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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을 갖고 삽시다
    2002-05-03 17:43:02   read : 135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21:1-4



    오늘은 시편 21편 1절에서 4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즐거움을 갖고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이 즐거움으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먹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주먹이 곧 법이요, 주먹이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먹으로 사람을 치고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머리 하나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머리가 비상합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나만 개발을 해도 수억원이 굴러 들어옵니다. 또한 도장 하나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장 하나 가지고 사는 사람은 빙글빙글 도는 의자에 앉아서 도장만 찍어주고 먹고 살아갑니다. 도장 하나 가지고 큰소리 치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손재간이 좋아서 기술 하나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 손재간으로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은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것저것 가지고 살면 좋겠지만 그것은 가지면 좋고 못 가지더라도 다윗과 같은 즐거움만 가지고 살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즐거움을 갖고 삽시다'라고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다윗이 즐거움을 갖게 된 이유를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응답의 즐거움 (1-2)
    본문으로 돌아가서 1절에서 2절을 보면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나이 40에 늦장가를 들었습니다. 늦 결혼을 하였기에 자식을 빨리 낳았으면 좋겠는데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안에 문제를 주실 때는 기도하라는 뜻이요, 반드시 기도하면 응답은 준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문제를 주실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해답을 준비 해 놓고 계신다는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간절한 소원을 주기도 하십니다. 간절한 소원을 주시면 그 소원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시고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삭은 20년이 지났지만 아이를 낳지 못할 때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20년 만에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를 합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응답의 즐거움입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기도할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사람들에게 특별히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이것이 문제입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으면 '이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잉태된 리브가의 태중에서 쌍둥이가 자꾸 싸움을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남편은 기도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하나님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 지금 두 아들 즉두 민족이 네 태중에서 싸우고 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역시 응답의 즐거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장자의 축복을 결단코 맏아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이 받는 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장자의 축복을 작은아들 야곱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중단한 남편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기도하다가 쉬지 말아야 합니다. 이삭의 아들들은 자랐고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져서 세상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맏아들 에서에게 "빨리 나가 사냥을 하여 맛있는 별미를 해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내가 실컷 먹고 너에게 축복을 하겠노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에서가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 소리를 아내 되는 리브가가 부엌에서 듣고는 '이것이 아닌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빨리 양을 잡고 남편의 구미에 맞는 좋은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형 에서는 털이 아주 많은 사람이요, 야곱은 매끈 매끈한 사람인지라 양의 가죽을 뒤집어 씌워 아버지에게 들여보냈습니다. 들어간 야곱을 보고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냥을 해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순적히 만나게 해 주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떻게 작은아들 아곱의 음성이냐? 이리로 가까이 오너라 한번 확인해 보자"하고 만져 보았습니다. 양털을 만져 보니까 형 에서가 얼마나 털이 많은지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에서가 맞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모습은 에서요, 음성은 야곱이지만 에서가 틀림없겠지"하고 가지고 들어간 음식을 실컷 먹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다 해주었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때 양의 가죽을 쓰고 받았다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여하간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기도 응답해 주신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속여서 빼앗았다'라고 절대로 그러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사람이 그러는 것입니다. 혹시 축복해 주는 것은 아버지가 속아서 해 줄지라도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왜 속습니까? 하나님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시기로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형이 돌아와서 몸부림을 치나 이미 장자의 축복은 야곱에게로 돌아간 뒤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한 후 잉태하니까 기도를 중단했지만 어머니는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누가 장자의 축복을 받을지 다 응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기도응답의 즐거움입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 기도했더니 아이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까? '장자의 축복은 어린 자가 받는다'라는 사실을 응답으로 받고 있었으니 응답의 즐거움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문제가 있거들랑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거들랑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시는 줄로 알고 기도하는 때라 명심하시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할 때 응답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그 마음에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에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다윗에게 어떤 소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그 소원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더니 입술에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고 응답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응답을 받았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인하여 내가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인하여 내가 즐거워하리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소원을 주실 때는 기도하라는 뜻이요,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항상 응답의 즐거움을 생활 속에 체험하며 누리며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25사변 때 제가 처음에는 전라도 군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다시 목포로 갔습니다. 목포에서 또 배를 타고 4시간을 들어갔습니다. 도초도라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잘 못 갔습니다. 그 때 제가 하의도로 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서 잘 받들어 줬더면 오늘날 한자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의도로 가지 왜 도초도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도초도에 가서 수항리에 있는 도초중앙교회에 다녔습니다. 얼마나 옷이 남루합니까? 주일 학교 선생이 그렇게 하고 싶은데 하라는 말을 해야 하지 않았습니까? 