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08일 (목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건강한 교회
    2002-04-24 14:36:52   read : 2357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4:11-16 // 2002.4.21

    *신앙의 두 가지

    신앙은 두 개의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장이고 하나는 기초입니다. 믿음은 자라나야 됩니다. 계속 성장해야 됩니다. 또 믿음의 중요한 것은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라나기는 주-욱 자라나는데 기초가 없어서 조그만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그만 믿음이 흔들립니다. 기초가 든든하고 자라나기도 잘 자라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믿음의 재목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기간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교회성장은 곧 부흥을 말하며, 부흥이란 물론 양과 질의 부흥을 동시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 실에 있어서는 양적 부흥에 힘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양적 성장이 침체기에 들어가는 듯 하니까 질적 성장에 힘쓰는 듯 보였는데 그때 흔하게 사용한 단어가 건강한 교회란 말이었습니다.

    최근에 부상한 단어가 '건강한 교회'란 말입니다. 그 하나의 예를 든다면 미국의 새들백 교회 담임인 릭 워렌 목사는 그의 저서 「새들백 교회 이야기」에서 건강한 교회 요소로 5가지를 기록했는데 그것은 교제, 제자훈련, 예배, 사역, 전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럴듯한 지적이며 그 어느 하나 빼놓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또 독일의 교회성장학자 크리스티안 A. 슈바르츠는 건강한 교회의 8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 능력 있는 리더십, 은사 중심 사역, 뜨거운 영성, 기능적인 구조, 영감 있는 예배, 전체적인 소그룹, 필요중심의 복음전도, 사랑의 인간 관계를 들면서 이 여덟 가지를 갖춘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한다는 이론을 내 놓은 바 있습니다.

    *피라미드 모형과 버스 모형의 교회

    오늘날 교회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피라미드 모형이고, 또 하나는 버스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 형이라고 하는 것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목사가 앉아있고 그 밑에 서열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교회형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교회의 직분을 사회의 직위처럼 생각하고 일하지 않고 군림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큰 암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버스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목사 한 사람이 버스를 운전하고 성도들은 그 버스에 탄 사람들처럼 밖을 내다보며 세상을 즐기거나, 세상 모르고 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 버스는 목표를 향해 빨리 달릴 수는 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버스에 탄 사람은 봉사하지도 않고,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버스 운전사에게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버스에 탄 사람들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라미드 모형의 교회나 버스 모형의 교회는 바람직하지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사와 교사와 집사 또는 기타 섬기는 자들을 주신 목적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봉사하는 일을 하게 하여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교회에 세움을 받은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봉사하는 자로 훈련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목사와 교사와 그 외 다른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그들의 봉사로 인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장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외적인 교회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함을 따라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건물이 결코 아니며 성도의 모인 회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빼낸 부름 받은 백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개개인이 교회란 의미이기도 하고 이 교회의 한 요소라는 의미도 됩니다

    교회의 직분 중에 본문 11절에 보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직분을 세운 이유를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은사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의 외적 조건에 따라 나보다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 등의 평가를 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팀 사역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람들을 성경적 방식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은사에 따라 사람 바라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지체라는 의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경에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실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것이 '몸의 비유'인데 손과 발 중에 어디가 더 중요할까요? 손과 발은 비교되는 지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상호 보완적인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지체들의 각기 다른 역할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피차에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일-이것이 셀 사역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교회 지도자들도 서로 다양한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먼저 강조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교회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가요?--12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피상적으로 읽으면 리더의 역할이 세 가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1)성도를 온전케 하고 2)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3)몸을 세우는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12절에 성도를 온전케 함으로 성도들이 두 가지일 1)봉사의 일(misitry/사역) 2)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한다는 것입니다.

    표준 새번역은 이 부분을 바로잡은 번역을 했습니다."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도록 성도들을 준비시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사역의 주체가 성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사역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역의 전통적 인식에 의하면 사역은 목사가 하는 것이고, 평신도는 목사를 돕는 자라는 것인데 그러나 오늘 본문에 의하면 목회자가 만일 성도들에게 목회 잘 할 수 있도록 잘 도와달라고 하면 비 성서적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회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성도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을 실천하는 목회 현장이 있는데 어느 미국 교회의 주보에는-사역자: 모든 교인, 사역자들의 조력자:OOO목사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성경적 의식전환과 역할의 제자리 찾기가 이루어질 때 건강한 교회의 팀 사역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사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의 원제가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는 조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전통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헌법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위원회가 이끌어 가는 교회, 목사가 이 끌어 가는 교회, 장로가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지만 건강한 교회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목적을 망각하면 공동체는 방황할 수밖에 없고 비본질적인 것이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섬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우리의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12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그 대답이 바로 13절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말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이 성숙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한사람 한사람의 변화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인 것입니다.

