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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라
    2002-05-31 18:40:16   read : 167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호수아 1:1-9





    얼마 전까지 많은 인기를 누렸던 TV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이 종영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견훤이 다스리던 백제가 망하고 왕건이 다스리던 고려가 삼한을 통일 할 수 있었던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이 됩니까? 다들 동감하시겠지만, 올바른 후계자를 세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는 일찌기 후계자를 결정하고 후계자로 하여금 바른 통치자가 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비록 견훤은 훌륭한 통치자였긴 하지만, 그는 후계자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실패하여 결국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견훤이 후계자 결정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맏아들 신검이 통치자로써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에 막내인 금강을 후계자로 세우려했는데 결과적으로 신검의 반란의 계기를 주었을 뿐입니다.

    저는 "태조 왕건"을 잘 시청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보면서 "후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후계자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그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지도자가 훌륭할수록 그 다음 지도자는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부담감은 지도자로써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어느 때에는 장애의 요소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지도자로 하여금 탈진의 위험도 따르게 합니다. 더욱이 이전의 지도자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할 때,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진다거나 선임 지도자가 쌓아놓은 비전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그는 지도자로써의 미래가 불투명해 집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런 맥락 속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모세의 죽음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⑴ 모세의 죽음

    출애굽의 영웅이었던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물을 내는 것처럼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들로 하여금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었음으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징계하심으로써, 그들을 지도자로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눈의 아들로써, 모세의 시종, 즉 오늘날로 말하면, 부관으로써 모세를 보좌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 맞붙은 르비딤 전투(출 17:8-16)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모세와 동행했고(출 24:13-14), 가나안 정탐시에는 갈렙과 더불어 신앙적 보고를 하는 등(민 13:8 ; 민 14:6-9), 모세 곁에서 충실히 모세를 보좌하면서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쌓아 갔습니다.

    이런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부르셨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내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때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는 이 부르심에 흔쾌히 응할 수 있었을까요? 쉽게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실제로 여호수아는 전투 경험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전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위험성을 알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도자의 자리를 받아들이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모세가 죽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두렵게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신 것일까요? 우리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모세는 불신앙적인 태도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보아, 여호수아는 모세와는 달리 하나님을 향한 투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수24:15)"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⑵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여호수아를 부르시면서, 그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습니다. 3-6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과연, 백성들이 나를 따라줄까?"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학식도 있고, 능력도 있던 모세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했는데, 과연 자신을 얼마만큼이나 따를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이런 여호수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확신이었습니다. 어떤 확신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은 그래 본 경험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할지, 이것도 난감했습니다. 이제껏 이스라엘 백성을 묶을 수 있었던 결속력이 하나님이었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써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신 하나님은 모세와 맺었던 언약을 여호수아와 맺음으로써, 분명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각인시키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그분의 약속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부르심에 있어서 불러놓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만히 놔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언변에 능하지 못하다는 핑계를 댈 때, 그의 형 아론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모세의 단점을 보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그의 급한 성격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약함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이나 물으시면서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양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나를 부르십니다. 역경이 찾아오는 순간 나를 부르십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죽음이라는 역경과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이라는 역경 앞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환경이 어렵습니까? 역경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 같습니까?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 저는 지금 무척이나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말씀하고 싶으십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 역시 수많은 역경과 싸우면서 그것을 이겨낼 때,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왜 여호수아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에게도 역경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40년 전 12명의 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저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외쳤을 때, 나머지 10명 정탐꾼의 불신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뒤돌아서서 광야로 나가야 했었습니다. 왕따 당하는 심정을 아십니까? 파란신호 등이 들어 왔는데 옆 사람들이 모두 그냥 있어요. 그때 혼자서 횡단보도를 걷기는 쉽습니까? 다른 사람은 가지 않는 길을 홀로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그는 그 순간 그 10명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한(恨)이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이 한(恨)을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마음에 품고 살아야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40년의 세월동안 여전히 믿음을 지켜온 나머지 모세의 뒤를 이어 그의 후계자로 부르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역경이 찾아왔다면, 그순간 '기회는 내게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나이가 들고, 때를 놓쳤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 말씀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렇습니다. 비록 말세가 찾아와도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도 내 인생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역경을 이기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십니까?

