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생명을 거는 성도 2002-05-31 18:33:51 read : 1814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 목회 비전: 예배)
마태복음 22:37-38, 사무엘하 6:13-23
교회를 건축하고 입당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게 하시고 1년 동안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주님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예배당을 짓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준비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날 동안 여러 교회들을 탐방하며 합심하여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새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애를 썼습니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단순히 교회라는 건물만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건축과 더불어 교회와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4년 전부터 목회 비젼을 세우고 해마다 목회비전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2002년 역시 목회비전을 한 달 동안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4주 동안 다루게 될 터인데, 이번 주는 예배, 다음주는 봉사, 그 다음주는 전도, 마지막 주는 훈련과 교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가지고 다루려고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적어도 춘천중앙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함께하여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깨달아 온 성도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라며, 더불어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질을 높이시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5가지에 대해 말해봅시다. 우리 교회 존재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① 예배로 하나님을 드높이고,
② 봉사로 이웃을 섬기고
③ 전도로 세상을 구원하고
④ 훈련으로 자신을 온전케 하고
⑤ 교제로 서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교회 성도는
① 참된 예배자가 되어 모든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②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여 교회와 세상에서 한 가지 이상 봉사하며
③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로 전도에 참여하며
④ 자신의 신앙을 온전케 하기 위해 과정별 교육훈련에 참여하며
⑤ 작은 모임에 소속하여 서로를 세워가는 교제를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예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예배갱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살아나야만 우리의 신앙 또한 회복될 수 있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행사를 많이 하고, 훈련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예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떠 하길래 그런 말이 나왔습니까? 요즘 성도들에게는 예배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종교적인 의무처럼 생각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종교적인 의무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틀에 박힌 예배, 지루한 예배 순서, 등-이러한 것들로 예배는 견디기 훈련, 인내 훈련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예배 견디기의 극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설교 견디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설교 시간에 나타나는 성도들의 반응을 여러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로써, 눈은 설교하는 목사님을 향해 있지만, 생각은 출장중인 사람들입니다.
둘째,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 이런 분들은 주보에 오자가 보이면 어쩜 그리 잘 찾는지 모두들 주보 교정 위원회에 속해서 봉사하면 잘 하실 것입니다.
셋째,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 말씀과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지요.
또,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안절부절파,
다섯째로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지 아십니까?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가 있습니다.
설교시간에만 성경 읽기로 시간 때우는 나홀로파가 있습니다.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기회주의파(어휴, 어제 못 잔 잠 보충해야지),
누가 왔나, 안 왔나 두리번거리며 인원 체크하는 경비파로써, 주로 각 기관의 회장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은 어떤 유형에 속합니까? 부디 우리 춘천중앙교회 성도들은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유형의 예배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된 예배자의 모습을 갖추고 주님 앞에 나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된 예배자의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됩니까?
1. 먼저, 예배에 대한 정의를 살펴봅시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Worship'입니다. 이 'Worship'이라는 단어는 옛 영어인 worth-scipe의 단축형으로, 최고의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존경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어떤 존재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의무는 그 존재의 사랑스러움과 명예와 권위에 비례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드워즈에 따르면,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스러움과 명예와 권위를 지니신 분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 또한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최고의 가치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분명 예배는 최고의 가치이신 하나님께 최고의 것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주일에 교회에 오기는 하지만 참으로 예배를 소홀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왜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배의 최대 목표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사건이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식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선택입니까? 필수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만나는 일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오늘 날 성도들의 현주소입니다.
어떤 40대 남자와 60대 엄마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40대 남자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저 요즘 너무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배드리기가 힘들어요. 정말 예배를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엄마가 물었습니다. "왜 그러니?" 40대의 아들이 예배를 드리기 싫은 3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는 주일에 피곤하니 잠을 자고 싶고
둘째는 예배드릴 때마다 장로님들의 기도가 어찌나 긴지 지루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고,
셋째는 성가대의 찬양이 얼마나 화음이 맞지 않는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60대의 엄마가 아들에게 그래도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3가지로 말합니다.
"아들아,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에 드려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사람을 보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드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가 꼭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너는 그 교회 담임목사이지 않니!"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나시죠? 작년에 유기성 목사님께서 부흥회에 오셔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예배는 필수입니다. 내가 드려도 좋고 드리지 않아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말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목사에게 찾아와서 묻습니다. "목사님! 정말 마음에 내키지 않을 때라도 억지로라도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그런 예배를 받으실까요?" 목사가 대답합니다. "젊은이! 젊은이는 배가 고플 때에만 밥을 먹나?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다네! 자신을 위해 밥을 먹는 것이지!"
성도 여러분, 언제나 기쁨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힘쓰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3.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까? 보는 것입니까?
