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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002-05-03 17:52:40   read : 143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계시록 1:4-7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4절에서 7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오늘의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정하였습니다. 1절에 이어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하늘 나라도 보여 주시고, 말세의 되어지는 모든 현상도 보여주시는 계시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계시의 주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 자신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즉 예수님이 계시의 객체라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는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예수님 자신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계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가려져 있어서 정체를 잘 모르던 것을 열어서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따라 성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계시해 주고 있는지를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복의 근원 예수 (4-5중)
    이 말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예수는 복의 근원이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국군이 창설된 후에 국군 안에 군목 제도가 생기고 초대 군종감을 지낸 분이 김형도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이 자기 가문의 이야기와 자기 이야기를 써서 '복의 근원'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잠깐 소개해 드리면 김형도 목사님의 아버지는 전혀 예수를 모르던 사람입니다. 항상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돈은 많이 모아서 부자로 살았습니다. 이 아버지가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후에는 첩 생활을 전부 청산하고, 술을 끊고 재미 누리던 잡기를 전부 정리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중에 이 분이 자기 동네에 교회를 세우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다섯인데 다 장로가 되고 자기 혼자만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가정은 예수 믿고 이렇게 축복을 받았다. 예수 믿고 보니 예수가 복의 근원이더라'는 내용이 그 책에 쓰여져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라고 하는 장수를 전쟁에 내 보내서 죽이지 않았습니까? 우리아는 본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헷족속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충성해서 장군까지 되었는데 그의 아내가 너무 예쁘니까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 괘씸한지라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호되게 책망을 하십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 자리에 엎드려서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자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다윗이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단 선지자 앞에서 통회하고 자복을 합니까? 저 같으면 '방금 뭐라고 그랬어! 한번 더 말 해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떨고 있을 것 아닙니까? 빨리 나가! 그리고 내쫓은 뒤 나 혼자 골방에 들어가서 '주여 죽을죄로 잘 못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 위신도 서고 회개는 회개대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그런 묘한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해 보니 다윗이 옳고 참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개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체면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가 회개하면서 기록해 놓은 시편이 51편입니다. 시편 51편을 보면 통회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왕의 자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엄청난 부귀영화를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말 역시 한마디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건강장수를 위해서 한마디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오직 한마디 '나에게서 주의 성신을 거두어 가지 마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거두어 가시면 자기보다 먼저 왕이 되었다가 버림받은 사울 왕의 신세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시면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몇 일을 가며, 부귀영화가 몇 일을 가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나에게는 이런 것들이 복이 아니라 정녕 하나님의 신이 복입니다. 성령만은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그의 죄를 깨끗이 용서하시고 왕통을 그대로 이어주셨습니다. 그 왕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다윗은 성령이 복의 근원이라고 믿었습니다. 다른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다는 자세였습니다.
    시편 16편 2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복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예수님만이 복의 근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4절에서 5절 중반절을 보면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예수님 즉 영원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즉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는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 천상 천하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에게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예수님에게서 우리가 은혜와 평안함을 얻고, 그 모든 근원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이라는 복을 손으로 다 꼽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는 사람에게서는 은혜라는 것이 최고의 복이 아닙니까? 은혜 없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해 보십시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까닭에 은혜는 최고의 복입니다. 동시에 이 땅 위의 평안과 하늘의 영원한 평안이 모든 축복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전부 합쳐 놓은 것이 은혜와 평강입니다. 물론 은혜라는 말은 헬라 사람들의 인사말이고, 평강은 히브리 사람들의 인사말이지만 이것이 인사말로만 끝나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인사의 말을 빌어 우리들에게 축복하는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천상천하의 모든 복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의 근원입니다. 예수님 없이 다른 것들을 다 가졌다 한들 무엇합니까? 못 가졌으면 또 어떻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복입니다.
    어떤 집에 부부가 살면서 나이가 점점 들어갑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가 들었는지라 장가를 보냈습니다. 장가를 보낸 이 아들이 새로 들어온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손자도 보고 손녀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중에 고부간의 갈등이 자꾸 심해집니다. 갈등이 계속 심해지자 며느리를 내 보내야 되겠다 싶어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너는 어머니를 택할 것이냐? 아내를 택할 것이냐?"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욱박지릅니다.
