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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을 만난 남자
    2002-05-31 23:40:20   read : 1660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성경구절 : 요 3: 1:-15



    오늘날 우리는 주변에 복음의 본질을 헤치는 여러 가지 사상과 문화들로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독선이냐고 반문합니다.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우리 속에도 그런 분이 계실 것입니다.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가?’ 이런 분들이 제기하는 공통된 질문이 ‘그럼 예수님 태어나기 전에 살던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자기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다른 수많은 사람 고민까지 떠안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독선이라면 아이는 여자만 낳아야 됩니까? 남자는 왜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까? 독선이지 않습니까? 남자가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는 독선적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분명한 사실은 독선이기 이전에 진리요, 사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보편적인 가치와 절대가치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문화의 특징은 상대화시키는 문화입니다. 네 의견이 가치 있는 만큼, 내 의견도 가치 있고, 하나님도 좋고, 누구도 좋고, 다 좋고...... 그러나 진리가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예수그리스도 외에 거듭남의 길이 없고,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4절에서 6절까지 말씀 보면, 거듭나는 것에 대해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여기에서 거듭난다는 것을 예수님은 육체적 출생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단순히 육체적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것은 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났다”라는 의미를 바울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완전히」 새것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거듭났다는 것, 새롭게 됐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 되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새롭게 변화되었다고 합니까? 에배소서 2장 1절에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허물과 죄로 이미 죽어서 시체와 마찬가지인 우리를 주님께서 거듭나게 함으로써 새롭게 된 우리는 완전한 새로운 생명, 변화된 생명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말, 영적으로 죽었다는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을 다시 되새기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과 교제를 갖고, 주님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받은 영향을 나누어주는 삶,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살아있는 삶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나 진보가 아닙니다. 발전이 아닙니다.

    미국 장례식을 보신 분들은 아마 아실 것입니다. 한국에는 입관예배 때만, 관 뚜껑에 못을 박아서 다시 못 보게 만들지 않습니까? 미국에서는 장의사가 내장을 다 들어내고, 방부제 처리하고 평상시 고인이 입던 정장에 엷은 화장까지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반듯이 누워 있으면 얼마나 평온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냄새나지 말라고 향수도 뿌립니다. 그렇게 해서 가만히 눕혀놓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새롭게 된다는 것은 시체에게 화장시키고 향수 뿌리고 그래서 보기 좋게 만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참 아름답게 사는 것 은 시체 위에 화장하고 향수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생명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꽃꽂이를 해서 놓고 보면 살아 있는 것 같지요? 그러나 뿌리로부터 줄기가 꺽이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꽃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은 시간이 가면 자연히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나면 우리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은 백성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거듭날까요? 14절부터 16절까지 말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4절부터 16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 거듭남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하였던 놋뱀에 대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민수기 21장에 보면, 광야생활로 지치고 힘든 것 때문에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독으로 죽어가게 만듭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와,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에게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지었다.” 고 회개합니다.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 달라고 하면서.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높은 장대, 십자가처럼 생긴 높은 장대 위에 놋뱀을 걸어놓고, 누구든지 이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낫겠다고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살고자하면 불뱀에 물려 퉁퉁 부었지만 놋뱀이 보이는 곳까지 가야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럼 그렇지. 뱀에 물려서 독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놋뱀을 쳐다본다고 사냐? 세상에 이런 일은 없어.’ 하고 생각하다가 독에 의해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이런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방법이 없으니 해 보기나 해보자.’ ‘밑져봤자 본전 아니냐?’ 하며 바라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법이 불평과 원망으로 주님을 대적하는 길이었다면, 이제는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보자는 마음으로 나갔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고 안 바라보고 행동하기 이전에는 먼저 마음속에 결단해야 될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자기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불평했던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이래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나의 경험, 내 상식, 지식, 교양 등 이 모든 것이 옳다고 얘기하는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 진리의 말씀이고, 그 말씀 속에 생명이 있고 살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놋뱀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놋뱀의 비유를 든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최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릴 때에, 그 때 참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모실 때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의 역사가 열려짐을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부활하시고, 그래서 나의 부활의 모형이 되어 주시고, 첫 열매가 되어 주시고, 나를 위해서 승천하시고, 그리고 나를 위해서 다시 오신다는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하고 K군 하고 오래된 친구라고 가정하십시다. 저의 집은 굉장히 잘 삽니다. 아주 부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머리도 둔하고 뭔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K은 집은 가난한데 아주 똑똑하고 영리하여 무엇이든지 잘 해냅니다. 갑자기 저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근데 유산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일 때, K군이 저를 찾아옵니다.

