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2002-05-21 14:45:42 read : 1895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경구절 데모데전서 5:1-2
설교날짜 2002/05/12
가난하게 생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나는 것은 무엇보다 배고픔입니다. 굶기를
밥 먹듯 했으니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성장했
습니다.
가난한 가정생활에 음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란 별로 없었고, 토지가
없었던 탓에 우리 집에서는 마당에 가마니를 가지고 거기다가 고구마를 심어 재
배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가마니를 가르고 가마니에 담긴 고구마를 겨울
양식으로 소중하게 사랑방 윗목에 관리하면서 하루에 몇 개씩 식사로 사용했습니
다.
어느 날 시장기를 느낀 나머지 부모님이 집을 비우신 사이에 고구마 하나를 화
로에 얹어 한참 구워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화를 내시면
서 "하루 세끼 식사 외에 고구마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일렀거늘 어떻게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느냐"고 회초리로 제 종아리를 치셨습니다.
서러움과 아픔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지
났는지 어머니가 깨우셔서 일어났는데 머리맡에는 고구마가 담긴 상이 놓여 있었
습니다. 잠든 아들을 내려다보신 어머니의 눈은 이미 젖어 있었고 어린 아들에
게 고구마 껍질을 벗겨먹여 주면서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날의 기억은 자꾸만 아픔과 그리움이 되어 지금에도 가슴의 강물이 되
어 흐릅니다.
어버이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옛 추억은 아름다운 것도 있고 아픈 것
도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픔보다는 아름다운 부모님
사랑이 훨씬 많았다는 생각을 새삼 해 봅니다.
어머니와의 대화 가운데 평생을 잊을 수 없는 말씀이 바로 "교회에서의 이 어
미 같은 늙은이는 목사의 어미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까지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큰 가정으로 생각했고 연
로하신 어른들은 모두 저의 부모님으로 생각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무론하고 어른 공경에는 축복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교훈
이기도 합니다.
욥기 12:12절입니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이 짧은 말씀 속에는 인생의 교훈과 삶의 철학이 있고 더불어 살아감의 윤리
가 있으며 생명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버이 주일에 꼭 내 부모에게만 효도하는 것을 뛰어넘어 노인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의미로 볼 때 교회는 큰 가정이 되는 것을 깨우칩
니다.
그렇다면 큰 가정으로서의 교회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
노인은 부모님처럼
1절 상반 절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오늘 본문의 '늙은이'의 헬라어 '프레스뷔테로' ( )는 디모데전서
5:17, 19절과 디도서 1:5절에서는 '장로' (presbyter, elder)로 사용되었는데 본
문에서는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노인'(oldman)을 뜻합니다.
'꾸짖지'라는 말의 헬라어 '에피플렠세스' ( )
는 본래 '주먹으로 치다' 라는 말인데 이는 '말로서 때리다'라는 뜻으로 공격적
인 심한 질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글을 쓴 내용은 목회자는 어려도 종종 나이 많은 사
람들을 질책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온유한 태도로 부모님께 하듯 해야 함을 깨
우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의 가족 구성원들
이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80에 가까운 어머니가 손자의 운동화를 빨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운동화를 씻
는 것이 깔끔할 수 없습니다. 손자는 할머니가 씻어 놓은 운동화를 보면서 버릇
없이 빈정거립니다.
"엄마~~~ 할머니가 내 운동화 다 버렸다."
아이는 그냥 소리치면서 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어머니의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러댑니다.
"가만있으면 차라리 집안이 편합니다. 왜 자꾸 소란을 피우세요."
그 순간 할머니는 뒷방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아무 말
도 못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하십니까?
바울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은 노인을 대하되 언어적 폭력
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아버지에게 하듯 해야 함을 깨우칩니다.
그것은 윗사람을 대하는 아랫사람의 기본자세입니다.
말씀을 드릴 때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교회를 큰 가정이라고 한다면 교회에서 어른들은 당연히 존경받고 섬김 받는
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교회에서 가장 무식하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누
구입니까? 어른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우리교회에 부임하던 때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하고자 합니다.
