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찬송하며 사십시오 2002-05-14 16:25:06 read : 192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5:15-21 // 2002-04-28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분 가운데 조니 에릭슨이라는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틴 에이져 시절에 미국 메릴랜드의 체스픽 베이라는 강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전신마비가 되어 눕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는 했지만 아직 이런 시련을 감당할만한 믿음이 없었던 그녀는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할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이런 몸이라도 쓰임받을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양하며 살겠습니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직후에 자기가 입술을 움직일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고, 그는 입술에 연필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알려지자, 유명한 볼펜회사에서 광고 모델을 제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그가 나오는 모든 광고 아래 영어로 PTL(Praise The Lord/주님을 찬양하라!~)이라는 글자를 삽입하기로 합의하고 출연했습니다. 그후 그녀는 복음전도자로, 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미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양을 생활화하며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19절에"시와 참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씌어진"---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라는 단어들은 모두 현재분사로 되어있어서 계속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찬송을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본문 이해를 위한 세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1.찬양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대상이 찬송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찬양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찬송 잘하는 사람들은 천국에서도 대접받을 것입니다. 천국은 찬송으로 가득 찬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찬송 질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어느정도 특권을 누리고 삽니다. 누군가 성가대원의 특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1)교회에 올 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까운만 뒤집어 쓰면 되잖아요)
2)항상 예약석을 갖고 있다.
3)회중석에 있는 사람들을 항시 내려다 볼수 있다.
4)목사의 예리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찬양은 성가대원들만의 특별한 은사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삶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켄트 휴스라는 설교자는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안에 찬양을 허락하신다"고 했습니다. 거듭난 증거의 하나가 "찬양할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라는 중국선교에 신화를 남긴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그가 청년시절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어느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이라는 소책자를 접하게 됩니다. 그때의 감격을 술회하기를 "--나는 갑자기 나의 구원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냥 이 사실을 받아드리고 찬양할 것 밖에 없음을 알았다. 나의 신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고백합니다.
2.찬양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선 본문에는 찬송의 여러유형이 나와 있습니다. 시, 찬미, 신령한 노래등입니다. 그 구별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학자 FF부르스는 시의 초점을 감사로, 찬미의 초점을 고백(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으로, 신령한 노래의 초점을 우리의 간증으로 보았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의 찬송은 감사요, 고백이요, 간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싶을 때, 고백하고 싶을 때, 간증하고 싶을 때 찬양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요? '찬송하라'는 말은 영어로는 'making melody'로 악기를 동반한 찬송을 의미할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말만으로도(멜로디없이 언어만으로)찬송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화답하며'는 영어에 'speaking to one another'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목장의 나눔이 바로 찬송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의 목장교제 가운데 찬송이 풍성했으면 합니다. 또는 심지어 마음으로 찬송할 수 있습니다.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입술로 표현되지 않았어도 마음에 감사가 담겨 있으면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내 입술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고 한 것은 이런 의미의 고백일 것입니다. 어떻게 찬송할까요? 한마디로, 모든 방법으로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3.찬양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18절) 그 이하는 성령충만의 결과적 상태를 묘사한다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주경학자는 동시에 여기에 사용된 현재분사적 표현은 성령충만의 조건으로 볼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성령충만하면 찬양하게 되고,찬 양하면 성령충만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도 성령에 충만하지 않으면 제일 먼저 마음에서 찬양이 고갈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찬양이 샘솟습니다. 가장 위대한 찬송작가들은 시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개혁자 말틴 루터는 여러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나는 위기를 만날때마다 기도했다. 그때마다 주께서는 내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내개 찬송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384장)"--루터가 작시,작곡한 찬송이지요. 요한 웨슬레 형제도 수없이 많은 찬송을 남겼습니다. 찬송은 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찬송을 바쁜중에 남길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는"말씀을 읽은 후 찬양시로 그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찬송가에 가장 많은 실려있는 찬송시는 패니 크로스비라는 시각장애인의 찬송들입니다. 무려 8,000곡이상을 남길수 있었던 그녀는 "나의 기도가 나의 찬송'이라고 고백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찬송이 나와요.
찬양하기를 원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생활화 해야 합니다. 예배 때만이 아닌 항상 찬송해야 합니다. 운전할때도 찬송하십시오. 40마일로 달릴때"주 너를 지키리"를 부르면 적합하겠지요. 50마일로 가고 있다면-"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이 적합할 것입니다. 60마일에는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부르십시오. 70마일로 달린다면 제일 적합한 찬송은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이제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가 될 것입니다. 찬양하며 주께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중요한 것은 찬양하며 주께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삶의 모습입니다.
이차대전후 독일의 한 간호원이 혀암으로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도 열심히 하고 성령충만했던 이 여인은 의사가 수술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이 여인은 그동안 말할수 있었던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한 후 조용히 찬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그리고 그녀는 이어 이후 "제가 입으로 찬송 못하지만 전 마음으로 찬송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찬송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찬송하며 사십시다.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