    교회는 조직 이상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섬겨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봉사의 초점은 일 자체가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못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 중심적인 사람들이 특히 유의할 것이 이것입니다.--일을 성취하더라도 그 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상처받게 하고 좌절시켰다면 우리는 잘못 섬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길 것은 일이 아닌 사람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로 이웃을 어떻게 유익 되게 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이들이 주님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 닮아 가는 사람이 되도록 섬겨야 합니다.

    *은사의 사용을 균형 있게 해야만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사역의 두 가지 섬김의 방편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방편은 진리와 사랑입니다. 진리 없는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사랑이 없는 진리는 결코 상대방을 감화시킬 수 없습니다. 14절은 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지도자로서 바르게 섬기려면 무엇보다 이 말씀을 연구하기를 게을리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이웃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위한 유명한 기도의 장에서(요17장) "저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곧 진리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어지는 말씀 15절에서 사랑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말합니다. 사랑 없이는 어떤 사역도 열매 맺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실 교인들 가운데 이단에 빠지는 분들을 보면 교회생활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단이 가르친 진리 때문에 이단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단 단체에 가보니까 그들이 찾던 사랑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직 성경을 조금 몰라도 사랑이 있다면 사람을 세우는 사역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변화시킨 리빙스턴의 전기를 쓰던 전기작가가 리빙스턴이 가르친 설교말씀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었을 때 한 추장이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우리는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그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한번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이웃을 치유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우리를 통해 민족이 치유되고 세상이 변화됨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이 12명의 제자들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는 너희가 온 인류를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12명만이라도 사랑한다면---세상은 변화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교회 안에서의 12명에 대한 사랑의 연습--그것이 바로 제자훈련의 시작입니다. 그 중에는 사랑하기 어려운 가롯 유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 때문에 여러분은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하며 원수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교회의 모습은 완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넌 참 나의 제자야! 내가 너에게 이 세상을 맡긴다."고 말씀하심을 듣게 될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고착상태'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의 종래의 유치한 습관, 혹은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착상태에 빠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무조건 변화는 싫어하고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변화되지 않은 낡은 것에 매여서 거기서 안정을 누리려고 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정지상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정지상태란 없는 겁니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 속에 나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안 변하고 있는 겁니까?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퇴보라고 하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차가 속도를 내서 여러 대의 차가 물밀 듯이 밀려갑니다. 거기 한 길 가운데 서있어 보면 차들이 무지하게 빨리 달립니다. 그럴 때에 나는 서있습니다. 그게 내가 서 있는 겁니까? 이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면 내가 지금 뒤로 물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생각의 속도가 중요한 거예요. 계속 변화하는 것과 속도를 맞추지 아니하면 그 순간 나는 지금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리석게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정지 상태가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뒤로 물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차를 몰고 갈 때, 저 빨리 가는 차하고 내가 속도를 맞추면, 다시 말해서 변화되는 사회에 있어서 생각의 변화의 속도를 맞추면 정지상태가 이루어지고 거기에 안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적으로 사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즐깁니다. 변화를 타고 넘으면서 거기서 창조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고착상태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다가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다면 심장이 터져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니고 우리가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고착상태라고 하는 병에 빠져서 스스로 퇴보하고 거꾸로 변화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착상태에 빠지면 구제불능입니다. 게다가 영적 고착상태가 문제입니다. 벌써 영적 주도권을 육체의 욕망에 빼앗긴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바울의 논조대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겠느냐. 처음에는 순수한, 아주 구원받은 은총에 감격하는 신앙으로 출발했는데 신앙생활 해 가면서가면서 자기 나름으로 자기가 율법이 되어서 어느 사이에 율법주의자가 돼버렸어요. 그걸 자기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생생한 생명력 넘치는 영적 상태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비참한 것입니다.