    예수 믿는 시어머니는 이런 소리를 하면 안됩니다. 장가가기 전의 아들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 이상 더 가까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1촌 사이입니다. 그 아들이 장가를 가서 아내를 맞이하게 되면 부부사이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보다 더 가까운 여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벌어오는 돈을 총각이었을 때는 어머니가 받아서 생활비로 썼지만 이제는 며느리를 맞이했으면 더 가까운 여자가 생겼으므로 남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남의 남편이 벌어온 돈을 왜 시어머니가 가로채고 살겠다, 못살겠다고 하십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장가를 보냈으면 그 날부터 아들이 벌어오는 것은 며느리의 것입니다. 손대지 마십시오.
    이쯤 되자 착한 아들은 어쩔 수가 없이 "나는 어머니가 좋습니다. 어머니를 택합니다"라고 합니다. 아들이 그러면 안됩니다. 결국 어머니가 "이혼하자"고 합니다. 이혼하기로 하고 이혼잔치를 합니다. 그냥 보내도 괴로운데 이혼 잔치를 하고 내보낸다 하니 며느리로서는 죽을 맛입니다. 잔치를 하기 전에 시아버지가 자기 가족들을 따로 모아놓고 의논을 하여 "며느리가 그 동안 수고했으니 한가지 요구만은 들어주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달라고 하면 주고 위자료를 두둑이 달라고 하면 통장을 만들어서 주고 아들 딸들을 기르겠다고 하면 아들 딸을 주고 무엇이든지 하나만은 소원을 들어주자"라고 제안하여 결정을 했습니다. 잔치상에 며느리를 불러 놓은 다음에 시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네 소원을 한가지만 들어 주겠으니 말해 보라 집을 갖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위자료를 요구하겠느냐? 요구하면 그대로 줄 것이고 아들 딸을 달라고 하면 보내줄 것이고 다른 것을 요구하면 들어 줄테이니 꼭 한가지만 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며느리가 가만히 생각하더니 "한가지 요구가 있습니다. 저기에 있는 저 남편을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요구를 들어준다고 했으니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남편을 가리키면서 저 남자를 나에게 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이혼을 못하고 꼼짝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이 시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살림을 따로 내 주었습니다. 진작 살림을 따로 내 줄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아들이 장가를 가면 원하는 대로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따로 나가도 좋습니다. 부모끼리 둘이서 살고 아들 며느리가 잘 살면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그러나 나이 많은 부모는 외롭습니다. 자주 찾아뵈어야 하고 생활비도 책임을 져주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큰집이 복입니까? 남편 없는 집이 무슨 복이겠습니까? 위자료를 좀 받았다고 해서 복입니까? 아들 딸이 귀하지만 아들 딸이 남편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아들 딸은 아들 딸이지 절대 남편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 없이 세상 것을 다 가진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 세상의 것이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복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복중의 복 인줄 믿고 항상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해방자 예수 (5하-)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귀신들이 항복하고 쫓겨나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예수는 귀신 왕이 들렸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알세불을 지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서 "강한 자의 집에 가서 세간을 빼내려면 보다 더 강한 자가 그 강한 자를 결박하고야 세간을 빼내지 않느냐?" 고 대답하셨습니다. 깊은 뜻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강한 자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세불이 인간보다 강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 보다 더 강한 분입니다. 마귀를 결박하고 그 앞에서 도구노릇을 하고 종노릇하는 인간들을 전부 빼내어 자유함과 해방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강한 자는 마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귀라는 놈은 우리의 죄를 올가미로 삼아서 우리를 종으로 삼아 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 마귀의 종노릇을 하던 인간입니다.
