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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002-04-15 16:29:48   read : 185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16:25-33 // 2002/03/24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가장 큰 화제를 가져 온 사람은 왕년의 권투 스타 무하마드
    알리입니다. 파킨스 병세로 인해 흔들거리는 손으로 그가 점화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드라마였습니다. 그 장면은 다음 날 모든 세계의 매스컴들이 무하마드 알리에 대
    하여 대서특필하기에 충분한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
    감동의 드라마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알리의 위대한 승
    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승리의 허망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말하는 승리란 결코 참된 승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68년 로마 올림픽에서 당시 18세 소년으로 금메달을 딴 알리는, 그 후 20년 동안 세계
    프로 권투 헤비급을 지배한 위대한 복서로, 위대한 승리자로 불후의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
    러나 지금 그는 어떠합니까? 선수 생활 중 상대 선수로부터 가격 당한 펀치 드링크의 후유
    증으로 파킨슨병에 걸려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제어할 수 없는 불우한 삶을 살고 있습니
    다. 그렇다면 그 동안 쟁취했던 그 수많은 승리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의 승리가 그
    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려 놓았다면, 그가 도대체 무엇을 이겼단 말입니까? 자기의 생
    을 걸었던 것 때문에 벗을 수 없는 병마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가 위대한 승리
    의 상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승리란 운동장의 선수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절한 생존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승리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이기기를 원
    하며,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과 열정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겼을 때에는 승리의 감격
    을 만끽합니다. 그러나 그 감격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간의 승리는 영원한 승리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승리했다는 것은 내일의 패배가 시작되었다는 것 이상일 수가 없습
    니다. 그래서 인간은 승리를 얻고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큰 승리를 얻으면 얻은 만큼
    오히려 더 불안해하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 승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을뿐더러 또 언
    제 빼앗길는지 알지 못하는 불안 때문입니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싸움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운명적 상황이라는 겁니다. 부득불, 원치 않지만 우리는 싸워가며 살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운명적 존재란 말입니다.
    첫째는 자연과 더불어 싸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위와 싸워야 하고, 때로는 더위와 싸우
    고, 홍수와 싸우고 또 때로는 가뭄과 싸우고, 그리고 지진과 싸우고, 무서운 바람과 많은 재
    난 사건들과 싸워야 합니다. 자연이 그리 순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런 역경적 자연환경과 우
    리는 싸우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싸움이 있는 것을 압니다. 보이지 않게 귀에 총소리가
    들리고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지마는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무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이런 팽팽한 긴장 속에서 우리는 무한경쟁, 무한투쟁, 그 속에서 살
    아가고 있습니다. 살아 남기 참 어렵습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계속 싸움에 휘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굳게 서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하는데 이거? 하나의 싸움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싸웁니
    다. 죄와 정욕과 욕심과 자존심과 특별히 시기 질투 아주 못된 마음 이런 것들과 싸웁니다.
    양심을 위한 싸움이요, 양심에 자유를 위한 싸움이요, 나가서는 자기자신의 율법 내가 세워
    놓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싸웁니다. 나와의 싸움, 아주 치열한 것입니다. 오늘도 여
    러분이 아침에 교회에 나올 때 조금 싸우고 나왔을 것입니다. 나갈까 말까? 이겨서, 싸움에
    이겨서 게으름을 이기고 나약함을 이겨 승리해서 이 자리에 계신 줄 압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신 그 입성을 기념하는 그런
    날 입니다. 우리가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올라갔다--- 초라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이 왕으로 취
    임하게 될 때 그 대관식에 행사 중에 하나가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올라갑니다. 왜요? 왕
    은 겸손해야 되니까 그런 원리에 의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올라가신다 이 말입니다. 그러
    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승리에서 승리로 행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최종 승리만을 위해서 나머지는 모두 고통과 절망과 그리고 아주 어려운 시련으로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아요. 승리에서 승리로 향하시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만이 승리가 아닙니
    다. 현재적이고 본래적인 승리를 스스로, 스스로 만끽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축하고 있는 것
    입니다. 영적 승리, 도덕적 승리, 실존적 승리가 먼저 있고 다른 말로 말하면 태도적 승리
    그리고 나서 저 앞에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우주적인 최종 승리가 있더란 말입니다. 한번 생
    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합니다. 이것은 왕입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던 알던
    모르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이미 승자로서, 이긴 자로서 행사하신 것입니다.
    이기고 또 다른 승리를 향하여 가신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먼저 승리를 선포하고 그리고 최후 승리를 향해서 나간 것입니다. 깊이 깊이 생각해야 합
    니다.