    TIME지에 실린 이야기인데, 3천년 전 미라를 해부했더니 그 미라의 손에 밀알 몇 알이 있었는데 신기하게 생각해서 그 밀알을 소중하게 땅에다 심어보았더니 싹이 나더랍니다. 여기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밀알이 죽은 사람의 손에 들려 있으니까 3천년이 가도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이 땅 속에 들어가서 썩어서 죽어야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이 중요한 이치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개혁을 원합니다. 새로움을 원하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옛것의 죽음, 옛 가치관의 매장, 완전히 죽어야 사는 역사가 있어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변화란 바로 이 죽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날 거기에서 싹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한 알 그대로 있는데 그 얼마나 기쁜 말씀입니까?

    *온전한 사람이 되어

    사도 바울은 4장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7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온전한 사람'은 도덕적 흠이 없이 완벽하게 성결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이 된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서 보듯이 원줄기인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거하고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가 온전한 줄기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온전함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온전함입니다. 그의 생명의 풍성함이 우리 안에 부어지므로 우리가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람 빠진 풍선 같았던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 채워지면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믿으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게 되기에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때 나 자신만을 생각하면 안 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온전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 있을 때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어성경 번역으로 인용하였는데, 훨씬 이해가 잘 되도록 번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머리가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몸 전체를 보고 생각하고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몸 전체를 조정하고 운영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우리도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생각할 줄 아는 자리에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몸 전체를 보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받아드리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휘를 따라서 온 몸이 서로 완전히 어울려서 일치를 이루고 통일성을 회복하며 균형을 잡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며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목적이며 사명입니다.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를 운동경기에 출전한 하나의 팀(team)에 비유해 봅니다. 운동 경기에 출전한 어느 한 팀에서 감독과 선수들의 위치와 역할은 각가 다릅니다. 그러나 각각 다른 위치와 역할을 맡은 그들이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감당할 때 그 팀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각 다른 위치와 역할을 가진 감독과 선수들의 유형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팀에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게을리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경기에 출전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과는 보나마나 뻔합니다. 백 번을 싸우면 백 번 다 패할 것입니다. 감독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선수들을 훈련시켜 뛰게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독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 내가 혼자 잘해도 소용이 없구나. 선수들이 잘 뛰지 않으면 나 혼자 잘하는 것 가지고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에 내보냈는데 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을 제쳐두고 자기가 뛰기 시작했다고 해 보십시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가정해 보십시오. 그 팀이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이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감독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수들의 협력이 없이는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기를 마친 감독이 패인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훈련을 시켜서 경기에 출전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선수들의 실력은 뛰어났는데 서로 싸인이 맞지 않았습니다. 서로 골을 넣으려고 다투는 바람에 번번이 공을 빼앗겼습니다. 자기가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려고 하다 보니 패스도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경기장 밖으로 퇴장하기 일쑤였습니다. 여러분, 그 팀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보지 않아도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경기를 마친 감독과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습니다. 우리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반성을 하고는 각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감독은 선수들을 열심히 훈련시켰습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훈련받고 경기장에 나갔습니다. 감독의 싸인에 따라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습니다. 서로 공을 세우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공이 오면 적절한 자리로 패스를 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그 팀은 그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었고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영광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경기를 하려고 출전한 선수단(team)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그 팀의 감독이라면, 성도들은 경기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암교회라는 한 팀에 소속된 사람들입니다. 감독이 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혼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탁월한 실력이 있어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혼자서 교회를 부흥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선수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감독이 없는 팀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선수들이 서로 공을 세우겠다고 다툰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 개개인의 면면이 뛰어나다 해도 목회자와 성도들,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본문이 이러한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사명과 목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사명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각자가 어떻게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지금까지의 교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성도들은 그저 배우기만 할 뿐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하는 일이 있다면 몸으로 뛰는 봉사에만 전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구조에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7

    이제는 목회자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훈련받은 대로 남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일에 은사가 있는 분은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로서가 아니라 작은 소그룹으로서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여러 개의 작은 소그룹이 필요하고 그 소그룹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각각 일을 맡아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회자 혼자 뛰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뛰는 교회가 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교회에서는 129회 국제전도폭발 한국지도자 임상훈련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8년 동안 실시해온 전도폭발사역의 경험도 있었지만 모든 훈련자를 위시해서 말씀 앞에 헌신된 사역자들이 헌신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은혜롭게 잘 마치게 된 것을감사 드립니다.

