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좋은 남편 2002-05-23 15:28:32 read : 142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베드로 전서 3장 7절
(7절)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전에 소재한 [가족치유 상담센터]에서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52명의 아내들을 상대로 남편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남편의 신앙생활의 햇수가 1-5년 미만은 37.5%, 6-10년 미만은 60%, 10년 이상은 80%라는 만족도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남편의 신앙생활 햇수가 길면 길수록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그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신앙생활을 잘하면 잘할수록 그 가정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언 15:16-17절을 보면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서로 미워하며 산다면 그 가정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경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비결을 말씀하면서,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 복종하라 순복하라”고 했고, 남편들에게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에베소서 5:25,28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남편들은 아내를 예수님 사랑하듯이 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야말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더구나 하나님의 원수노릇을 하며 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 5:8,10).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 , 용서해주며 , 섬겨주고 , 베풀어주는 것입니다.어떤 총각이 마음에 드는 처녀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미스 리! 미스 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소.” 그러자 상대 처녀가 재치있게 그말을 받아 “저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죽지 마세요. 단 죽을 각오로 평생 저녁 설거지만 해주신다면 허락할께요.” 그러나 총각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그건 좀 곤란한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 총각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남자입니다. 사실 아내는 남편의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삽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여자는 남편의 사랑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에게 최고의 보약은 남편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따라서 남편이 사랑해주면 여자들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이면 여자들 얼굴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는 아무리 잘 차려 입었어도 얼굴에 그늘이 있고 마치 비 맞은 암탉처럼 어딘가 측은한 모습이 있습니다. 표현되지 아니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아내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우선 사랑은 마음에 담아야 하고, 입에 담아야 하며, 손에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남자에게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지 사랑을 조금도 표현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이요 역사와 문필에 능통했던 [토마스 칼 라일]은 아주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자기 부인을 멸시한 아주 고약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그의 부인이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부인은 단 한번도 행복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고, 어디를 보나 좋은 남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더 살아봤자 무엇하나하는 절망감속에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토마스 칼 라일은 그의 부인이 죽은 후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도 내 속은 모른다. 단 5분만이라도 좋다. 아니 2분만이라도 좋다. 내 아내가 한번만 다시 살아난다면 꼭 이 말을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죽었다. 그런고로 나는 이 말을 영원히 전할 수 없게 되었다. 누가 내 이 사정을 알아주랴.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랴?” 이렇게 탄식하며 후회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는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내를 미워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특별히 유교적인 한국사람들의 가정에서 이런 예를 많이 보게 됩니다. 사실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밤낮 미워하며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는 위장된 평화로 살든지 아니면 부부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불행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사랑은 공상에 불과합니다. 사랑은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상대편이 알도록 밖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돈은 애정표현의 중요한 척도입니다.어떤 남편은 수백 억의 재산가였으나 그 재산을 아내 몰래 감추고 살았습니다. 아내에게 돈을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생활비도 인색하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아내는 평생 가정부처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엄청난 부를 지닌 부자의 아내였지만 실제로는 인색한 남편의 아내로 고생만 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아내에게 돈을 맡기지 않는 남자는 아내를 신뢰하지 못하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당신에게는 돈을 맡길 수 없어. 왜냐? 당신은 무식하고 유치한 여자이기 때문에”라고 취급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남편과 사는 여자들은 얼굴에 기쁨이 없고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평생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대화도 안되고 돈도 안주고 그래서 이런 여자들 에게 우울증이 많이 걸립니다. 가정은 우선 아내에게 기쁨이 있어야 하고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그 가정이 평안하며, 아내가 행복해야 그 가정 또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내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한평생 행복한 가정에서 살기 원한다면 자기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에도 담아야 하지만 입에도 담아야 합니다. 사랑이 담긴 남편의 말 한마디가 더할 나위 없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이 남편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자들은 남편의 말 한마디에 기쁨이 충만하여 춤을 추기도 하고, 그 말 한마디에 죽고 싶을 만큼 상심해 울기도 합니다. 이처럼 남편의 말 한마디가 아내의 마음을 좌우합니다. “여보! 수고했어요” 남편의 이 말 한마디에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가정 살림을 잘 꾸려갈 수 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참 잘먹었어요” “여보! 참 잘했소. 당신이 최고요” 이런 격려의 말 한마디에 신바람이 나서 살아갑니다. 