    이사야서 59장 1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불러도 왜 하나님이 너희를 돕지 아니하고 못들은 척 하고 계신 줄 아느냐? 그것은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죄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어졌기 때문이다"라는 뜻으로 말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은 완전히 단절이 되었습니다. 죄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죄 없는 사람은 나와 보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악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고 죄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자유, 질병에서의 자유 즉 건강 이런 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죄에서의 자유와 해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자유와 해방은 예수님만이 하신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는 방법이 그의 피입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피를 다 쏟지 않습니까? 달리 말씀드리면 생명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내 놓고 죄에서 우리를 끄집어 내사 해방과 자유함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종노릇하고 있는 죄 또는 나를 노예로 부리고 있는 죄는 나 스스로 해결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로 있을 때 우리가 해결을 못했습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보다 더 강한 연합군이 일본을 처 부쉬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지 않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하셨지만 연합군을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해결해 주실 때 말 한마디로 쉽게 했느냐 하는 말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즉 "그의 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을 때 죄를 전부 토설하지 않습니까? 나의 현재의 죄, 과거의 죄, 미래의 죄까지 전부 예수님은 그 죄를 몽땅 자기 등에 걸머지고 나 대신 죽으러 가십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 세상 죄입니까? 나의 죄입니다. 무엇 하러 가십니까? 저주받고 끌려가서 나중에는 십자가에 죽으러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 흘리심은 나의 죄를 해결하고 나의 받을 저주, 내가 당해야 할 죽음을 대신 당하시고 죄에서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경제적인, 정치적인 자유보다 더 귀한 죄에서 해방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구원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아닙니다. 공자가 아닙니다. 모하멧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해방과 자유함을 주는 분이라고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루터는 '우리의 죄는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을 보면 '예수는 우리의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죄인이 되어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죄에서 진정으로 우리를 단번에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내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벌써 그것은 예수님이 해결하셨기 까닭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귀한 복음입니까? 이런 복음을 어디에 가서 들어 보겠습니까? 이것이 진짜 복음이 아닙니까? 해방자 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영광이요, 축복인줄 알아서 항상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재림 주 예수 (6-7)
    하나님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항상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동시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기 까닭에 즉 시간 속에 살기 까닭에 구원도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동시적입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과거에 받은 구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을 보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하시고'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김창인 목사가 어머니 태 중에 있을 때 '너는 내 아들이라'고 선택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과거에 내가 받은 구원입니다.
    둘째는 현재 받고 있는 구원입니다. 내가 태어나서 부름을 받아 주 앞에 나오면 하나님이 자기의 영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영을 받아야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혼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을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받고 있는 구원입니다.
    셋째는 미래에 받을 구원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아직도 구원받은 육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월이 흘러서 늙어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또 이가 빠지고 귀가 둔하여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치매에 걸린 듯 헛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은 육신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추우면 감기에 걸리고 걸핏하면 병들어 입원해서 수술을 합니다. 구원 얻은 몸이 아닙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를 끼치면 죽이고 싶도록 미워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기와 질투가 말이 아닙니다. 그런 몸을 가지고 하늘 나라에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죽어 무덤에 장사됩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공중으로 재림하시는 날 죽었던 우리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다시 살아날 때에는 육신 즉 몸으로 살아나지만 다시 죽는 몸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몸이 아닙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몸입니다. 절대로 나이를 먹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똑 같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몸이 아닙니까? 그런 몸으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받을 구원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5절을 보면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주겠다고 구원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에 받을 구원 아닙니까? 주의 재림으로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으로만 이렇게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에 재림은 복음 중에 복음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에서 7절을 보면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데 천하만민이 다 알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도적같이 온다고 하니까 누구도 모르게 온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식교에서는 벌써 예수님이 재림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천하만민이 다 본다고 본문이 말하였습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언제 오실런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에는 공개적으로 오십니다. 죽었던 몸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우리는 변화되어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구원이 여기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복된 복음입니까? 이쯤 되고 보면 주님의 재림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고 성경의 모든 진리를 믿는데 우리가 믿는 교리가 수 없이 많습니다. 그것을 크게 셋으로 나눈 것을 기독교의 삼대 교리라고 합니다. 세 가지 큰 교리 또는 기독교의 삼덕이라고도 합니다. 첫째는 속죄입니다. 둘째를 부활입니다. 셋째는 재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재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교리를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재림의 교리가 복음이요, 예수님 재림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재림의 사건이 이렇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평생에 예수님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림이 그렇게 복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는 첫째 예수는 복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복의 근원입니다. 예수님 없는 세상 것은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를 주시는 해방 자이십니다. 물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자유와 해방보다 더 귀한 죄에서 해방을 시켜 주십니다. 셋째 재림 주되신 예수입니다.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을 완성시키시고 자신이 예비해 놓으신 그 하늘나라로 우리를 영접해 주실 재림 주이십니다. 이상과 같이 계시된 예수님을 만났고 영접했고 믿는 여러분들은 가장 복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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