나오면 나오나 보다 안 나오면 안나오다 보다하고 거들떠보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제가 전쟁통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기 전에 교회학교 선생노릇 꼭 하고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얼마 살다가 부산으로 갔습니다. 부산에 가보니 피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두 판잣집을 짓고 사는데 그 많은 피난민 동네에는 예배당도 크게 짓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삼성교회라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몇 주일 나갔더니 "김선생, 교회학교 선생 좀 하시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안하겠다고 할리가 있습니까? 기쁨으로 대답하고 몇 주일 동안을 얼마나 선생노릇을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나에게 기도 응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응답의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몇 주일 지나고 난 뒤 지금까지 청년회가 없는지라 청년회를 조직한다고 청년들은 다 남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많이 남았습니다. 처음 조직하는 조직 총회이기에 회장, 부회창, 서기, 부서기, 회계, 부회계, 총무, 부총무 와 각 부서의 부장과 차장을 선출했습니다. 그 많은 임역원을 다 선출 한 다음 소개를 하기 위해서 "뽑힌 분들 다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뽑힌 임원들이 나가는데 여자들은 워낙 많아서 뽑혀 나가지 못한 아가씨들도 많았습니다. 남자 청년은 별로 많지 않기에 다 뽑혀 나가고 남자 청년은 혼자만 남아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머리도 들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개 가지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저였습니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그 때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여자 청년들이 '아이고 저 병신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제가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죽어도 이놈의 교회는 나오지 않는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교회가 누구의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왜 이 놈의 교회, 저 놈의 교회라고 하십니까? 아무리 기분 나빠도 이 놈의 교회, 저 놈의 교회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로는 '죽어도 이 교회 청년회 회장을 하고야 죽는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 생각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밤에도 나가 기도하고 새벽에도 나가 "하나님 저 이 전쟁통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청년회 회장 꼭 하고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시간마다 기도했습니다. 소원이 청년회 회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회 모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나갔습니다. '일하러 나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나갔습니다. '전도하러 나오라, 기도하러 나오라'하면 제일 먼저 나갔습니다. 그리고 헤어져 돌아 갈 때는 다 정리하고 제일 나중에 갔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되니까 '너 회장하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3년 만에 기도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 청년회 회장을 했습니다. 회장을 하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고 했으니 이제 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 보다 더 큰 소원이 있고 제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목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질부사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까? 저는 일구월심 목사가 된다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또 제가 이 어려운 때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꼭 목사가 되고 죽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그래도 목사가 되고 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고학하며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이 목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기도응답의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간절한 소원을 먼저 주셨고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응답의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접의 즐거움 (3-)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곳에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작은아들은 살아생전에 유산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작은아들에게 엄청난 돈을 주지 않았습니까? 돈이 행복하게 해 줄 줄 알았으나 착각이었습니다. 또 행복이 멀리 있는 줄 알고 작은아들은 멀리 외국에 갑니다. 집안에 없는 행복은 멀리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많은 돈을 전부 창녀와 더불어 탕진해 버립니다. 향락이 행복은 아니었습니다. 그 돈이 몇 해나 가겠습니까?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갔습니다. 이제는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돌아갈 곳은 아버지의 집 밖에 없다'생각하고 완전히 실패하므로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때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면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너 같은 것은 내 아들이 아니다'하고 몽둥이로 내 쫓으면 쫓겨나야지 별 재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떠나간 그 날부터 '오늘이나 올까 내일이나 올까'하면서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좋은 옷감이 생기면 옷을 만들어 놓고, 돌아오면 끼워줄 가락지와 신발을 다 준비 해 놓고, 송아지도 잔치를 하기 위해 길러 놓았습니다. 오래간 만에 실패한 아들, 거지가 된 아들이 돌아옵니다. 아들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따져서 성공한 아들만 영접했다면 그 아들은 돌아온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즉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아들 자체를 사랑한 것입니다. 얼마나 성대하게 영접을 했습니까? '빨리 옷을 가져다 입혀 주어라, 가락지를 끼워주어라, 신발을 신겨 주어라, 네가 왜 우리 집의 머슴이냐? 우리 집의 주인이요. 당당히 내 아들이라. 잔치하자. 먹고 마시자'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즐겨 영접을 해 주었습니다. 이 아들에게 있어서 생각 밖의 아버지의 영접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요, 복된 일입니까? 이 탕자처럼 지나간 한 주일 동안 죄 지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한 주일 동안 실패와 망한 일들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실패와 망한 것, 심지어 죄지은 일까지도 따지지 않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앞에 나아오면 주님께서 영접해 주시고 부족한 것은 입혀 주시고, 끼워주시고, 신겨 주시고, 또 채워주십니다. 그 위에 잔치까지 베풀어 영접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영접이 즐거움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을 보면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름다운 복을 안겨주면서 영접해 주고 정금 면류관까지 씌워 주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가서 그 아들들 중에 왕을 택해 놓았으니 기름을 부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새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아들을 불러 모이게 했습니다. 일곱 명의 아들이 차례로 지나가는데 얼마나 기골이 장대하고 늠름한지 왕이 아니겠나 싶은데도 하나님은 "계속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일곱 명의 아들을 다 지나보낸 후에 아버지 이새에게 "아들이 더 이상 없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새는 "있기는 있는데 저 들에 나가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별로 시답지 않아서 부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빨리 불러오라 했더니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아들이라 기름 부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이 사정을 알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내 부모는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이 나를 영접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다윗을 다른 아들 축에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들을 다 부를 때 이 아들만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섭섭하고 기가 막혔겠습니까? 사람은 안 불러 줘도, 아버지는 영접을 안해도 하나님이 영접하사 금면류관을 씌워 왕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내 아버지는 거절했으나 하나님이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접하는 은혜입니다. 사람의 영접을 받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접을 못 받아도 하나님의 영접을 받으시면 됩니다. 영접의 즐거움입니다.
