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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2002-05-21 14:31:54   read : 1445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경구절 마가복음 1:1
    설교날짜 2002/01/13

    마가복음의 저자는 요한 마가인데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마가는 라틴어 이름
    입니다.
    마가는 헬라교육을 받은 유능한 청년이었으며 원래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부유
    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은 마리아였습니다.
    훌륭한 어머니에게서 훌륭한 자녀가 태어난다는 것은 마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가는 어머니의 영향을 입어 진리를 사랑하고 복음을 기쁘
    게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저술할 수 있었고 베드로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서의 사
    역을 잘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가는 베드로와 마리아와 바울의 영향을 많이 받고 복음 사역을 하
    였으며 특히 마가는 마가복음을 저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즉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
    이고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가복음의 내용을 요약하면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와 희
    생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해설적인 설명보다는 사실적인 기사 자체를 드러내면서 독자들이 교훈을 얻
    도록 내용을 전개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1절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말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은 마가복음의 주요 주제입니다.
    구약에서 이 용어는 보통명사로 사용되는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천사적 존
    재, 또는 선택된 백성 전체를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고유명사로 사용되었을 때는 유일한 메시아의 칭호로서 예수
    는 성삼위 중 제 2위가 되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의 하나님의 아들이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작한 것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
    가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큰 아이가 다섯 살 때로 기억합니다.
    그 때 저는 시골 교회를 담임했었는데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놀다 보면 싸움질
    을 하게 마련입니다.
    심방을 갔다가 교회로 돌아오는데 교회 마당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다가
    제가 들어가니 우리 큰 아이가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저를 보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아빠, 아빠가 더 높아? 병희 아빠가 더 높아?"
    영문을 모르는 저는 자초지종을 알아봤더니 아이들이 자기 아빠가 더 높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싸움질을 한 것입니다.
    "우리 아빠는 경찰이다"
    "우리 아빠는 전도사님이다."
    "경찰이 더 높아."
    "아니야 전도사님이 더 높아."
    두 아이는 서로 자기 아빠가 더 높다고 우기다가 제가 들어가는 순간 훈이(큰
    아이)가 원군을 만난 듯 기세 등등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이겼다는 듯이 얼굴에 홍조를 띠고 씩씩거리는 훈이의 말을 요약하면 간단했습
    니다.
    "야 임마. 우리 아빠의 아빠는 하나님이야. 너 아빠의 아빠는 하나님이 아니잖
    아. 세상에서 하나님이 최고야 임마. 알지도 못하면서 까불어"

    아이들 싸움이란 그야말로 웃기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을 하나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아빠가 누구냐? 어떤 분이냐? 라는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복음서
    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도 이해
    하지 못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신학적으로 접근하지는 않겠습니다. 보편적 이해를 위
    해 몇 가지만 요약하고자 합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선천적 지식과 후천적 지식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할 수 있
    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우주론적으로, 목적론적으로, 도덕론적으
    로, 존재론적으로, 종교론적으로 접근해서 설명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성의 유추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
    는 분이신 데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성경이 보
    여 주는 일반적인 면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한 분이십니다.
    넷째는 하나님은 단순성을 지닌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은 스스로의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계시는 데 그 이름을 이해
    하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여호와, 곧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 했습니다.
    둘째는 엘 혹은 엘로힘, 곧 이방신과 대조되는 강하고 능력 있으며 참되신 하
    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명칭입니다. 특히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으로서 위엄 있
    는 하나님,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암시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아도나이, 곧 주(主)란 의미를 지닌 이 명칭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 대
    하여 사용되기도 하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 되신 그분의 무한 광대한 주권성
    이 보여집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이름에 복합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존재를 살펴보면 다음
    과 같습니다.
    첫째는 '엘'과 복합된 이름이 있습니다.
    ① '엘 로이'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② '엘 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③ '엘 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여호와'와 복합된 이름입니다.
    ①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창22:13,14)
    ②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 (출17:15)
    ③ '여호와 샬롬'은 여호와는 나의 평강. (삿6:24)
    ④ '여호와 체바오트'는 만군(많은 천사)의 여호와라는 뜻 (삼상1:3)
    ⑤ '여호와 메타디쉬켐'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 와라는 뜻 (출
    31:13)
    ⑥ '여호와 로이'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23:1)
    ⑦ '여호와 치드케누'는 여호와는 우리의 의(렘23:6)
    ⑧ '여호와 엘 게물로트'는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 란 뜻 (렘51;56)
    ⑨ '여호와 나케'는 멸망시키는 여호와.(겔7:9)
    ⑩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겔48:35)
    ⑪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여호와(출15:26)
    이와 같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알렸던 것
    입니다.
    갈라디아서 4:6절에서는 이러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 아버지라 했습니다.
    미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십니다.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가 되십니
    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먼저 깨달
    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에 초점이 맞추
    어져 있습니다.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이렇게 놀라운 신학과 조화를 이루면서 기
    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가?

