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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
    2002-05-14 15:50:01   read : 1887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출 14:13-14 // 2002/04/28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13-14)

    고달픈 인생, 험한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원한 실패도, 영원한 성공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번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하단 법도 없고,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실패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위대한 성공도 잘못 다루면 실패가 되고, 제아무리 처절한 실패도 잘 다루기만 하면 위대한 성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큰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땅도 작고, 키도 작고, 인구도 작고, 나라도 작고, 경제 규모도 작은 나라안에서 작은 것만 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것을 그리워하면서도 큰 것을 멸시하는 이중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나왔습니다.
    나라 이름도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크다는 「대(大)」자를 나라 이름 앞에 붙였습니다. 한강을 건너가는 다리 이름도 한강대교, 성산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땅덩어리가 비교도 안될 만큼 큰 미국, 러시아, 중국, 브라질,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나라 이름 앞에 크다는 「大」자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뿐입니까? 한강 다리보다 더 큰 다리들이 세계 곳곳에 많습니다만 역시 「대」자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런가하면 큰 나라나 큰 것을 모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중국사람은 뙤놈, 짱꼴라, 미국사람은 양코배기, 흑인은 검둥이, 러시아사람은 오랑케, 로스케라고 불렀습니다. 키 큰 사람은 키 크고 속없다, 키만 멀대처럼 크다는 등 꼬집고 헐뜯었습니다. 「재벌」하면 마치 모두가 협잡이나 사기로 돈을 벌고 성공을 한 것처럼 여기는가 하면 「대형교회」하면 마치 부패의 온상인 것처럼 공격하고 매도하는 습성이 우리들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우린 여기서 큰 것을 공격하면 그 사람은 결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성공은 비난하면 그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바로 믿고,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들의 행위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은 일평생 성공적 신앙생활이나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적 신앙생활,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 위해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셨고,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요즘 모 신학대학 교수가 예수는 하나님도 구주도 아니다. 예수는 단순히 사람이었고, 예수 아니어도 구원이 있다는 해괴 망측한 글을 쓰고, 얘기를 해서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구원을 안 믿으면 구원도, 천당도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의 신앙대상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 예수를 사랑하고,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섬기고, 높이고, 자랑해야 신앙이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성공해야 사업도, 인생도, 성공하는 것은 정해진 공식입니다.
    둘째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대화는 모두가 은밀하고, 그윽하고, 긍정적이고, 고백적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코 교회를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않습니다. 민주화 투쟁이 한창일 때, 그리고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이 한창일 때 국내에 머물며 단식투쟁하고, 감옥에 갇히면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미국으로 건너가 머물면서 군사정권을 돕지 말라, 미군을 철수시키라며 떠들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고통받고 압제받는 사람들이 훨씬 더 훌륭한 투사들이었습니다.
    자기나라를 비하하고 욕하는 것은 결코 애국적 발상이 아닙니다. 교회를 비난하고 폄하하는 것은 결코 신앙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교회라는 모판에서 신앙이 싹트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교역자와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제 아버님은 소시민중의 소시민이셨습니다. 제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겨 놓으신 것은 과부 한 사람, 철없는 외아들, 가난, 그리고 평소 보시던 책 한 권뿐이었습니다. 양복 한번 입어보지 못하셨고, 구두도 신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자식된 입장에서 그런 정도의 아버지라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아버지를 단 한번도 "내 아버지가 아니다"라든지, "있으나마나한 아버지"라든지,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라든지 하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미남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셨던 아버님을 저는 지금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없이 내가 어떻게 태어납니까? 어머니 없이 내가 어떻게 존재합니까?
    교역자가 위대한 인물이어야 존경할 수 있다든지, 특성이 있어 따른다는 것은 큰 문제가 못됩니다. 내 영혼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따르고, 협력할 때 내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있는 우상을 섬기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황금덩이를 모아 우상을 만들고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사이가 나빴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들은 광야를 40년 동안이나 방황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숱한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그런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긴 했지만 바로 왕의 군대가 추격작전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대,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 여기서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뒤쫓아오는 바로의 기병대에게 붙잡혀 죽느냐 아니면 일제히 홍해 바다로 뛰어 들어 집단 자살을 하느냐? 그러나 문제는 창에 찔려 죽고 싶지도 않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도 않다는데 있었습니다. 살고 싶은데 살길이 없었습니다.
    여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잘살고 싶은데 잘살 수 없고, 떼돈을 벌어 떵떵거리고 싶은데 돈이 안 벌리고, 잘난척하며 살고 싶은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지도자 인척하고 싶은데 따라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곧 현대인의 홍해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4:10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했다"고 했고, 11절을 보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 보다 애굽에서 애굽사람을 섬기는 쪽이 나을 뻔했다"며 소리 높여 원망했습니다. 어이없고 기가 막힐 일은 기적을 보고도 기적을 믿지 못하고, 사랑을 체험했으면서도 원망하는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우린 여기서 모세의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보지 못하리라"고 했고, 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 있으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렵고 겁나면 안정감을 잃고 서성거리거나 당황해 합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의 뜻은 겁내거나 당황하지 말고 하던 일을 흔연스럽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서고 설치면 하나님은 잠잠하시고, 내가 덤비고 좌지우지하면 하나님은 침묵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이사야 43:5을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했고, 요14:1에서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5:7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나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됩니다. 막을 필요도 없고, 반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막아서고 반대하면 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맙니다.
    둘째, 구원을 보라.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영혼도 구원받고, 육체도 구원받고, 환경도 구원받는 것을 전인 구원이라고 합니다. 사람 몸의 신경조직은 크게 두 가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체신경이 있고,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자율 신경이 있습니다. 체온, 맥박, 심장박동, 소화기 운동, 혈압, 뇌파 등은 내 마음대로 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팔을 위로 올려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팔을 위로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맥박 빨리 뛰게 해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갑자기 맥박이 빨리 뛰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 구조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몸인데 왜 마음대로 못합니까? 내 몸도 매 맘대로 못하는데 다른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무슨 능력으로 영혼도 구원하고, 육체도 구원하고, 거기다 환경까지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의 기병대, 절박한 위기 앞에서 모세가 본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봅시다.
    셋째,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창도, 활도, 칼도 없지만 하나님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며, 구원이시며, 반석이시며, 요새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누구도,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옛날 전쟁은 몸으로 하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성을 쌓아 올려 적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밖 주변은 큰 강을 파서 물이 흐르게 해 적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것으론 안됩니다. 전투기로 하늘에서 쏘아대고 터트립니다. 미사일을 반사하고 핵폭탄을 떨어뜨립니다. 50미터 지하 벙커도 뚫고 들어가는 폭탄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힘에 견줄 수는 없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나약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고 해서 힘없는 예수로 보았다간 큰 일 납니다. 요한복음 16:33에서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승리하신 하나님, 싸워 이기시는 주님,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높이고 사랑하고 증거합시다.
    날마다 영원히 주를 높이고 찬양합시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왕이신 나의 예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왕이신 나의 성령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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