    일본 삿뽀르라고 하는 곳에 고또스키라고 하는 기다이찌조 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외동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나오미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도시의 총각들이 줄줄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주먹을 쓰는 사나이를 만나서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교인들의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도 알고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말려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을 교인들은 왜 자꾸 나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당신의 딸인 나만 귀하고 다른 집 아들은 귀하지 않냐"고 하면서 대들기도 합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도쿄로 도망을 갔습니다. 3년 동안을 둘이 숨어서 지내는데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쥐어뜯고 나중에는 담배 재떨이를 집어 던져서 이마에 깊은 상처가 납니다. 그러는 것이 하루 이틀이어야 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구나, 경험 있는 분들의 말을 듣는 것인데, 그러나 염치 불구하고 돌아가자"하여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딸이 집을 나가 있는 동안 아버지는 밤이면 밤마다 잠을 자는 일이 없습니다. 현관 문 옆에 있는 서재에 항상 불을 켜 두고 '내가 자지 않는다'는 것을 돌아올 딸에게 보여줍니다. '너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현관문을 잠가 두면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할 성질의 딸이 아닌 줄을 알기에 항상 현관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나오미는 낮에 들어올 체면이 아닌지라 한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문소리가 나니까 자기 딸이 오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달려나옵니다. "나오미야 이제 오느냐? 나는 네가 나간 그 날부터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너를 그렇게 기다렸노라"고 하면서 영접해 주었습니다. 모든 뒷바라지를 다 해주고 그 나오미는 평생 자선사업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심정이 그런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살이에 실패해도 좋습니다. 망하셔도 좋습니다. 심지어 죄를 지어도 좋습니다. 여러분 내 모습 이대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영접하사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영접의 즐거움입니다.

    셋째, 영생의 즐거움 (4-)
    본문으로 돌아가서 4절을 보면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이제는 죽었구나 싶을 때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살려 달라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런 일이 다윗에게 평생에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블레셋 군대들과 싸울 때였습니다. 블레셋의 장군이 이스비브놉입니다. 다윗과 더불어 일대 일로 싸우는데 나이는 못 속이는지라 다윗이 피곤해서 칼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이스비브놉에게 피할 길 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요압 대장의 동생 아비새가 비호같이 달려들어갑니다. 아비새 장군이 적장을 그 자리에서 보기 좋게 죽이고 다윗을 구출했습니다. "대왕이여, 이제는 절대 전쟁에 나오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 죽어도 저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는 왕입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죽을 뻔했던 다윗을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살려 주셨습니다. 얼마나 그 순간에 생병을 구하는 기도가 간절했겠습니까? 또 한번은 다윗이 병들어서 '나는 이제 죽어서 무덤에 묻히는구나'할 때 음부에서 끌어내사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시편 30편은 다윗이 중병에 죽어 죽어 할 때 지은 시편입니다. 자기는 무덤 문에까지 내려갔다 돌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무덤 문에서 끄집어내어 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생명을 구했더니 생명을 주는 것은 고사하고 영영한 장수를 주셨습니다. 영영한 장수가 영생이 아닙니까?
    제가 결혼을 몹시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결혼 할 때에도 결핵 때문에 피를 많이 토하고 소화불량으로 밥 한 수저에 100번씩 씹어 먹었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목사 안수 받은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첫 딸을 낳았을 때 잠을 자다 보면 식은땀을 흥건히 흘리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놀라 깨곤 하였습니다. 아내는 피곤해서 고이 잠들고 딸은 자다가 젖을 빨고 또 자곤 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눈물이 비 오듯합니다. 내가 공연히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가 과부를 만드는가? 저 어린 딸은 과부의 딸이 되겠으니 얼마나 불쌍한가? 울고 또 울어도 시원함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왕에 목사를 시켜 주셨으면 목사 노릇을 좀 하고 죽게 해 주옵소서"이것이 나의 소원이요, 밤을 새워도 그 기도 소리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하나님께서 크게 은혜를 주셨고 역사 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을 구했더니 아울러 장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영생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좋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은 영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영생을 믿기 까닭에 영생의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영생의 소망 때문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은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첫째 기도 응답의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소원을 주셨고 그 소원대로 기도했더니 응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접의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부모는 그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그를 영접하여 왕관을 씌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생명을 구했더니 그 이상의 장수와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다윗의 즐거움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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