    “형준아! 너와 나는 오랜 친구가 아니냐? 그런데 말이야 너도 인정하다시피, 너는 머리가 둔하고 이 돈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니? 너는 이 돈 가지고 그냥 허비하는 것 밖에 더 하겠니? 네가 만약 이 모든 재산을 내 마음대로 사업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싸인해 주면, 내가 법적으로 마음대로 이 돈을 활용할 수 있도록 나에게 권리를 이양해준다면 네가 언제든지 와서 돈 달라고 그럴 때 내가 줄께. 돈이라는게 뭐니? 쓰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니? 다 재워놓고 있는 것이 돈이 아니야 쓸 수 있어야 되는데 네가 쓰겠다고 할 때 얼마든지 줄 테니까 그렇게 하자.”

    그렇게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법적 절차를 밟아 그대로 했습니다. K군을 찾아가 “야, 100만원만 줄래?” 100만원을 줍니다. “200만원 줄래?” 200만원을 줍니다. 기분 좋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K! 300만원 줄래?” 그랬더니 “오늘은 못 주겠어, 요즘 사업이 힘들어. 요즘 잘 안되고 말이야 노사분규도 많고......원자재 값도 안 되고, 회전도 안 되.”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저는 돈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한번 두번 반복되더니, 나중에는 “이 돈이 네것이냐 내것이지?” 제가 너무 억울해서 재판을 걸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왔습니다. 재판관이 묻습니다. “원고 김형준은 어떻게 피고를 고소하게 됐는가?” 물을 때 우둔한 저는 설명은 못하고 울며 바보짓 하면서 화만 내니 사람들이 앉아서 “쯧쯧쯧” 하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 다음 “피고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습니다. 똑똑한 피고는 “존경하옵는 재판관님!”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만장하신 여러 방청객 여러분,” 그리고 “교양이 넘치는 배심원 여러분...” 이렇게 해서 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모두 설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는 것입니다. “맞다, 맞다.” 이제 마지막 판결이 남았습니다. 저의 모든 재산이 K군에게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재판관이 묻습니다. “너의 보혜사가 어디 있느냐? 너를 마지막으로 변호해 줄 사람이 어디 있느냐?”그 때 저 뒤에 있던 N군이 자신을 보혜사로 인정하라고, 변호인으로 인정하라고 싸인을 보냅니다. N군이 무슨 말을 할 지 저는 모릅니다만 친구를 믿기로 했습니다. 저 사람이 나의 보혜사라고 이야기해서, N군이 자초지정을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이야기하니까 앉아있던 재판관이 일어났다 앉았다하면서 “저, K 나쁜놈 말이야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냐!” 이렇게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됩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다 사하여 주셨고, 그리고 그 죄와 사망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날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고, 다시 오셔서 나를 영광 중에 맞이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를 날 구원하시고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신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는 순간, 나에게 거듭남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함에 이르게 되는 거듭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자신이 보기에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는 사람, 부족함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보는 나,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만드시고 창조하신 그 하나님, 그 성경이 나를 보는 관점은 죄인이라는 것과 반드시 둘째 사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런 나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모든 죄와 저주를 다 짊어지시고, 내 죄를 사해주시고 나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주님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시인하게 될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의 삶 속에 우리는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을 영접할 때 이 땅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했던 삶이 변하여 고통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게 됩니다. 절망과 좌절이 끝이 아니라 궁극적인 소망과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생함을 소유한 백성의 감격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의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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