    마가가 복음서를 통하여 끊임없이 묻고 있는 질문은 "예수님은 누구인가?"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
    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 이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신성을 말합니다.
    '예수' ( )란 개인적인 명칭으로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란 뜻
    입니다.
    '그리스도' ( )는 공적, 직위적인 이름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구약의 메시아와 같은 말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선지
    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무를 맡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 예수는 인성(Manhood)과 신성(Godhead)의 양성(兩性)
    의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이 되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려 낮
    아지셨습니다.
    낮아지심을 비하(卑下)라 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높여 주심으로 승귀(昇貴)
    라 부릅니다.
    그렇게 우리 위하여 낮아지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
    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찬송가 94장에서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내용의 가사로 기록되
    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가 되시고, 없는 자에게는 풍성이 되십니다.
    천한 자에게는 높음이 되시고, 집힌 자에게는 놓임이 되시고,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에게는 강함이 되시고, 눈먼 자에게는 빛이 되십니다.
    병든 자에게는 고침이 되시고, 죽은 자에게는 부활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
    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에게는 정함이 되시고, 죽을 자에게는 생명이 되십니다.
    죄인들에게는 중보가 되시고, 멸망 자에게는 구원이 되시고 우리의 평화가 되
    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만국인의 구주가 되십니다.
    모든 왕의 왕이 되시고, 심판하실 주님이 되시고, 우리의 영광이 되십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감격하면서 오늘 우리는 복
    음을 전하고 복음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시작

    '복음' 이란 뜻의 '유앙겔리온' ( )이란 원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의미했으나, 점차 '좋은 소식' 그 자체를 뜻하게 되었
    습니다.
    그렇다면 재해석해서 좋은 소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물론 교리적으로 이 말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의 삶과 죽음 및 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마가는 바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문학 양식, 즉 '복음'이란 유
    형을 창안한 것입니다.
    이 복음에 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이란 말의 원래 상용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황태자가 탄생했을 때의
    그 기쁨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전쟁에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복음이 시작되기 이전의 세상은 어떠했습니까?
    한 마디로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인간
    은 자유와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죽는 것도 비참한데 심판까지 받게 된다니 이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거기에다 심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21:8절을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
    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
    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보내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
    게 하셨습니다. 채찍과 조롱과 멸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시고 무서운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리고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구원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
    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시작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집니까?

    죄와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과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절망과 저주에서 희망과 축복으로 살게 됩니다.
    좌절과 불평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율법의 시대에 살다가 은혜 시대에 살게 됩니다.
    미움과 원망에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아가 회복되고 파괴된 자아가 회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를 위한 삶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삶으로 전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외모를 추구하던 생활에서 내면의 감격을 추구하게 됩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던 마음이 이해하고 관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란 이렇게 전환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이라는 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의 '시작'이란 말은 '아르케'(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창세기 1:1절
    의 '태초에'( )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단어로서 곧 예수 그리스도
    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사의 시작, 곧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로 삼고 있
    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특히 헬라어 성경에 '아르케'에는 관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역 성경에서는 관사 the (즉 the beginning)가 첨가되어 있어서 '시
    작'이란 말에 한층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역사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라 하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역사에 있어서 시작은 설레게 하는 용어입니다.
    서슬 퍼렇던 5공과 군사 문화 시대가 물러가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국민들
    은 벅찬 가슴을 누를 길 없었지만 문민정부에서나 국민의 정부에서나 별 다른 감
    동을 주지 못함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입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설레는 마음이지만 막상 입학하고 나면 별 다
    른 의미가 없습니다.
    결혼을 할 때는 세상에서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지
    만 막상 가정 생활을 시작해 보면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 첫 출근을 하면 흥분되는 마음을 가눌 길 없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감동이 없어집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항존직분자로 임직을 받을 때의 설레는 마음과 감격
    은 오래지 않아 감동은커녕 오히려 주님 앞에서조차 부끄럽기 그지없는 삶으로
    퇴락하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날
    부터 날마다 감격과 감동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실제로 성경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고 역사의 훌륭한 신앙인들이 그랬습니다만
    사도 바울은 이 부분의 모델입니다.
    그의 심령에 복음이 없었을 때 그는 세상 것으로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이 그의 심령에 시작되면서 그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부귀 영화를 의지했던 바울이 복음의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오
    직 주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있음으로 행복해 했던 바울이 복음의 시작으로 말미암아 없음으로 더욱 행복
    해 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함으로 기뻐했던 바울이 복음의 시작으로 그는 병들어 있으면서도 날마다
    감사했습니다.
    부요와 재물을 가지고 노래했던 바울이 복음의 시작으로 가난함 그 자체가 그
    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스위스의 법률가이며 철학자인 칼 힐티(1833-1909)는 '생명이 없는 사상'을 지
    적하고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을 실천하는 데서 온다고 강조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증거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에서 그는 "잠 못 이루는 밤은
    인생과 인생의 방향을 성찰해보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말하며 그 시간에 성경을
    보며 변화를 받을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거기서 진정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고 그 복음을 받은 사람이 삶의 의미와 가
    치와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것을 믿는 마음에서 복음의 시작이 됩니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만유와 만사와 만인을 구원하시고
    자 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사랑을 말합니다.

    거기서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의 삶이 연출됩니다. 그것이 생명 있는 그리
    스도인의 삶,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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