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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나와 같이 되도록...
    2002-04-24 14:53:51   read : 2064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4.14 // 사도행전 26:24-29

    네로 황제 당시 유대 총독으로 베스도라는 총독이 있었습니다. 그는 벨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부임 3일 후, 가이사랴로부터 예루살렘을 방문, 대제사장과 유대지도자들을 접견합니다. 그 자리에서 유대인들은 베스도에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요청 속에는 바울을 노상에서 살해해 버리려는 음모가 도사려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 돌아온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해 봅니다. 이때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권리를 이용,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고 로마에가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수일 후 대왕 아그립바 2세가 그의 누이 버니게와 함께 베스도 총독을 문안하기 위해 가이사랴를 방문하자 베스도는 이들과 함께 바울의 변론을 듣게 되는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대왕과 총독은 한때 지성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당당한 세도가로 명성을 떨치던 바울이 일개 전도자가 되어 영어의 몸이 되어 송사를 당하고 초라한 재판석에 앉아 심문을 받는 모습을 보며 동정을 합니다. 변론하는 행색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비난합니다.

    이때 바울의 대답이 나처럼 옥에 갇히는 일을 제외하고는 여러분 모두 다 나처럼 되기를 원하오. 나처럼 미친 사람이 되어 보시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입니다.



    I. 자기 행복 선언

    본문의 이 말은 사도바울의 자기 행복선언입니다. 바울의 이 행복선언이 고루거각에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는데에 오늘 그 귀중함이 있습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죄인의 몸으로 이 선언을 했습니다.

    평소 행복을 느끼고 살던 사람도 손에 쇠고랑을 차고서까지 행복에 겨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내 꼴이 이래서야, 설사 내가 행복을 선언한들 누가 내 말을 믿어 주겠는가?" 내적인 갈등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재판정에 서 있습니다. 재판관은 일개 하급판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나도 저 왕처럼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저 왕도 나처럼 되게 해 주소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선언입니까? 바울은 포박된 몸으로 재판하는 왕 앞에 서서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행복감이나 고상한 마음의 평강도 밖으로부터의 자극이 오면 무너지기 쉽상입니다.
    ① 가령 모욕을 당했을 때 그렇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는 주림을 참기 어려울지 모르나 인격을 가진 사람은 모욕을 참기가 어려운 법이지요. "바울아 너의 많은 학문이 너로 미치게 했구나" 바울은 자신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 모욕 앞에서 태연자약하며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② 동정을 받았을 때에도 마음의 평정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묵묵히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던 사람도 애틋한 동정의 말을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바울아 네가 교육계로 나갔더라면 총장은 되었을 테고, 사업을 했더라면 사장 회장은 했을 테고, 정치를 했더라면 로마 총독을 했을 터인데, 어쩌다 이 신세가 되어서 쇠고랑에 묶인 몸이 되었느냐?" 동정 앞에 마음이 약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바울은 불운아로 혹은 박복한 사람으로 동정하는 사람 앞에 "당신들도 나처럼 되라"고 외칩니다. 그 사람들처럼 못된 자신의 신세를 한스러워 하거나 불행해 하기는커녕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자 임을 깨닫고 "당신들도 모두 나와 같이 되라”고 말합니다.

    ③ 사람들은 흔히 권력 앞에 위축을 당하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권력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아그립바 대왕도 베스도 총독도 만장하신 고관 대작 여러분도 모두 나와 같이 되시오" 당당하게 품위 있게 위엄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재판정에 서 있는 지금 바울의 몰골을 상상해 보십시다. 두해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있었으니 얼굴은 창백해 있을 테고 그동안 부실한 음식으로 연명했으니 얼굴엔 영양실조가 완연했을 터이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으니 건강상태가 좋을리 만무했습니다. 의복은 남루했고 형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속인들의 눈으로 보면 쉽게 업신여길만도 했고 쉽게 동정할 만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바울은 "나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복을 받은 행복자다. 나는 복음을 받았고 나는 복음을 전하며 산다. 이것은 금생과 내생에 영광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행복과 영광을 자신만만하게 지금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은 하나님과 누리는 행복으로 만족하니 더 이상 소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제 목회 간증을 듣고는 시민운동가로 알려진 서경석 목사님이 제게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목회를 했다면 류 목사 같은 목회를 했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옹색한 상가 교회당에 있을 때 당시 영락교회 담임 목사였던 임영수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하룻밤 설교를 하시고 차 한잔 나누며 오히려 제 목회가 부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새롭게 목회를 시작한다면 류 목사 같은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씀했습니다.

