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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2002-05-31 19:00:11   read : 184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 13:34-35


    어떤 바보스러운 사람이 어느 누구도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실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이 바보가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산에 가서 소릴 지릅니다. 산에 갔더니 산도 자기를 아는 체 하지 않습니다.

    이 바보는 산에 가서 얼마나 비관했는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그랬더니 산울림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현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분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쳐보십시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바보스러운 사람은 다시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소리가 다시 메아리로 들려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인간은 사랑을 베풀 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인 것입니다. 사람은 독자적인 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홀로 독거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그의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정을 두시고 사회를 만드십니다.

    사회 공동체 속에서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자생존이니, 생존경쟁이니 하는 말을 듣고 배우면서 그것이 옳은 양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를 내 세웁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진화론적 원리를 도입한 공산주의가

    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산주의 적자생존 법칙의 모순 속에서 생활했던 러시아의 크로프트키는 이러한 논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개미의 세계를 통하여 생명의 원리로 설명합니다.

    상부상조의 원리를 주장합니다. 개미의 세계를 보면 개미의 몸의 구조 자체가 사랑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위가 둘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요, 또 하나는 저축했다가 배고픈 개미에게 나누어주는 위입니다. 그래서 개미는 굶어 죽는 놈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배고픈 자에게 나눠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상부상조하는 짐승만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살고 남을 죽이는 짐승은 멸종합니다.

    상부상조의 영역이 넓은 짐승일수록 생물의 세계는 더 많이 살아남습니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도 서로 나눠주고 서로 베풀 때 함께 공존하고 함께 발전해 갑니다. 나만 살겠다고 하는 세계는 함께 망할 뿐입니다.

    그러나 상부상조, 서로를 위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서로를 존중해주며 살아갈 때 그곳에 평화가 있고 번영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서로 서로의 법칙으로 존재합니다. 서로 나누어주는 원리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분석해 보면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새로운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34-35)

    '사랑', 이것은 계명이요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새로운 계명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 율법사의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크니이까?"라는 질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이미 계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새 계명'이라고 합니다.

    왜 주님은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요? 새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계명 자체 보다는 그 계명의 근본정신, 그리고 계명에 대한 바른 순종과 행함이라는 차원의 의미인 것입니다. 강요에 의해서, 어떤 의무감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면서 순종적인 자세로서 지켜야할 계명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랑의 새 계명을 온전히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로 무엇보다도 서로 섬기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한때 런던에 유명한 세 교회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 스펄젼 목사님, 켐벨몰간 목사님이 그 분들입니다. 그중에 마이어 목사님의 인기가 약간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마이어 목사님이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왜 그런지 나는 기도만 하려고 하면 스펄젼과 켐멜 몰간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자꾸만 일어난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의 마음 속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시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만 했지 스펄젼 목사를 위해서, 몰간 목사를 위해서 축복하는 기도를 해 보았느냐?"

    마이어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그 두 교회가 잘 되게 해 달라"고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자기의 노트에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평안을 얻었다. 기쁨이 솟는다. 나에게 이러한 자유와 환희를 가져다주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나는 비판했다. 하나님 이제 다시는 비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나를 도와주시고 계속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축복하며 살 때에 진정한 사랑을 배울 수 있고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받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높아지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사실 남을 축복하는데에 인색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섬김의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섬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본 본문 말씀의 앞에서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서로 발씻어주기를 거부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스승으로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섬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 10:45)

    그런데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섬기는 삶의 모습!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실제적으로 주님을 위해,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진정으로 섬기며 봉사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나의 봉사에 섬김이 없다면 주님 보시기에 전혀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니다.

    성경말씀을 보십니다. 마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성도의 삶은 소금과 같은데 그 소금이 맛을 잃으면 버리워 밟힐 뿐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소금이 맛을 잃는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바라보고 받아들이십시오. 우리는 소금을 바닷물을 정제하여 만드는 결정체이지만 이스라엘의 소금은 주로 바위와 같은 소금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정제하여 분리하면 소금과 쓸모없는 가루만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 남은 가루는 독성이 있어서 밭에다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저 길가에 버려서 사람들의 발에 밟혀 굳어질 뿐입니다.