성도들은 흔히 '예배드린다'는 말과 '예배 본다'는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 것이 정확한 것입니까?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예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드리는 예배"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보는 예배"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예배가 참된 예배일까요? 그렇습니다.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배의 배우가 우리가 되고, 관객이 하나님이 되는 예배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도들이 회중석에 앉아 있다고 해서 관객이 아닙니다. 성도가 관객으로 앉아 있다면 그것은 보는 예배입니다. 예배받으시는 하나님만이 관객이시고 우리는 다만 배우에 불과합니다. 관객은 연극을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배우는 다릅니다. 배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실력과 재능, 때로는 상황에 맞는 표정을 표출해서 연극을 했을 때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배우가 연극을 하면서 중간에 하기 싫다고 나가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울어야 할 때 웃으면 배우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야만 합니다. 그뿐입니까? 배우는 시작 시간에 늦게 연극을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연극을 보기 위해서 연극장에 갔는데, 배우가 늦게 오는 관계로 연극을 늦게 보게 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좋지 않겠지요. 하물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성도가 예배가 시간에 5-10분 늦는 것이 일수이고, 준비없이 헌금을 드리고, 예배보다는 예배 이후의 시간을 고려한 옷차림을 하고 예배에 참석하며, 또 예배가 끝나자마자 황급히 교회를 빠져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성도는 관객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배우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배우로써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관객으로써 예배를 보고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조금이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나는 관객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면, "아! 나는 예배를 보고 있구나!"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자로써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주일 성수"에 대해 철저해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날은 성별해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직장에서 단합대회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가정의 대소사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지 않고 집안일을 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예배가 의무가 되고 있습니까? 선택이 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예배드려야 할 그 시간에 자신의 예배의무를 버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예배 시간을 아끼고 살면서 일평생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예배시간까지 포기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가치 있는 것입니까?
여유가 생기면 그 때 가서 예배를 잘 드리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요? 평생 쫓기듯이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내가 힘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고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으면서 어려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생활에 힘쓰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심각한 불신앙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4. 이토록 예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게 되기에 예배를 이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서, 예배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배드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먼저, 우리는 예배를 드림으로써 정결케 됩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루하루 죄를 짓고 사는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투성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보세요. 때로는 싸우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처를 주고, 때로는 상처를 받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뿐입니까? 오늘날은 엄청난 경쟁 속에서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는 관계로 오로지 다른 사람을 이겨야만 한다는 지나친 승부욕이 우리의 삶을 더욱 곤고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죄와 타협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신앙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세상의 가치관에 순응하여 신앙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매주 주님 앞에 나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 받지 않는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곤고하며 혼탁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드림으로써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어야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 생각이 변합니다. 가치관이 변합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게 됩니다. 삭개오를 보세요. 남의 재물을 갈취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을 보세요. 주님 만나고 난 후 변화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그녀가 이제는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마다 삶이 바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그의 인생의 최대 목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셋째,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날 때, 그분이 나의 힘이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능력이 되십니다. 이사야 40장 31절 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아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여호와를 사모하여 예배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힘을 주십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는 힘을 주십니다.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힘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예배를 통해서 정결케 되고, 변화되고, 힘을 얻어 세상을 담대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길 원하십니까? 예배에 생명을 거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예배만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예배만이 내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5. 예배자의 자세
성도 여러분, 예배드리는 성도에게는 무엇보다도 간절함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려고 했습니까? 일단 한번 실패한 것을, 또 가지러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나아가고자하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은 무엇일까?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은 무엇일까? 나는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응답할까?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주님 앞에 나올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예배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간절함이 있을 때, 하나님 만나고, 간절함이 있을 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많이 지쳐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우선이 아니라, 봉사가 우선이고, 훈련이 우선이고, 안내가 우선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만나세요. 예배를 통해 주님 만나만 보세요? 우리의 삶에 활력이 솟고 힘이 넘치지 않습니까? 바라기는 2002년 한 해 동안 정말 열심히 예배를 드려봅시다. 매일 매일 간절한 마음가짐을 갖고 예배를 드려봅시다. 분명, 올 한 해를 마칠 때에는 우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쳐날 것입니다. 봉사를 해도 지치지 않고, 전도를 해도 힘이 들지 않고, 훈련을 받아도 싫증나지 않을 것입니다. 교제를 나누는 일에 있어서도 더 큰 힘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 깊이 새깁시다.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자!"
성도 여러분,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성도는 다른 것에 한 눈을 팔지 않습니다. 법궤를 가지고 오는 다윗 왕의 모습을 보세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춥니다. 다윗이 춤을 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 앞에서 찬양할 수 있다는 것, 예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에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접어두어야 합니다. 자아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후에는 무엇을 할까?", "저 말씀은 누구를 향한 말씀인 것 같아, 그 사람이 이 예배에 참석했어야 하는데 어쩌지!" 별의별 생각을 다합니다. 심지어, 모든 근심과 걱정, 불안과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여전히 그런 것들을 갖고 예배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주목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시간과 장소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적어도 이 두 가지 사실, 간절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주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만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춘천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매 예배마다 간절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2002년도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첫 번째 방향은 예배입니다. 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치유받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예배를 살리시길 바랍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에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삶에 능력이 넘쳐납니다. 기쁨이 생깁니다. 소망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래야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훈련도 할 수 있고 교제도 나눌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2002년 춘천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고자 다짐하며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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