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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사랑이라도
    2002-05-31 23:47:54   read : 1650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성경구절 : 요한 21:15-17
    - 설 교 자 : 주승중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왜 주님께서 실망과 좌절의 늪 속에 빠져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시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게 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날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 이유는 그가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연고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베드로가 실패한 원인은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요, 그가 용기가 부족해서도 아니요, 오직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랑이 부족하였기에 베드로는 실패하였고,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되었고,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는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모든 원인은 사랑이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성가대의 찬양처럼,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끝까지 믿지를 못했습니다. 끝까지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 예수님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그 분이 가장 외롭고 힘든 시간에, 가장 옆에 있어주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그들은 다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사랑하는 이가 기쁘면 나도 기쁘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울면 내 마음도 울고, 사랑하는 이가 슬프면 내 마음도 슬프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바로 그 순간에.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은 다 주님을 떠났습니다. 왜 입니까? 결국 끝까지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는 자신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더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참지를 못했고, 끝까지 견디지를 못했고, 결국 다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실패의 원인은 사랑의 결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로 이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한번 사명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확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하는 장면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서 보았던 장면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실망에 가득 차 있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위하여 숯불을 지피시고, 생선과 떡을 구워 아침식사를 대접해 주신 후에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숯불…숯불…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까? 요한 18:18 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바로 이 장면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숯불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해변 가에 숯불을 피워 놓으신 것은 의도적인 세팅이 아닐까요? 우리가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숯불 자체가 베드로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 피운 숯불 가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요한 21:14을 보십시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처음 나타나셨을 때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셨을 때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나타나셨을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나타나셨을 때, 주님께서는 이 질문을 세 번 물으셨습니다. 결국 이런 모든 내용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나게 만들고 있습니까? 이것은 베드로가 숯불 앞에서 세 번씩 주님을 부인했던 장면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가야바의 집 뜰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하였던 바로 그 실패의 자리로, 주님은 베드로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실패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처절하게 실패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 실패의 깊은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이렇게 옛 생활로 돌아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지금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야, 나는 너의 실패를 안다. 나는 네가 나를 부인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네가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나는 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용하기를 원한단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두 번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물으셨고, 마지막 한 번은 필리아의 사랑으로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던 아가페의 사랑 “아가파스”는 그 동사가 현재형입니다. 역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필레오의 사랑 “필레이스”도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사랑이 어떠했느냐를 추궁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의 질문은 “너 나를 사랑하기는 했느냐”라고 과거의 사랑의 실패를 책망함에 그 목적이 있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네가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를 물으심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네가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이 질문은 “베드로, 너, 왜 전에 나를 부인했어?” “어떻게 네가 나를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는가?”라고 책망하심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주님은 주님을 향하신 사랑을 다시 한번 회복시키고자 이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일어나 주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시고자 이 질문을 하고 게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최상급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여기 있는 모든 것들 보다 더, 누구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그 다음에는 한 단계를 낮추고 양보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마지막에는 더욱 양보하여 시몬의 차원으로까지 내려오셔서, ‘네가 작은 사랑, 인간적인 사랑, 형제간의 사랑으로라도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그 사랑이라도 원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 여러분, 저 2천년 전에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사랑을 확인하시고 그들을 실패와 낙심의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사명을 주셨던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이 사랑을 확인하시고자 묻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들아, 내가 너의 슬픔을 안다. 고통도 안다. 내가 너의 실패도 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했던 것이 너의 성공이나 잘남 때문이 아니지 않느냐. 나는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했고 실패한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사랑한다. 너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다” 주님은 우리의 불충성,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들아, 네가 이 모든 것들보다,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더 나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들아, 너는 정말 나를 위하여 너 자신을 희생하고, 내어 던질 용의가 있느냐?” 이 주님의 물음에 오늘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요구하는 최상급의 사랑이 부담스러우냐? 그렇다면 내가 양보하마. 너희들은 지금 나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이 주님의 물음에 오늘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동안 교회 성도들아, 아가페의 사랑이 너희들에게 아직도 너무나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너희들은 필리아의 사랑으로라도 나를 사랑하느냐?” “오, 주님! 저는 지난날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했지만,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저는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주님이 보시기에는 보잘 것 없는 필리아의 사랑이지만, 이 사랑으로라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이런 대답이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과 같은 사랑,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기 까지 주님을 사랑한 순교자들의 사랑과 같은 커다란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베푸신 그 엄청난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작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작은 사랑이지만, 거기에는 진실함이 깃들어 있는 사랑입니다. 솔직함이 깃들여 있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사랑, 이런 고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이것이 작은 사랑이지만 주님께 참 고백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사명의 음성입니다. 주님의 이 음성은 비록 네가 전에는 실패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음성입니다. 비록 자신의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진정 주님을 계속해서 사랑하기를 원했고, 주님께서는 그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시간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비록 부족하지만,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이 시간 우리는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는 그 사랑을 주님을 대신하여 내 옆의 연약한 형제와 자매들을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양들은 원문에 의하면, 이 역시 단어가 다 다릅니다. 첫 번째 양은 아주 어린양(아르기아)을 말합니다. 두 번째 양은 조금은 성장하였지만, 완전한 성숙한 양이 아닌 아직은 미숙한 양(프로바타)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말씀하신 양은 성숙한 양(프로바티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주님을 대신하여 이제 각 태어난 양에서부터 성장한 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양들을 구별 없이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러분, 정말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전혀 생존하기가 어려운 갓 태어난 양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 성숙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너무나도 쉽게 상처 받고, 너무나도 쉽게 넘어지는 양과 같은 미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주변에는 겉으로는 성숙해 보이지만, 여전히 방황하며 갈 바를 몰라 헤매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주변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 돌보아야 할 형제, 자매가 누구입니까? 아마도 우리 각자에게 떠오르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용서함을 받은 우리가, 먼저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먼저 다시 세우심을 입은 우리가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돌보아 줄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저 수많은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나아가십시다. 우리들의 사랑과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세상의 상처 받은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십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상처 받은 사람들, 그래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힘입어, 섬기고, 봉사하고, 고치고, 싸매러 나아가십시다. 물론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의 역사 안에서 내 어린 양, 연약한 양들을 먹이고 치라는 명령을 우리도 순종하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끝가지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제자들,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느라 끝까지 참고 견디지를 못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성령의 감동으로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하고, 결국은 모든 순교한 것처럼 우리들도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감화 감동하심을 힘입어 끝까지,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동안교회 성도들아, 너희들이 나를 필리아의 사랑, 인간적인 사랑으로라도 정말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랑으로라도 내 대신 저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 저 상처 가운데 있는 잃은 양들을 고치고 싸매어 주지 않겠느냐?”

    주님의 이 음성에 대한 여러분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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