    승리에는 절대적 승리가 있고 상대적 승리가 있습니다. 상대적 승리란 한사람이 승리를
    하면 한 사람은 패해야 합니다. 확연한 상대적 승리는 권투입니다. 링 위에 두 사람이 올라
    섰을 때는 서로가 승리를 장담하고 경기를 시작합니다. 얼마가 지난 후 한사람은 무등을 태
    우고 링을 돌고 사진기자의 후레쉬가 터지며 사진을 찍고 그리고 그에게 벨트와 명예와 환
    희가 주어집니다. 돈이 주어집니다. 상대에게 승리를 안겨준 패자는 피를 흘리며 어디로 사
    라졌는지 찾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승부의 세계는 비참합니다. 비단 인간의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동물의 세계, 물질의 세계도 똑같은 상대적 승리로 인하여 생존하는 것입니
    다. 소위 먹이 사슬이 그것입니다. 절대적 승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적 승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를 얻게 되어야 하고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수 시간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을 이겼노라"
    예수님의 눈앞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겼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야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시면서 이 성만찬에서 주신 교훈의 말씀입니다. 몇 일 후가 아닙니다. 몇 시간 후에 십자
    가를 집니다. 이 사실을 아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너희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 얼마나 통쾌한 승리입니까? 얼마나 엄청난 의미에 승전 선포입니까? 그 뜻이 무엇이
    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지와 불안으로부터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걱정도 있고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사라집니다. 깨끗해지는 순간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여러분 가끔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지한 자가 용기가 있다고요. 무식한
    자가 용기가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만용입니다. 문제는 지식이 문
    제요. 무엇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특별히 미래에 대한 것 그리고
    소망의 문제요, 신앙의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가장 큰 공포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용기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아요.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2절에 보면 그
    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면서 말씀하
    십니다.
    "내가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날는지 내가 예수님을
    위하여 몸 바치고 희생하고 순교 할 각오도 돼있어요. 그러나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가
    없어요. 불안해요. 여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그
    런 무지 때문이예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아침 신문을 들여다보기가 겁이 납니다. 또
    무슨 일이 터졌나 싶구요. 미래를 알 수가 없어요. 불확실한 거예요. 불확실성 때문이요. 무
    지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무지에 대한 구체적 해석을 얻지 못 했기 때문이요. 무슨 말인고 하니 내
    가 하나님 앞에 몸 바치는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내 생을 끝내야 하는 것입
    니까? 이것이 문제라고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이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렇게 승리를 선포 하셨고, 십자가 지시기로 결심하셨습니
    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면서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밤
    새 피땀 흘려가며 기도합니다. 그럼 무슨 고민이 있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다
    알 길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측을 해봅니다마는 마땅치 않아요. 이건 가장 현
    실적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 몸 바치기로 십자가 지시기로 결심한 건 사실인데, 내일 아침
    빌라도 법정에 나가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는 것 이것이 하나님에
    뜻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에 대한 현실성이 문제입니다. 추상적으로는 이미 결단을
    했지만은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바로 여기에 고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내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진리대로 삽니다. 그 마음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오늘 내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 사건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바로 이 진리에 대한 현실성, 구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확실해 집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의미의 문제입니다. 도대체 이 십자가에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보상은 무엇입니까?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이렇게 죽어 가면 다음 일은 어
    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철없는 제자, 이 한심한 세상도 대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
    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십자가 사건을 보며 이에 대한
    의미, 이 구속 사정 의미를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런 순간 미래가 환하게--- 십자가 다
    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것이 승리올시다.
    무지와 불안으로부터 확실한 하나님의 뜻으로 향한 구체적인 것이 환하게 나타날 때 이것이
    승리입니다. 또 하나는 고독으로부터의 승리입니다. 여러분 뭐니뭐니 해도 외로움처럼 어려
    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병 드는게 아픈게 아닙니다. 병들면 외롭습니다. 가난한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가난하면 친구가 없습니다. 고독이 무서운 것입니다. 외롭습니다. 다 떠나 버려
    요. 이걸 극복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이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제자가 있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를 못해요. 그 많은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호산나 만세를 부른다
    고 하지만은, 예수님의 그 깊은 마음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내 뜻을, 내 희생에 의
    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 참 괴로운 것입니다. 이게 사람을 괴롭혀 참 힘들게 만
    듭니다. 또 그 가운데 유다는 배신을 합니다. 베드로도 몇 시간에 후에 모른다고 할 사람이
    요. 다 알고 계십니다. 배신당한다는 것 참 어려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수고가 꼭
    헛것으로 돌아가는 것 갔습니다. 그래 가장 무서운 적이 허무주의입니다. 내가 한일, 내가
    공부한 것, 내가 애쓴 것, 내가 바락바락 쌓아 온 것, 이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 이
    말입니다. 이 시간에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허무해요. 내가 병 고쳐 준 사람 다 어
    디 갔습니까? 그 많은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냐 말입니까? 다 헛되게 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무와 고독, 예수님 앞에 다가옵니다.
