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6장 1-4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의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7:21절 이하를 보면, 평소에 하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는 책망을 듣고 장차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사람이 있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 이들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면류관을 받게 될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와 달리 이 땅에서 예수를 잘 믿은 것 같았는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님을 위해 산 것 같았지만 주님이 하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는 호된 책망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런 사람이 한 분도 없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놓고서 버림받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 가지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1. 선행을 할 때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의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보물을 하늘나라에 쌓아두는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을 할지라도 나팔을 불면서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신문기자를 불러 사진을 찍게하고 신문에 기사화되도록 의도적으로 선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귀한 일을 했으니 칭찬을 들어야 하고 존경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선행할 때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조차도 기억하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이 세상에서 칭찬을 듣고 영광을 받고 상을 받는다면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얻는 영광은 잠시뿐이며 칭찬도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받는 상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작은 상을 받으려다가 하늘나라에서 받을 진짜 상을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구제할 때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면서 좋은 일을 하면 시험이 많아지고 고난이 많아집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고 불레셋을 물리치므로 해서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돌아오는 다윗과 그의 군대를 향하여 여인들이 춤을 추고 북을 치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골적으로 사울왕보다 다윗을 더 높이고 더 많은 칭찬을 했습니다.
그 결과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백성들이 나보다 다윗을 높이니 이제 다윗이 얻을 것이 나라밖에 더 있겠느냐? 저를 그대로 두면 내 자식들이 왕이 되는 것도 힘들겠구나. 잘못하면 저가 나를 쫓아내고 왕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불안감으로 다윗을 죽여야겠다는 악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후로 사울 안에 악신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다윗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큰 시험이 찾아온 것입니다. 백성들의 칭찬은 한순간이었지만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당한 고통은 이루 말로다 할 수가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쫓겨다니며 죽일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특별히 구제를 많이 하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큰 부자라서, 수입이 많아서 구제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본인이 재산을 모으려고 하면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항상 나누며 살다보니 소문이 났습니다. 점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딱한 사정을 가지고 찾아오는 분들을 일일이 다 도울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 다 나누어주며 살아왔기 때문에 쌓아논 물질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집에 왜 돈이 없느냐고 악담을 하고 어서 내노라고 공갈 협박을 하는 고약한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이로 인해 이 집사님은 큰 시험에 들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는 기뻤으나 나중에는 얼마나 시달렸든지 낙심이 되어 지금은 구제하던 일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팔불지 말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집사님은 드러나게 구제를 하다보니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땅에서 좋은 일은 했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도 없고 고난만 많이 당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랍비는 구제할 때 뒤로 돌아서서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누가 받았는지 모르기 위해서 이며, 받은 사람이 부끄러워하게 될까 그리고 구제받은 사람으로부터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중국에 파송된 한 미국 선교사가 전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홍수를 만나 물에 빠져 떠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중국인이 물에 뛰어들어 그 선교사를 구해주었습니다. 이에 선교사는 너무 고마운 나머지 은혜를 갚고자 그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국사람은 선교사의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던가요?” “물론 없지요.” “그렇다면 내 이름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며 가던 길을 그대로 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은 사람 사이에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구제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교회가 칭찬듣고 예수님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게 되어 이 세상을 구원하게 되며, 자기 자신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라만스]라고 하는 분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젊은 시절 어느 겨울날 거실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 때에, 밖에 나가 눈을 치우고 들어오시는 아버지께서 “네가 지금 들은 것은 24시간도 못되어 기억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20분 동안 네가 앞으로 20년 동안 기억하게 될 일을 하면 어떻겠니? 내가 확신하건대 네가 두고두고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아주 즐거울 것이다.” “아버지, 도대체 그 일이 무슨 일인데요?” “브라운 부인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다.” 사실 브라운 부인은 자기 힘으로 그 눈을 제때 치울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아무도 모르게 그 부인의 집 앞에 쌓인 눈을 말끔히 치웠습니다. 눈을 치우는데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일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흐믓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팔을 불지 않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좬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좭고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리 유혹을 해도 뿌리쳤습니다. 사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지만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며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 39:9).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선한 일을 할 때에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구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행을 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자기가 행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하다보면 모두가 다 위선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위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위선자가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누리게 될 영광보다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사람의 영광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요 5:44.12:43).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구제할 때 언제나 나팔을 불면서 구제했고, 기도할 때에도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길에 서서 두손을 들고 엄숙한 자세로 기도하여 마치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처럼 거룩하게 보이려고 모든 일을 의도적으로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외식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에서도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다 죽게 된 사람 앞을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지나갔습니다. 만일 예루살렘 거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산속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을 의식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다보니 모든 것을 과장해서 하게 되었고 따라서 진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과부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슬쩍 과부의 가산을 자기 앞으로 빼내는 날강도들이었습니다(눅 16:14, 막 12:40).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할 줄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말과 행실이 진실해질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6장을 보면 여러 곳에서 좬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좭, 좬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좭고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도 주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반드시 상을 잃지 않고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에게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며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10:42).
성경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도와주고 돌보아준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시겠다는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보상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보상을 바라고 선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보상이 없습니다. 칭찬을 바라고 행하는 선행은 선행이 아닙니다. 이미 이 세상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도 올바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구제의 올바른 자세는?
쥱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야 합니다.
구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든지 많든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구제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반드시 해야 합니다. 유대의 랍비들은 구제할 때 언제나 자녀를 동행시켰다고 합니다. 이는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일을 할 때 자녀들과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도를 해도 자녀들과 같이하면 저절로 산 교육이 됩니다.
쥲 구제하는 것을 큰 축복임을 알고 기쁨으로 해야 합 니다.
구제할 수 있는 마음과 인격과 믿음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구제할 수 있는 물질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구나 구제하므로 얻게 되는 기쁨은 그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장차 하늘에서 받을 복 또한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구제할 때 기쁨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쥳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선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원수라도 사랑하시고 죄인이라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구제의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반드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이 클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우리 자신에게 상이 클 것이며,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그 상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 하찮은 상이나 받고 하늘에서 받을 영원한 상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저는 우리 교회가 IMF라는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큰 성전을 완공하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리 교회는 몇몇 사람의 거금으로 지은 성전이 아닙니다. 1억 이상 헌금한 사람이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더구나 5억 이상 헌금한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 성도가 한마음으로 동참하는 가운데 티끌모아 태산을 이루듯이 적은 헌금이 정성껏 모아져서 지금까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건축이 완공되어 성전에 필요한 강대상을 비롯하여 의자, 피아노, 오르간 등등 많은 비품이 필요합니다. 이 비품들을 마련하기에 앞서 저는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해도 우리 성도들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고서도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듣지 못하고 책망을 듣게 되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선행이 결코 헛되지 않기 위해 나팔불지 않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모두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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