    우리의 봉사에, 신앙생활에 주님을 닮은 진정한 섬김이 없다면 바로 이 맛을 잃은 소금 덩어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때로 우리의 힘겨운 봉사는 주님께 걸림돌이 되어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시간 진정으로 여러분을 향한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봉사할 때 섬김의 자세로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교회에서 대접받기를 바라기보다는 남을 섬기는 데에 힘을 쏟는 주님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지만 때로 정말 지치고 힘들어 시험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해 섬기시려 우리를 찾으십니다. 배반하고 자기를 떠났다 하더라도 다시 그들을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를 찾아와 "내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너는 목자라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버렸지만, 그래도 너는 목자다.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한 구석에 있는 진실을 보시고 나를 찾아주시고 나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무엇을 불평합니까? 일에 대해, 삶에 대해 불평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불평할 자격이 있습니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지만 나에게 맡겨주십니다.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미 시간이 지나서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오셔서 나에게 일을 주십니다. 삶의 희망을 주십니다. 이 희망을 주시는 사랑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 희망을 갖은자로서 이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만큼의 것을 저 사람에게서 받지 못했다고 원망하시며 살아가십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퀴리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십시다.

    퀴리부인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 즉, 단 한번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볼 때마다, 학교에 갈 때와 학교에서 돌아올 때 다른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숱하게 키스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의심하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딸인 나를 사랑한다면 어째서 나에게 단 한번도 키스해 주시지 않을까? 진짜 엄마가 아닌게 분명해'

    어린 퀴리는 고민도 했고 슬퍼도 했습니다. 결국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어머니가 딸에게 키스해 주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일생동안 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키스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결핵으로 죽은 다음에야 그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사랑함에 미숙하다고 합니다. 사랑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에 인색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이미 받은 것들 (믿음, 축복 ....) 보다는 받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도 없고 온통 불만과 원망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미련없이 베풀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느 집사님은 아이가 셋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썩 자랑하고 내놓을 만한 아이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같이 대학 입시에 제때 들어가지 못해 재수·삼수까지 하고, 또 남들이 알아주는 그러한 학교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막내 아이가 성적이 좋지 않아 아이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분은 근심하지 않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목사님이 위로라도 해야겠다 싶어 말을 꺼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자녀들로 인해서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곱게, 잘 자라주어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자기는 그 아이들 나이 때 집안에서 골치 덩어리였다고 합니다.

    툭하면 집나가기 일쑤었고, 나가서 몇 일, 몇 달씩 들어오지 않고 그렇게 속을 썩였답니다. 그러한 자기를 부모님이 한 번도 마음 상한 소리 안 하시고, 받아주시고 또 믿어주시더랍니다. 그때 받은 그 사랑 때문에 자녀들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안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모습이 이 아이들의 전부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이 있었기에 이제 그 자녀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 받지 못했다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다른 사람에게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혹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온 그 자체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이 받았느냐 적게 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단지 그 깨달음의 깊이가 다를 뿐입니다. 깨달음의 차이입니다.

    이 사랑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면, 혹시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없다면 바보같이 받아들이십시오. 어리석은 자같이 믿으십시오. 그리할 때 그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순수한 종이에 물감이 잘 스며듭니다. 그리고 좋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랑으로 이제 사랑하십시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죄인인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결코 의로운 사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세리도,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 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6-47)

    내가, 다른 사람들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인정해 주고 사랑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용납하고 세워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비록 인간적인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내 기준에서 볼 때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도 그를 인정하고 함께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실제적인 적용) 메아리처럼 서로 외쳐봅니다. @ 나는 너룰 미워한다 @ 나는 너를 사랑한다

    여러분의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진정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옆사람과 인사하기/안아주기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 누가 그분의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주님은 그들을 인정해 주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요 13:1) 세상 사람들은 저주받았다고 더 이상 치료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그래서 버림받은 자들을 향해 "이도 아브라함의 딸이다" "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진심이고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입니다.



    3) 그리고 세 번째로,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고 나누어야 할 사랑을 끝까지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데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루빈스타인이 한 말이 있습니다.

    "하루만 연습을 거르면 내가 알고, 연습을 이틀만 거르면 내 친구가 알고 연습을 사흘을 거르면 내 청중들이 안다. 사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맘 먹은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단점을 용납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희생한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손해 볼 수 있고, 수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힘이 들고 어렵지만 내 가족들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웃어줄 수 있는 마음, 다른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기도해 주는 희생이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희망 있는 말 한마디, 미소로 함께 해주세요. 나의 바쁨, 나의 피곤함을 생각하기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내가 함께 해줄 수 있는 배려함이 사랑입니다. 나를 내세우고, 내 중심으로 판단하고, 미워하고 다툴 여유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섭섭하다고 할 여유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웃어주세요. 배려해주세요.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힘입니다.

    사랑의 능력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35절)

    여기에는 증거와 변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보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가 어떠한지 저들이 경험하고 배우며, 동참한다는 의미입니다. 빛이요 소금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전도와 선교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 주님의 제자됨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제자됨을 복음과 그 사랑으로 드러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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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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