    그래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다 나를 버려 둘 때가 왔다. 다 떠나 갈 것이다."
    이것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
    다. 엘리야가 고독해 합니다. 로뎀 나무 밑에서 "하나님 나를 죽여주십시오."
    고독해서, 외로워서, 동지가 없어요. 이제는 할 일도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이 고독의 무서
    운 고통이었습니다마는, 오늘 주님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나님
    은 나를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습
    니다. 오래 오래 예언해 오신 하나님의 경륜 그 속에 역사 속에 이 사건이 있습니다. 그걸
    알고 계십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에 능력이요 하나님에 지혜입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입니다. 엄청난 사랑이 여기 계시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문제에 해답은 승리하시고, 그리고 다음 승리로 향하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님 말씀이 내가 이겼다 그 말은 너희도 이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겼으므로 너희도
    이긴다. 승리케 하는 승리입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승리입니다. 담대하라 내
    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런고로 너도 이길 것이다. 여기,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가시거든 우리는 그 뒤에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무서워할게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참 승리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참 승리입니까? 사도 바울은 인생을 경
    기에 비유해서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경기에서 육체적으로는 건강과 장수를 승리라
    하겠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존경과 명예를 얻는 것이 승리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평화가 승
    리가 될 것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양심에 가책이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적 승리란 영생
    일 것입니다. 승리에는 조화가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승리하였든지 도덕적으로 실패하면
    승리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을 어느 정도 벌었는데 인격에 잘못되었으면 승리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출세를 하였으나 양심이 자유하지 않으면 승리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에는 또 다른 판정이 있습니다. 남들은 승리했다고 칭찬하면 부러워하는데
    오히려 자신은 허무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독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승
    리가 참 승리일까요? 승리를 하고 나면 불안하고 최상의 자리에 앉으면 고독해 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승리자가 되면 다시 도전을 맞아야 하고 도전자를 맞기
    위해서는 피나는 자기 발전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주님께서 "내가 이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김의 선포는
    특징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타자가, 남이 예수님을 승리했다고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마는 양주동 박사를 기억합니다.
    나는 박사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박사학 위를 줄자가 없다. 고로 나는 박사다라고 했습니
    다. 사실은 박사학위가 없는 분입니다. 자기가 승리자임을 시인하는 것, 이것이 참 승리자인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승리 이것은 실패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승리는 패배인 것입니다. 자기 양심이 인정한 것이 하나님이 인
    정하는 승리입니다. 이런 승리를 진정한 승리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이겼다 하는 참 승리의 의미는 현재 속에 미래에 이길 이김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겼다'하는 말씀은 현재완료형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
    자가를 지고 나아가십니다. 그런데 이미 부활의 주가 되어 계십니다. 이 이김은 "믿음" 그
    자체인 것입니다. 믿음은 시간의 초월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인데 미래에 성취될
    약속을 이미 누리는 삶을 삽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네로 박해시대에 원형경기장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 경기장에 누가 불려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의 성도는 이
    미 하늘나라에서 입을 영화의 기쁨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나아가 사자의 밥이 될
    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까지 이기심의 발로입니다. 하나님 저 자매는 어린 자녀가
    있습니다. 나는 늙었으니 나를 먼저 불러내어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돌에 맞아 쓰러져 가
    는 스데반은 얼굴에 만연의 웃음이 가득 했습니다. 그의 믿음 안에는 하늘나라가 홀연히 임
    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너희도 이길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의 승리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의 승부만을 인생의 목
    적으로 삼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영원한 패배와 불안으로 행하는 지름길입니다. 세
    상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십시오. 아니 그리스도 안에 이미 승리자가 되었음을 잊
    지 마십시오. 승리자답게 죄로부터 자유하는 삶,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는 삶을 추구하십시
    오. 평안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과 함께 하신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승리에서 승리로 행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최후 승리만이 승리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에 영 속으로 여러분의 자세에서, 여러분의 삶에 태도에서 먼저 승리가 있어야
    됩니다. 신앙적 승리가 있고, 그 후에 저 앞에 물리적, 정치적, 우주적, 최종 승리가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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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격려하는 사람이 되라
    끝이 좋을 자신 있습니까?
    좁은 문에 집중하라
    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이러한 기쁨에 사는 자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앙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우리의 멘토 다윗
    은혜를 받아야 산다
    아름다운 면류관
    부지런히 가르치라
    성도의 기도
    하늘에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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