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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영광
    2002-05-03 17:37:20   read : 1348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로마서 11:13-18



    오늘은 로마서 11장 13절에서 18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다 같이 영광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취득하거나 혹은 챔피언이 된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영광이 됩니다.
    오래 전에 홍수환이라는 권투선수가 있었습니다. 챔피언 도전 시합에서 자기가 몇 번 다운을 당해서 게임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일어나서 상대방을 쳤는데 상대방이 KO 당하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챔피언 벨트를 받아 차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습니다. 챔피언을 어떻게 먹습니까? 문장은 맞지 않아도 뜻은 알아듣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하지 않고 "대한 국민 만세"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챔피언이 되니까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그런가하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고, 남이 만들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서 특허를 얻으면 영광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전혀 만들지 못하게 됩니다. 국내 특허뿐만 아니라 국제 특허를 받아 내면 세계적으로 그것은 그 사람 이외에는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을 다른 곳에서 만들려면 엄청난 돈을 주고 사가야 합니다. 이렇듯 특허를 획득하는 일이 영광입니다.
    요즘 취직이 잘 안되니까 국가고시를 얼마나 많이 응시합니까?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공무원 시험 등등 그런가하면 우리나라 안에서 치러지는 시험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시험을 칩니다. 국제 변호사와 국제 회계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시험에 합격이 되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이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은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첩을 많이 두어야 자기의 신분을 과시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얼마나 창피하고 못된 일입니까? 그런데 그 때 당시는 그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믿는 사람은 절대 영광으로 여길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는 말씀을 따라 믿는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일꾼의 영광 (13-)
    일꾼은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주인을 잘 못 만나면 멸시 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인을 잘 만나면 아들처럼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입니까? 그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석가모니의 일꾼, 공자의 일꾼이 되지 않은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다가 시내산 밑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올리셨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가서 모세는 40일 40야를 금식합니다. 그리고 시내산을 내려올 때 돌판 두개 즉 돌비를 받아 가지고 내려옵니다. 한 돌비에는 십계명 중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 다른 돌비에는 5계명에서 10계명까지가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를 백성들이 바라보지를 못합니다. 모세 자신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모세의 얼굴에서 굉장한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을 덮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자고 났더니 광채가 없어졌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율법의 일꾼도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일꾼으로 모세가 율법을 받아 백성에게 전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율법을 나쁜 것으로 혹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율법주의가 나쁜 것이지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쁜 것을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율법은 먼저 죄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역활을 합니다. '예컨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으나 율법에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했다면 내가 탐심을 죄인줄 몰랐으리라'는 것이 성경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앞집 여자의 몸매가 늘씬합니다. 자기 마누라보다 너무 좋게 여겨지니까 마누라는 꼴도 보기 싫어지고 저 여자와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탐내는 것이지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해야 되지만 탐내는 것은 절대 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그것을 가르쳐 주니까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이렇게 볼 때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율법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전부 죄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전에 나는 죄가 없는 줄 알고 내가 살아 야단했는데 나중에 전부 깨닫고 보니까 나는 죽을 놈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율법선생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고는 유치원 보모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길을 건너듯이 우리의 손을 잡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예수님께 인도해 놓고 자기는 빠져나갑니다. 율법이 할 일은 거기에서 끝이 납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은 되지만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즉 몽학 선생은 여기까지 인도하고 말고 그 다음에는 내가 '주님 믿습니다'라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되면 율법의 일꾼도 영광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복음의 일꾼, 세계적인 선교사명을 띤 이방인의 사도는 얼마나 영광이냐 하고 본문을 통해서 바울 사도는 고백을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3절을 보면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지금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하고 있는데 로마인들은 이방 사람입니다. 이방인인 너희에게 내가 말하는데 이방인인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가 사도가 된 것 즉 선교사가 되었다는 그 직분이 나에게는 그렇게 영광스럽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 돈이 없었으면 어떻게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 유학을 했겠습니까? 나중에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다음에 그 돈은 가지고 싶은 사람들 다 가지라 하고 유산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워 대제사장인 산헤드린 공회 의장의 오른팔처럼 신임을 받기 까닭에 권세 위임장을 막 써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출세길이 환히 보장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다음에는 너희들이 다 해 먹으라 하고 그것까지도 포기를 합니다. 바울사도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바다의 위험, 산의 위험, 도적의 위험 그런가하면 가는 곳마다 매 맞기가 일수였고 굶기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어디에서 누가 재워줍니까? 그래서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분 때문에 그런 것도 다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꾼 된 것 그 자체가 그렇게 영광스럽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목사님 그 분이야 선교사니까 그렇지요? 목사님이야 당회장 이기에 영광스럽다 할런지 모르겠지만 우리야 뭘 그럽니까?" 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다음 이야기를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달란트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왔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큰 일이 아닙니까? 두 달란트를 맡았던 종이 두 달란트를 남긴 것 보다 큰일 아닙니까? 하실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다섯 달란트 맡았던 종에게나 두 달란트 맡은 종에게나 똑같이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크고 작은 일일런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다 작은 일이요, 다 똑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하는 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하십니다. 성가대 대장을 보시고도 '작은 일에 충성했다', 성가대 대원의 자리에 앉아도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똑같이 보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바울에게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영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일꾼의 영광입니다.