    훈련받고 돌아가서 제게 메일을 보내온 어느 목회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목사님과 모든 영암교회교역자와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 한 분 한 분이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친분을 유지하며 그들과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섬기시는 모습과 현장실습을 통해 참 복음과 훈련을 잃어버리지 않은 영암교회의 목회자님들과 평신도의 연합된 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직장사역에서 보지 못했던 영암교회말로 이 시대에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 문에 이를 때에 우리의 뒤에 남겨져 있는 종교는 없다"라고 말한 락탄티우스의 말처럼 교회 안에서 뒤에 남겨진 종교는 없다는 말이겠지요. 나가서 하는 생활이든 들어와서 하는 생활이든 모든 우리의 영역이 하나님의 인치심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것을 우리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한 주간 동안 일상의 생활에서 그것을 실행하고, 그것을 우리가 처한 장소에서 드러낼 때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정신이고 종교가 아닌지요.

    마치 영암교회 성도 한 한사람 속에서 그런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이런 교회가 있었다니 감짝 놀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진정한 섬김을 받음을 통해 훈련받는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만이라도 세워져서 생명의 삶을 산다면 우리 영암교회 전 성도는 무슨 일이든 하시겠다는 각오처럼 보였습니다. 열 명의 전도 대상자보다 한 명의 훈련자를 훈련시키는 것이 낫다라고 하는 전도폭발의 원리처럼 이 섬김을 꼭 우리 사역 속에서 다시 나타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의 할 일이 저를 압박하는군요. 정말 많은 말씀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 열정을 훈련된 자의 열정에 소비할까 합니다. 정말 1주일동안 섬겨주신 영암교회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감독이 혼자 경기장에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필드에 나간 선수들이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었다 해도 감독과 싸인이 맞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드에 나간 선수들간에 불협화음이 있어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감독과 선수들이 한 마음이 되어 훈련에 임하고 팀을 갖추고 경기장에 나갈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역할을 분담해야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가르침을 따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자라게 하고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아름답다

    우리 교회를 성장시키는 동안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교회성장 보다는 교회의 건강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릭 워렌은 "21세기의 교회의 중심 주제는 성장이 아니라 건강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회성장이란 말은 보다 깊은 영적 성숙에 대한 비전을 포함합니다. 언젠가 반스 하브너가 말했듯이, 이제는 양의 숫자를 셀 때가 아니라 양들을 가치 있게 해야 할 때입니다.

    둘째, 자신의 교회를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장성한 분량은 다른 교회의 성장 가능성과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다 자란 건강한 치와와는 병든 덴마크산 큰 개만큼 크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표는 다른 교회의 성과나 크기 등과 겨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의 충분한 가능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셋째, 성장을 위한 성장보다는 회심과 제자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 교회의 80%는 성장의 정점에 이르렀거나 혹은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5% 미만의 교회들은 잃어버린 양들을 얻는 일을 통해 여전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교회의 성장이 이처럼 다른 교회로부터 불안에 찬 교인들을 끌어들이는데 기초하고 있다면, 자신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의 순환은 참된 의미의 교회성장이 결코 아닙니다.

    넷째, 자신의 교회 너머를 보아야 합니다. 질투심이나 자만심을 버리고 자기 지역의 다른 목회자나 교회를 향해 바른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들은 큰 교회를 향해 존경심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큰 교회 목사들은 작은 교회들이 행하는 생생한 역할들을 평가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오직 그리스도의 한 몸만이 존재할 뿐이며, 우리 모두는 함께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큰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은 슬픈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순절 때 는 3천명이 한꺼번에 회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교회 생활에서 보다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은 가정교회였습니다. 작은 교회는 열등하고 큰 교회는 우월하다는 식의 세속적인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교회를 반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음을 가진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크건 작건 자신의 교회에 은혜를 내리시고 그 나름의 독특한 특성들을 세워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우리의 삶에서 부활해야 할 것
    바람직한 교회(2)
    바람직한 교회(1)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영향력 있는 사람
    감사는 믿음의 열매
    감사를 찾아서 하자
    내가 감사하고 높이리이다
    우리 속에서 씨앗을 보신다
    생명의 잠재력
    자유하셨습니까?
    인간의 한계 앞에 선 하나님의 할 일
    새 포도주의 기쁨을 새 부대에
    누가 내 삶의 주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과 쉼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