    서경석 목사님이나 임영수 목사님은 평범한 한 사람 목회자가 아닙니다. 우리시대 예언자 같으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우리교회를 부럽게 생각하신다면 우리교회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한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고 또 한소망교회 목사가 된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람에겐 차원 높은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에 긍지를 느끼며 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수준입니다. 믿음입니다. 인생관입니다. 가치관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타인들을 향하여 당신들도 나처럼 행복하시오. 고백할 수 있습니까?



    II. 나처럼 예수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되시오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선 이 말은 나 바울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 바울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이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요 천직인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회당마다 찾아다니며 박해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 죽이기 위해 다메섹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다가 죽은 천벌 받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셨구나. 이 땅에 와 내 죄를 걸머지고 돌아가셨구나. 그분은 살아나셨구나. 지금도 살아 계시는 구나. 선악간에 우리를 심판하러 오실 심판주가 되시는 구나.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여기서 사도 바울의 인생사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아 하나님을 섬긴다는게 하나님을 핍박하는 일이 되었구나. 저들이 내 형제 자매인줄 알지 못하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었고 채찍질하여 죽였구나. 나는 그분이 내 아버지인줄 알지 못하고 채찍 휘둘러 때린 불효자식이었구나. 나는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내 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죄악 덩어리였구나."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음식 한 톨,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전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외쳤습니다. 핍박자가 변하여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수가 변하여 예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자가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으며 피 흘리는 일을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고난은 그의 행복이었고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알지 못하면 천하의 무식쟁이다. 예수 안에서 거듭나지 못하면 죽은 시체나 다름없다. 성령 받지 못하면 누구나 사단의 노예요 지옥의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러니 그는 담대히 외칠 수가 있었습니다. "왕이여 당신도 나처럼 예수 믿고 변화 받아 새사람이 되시오. 총독이여 당신도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시오.” 당당히 외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개의치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를 심문하는 아그립바 대왕의 영혼의 비참함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간 셀 리더십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한 낯선 얼굴이 부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행복동산에 참여하는 새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이분이 설거지를 신나게 하며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고. 이렇게 예수 믿으면 행복하고 좋은데. 이렇게 기쁜 소식이 가득한데. 이렇게 신나는 일이 많은데. 못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예수 믿고 지금까지 자기에게는 아무도 예수 믿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이제는 자기에게 예수 믿고 교회 가자고 인도해 준 집사님이 한없이 고맙다고.” 하더랍니다.

    예수 믿는 행복을 아는 사람들의 외침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시오!



    III. 나처럼 힘의 근원을 알고 사시오.

    둘째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 말은 힘의 근원을 알라는 말입니다. 흔히 돈이 힘이라고도 하고 체력이 국력이라고도 합니다. 또 권력이 힘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나처럼 되라는 말은 자기보다 힘이 없는 사람이나 낮은 사람에게나 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한나라의 대왕과 그 앞에 죄수의 몸으로 선 사도 바울, 이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보고 자기를 닮으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에게는 이 통념을 깨뜨리는 무서운 힘이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당신도 나처럼 되십시오" 왕을 침묵케 했던 저 의젓한 바울의 기개를 보십시오. 세상의 그 어떤 힘 앞에서도 그 우아함과 고상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저 대장부를 보십시오. 그는 어디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진하게 뿜어댔습니다. 향나무는 찍는 도끼에게까지 향 냄새를 묻히듯이 사도 바울은 때리는 채찍에도, 핍박하는 재판관의 가슴에도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를 토설했던 것이지요.