    젊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학을 하고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단단히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사무실로 갔더니 "내일 시험을 치를 테니 새벽 3시에 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3시에 나갔겠습니까? 나가지 않았겠습니까? 3시에 나갔습니다. 3시에 나갔더니 사무실이 캄캄하고 아무도 없었는데 사무실 문 앞에 "8시까지 기다리십시오"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기다렸겠습니까? 기다리지 않았겠습니까? 보통 사람의 경우 '사람을 무시해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가' 하고 기다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젊은이는 8시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때 시험관이 나오더니 "갔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네요?"하면서 젊은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사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영어를 잘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글을 쓸 줄 아느냐는 질문입니다. "예 쓸 줄 압니다" "그러면 베이커라고 써 보십시오" 그랬더니 BAKER라고 섰습니다. 그랬더니 시험관이 "참 유식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한가지 더 물어 봅시다. 둘에 둘을 더하면 얼마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요즘 유치원에 가도 그런 시험 문제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젊은이는 인상하나 바뀌지 않으면서 "넷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시험을 치던 시험관이 "됐습니다. 합격하셨습니다. 선교사로 언제 언제 파송하겠습니다"하고 선교사 파송위원회에 세가지로 보고를 했습니다. 첫째 이 사람은 정확한 사람입니다. 3시에 정확히 시험장소에 나왔습니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다른 것을 지킵니까? 둘째 인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8시까지 기다리라고 할 경우 나 같으면 그냥 가 버리고 말았을 텐데 그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번째 겸손한 사람입니다. 영어를 잘 하느냐? 둘에다 둘을 더하면 얼마냐?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선교사 선발위원회에서는 좋아하면서 결정했습니다. 그 사람이 선교사로 가서 성공을 했겠습니까? 실패했겠습니까? 이 사람은 선교사를 영광으로 알고 그렇게 준비했기 까닭에 성공했습니다.
    지금 성가대 석에 앉으신 성가대 대원들은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선교사에게 작은 일에 충성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똑 같이 작은 일에 충성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알게 하든지 모르게 하든지 사람이 볼 때에는 크다 혹은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판단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똑같은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여 더욱 칭찬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활의 영광 (14-15)
    본문으로 돌아가서 14절에서 15절을 보면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보냄을 받았지만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을 먼저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선택하는 것은 선택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 백성을 훈련시켜 세계 복음화를 시키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주어서 그 복음을 전세계에 전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선택은 하나의 방편이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이 하나님의 목적인 줄 알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 결과 구원은 우리만 받는 것이요, 선택을 받지 못한 이방인은 구원을 받는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복음을 들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꼴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래서 잠깐 이스라엘 백성을 제쳐놓으십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 바울사도로 하여금 세계 복음화를 시키십니다. 그래서 많은 이방인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지 않습니까?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는데 바울이 속이 터집니다. 이방인들은 저렇게 잘 믿고 구원을 얻는데 내 동족은 어쩌면 저럴까? 싶어서 말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이방인의 교회가 돕기로 하고 헌금을 거두었습니다. 바울이 그 헌금을 가지고 이방인 교회의 대표들 몇 명을 대동하고 예루살렘에 보란듯이 갔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이렇게 구원을 얻고 대표자들이 오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면 자기 동족들이 시기가 나서 "그럼 우리는 더 잘 믿자"라고 하게 되기를 바랬는데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저희를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언제 믿고 주께 돌아오는지 아십니까? 말세가 되면 큰 환난의 때가 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그리스도인데 그것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거부하고 있었구나'하고 철저히 회개를 합니다. 순교도 많이 합니다. 그 이스라엘이 믿지 않는 가운데서 돌아와서 믿고 구원 얻는 것이 꼭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죽었던 그들이 우리들과 함께 다시 부활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택함으로 시작되었던 구원의 역사가 부활로 말미암아 완성되어 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죽었다가 돌아와서 믿고 구원 얻게 되는 것이 우리의 부활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뜻입니다. 그 사람들도 믿고 나중에는 죽습니다. 우리도 믿다가 죽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여 그네들과 함께 구원이 완성되는 부활을 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는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이 죽음이 아니고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었을 때 다 흩어지지 않았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모두 모여들어 교회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주경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부활이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고 부활이 없이 교회는 설명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부활 없이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며, 부활 없이 교회가 어떻게 설명이 됩니까? 부활이 이렇게 중요하고 우리에게는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어도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중에 있어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가르치는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항상 소망 중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셋째, 뿌리의 영광 (16-18)