    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에게 임한 맨 처음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사실, 성도로써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누려야 할 축복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축복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 아닙니까?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의 능력이 뛰어나서, 혹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월등해서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승패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사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음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다윗도 블레셋의 골리앗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돈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높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감옥에 갈 처지에 놓이지 않았습니까? 그뿐 입니까?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100년의 세월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 누구의 힘이었습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 아닙니까? 더욱이 이 엄청난 100주년 기념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던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⑵ 지경이 넓혀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 4절 말씀을 보면, 또 다른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4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성도 여러분,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차지하게 될 가나안의 동서남북의 경계선이 머리 속에 그려지십니까? 430년간 애굽 땅에서 종 노릇하면서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이곳까지 왔지만, 40년이라는 세월을 광야에서 머물면서 이미 백성들 사이에는 잊혀졌는지도 모를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들 앞에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우리의 삶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나안의 동서남북 경계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경을 겪는 순간 생각하는 것은 '일단은 역경에서 벗어나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 앞에 놓여져 있는 역경은 축복의 시작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역경은 극복될 수 있는 순간의 사건임을 기억하세요. 역경이 우리 인생 전체를 메울 수 없음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렸죠!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선하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⑶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할 땅에는 이스라엘 보다 더 힘센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정착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이 여리고를 정복하지 못하고는 가나안 땅에 제대로 정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리고 뿐이 아닙니다. 팔레스틴 서쪽에는 블레셋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을 이기지 못하고는 자신들의 신앙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성도 여러분,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을 원문에 따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네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없으리라)'(any man be able to stand before thee, KJV)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 앞에는 어느 누구도 대적하려고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그들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말씀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라는 말씀이 삶 한 가운데서 체험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요"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입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이기기 때문입니다.



    3. 그러면, 역경을 이겨내야 할 자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구하는 삶의 자세는 무엇이었습니까? 분명, 여호수아에 앞에는 여전히 역경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 그에게 요구하는 삶의 자세는 무엇이었습니까?



    ⑴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7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9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역경을 이기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이 너를 괴롭히는 것은 단지 네가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통이 너를 못살게 구는 것은 네가 그것을 탓하기 때문이다. 고통이 너를 쫓는 것은 거기에서 도망치려 하기 때문이다. 너는 도망쳐서는 안 된다. 탓해서도 안 된다.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그렇습니다. 성도라면, 적어도 역경이 닥쳐올 때, 오히려 역경을 조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역경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이 마음을 담대히 하여 역경을 오히려 성공의 디딤돌로 삼아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⑵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두 번째 자세는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인생을 말씀 위에 올려놓아야만 합니다.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반석위에 집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뭐라 합니까?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합니다. 가치관도 변하고 도덕의 개념도 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기준이 변해도 말씀만은 우리 인생을 혼돈케 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 위에 여러분의 인생을 설계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 중심으로 살 때는 승리할 수 있었지만,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졌을 때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말씀 중심으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될 수 있으면,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끔 유혹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지 않고 그냥 어설프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 큰 여리고성을 무찌르고도 보잘것없는 아이성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⑶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9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사실 8절까지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여호수아에게 확신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당신의 약속을 확인시키십니다. 그러면서 9절 말씀은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왜 이렇게 시작한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너와 맺은 언약, 약속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사십니까? 역경을 이기기 위해서, 오히려 역경을 조롱하는 담대함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의식과 절기를 정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하시면서 의도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 믿는 자에게 축복을 주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원해주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역경을 이길 준비가 되어 있음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정리>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시면서 그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요, 세상의 그 누구도 여호수아를 대적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이요, 그럼으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는 역경이 없는 상황 속에서 부르심을 입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역경을 거쳐 왔고 그런 역경 가운데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무엇이 요구되었습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셔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것과 말씀을 지킬 것과, 약속을 의심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하여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라' 약속의 말씀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사시는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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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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