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30일 (수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75)본문:마 13:24-30,36-40절
    2002-04-16 23:20:58   read : 1083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곡식과 가라지 비유

    2000년이란 해는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교회의 부흥과 비전을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 개인적으로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저는 잘 못 느끼며 살지만, 가끔 저희집 아이가 "아빠 머리에 휜머리카락이 났다"면서 휜머리카락을 뽑으려 할 때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발견한 그 흰머리카락을 뽑도록 매번 요청을 해보지만 서투른 아이의 손놀림은 언제나 그 옆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까지 함께 뽑게 됩니다.

    사실 흰머리카락만 정확하게 뽑으면 별로 따갑지 않지만 그 옆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뽑으면 얼마나 따가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더 이상 흰머리카락을 뽑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검은머리 파뿌리되도록 내버려 둘 생각입니다.

    오늘 주님의 비유는 마치 우리의 머리에 난 흰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에 대한 비유처럼 명석합니다. 먼저 본문을 보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24절에 "예수께서 그들앞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앞절인 13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려운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어떤문제를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복잡한 수학공식을 설명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철학적인 깊은 논리를 요구하는 문제를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미분, 적분'하는 수학문제를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택하신 방법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희집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수학문제집을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숫자를 더하고 빼는 단순한 문제지만 아이에게 어떤 문제는 어렵게 보였고, 어떤문제는 매우 쉬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풀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설명을 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철수 손에 사탕이 다섯 개 있었는데 하나는 먹고, 또 하나는 친구에게 주었는데 그러면 사탕이 손에 몇 개 있느냐?" 몇 개가 있습니까?

    '세개입니다.' 그런데 '두 개'라고 대답합니다. 왜 두 개가 되냐?고 말하면서 다시 설명합니다. 이번엔 '주머니에 구슬이 다섯 개 있었는데 하나는 구슬치기하다가 잃어버렸고 또 하나는 친구에게 주었다면 주머니 속에 구슬이 몇 개 남아 있느냐?'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몇 개가 남습니까? '세개'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두 개라고 합니다. 화가 나서 도대체 왜 두 개가 남느냐?고 말합니다.

    사탕하나는 아빠가 문제 내는 동안 자기가 하나 먹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개밖에 없고, '구슬 하나를 친구한테 주려고 끄집어내다가 다른 하나가 주머니에서 흘려나와 버렸기 때문에 주머니에 두 개밖에 없다'고 대답을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가막힌 대답이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처럼 어리석은 대답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부모로서 아이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할 경우 이렇게도 설명을 해보고 저렇게도 설명을 해봅니다.

    주님은 비유라는 방법을 택하셔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어떤 비유의 말씀입니까? 24절 하반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씨뿌리는 비유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좋은 땅에 씨를 뿌려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본문에도 보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까? 더 이상 아무문제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그곳에 가라지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만사가 형통하는 것입니까? 찬송가 가사처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입니까? 만사형통할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사람이 다 건강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까? 찬송가 가사처럼 "모든 병을 고쳐주마 약속 하셨으니" 우리의 질병이 고침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살수도 있지만 병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믿으면 죽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했으니 죽지 않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어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단순한 환상의 세계로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천국옆에 가라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시련과 핍박속에 살고, 악하고 불의한 사람은 권력과 부와 명예를 움켜쥐고 잘 사는 경우를 종종 볼수 있습니다.

    98년 10월, 미국 켄터키주에 사는 찰스 윌포드라는 학생이 13세의 어린나이에 골수암으로 죽었습니다. 얼마전 그가 쓴 '나의 암이야기'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극심한 병마와 싸우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로 나는 울다 잠이 든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조건에서 선택됐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이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도저히 13세라는 어린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윌포드'군이 의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사실을 그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이토록 선한 생각을 가진 학생은 일찍 죽어야 합니까? 차라리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오래 산다면 이 땅은 선한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 아닙니까?