    왕관이 없으면 일개 졸장부에 지나지 않았던 아그립바 왕 앞에서 왕관 없이도 천지를 군림하는 바울의 그 위대한 힘이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들은 바울을 향하여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행17:6) 사도 바울의 위대한 감화력에 대한 고백입니다. 변사 더둘로는 바울을 송사하여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라고 악평했습니다. (행24:5)

    당시 세상을 휩쓸었던 페스트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위력을 가졌다고 저 이방인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반대자들은 천하를 어지럽히고 소요케 하는 염병처럼 그를 두려워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가 전한 복음 앞에 생명의 환희와 감격을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바울이라는 존재는 멸망자들에겐 염병같이 무서운 것이었고 구원얻은 자녀들에겐 생명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향취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록으로 보면 1347년부터 약3년간 전유럽에 살인적인 페스트 전염병이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페스트로 감소된 인구는 당시 유럽인구의 절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 당시에 페스트나 전염병은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을까요?

    바울의 복음전파로 인한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으면 저 이방인들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을까요? "바울의 복음전파 위력은 페스트 전염병 보다 무섭다." 이 파우워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의 힘은 곧 살아 계신 예수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의 권세는 곧 하늘의 권세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그의 권능은 곧 성령의 권능이었습니다.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 말은 "왕이여 썩을 땅의 권세가 아닌 다른 권세가 있는 것을 아십시오. 멸망할 세상의 힘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힘을 알기를 원하오” 이 말이 아니겠습니까?



    IV. 나처럼 자유인이 되시오

    나아가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 말은 나처럼 진정한 자유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지금 바울 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 왕은 세상 영화와 권세와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저를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러워하기는 커녕 이 왕도 자기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비록 왕이라 하나 저에게서 금관을 벗겨 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는 허깨비에 불과했습니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었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속빈 강정이었습니다. 죄악과 탐욕의 노예였고 정욕의 포로가 되어 살았습니다. 몸은 자유했으나 저의 영혼은 사슬에 묶여있는 가련한 인간이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향하여 "당신도 이처럼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즉 왕관을 쓴 노예가 되기보다는 무관의 자유인이 되고 죄악의 포로에서 벗어나 세상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영혼의 자유자가 되란 말입니다.

    바울의 몸은 투옥되어 있었고 손발은 묶여있었으나 그의 심령은 한없이 하늘을 날며 자유를 만끽하고 살았던 것이지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보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넘치느니라. 할렐루야!

    질병도 가난도, 핍박도 죽음도, 감옥도 채찍도 쇠사슬도 바울을 얽어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거듭난 생명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다 결박한 것 외에는 다 나와 같이 자유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외칠 수 있던 것입니다.



    V. 나처럼 전도자가 되시오

    넷째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 말은 나처럼 전도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바울의 간증을 듣고 있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을 향하여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간증 때문에 바울은 미쳤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바울의 중생체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저들의 눈에는 바울이 미친 사람으로 보일만도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저들로서는 미쳤다는 얘기를 할만 했습니다. 죽은자의 부활, 하나님의 심판, 영원한 천국같은 얘기가 세속적인 인간에게는 황당무계한 얘기로 들려질 수 있었겠지요.

    믿음없이 세상을 보면 세상은 아주 간단합니다. 태어나 먹고 자고 싸다 그러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육체말고 영혼이 있습니다. 고기나 밥 외에 먹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짤막한 인생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히 이어지게 될 영생의 세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미경으로 보면 맑은 물 속에도 득실대는 대장균이 있고, 망원경으로 보면 멀어서 보이지 않던 별나라가 보이게 되고, 내시경 or X-광선으로 들여다 보게되면 피 속에 살 속에 뼈 속에 숨어있던 질병들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육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영혼이 보이고 믿음이 보이고 내세가 보이고 천국이 보입니다.

