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뜻 2002-05-21 10:45:19 read : 246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창세기 37 :10-11 // 2002년 5월 5일
옛날에 어느 시골 노인이 서울 사는 딸네 집을 찾아왔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노인은 당황해 합니다. 그 때 지나가던 친절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다가와 "무슨 도와 드릴 것이 없습니까?" 물었더니 노인이 "딸네 집을 찾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알 수 없습니다." 고 말합니다.
젊은이는 주소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난처해져서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습니까? " 노인은 무릎을 딱 치며 '이제 됐다.' 싶은 얼굴로 대답합니다. "암 있었지, 있었고 말고. 내가 그 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만은 이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착각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보십시오. 자녀를 미스코리아로 키우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위를 절단하는 수술을 한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를 자르면 많이 먹지 못하니까 체중을 미스코리아 체중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서울 강남에 가면 혀 절개 수술이 성업이라고 합니다. 영어 발음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혀 아랫부분을 잘라버린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일이 있습니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이회창씨의 딸이 미국으로 원정 출산을 하여서 화제가 되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자녀를 낳으면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고 시민권을 취득하면 역시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어쩌다 미국시민권을 얻으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이 낭비됩니까? 그러니까 아예 미국에 가서 낳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의 양심을 보십시오. 그는 벌써 아이를 감별해서 아들인지 딸인지를 인식한 사람입니다. 이것도 불법입니다. 또 원정 출산하는데 3000만원의 외화를 허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대한민국 남성들이 군대 가는데 그 아이는 군대 안 보내겠다는 이기적인 심상입니다. 이게 다 너무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격성, 올바른 가치관,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같은 인간의 본질성을 상실한 허망한 생각의 무서운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래 학자 Alvin Toppler는 '미래의 충격' 이라는 책을 통해 21세기는 새 기술의 발달,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물밀듯 밀려오는 정보의 홍수 때문에 현대인들은 많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해 주었습니다. 정말 그의 예고대로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또 한 가지 심각하게 지적하는 것이 곧 가정의 행복 침투입니다. 현대 과학으로 인한 가정의 행복 붕괴입니다. 지금은 유엔에서 복제인간을 법으로 금지해 놓았기 때문에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앞으로 유전인자를 선택적으로 골라서 인공수정을 시키므로 "맞춤아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소피아 로렌의 금발로, 체형은 제임스 본드, 다리는 마라도나를 닮은 복합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위엣 도리와 아랫도리가 달라요. 그러니 가정이 붕괴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롬8 : 24-25)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이 참된 소망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참된 것이고, 본질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 선진들이 증거하였느니라."
선진들이 믿은 것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현상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한 실상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그 약속은 이루어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받아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시들어지지만 보이지 않는 말씀만 세세토록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24-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비 본질의 것들에 현혹되어 우리들의 삶의 목표, 내 자녀에 대한 삶의 목표를 거기에 두고 살아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삶의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하고 우리 자녀들에 대한 목표여야 합니다.
요즘에 자녀들로 인해서 걱정이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하며, 어떻게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가? 저도 부모로서 솔직히 그런 고민들을 합니다. 사랑하는 딸아이가 중간고사를 보는 그 주간에 성경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시편 94편 11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너무 일등을 요구하고, 일류학교를 지향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게 하는 생각들이 다 허무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시험을 보느라 얼마나 나름대로 부담을 갖고 있겠습니까? 자고 싶고, 놀고 싶을 텐데 그것을 억제하고 공부하는 모습 속에서 저 아이가 얼마나 시험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을까?
시험을 마치고 일찍 집에 돌아왔을 때 제가 딸에게 그랬습니다. "예랑아 너는 일등을 해도 내 사랑하는 딸이고, 꼴등을 해도 내 사랑하는 딸이란다. 하나님은 너의 등수에 상관없이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그랬더니 얼굴이 환하게 펴지더라고요.
그 때부터 저의 기도제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과 딸이 하나님의 비전을 소유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을 그의 인생의 목적으로 삼게 하옵소서."
가끔 기도해준다고 "하나님 이들을 축복하사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사실 그 기도가 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 주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공부하느라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하나님 위로해주시고 오늘도 사랑하는 이 아이와 함께 해주세요."
