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에 2002-06-06 13:46:39 read : 1397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사야 41:11-14
2002. 1. 13.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붙잡혀 있습니다. 단 그 붙잡힘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 붙잡힌 상태를 우리는 하늘을 나르는 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릴 때 빈들에서 연을 날리던 일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며 연은 띄우게 되는데, 연줄은 얼레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연은 사람이 얼레를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께 붙잡혀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단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것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이를 부인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붙잡히는 것이 싫어 이를 부인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연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 연줄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렇게 되면 그 연은 잠시 마음껏 나르는 것같다가 오히려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연은 연줄에 매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에게 붙잡혀 있어야 진정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사는 방법입니다. 연과도 같이 우리의 인생이 훨훨 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올해도 하나님께 붙잡혀 있는 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서 41:13상반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붙들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약할 때 전해진 말씀입니다. 구약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에 잡혀 있을 때 전해진 말씀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새로운 패자로 등장할 때 전해진 말씀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자원해서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전해진 말씀입니다. 힘없고 약한 포로된 이스라엘 사람들 고레스의 노예가 되어있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내용은 상황과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라는 외침입니다. 이를 들으며 하나님의 백성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소망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신다고 하니 무엇인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을 가지며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힘의 중요성은 건물 안에 갇힌 어떤 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영천 산골짝의 상송교회에 있을 때 한 번은 새가 교회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새를 잡아 밖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 새는 잡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본능적으로 자유하려고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의 창문, 밖이 환하게 보이는 그 작은창을 향해 날다가 부딪혀 결국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새의 머리로는 자기를 살려주려는 선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선한 마음으로 붙잡으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방종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붙집힘을 받을 때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것도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 심어놓은 현상이요 힘입니다.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발견된 것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만물이 서로 힘에 의해 붙잡혀 있다는 쟌 뉴톤의 만유인력은 믿으면서도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붙잡혀 있다는 것은 믿지를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민감하고 밝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믿습니다. 더욱이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체험한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를 믿는 사람을 하나님은 더욱 굳세게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되 그것도 오른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왜 하필이면 오른손을 붙잡으실까요?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중동의 사람들은 오른손은 권능의 손이요 정결의 손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른뺨을 맞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오른쪽 뺨이 왼쪽 뺨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나타냅니다. 오른쪽을 왼쪽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은 유교문화권에 속했던 우리 한국에서도 아직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고 있어도 우리의 강하고 중요한 부분을 붙잡아 주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세우시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누군가가 여러분의 오른팔이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면, 답답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는 자기가 자유롭지 못하고 구속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능력껏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제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로 하여금 내 마음대로 행동하려는 것을 절제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통제함으로써 우리에게 오른손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그분에게 붙잡혀 있을 때 우리에게 더 놀라운 능력이 전달되고 우리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진정 영적이며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님께 붙잡히려 합니다. 그것도 더 많이 붙잡히려 합니다. 이는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에게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힐 때 진정한 자유와 더 나은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오른손을 붙잡힌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일을 당해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오늘 말씀 41:13을 보면, “두려워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포로기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적으로는 당시 고레스 왕을 두려워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두려움을 이기고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교우라 한다면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모습을 배우십시요. 여호수아 1:9을 보면 하나님은 그의 종 여호수아를 세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세울 때 결코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힘을 받고 세상의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두려움 앞에서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두려운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사고에 대한 두려움, 굶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랑의 상처를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등 많은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합니다.
요사이 자녀로 인하여 두려움을 가진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입시 때이기 때문에 대학에 지원한 자녀들을 가진 많은 학부모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이가 교회에서 오래 머물면서 학업에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면 아예 교회에 보내지 않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은 별로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요즈음 아이들은 홀로 서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서로에게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흡연에 휩쓸리기도 하고, 자기만 똑똑하면 최고라는 가치관에 휩쓸리기도 하고, 돈이면 최고라는 생각에 휩쓸려 몰래 몸을 파는 여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무엇을 두려워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녀들을 방치하기도 합니다. 진실로 제 주변에도 교회에 나옴으로 인해 시간을 빼앗긴다는 두려움에 자기 자녀들을 신앙생활에서 제외시켰다가 진짜 더 큰 두려운 일을 당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바램대로 그대로 잘 움직여 주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게 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부모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입니다.
반면에 저희 교회 고등부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대표적인 학생이 있습니다. 아주 똑똑한 학생입니다. 그는 삼학년으로서 오히려 선생님을 설득하여 일요일에는 학교의 자율학습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예배 전에 찬양을 인도하고 여름수련회에도 가서 뜨겁게 찬양을 인도하였습니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 학생이라고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적인 두려움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이겨나가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을 자녀로 가지고 있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로 하여금 교회에서 이러한 학생들과 어울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자기를 도우시며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학생 옆에 가면 그래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접적으로라도 받게 됩니다. 학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자세를 그 학생을 통해 보고 느끼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면서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알 수는 없어도 한 가지 분명히 믿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면서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도움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도우셔서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직접 도우시는 모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전을 지킨 어느 목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인 2001. 6. 26에 발간된 릴리전 투데이(Religion Today)에 소개된 사건입니다.
저는 러시아에 가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교통 요지에 굿뉴스미션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 교회를 신축중이던 디미트리 샤트로프 목사는 교회를 빼앗으려는 마피아와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교회는 탁월한 입지 조건과 상업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근 20m 지점에 하루 약 30만 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전철역이 있어 상업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교회 건물을 빼앗아 돈을 버는 장사를 하려는 마피아로부터 목사님은 지속적인 살해 위협을 받았던 것은 당연합니다. 마피아들이 폭탄으로 목사를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에 한 술 더 떠 마피아들은 정부 관료들까지 동원하여 매일같이 그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한번은 마피아 조직원이 샤트로프 목사를 찾아와 이러한 위협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10부작 TV프로그램을 만들어 1편은 이미 지역 TV방송국을 통해 방영했고 나머지도 곧 방영하겠다”고 협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샤트로프 목사는 이렇게 맞받아 쳤습니다. “당신은 나와 굿뉴스미션교회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싸우고 있는 것이요.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다시 살게 될 것이요. 그러나 당신은 어떻게 되겠소?” 그러면서 교회를 지킬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1주일 뒤 샤트로프 목사를 협박했던 마피아 조직원은 교통사고를 당했고 나머지 프로그램은 방영되지 못했게 되었습다. 그러자 샤트로프 목사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피아로부터 당하는 일련의 시련을 통해 나는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고 그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국민일보 2001. 6. 30.)
샤트로프 목사는 정말 두려움이 없었던 목사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며 도우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데 무엇이 겁날 것이냐는 비장한 각오로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크면 클수록 또한 이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없으면 없을수록 하나님은 더욱 도우시고 힘을 주시며 축복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징벌하십니다. 이는 교회 밖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에게 해당이 되기도 하고 또한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대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대구제일교회를 붙잡아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교회를 도우시고 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