 성령이 나에게 깨닫게 하시기를 사모해야 해요.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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