우리들의 생각 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자녀들의 공부에 관한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일류대학에 들어가게 하고 인기학과에 들어가게 할까? 이것이 물론 우리들의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만은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내 자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름답게 자라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게 할까? 여기에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모여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 년 전에 대구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엄마 난 정말 무서워." 하니까 엄마가 "그래 정말 무서운 일이었지" 라고 딸의 말에 엄마가 대답하자 그 여학생은 " 엄마 사고가 무서운 것이 아니야, 우리 반에서 일, 이등 하는 아무개 말이 더 무섭단 말이야" 하면서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엄마 아무개가 우리 또래의 중학생들이 죽어서 잘됐다는 거야, 입시 경쟁 상대가 그만큼 없어져서 좋다는 거야, 난 정말 무서워."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 경쟁자가 줄어들었다고 보고 잘됐다고 생각하는 저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한 젊은이에게 어느 사람이 물었습니다.
" 자네 열심히 공부해서 무얼 하려는가?"
" 대학 들어가야지요."
" 그 다음엔."
" 졸업하고 취직해야 지요."
" 그 다음엔?"
"--."
여러분! 우리들의 삶의 목표, 우리 자녀들에 대한 목표가 그 다음에 대해 대답할 수 없는 것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에 대한 양육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의 의도나 나의 생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못다 한 한을 자식을 통해서 얻으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자녀의 소질이나 능력이 고려되지 않고 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주입시키는 모습, 그래서 '너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해' 라고 하는 강요가 아니라 그것은 여러분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입니다. "하나님! 지금 제 자녀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하는 그 계획을 우리 부모님들이 영적인 혜안과 통찰력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기 전에 먼저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주입해버립니다.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너는 법관이 되어야 해."
부모님의 의도 화된 틀에 맞추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왜 공부해야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없습니다. 그 목적이 없으니까 기쁨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그저 공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하니까 나도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비전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음악가 정명훈씨의 어머니는 그의 자녀들에게 음악이나 악기 연주를 강요하고 고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가지고 놀게 했고,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게 했고, 첼로를 가지고 그냥 놀게 했는데 각각 아이들이 정명화는 첼로를, 정경화는 바이올린을 정명훈은 피아노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자기에게 맞는 악기를 더 열심히 연주하게 배려를 해주었더니 오늘날 세계적인 음악가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삶의 목표를 부모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있는 소질과 재능과 은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하고 그 은사를 따라서 공부하게 하는 안내자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이 나옵니다. 요셉은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만은 한편으로는 형들의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해와 달과 그리고 11별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꾼 것입니다. 어린 요셉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고 그것을 그만 형들에게 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비가 철없는 요셉을 교만해질까봐 꾸짖었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사게 될 일을 생각하고 꾸짖은 것입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형들이 그 때부터 요셉을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비는 요셉을 꾸짖었으나 그 꿈에 대해서 마음에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어린 예수님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절을 보시면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아들의 준수함을 알아 차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예수님에게로, 교회로 데려오는데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정말 발견하는데는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시면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미가 자녀들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면 내 아들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세배대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예수님에게 데려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녀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예수님에게 데려오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그 자녀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지 못하고 그녀의 욕망을 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에게 지금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어떤 목적을 두고 눈물과 기도와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기르시고 계십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워가게 하는 것이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 그는 이렇게 자랐습니다.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워갔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는 것, 그것이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링컨이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을 하나님은 한 가지도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를 주셨다."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동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링컨에게 읽어주고 자기고 읽으면서 신앙을 심어주었습니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유언을 했습니다. 그 후에 계모가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다행히도 새로 들어온 어머니도 링컨에게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빈곤함 속에서도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말씀과 기도와 가르침이 링컨으로 하여금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라고 일컬어지는 록펠러 그는 지금의 미국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보다 13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결코 부자가 되려는 꿈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바로 영적인 것이었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10가지 삶의 지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열 가지 삶의 지침은 이러합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4. 예배시간에 항상 앞에 앉아라.
5.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6. 주일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7.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8.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9. 아침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꼭 잃어라.
10. 잠자리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록펠러의 삶을 보면 그의 삶의 한 순간 순간을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의 삶의 진정한 목표는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어렸을 때의 삶 어디를 보아도 재벌이 되려한다든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든가 하는 꿈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존귀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날이면서 또한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여러분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시는 부모님, 말씀과 사랑으로 축복하며 양육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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