고등부 학생 5명이 인사하는 방법이 도대체 근본이 되어 있지를 않아 몇 차례
교육한 후에 인사를 시켰는데 정말 민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한 주일 후에 본당으로 올라가는 휠체어 길에 청년 4명이 자판기에서 뽑은 커
피를 오른손에 들고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저를 향하여 "목사님 안녕하세요"라고
왼손을 흔들면서 일어서지도 않고 그대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 하다가 그들 앞으로 다가가도 그들은 일어설 줄 몰랐습니다.
"내가 안녕하지를 못하다."
"왜요, 어디 편찮으십니까?"
"내가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사모님하고 싸웠습니까?"
그 순간 화가 난 제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아 어른이 앞에 왔으면 좀 일어서서 인사하면 안되나. 비둘기도 어미
가 가지에 앉으면 새끼는 아래 가지에 앉거늘 어찌 젊은이들이 그렇게 기본 예의
가 없는가."
그때서야 청년들이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
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일에 저는 여러분에게 두 주간 동안에 있었던 일을 통해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기본이 될 삶의 자세와 교회 생활에 대하여 24
가지로 깨우쳤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문의 어버이를 지칭할 때 父親, 母親이라 합니다.
여기의 親(어버이 친)자는 어버이의 마음이 담긴 뜻글자입니다.
시골에는 닷새만에 장이 서게 됩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 동안 모은 나뭇짐
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 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
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 듯 말 듯합니
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 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 이라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
무 위에 올라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릴 몇
가지 물건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
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효(孝)자입니다. 즉 노
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親 자와 孝 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
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그래서 늙은이를 아비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고 한 것
입니다.
우리 교회도 노인들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생각하고 섬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
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를 형제 자매처럼
가정에서도 그렇지만 교회에서도 마차가지인 공통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끊임
없이 자기주의와 편견으로 소위 독불장군 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기준이 자기 기분대로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고 피곤하게 만들어 버립니
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고 잘못도 많이 저지릅니다.
그러니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사람도 가족이기 때문에 멀리 할
수 없고 속상해도 용서하고 때로는 달래기도 하고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바로 형
제 자매입니다.
아무리 더럽고 추한 짓을 해도 형제는 형제요 자매는 자매입니다. 아무리 이
웃 사촌이 귀하다 해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형제와 자매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
을 우리는 경험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이것을 유념하라고 깨우쳤습니다.
즉 목회자는 나이 많은 교인들을 대할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대하고, 젊
은 교인들을 대할 때는 형제와 자매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삶의 교훈이 되
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교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형제를 대하듯 하고 젊은 여자
는 자매에게 하듯 하라 했습니다.
'형제'라는 헬라어는 '아델푸스'( )인데 이 말속에는 기독교의 평등사상
이 포함되어 있는 용어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를 형제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서는 누구나 높고 낮음이 없는 하
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평등사상이 내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목과 질시를 통해 분열과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깨우칩니
다.
그래서 8절에서는 아주 중요한 가족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교회를 큰 가정이라 한다면 성도 상호간에 반목과 질시를 통해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이라 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리하면 그것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라고 경고했습니다.
믿음을 배반했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
다.
고린도전서 12:26~2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
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속에는 형제를 미워하고 자매를
시기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찌 믿음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사악한 마음의 소유자로서 불신자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사람
입니다.
우리가 가정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부모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식들
이 화목 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된 성도들이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면
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을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그것은 곧 불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불경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싸우는 집안은 잘 되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가정이라도 화목하는 가정이 복 받지 않는 가정 또한 없습니다.
교회를 큰 가정이라 한다면 이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화목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 교회 보았습니까?
목사와 장로가 힘겨루기 하고, 교회 안에서 소위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을
하고, 서로 헐뜯고 시기하면서 미워하는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 보았습니까?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 자식이 있는 것처럼 평안하고 축복된 교회를 파괴하
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너지는 가문을 세우고 자손만대에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하는 자식
이 있는 것처럼 교회도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평안케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족입니까?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가 큰 가정임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어른들을 공경
하고 젊은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교회로 지역사회를 보다 아름답데 가꾸는 거룩
한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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