    본문으로 돌아가 16절에서 18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은 곡식 중에 제일 먼저 익은 곡식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닙니까? 제일 먼저 익은 곡식을 거두어 가루로 만들고 떡을 만들어 제사장에게 가지고 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받아서 떡을 담고 또는 가루를 담은 그릇을 가지고 거제라고 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입니다. 높이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거제입니다. 요제는 옆으로 돌리며 흔드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것이요, 저것도 하나님의 것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뜻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떡덩이가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 거룩해 질 때 제사장에게 주어 먹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먼저 드린 떡덩이가 거룩해졌으니까 그 나머지 모든 곡식도 가루도 떡도 함께 거룩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 거룩해 진 떡 덩이는 누가 먹느냐 하면 농사를 지은 농부가 먹으라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이 거룩한 즉 떡덩이도 거룩하다'는 말씀은 이런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처음 익은 것이 거룩하면 나중에 익은 것도 거룩합니다. 그리고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거룩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뿌리와 처음 익은 곡식이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 뿌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고 생각하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조상이 아닙니까? 그래서 처음 익은 곡식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익은 곡식처럼 거룩한즉 너희도 거룩하고 아브라함이라는 뿌리가 거룩한즉 너희도 거룩하리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아브라함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이 조상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요, 우리의 뿌리입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는 해도 우리의 뿌리는 아닙니다. 우리의 뿌리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뿌리라는 사실이 더 영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을 자랑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자랑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뿌리의 영광입니다.
    텍사스에서 돈 많은 갑부가 죽었습니다. 그 갑부의 아내는 먼저 죽고 딸도 없는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외아들이 30년 전에 집을 나간 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갑부가 그 아들의 이름만 부르다 죽었습니다. 갑부가 죽었으니 그 집을 법적으로 처리해야 되지 않습니까? 집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유서 한 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서가 나오면 그대로 처리하면 되는데 나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가장집물을 모두 경매에 부쳤습니다. 그 집의 좋은 물건이 다 경매되어 나가는데 마지막으로 30년 전에 나간 아들의 사진 틀이 하나 남았습니다. 그 사진틀을 5달러에 경매를 부쳤습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듭니다. 남의 집 아들의 사진 공짜로 준다고 한들 누가 가져가며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럼에도 할머니가 손을 들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30년 전에 집을 나간 아들이 살던 그 집에서 가정 일을 돌보면서 그 아들을 키운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1달러에 사진틀을 사서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사진틀을 보면 유리가 있고 유리 뒤편에 사진이 있고 그 뒤에 판이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뒤에 판을 열어 보니 사진 뒷 부분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이 보였습니다. 주인의 유서였습니다. 그 유서에 뭐라고 써 있을 것 같습니까? '아들의 사진틀을 가진 사람에게 나의 재산의 전부를 주노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갑부가 사랑하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무엇인가 아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재산을 다 주겠다는 뜻의 유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나의 뿌리요, 당신이 없는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고 예수님이 뿌리가 됨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사람에게 왜 축복이 없겠습니까? 이것이 뿌리의 영광입니다.

    결론을 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는 일꾼의 영광이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크다 작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똑 같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똑 같은 영광이 있습니다. 둘째 우리에게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버림받은 것 같아도 반드시 돌아와서 회개하고 구원얻고 부활에 참여하듯이 우리도 죽어 주님이 재림할 때 부활에 참여하여 죽음을 초월하는 세계에서 영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뿌리의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박고 살게 되었으니 '예수 없는 나는 있을 수 없다'라는 사실에 자부심,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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