    어제 신문을 보면서 화가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난번 옷로비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사람들 중에 이형자씨를 제외하고 다 풀려났습니다. 이유는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 보석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구속만 되면 왜 그렇게 병이 갑자기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선한 사람은 일찍 죽고, 악한 사람은 날개를 펴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그럴수가 있습니까? 오래 살아야 할 사람은 일찍 죽고, 일찍 죽어야 할 사람들은 왜 그토록 오래 사는 것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예수믿는 우리는 왜 매번 손해를 보아야 하고 세상사람들에게 당해야만 합니까?" "왜 맨날 기도하는 나는 이렇게도 어려움이 지속되는데 기도의 기역자도 모르는 저사람들은 하는일마다 잘 되는 것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선한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것도 함께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려서 천국이 자라고 있는데 그 옆에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는 것을 주님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비유에 대한 좀더 정확한 해석을 주님 스스로 하십니다. 37-39절까지를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요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우리는 여기에서 천국을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이 하는 일에 대해 몇가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라지를 뿌리는 자가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그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방해하는 세력들 속에서 점점 자라게 됩니다. 지난주에 느헤미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고 그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그일에 방해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산발랏과 도비야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진행되어 마침내 성벽이 중건됩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때도 하나님나라는 방해하는 자들속에서 점점 커져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방해하는 자들에 의해 하나님나라가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점점 자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들이 잠자는 밤에 몰래 가라지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이 위축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두 번째는 마귀가 모방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라지는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씨의 모습도, 줄기의 모습도 잘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귀의 모습입니다. 천국의 아들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슷한 행동과 비슷한 말을 합니다. 얼마나 신앙적인지 모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무서운 이빨이 숨겨져 있습니다. 무서운 발톱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되면 그 무서운 발톱을 일으켜 세웁니다.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서 인정사정볼것없이 달려 듭니다. 이것이 마귀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라지가 내 옆에서 자라고 있을 때, 이 사회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27절에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가라지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까?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원치 않는 것이 자라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집주인의 종들은 좋은 씨를 뿌린 곳에 왜 가라지가 생겨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질문이 있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왜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왜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자꾸 악한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왜 선하게 살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자꾸만 나타나는 것입니까?"그때 주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8절에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님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종들의 반응은 "당장이라도 뿌리째 뽑아버릴까요?"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당장 뽑아버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9-30절에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라지는 뽑아버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가라지인지 아닌지 몰랐을 때에는 그냥 두었다 할지라도 일단 가라지인줄 알면 뽑아 버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그냥 두어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옆에 곡식이 좀 뽑히면 어떻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뽑아버리면 그 땅에서는 좋은 곡식만 거두어 들일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그냥 두어라고 말씀하셨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주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는 여기서 부모의 심정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잘난 자식이든 못난자식이든 부모에게는 똑같은 자식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 하나둘 정도 뽑혀 나가는 것은 각오해야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주님의 심정은 곡식 하나라도 뽑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다보니까 주님의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때때로 많은 분들은 대(大)를 위해서 소(小)의 희생을 감수해야된다고 저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솔직한 심정은 그 소(小)도 희생시키고 싶지 않는 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앞에서 제가 흰머리카락 뽑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흰머리카락을 아예 뽑지 않겠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언제 흰머리카락을 뽑기가 좋은가?하면 머리가 길었을 때입니다. 흰머리카락이 보여도 짧은 머리카락일 경우에는 그냥 두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이 짧을때에는 흰머리카락을 골라서 뽑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흰머리카락을 뽑으려면 그 옆에 검은 머리카락까지 함께 뽑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오히려 머리카락이 길어지도록 두었다가 길면 흰머리카락을 뽑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이 길면 그만큼 골라내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왜 그냥 두어라고 하셨는지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우리주님은 열 개의 가라지를 뽑아내는 것보다 한 개의 곡식이 상하는 것을 더욱 안타까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인과 함께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잃은 한 마리의 양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안타깝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상하고 다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당장에라도 뿌리를 뽑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주님의 심정은 그렇게 하다가 '만의 하나'라도 다치게 된다면 차라리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심정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금 당장은 악이 우리곁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놓아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방금 읽었던 본문 29절에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을 뽑을까 염려하노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두었을 때, 주님이라고 마음이 편하실리 있겠습니까? 우리가 악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고 계시겠습니까? 그냥 우두커니 우리가 악에게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래서 '염려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염려하고만 계시지는 않습니다. 때가 있습니다. 30절에 '둘 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추수의 때가 언제입니까? 39절에서 해석하기를 "추수때는 세상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악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종말의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면 우리만큼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해보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을 절제하면서 살았으니 얼마나 그 인생이 허망합니까? 가끔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들 가족들에게 의사들이 하는 말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게 하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게 해 주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가정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그 심판의 때에 가라지들은 뽑혀서 불살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본문 41-4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성경은 여러곳에서 이런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때에 대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마귀의 아들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풀무불에 던져져서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아들들의 최후입니다.

    이제 우리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왜 이 세상에 악한자들이 득세를 하는 것입니까?' '왜 나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어려운 일들만 만나게 됩니까?' '왜 내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까?' 주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추수때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방해하는 세력들속에서 자랍니다. 그러나 방해하는 세력들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법은 없습니다.

    추수때가 되면 가라지들은 다 불에 타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천국백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43절에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같이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악을 멸하실 능력이 없어서 멸하지 않고 내 버려 두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보류해 두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당장 오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오시면 큰일날 사람들이 많습니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는 사람들, 만약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미루시는 분이 아닙니다. 추수의 때가 있습니다. 추수의 때가 되면 가라지는 결국 불살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곡식은 곡간에 들이게 됩니다. 아니 방금 읽은 말씀처럼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같이 빛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삶에 지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너무 고통스럽다고 생각되는 분이 계십니까? 추수때가 있습니다. 그때 곡식은 아버지나라에서 해와같이 빛날 것입니다. 인내합시다.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도 천국은 일시적으로 그들과 함께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러나 결국은 승리하리라는 사실을 굳데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관련기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