저는 서른 살이 거의 끝날 무렵인 12월 17일에 결혼했습니다. 저는 가난했지만 우리 집 사람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사람이고, 제 아내는 이북 사람입니다. 저는 목소리가 작고 점잖은 편이지만 제 아내는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활달한 편입니다. 이처럼 저와 우리 집 사람은 매우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결혼 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여자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자는 1주일 안에 잡아야 한다. 우선 칭찬하지 말자. 예쁘다. 맛있다. 잘했다. 이런 소리는 절대로 하지 말자. 기분 나쁘면 말을 하지 말자.’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내 맘에 안 들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침묵을 지겼습니다. 후에 저는 몰랐는데, 아내가 말하기를 제가 2주간이나 말을 안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밥을 차려주면 먹고 안 차려주면 안 먹고, 저는 심방 나가서 먹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저 열심히 새벽기도 인도하고 하루 온종일 심방하고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통 집안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제 아내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죽고 싶었고, 쪽지를 하나 써놓고 도망가려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너무 너무 괴로워서 금식기도를 했는데, 17일을 금식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저는 몇 년 전에야 알았습니다. 이렇게 3년을 살았습니다. 뒤늦게 장가를 가고 보니 얼마나 좋은지. 그동안 가난하게 살다가 시집 온 아내가 모든 살림을 다 마련해 왔으니 얼마나 좋아요. 매일 좋은 이불에서 잠을 자고, 음식도 맛있게 해주고, 아이도 혼자 낳아 길러 주고 얼마나 편안한지, 제가 설교 준비할 때면 저 쪽 방에 가서 몇 시간씩 기도해주고, 완성된 원고를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일등 비서노릇을 했습니다. 이렇게 아내가 제게 무조건 순종만 해주니 얼마나 좋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남자는 장가 잘 가면 수지 맞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동안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시집오기 전에는 부잣집 딸로 잘 살았는데,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밤낮 밥과 빨래와 청소와 남편 심부름하며, 임신과 해산의 수고와 아이들 양육까지...... 만약 제가 여자라면 시집을 안가겠어요. 그런데 왜 여자들이 결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비록 고생이 되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그 목적 하나가지고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남편들에게 내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죽도록 사랑하라.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편의 책임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을 따라 살지않고 그저 아내를 잡겠다고만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습니까? 그 결과 제가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여자를 그렇게 못살게 했으니 무슨 밥을 맛있게 해줄리가 있겠습니까? 언제나 고추장 한술과 멸치 몇 마리만 밥상에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본래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무거나 잘 먹었고, 또 목사체면에 잔소리할 수도 없고, 더구나 저야 심방나가면 잘 먹게 되니 아내가 주는 데로 먹었습니다. 이렇게 무관심한 남편과 사는 제 아내가 무슨 신바람이 나서 살림을 잘 하겠습니까? 아무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쁨이 있나요 웃음이 있나요 그저 집안은 늘 조용했습니다. 이처럼 아내에게 잘못해주면 손해는 남편 자신이 봅니다. 이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그 아내로부터 사랑이 다시 되돌아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제 아내가 잘 참아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3년쯤 되었을 때, 아무래도 제 작전이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정반대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아내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힘들지? 오늘 고생 많이 했지?”라고 말하며 아내의 어깨를 잡아주었습니다. 아내는 결혼한지 삼년 만에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내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저녁 반찬으로 주인 집 할머니로부터 얻어온 묵은 김치와 멸치 몇 마리 그리고 고추장을 내왔지만, 이제부터 무조건 반대로 말하기로 했기 때문에 내가 먹어본 중에 최고로 맛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진짜 맛있는지 알고, 돈이 어디서 났는지 시장에 가서 좋은 배추를 사서 맛있게 김치도 담고 싱싱한 생선도 사서 튀겨내고 얼마나 정성을 다해 반찬을 맛있게 만드는지 사람이 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 가서 천을 떠서 그 좁은 방 창문에 커튼을 해서 달고 꽃도 꽂아놓고 아이들 옷도 감을 떠서 만들어 입히고 그야말로 아내는 신이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여보! 섹스피어가 말하기를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잖소. 이제 당신하고 나하고 평생 비극은 하지 말고 희극만 하기로 약속합시다. 당신과 내가 늘 희극만 연출하고 살면 우리도 좋고 구경하는 사람도 좋지 않겠소. 절대로 기분이 나빠도 화가 나도 희극만 하고 삽시다.’라고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마침 딸 둘이 저쪽 방에 가있을 때, 아내를 꼭 껴안아 주면서 ‘여보! 나는 여태까지 당신처럼 예쁜 여자를 본적이 없소. 당신은 어쩌면 보면 볼수록 예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아내도 씩 웃으면서 “나는 당신의 뒷모습만 봐도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둘이 서로 연극을 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지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내가 새로 산 옷을 입고 어떠냐고 물으면 저는 언제나 ‘날씬해요. 멋있어요.’라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제게 물어보나마납니다. 저는 절대로 제 아내를 뚱뚱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날씬하다’‘맛있다’‘멋있다’‘날씬하다’‘예쁘다’‘고맙다’라고 말해줍니다.제가 주일에 설교를 하고 집에 돌아가면 오랫동안 서서 설교를 하기 때문에 잡을 자려고 하면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에서 화끈화끈 하고 불이 납니다. 아내가 제 발을 주물러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을 못하고. 이럴 때 저는 대신 잠을 자려는 아내를 주물러줍니다. 그러면 아내도 미안해서 저를 부지런히 주물러줍니다. 그러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모릅니다.여러분 사랑은 마음에만 담고 있으면 안됩니다. 내 입에 사랑이 담겨야 합니다. 손에 사람이 담겨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안아주기도 하고 이렇게 사랑은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나운 암사자가 되고 그 집은 슬픔의 둥우리가 됩니다.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아내를 귀히 여기라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여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을 높이고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길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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