    그러나 땅의 눈 땅의 가치관으로만 살던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대왕의 눈에는 바울이 미친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미쳤다는 얘기를 한때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10:20에 보면 "저가 귀신들려 미쳤거늘"이란 말이 있고, 마가복음 3:20에 보면 예수님이 미친줄 알고 가족들이 예수를 붙잡으러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미친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요. 이 땅에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썩어 문들어질 가치관을 가진 세상사람들의 눈에 미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또 미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거지 전도단들은 아예 복장과 모자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미쳤다!" 아예 자신의 identity를 미친 사람으로 규정하고 살아갑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너의 많은 학문이 너로 하여금 미치게 하였구나" 한 마디로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거지요. 사실 바울은 한때 학문에 유대 종교에 미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문이 아니라 유대 종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쳐 있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듀나미스, 다이나마이트 같은 복음의 능력을 기억하면 복음에 미쳐 살아갈 수 밖에 없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더냐 천지를 창조한 말씀이 아니더냐. 지금도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건져내는 능력의 말씀이 아니더냐 말씀에 미쳐서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미쳤다"고 하는 말은, 우리가 깨를 볶아서 참기름을 짤 때에 큰 틀 속에 집어넣고 거대한 바위를 거기에 얹어 놓으면 그것이 너무 힘이 쎄서 압착하여 깨가 툭툭 터져서 기름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랑이 강력하게 사도 바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이 강력하게 사도 바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듀나미스, 다이나마이트 같은 능력이 너무나도 강력하게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입이 터졌던 것입니다. 가슴이 터져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저를 거두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주의 사랑에 노예가 되었고 성령의 노예가 되었고 사명에 노예가 되었고 말씀에 노예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게지요.

    이 때부터 바울은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구세주이시다. 그분은 부활하셨다 지금도 살아 계시다. 나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며 여러분들을 심판하러 이 땅에 오실 것이다" 목이 터져라 외쳐댔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무엇엔가 미쳐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어디엔가 빠져들게끔 되어 있습니다. 흔히들 10대는 사랑에 미치고, 20대는 야망에 미치고 30대는 소유에 미치고, 40대는 정욕에 미치고, 50대는 늙음과 고독에 미치고, 60대는 명예와 죽음에 미친다고 합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미쳐 살아가십니까? 우리 주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 오늘 교회와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똑바로 미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미칠 줄 아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저들의 뜨거운 정열, 불타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눈물과 감격과 열정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울 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모르고 감격도 열정도 없는 고드름 같은 믿음 가지고는 어떠한 역사도 변화도 기적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았더라고 하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았더라고 하면 독생자를 날 위해 보내 주실 수 있었더라는 얘기입니까?

    오늘 우리 시대는 무감각의 질병으로 역사가 시들어 가고 교회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감각합니다. 신앙의 열정도 감격도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 때문에 오늘 이 시대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한소망 성도들아 네가 미쳤구나. 일산의 성도들아 너희들이 미쳤구나. 대한의 성도들아 너희들이 미쳤구나. 이 땅에 미쳤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 쏟아져 나올 때에 시대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민족이 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 북녘 땅이 복음으로 녹아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천당을 외치던 최권능 목사가, 스코틀랜드 해변가에 무릎 꿇고 내 조국을 구원할 수 없다고 하면 차라리 죽음을 주십시오 외쳤던 죤 낙스가, 이 교회에서 되살아나야 합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외쳐댔던 에스더의 혼이 오늘 이 민족 가운데 살아나야 합니다.



    VI. 맺으며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스도인! 그들은 참 별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믿고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삽니다. 우리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천국을 보고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하고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종착점이 무덤인 줄 알고 슬퍼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부활을 믿고 행복에 겨워 삽니다.

    그리스도인! 그들은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이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르고, 종착점이 다른 과연 별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 그들에겐 세상이 가질 수 없는 높은 자존감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들의 기를 꺾을 수 없고, 세상의 환란이 그들을 낙심시킬 수 없으며, 세상의 감옥이 그들의 자유를 결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행복 선언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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