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사랑·교제 2002-05-28 14:46:06 read : 1918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5월 12일 // (고후 13-11-13)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자서전이라고 불립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았고, 흐르는 물처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모든 것을 부수어 뜨리는 것처럼 써 나갑니다. 이런 강한 성격은 사도 바울의 면모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시종일관 자신을 옹호하고, 자신의 사도 권을 변호합니다. 사실 바울과 고린고 교회간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갈등과 대립→책망→경고 후에 나온 화해의 편지입니다. 오늘날 이 본문은 축도할 때 하나의 모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축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긴장과 대립을 끝내고 화해하는 글에 나오는 축복임을 생각할 때 대단히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관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갈등 끝에 나온 말이기에 더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 오늘은 13절 말씀을 분석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본문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원한 말씀은 많이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28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라고 했고, 데살로니가 후서 3:18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또 빌레몬서 1:25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서 영국 국교회의 목사였고, 거룩함을 추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헌신적인 봉사와 선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738년 5월 24일 누군가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들으면서 비로소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9시 15분전쯤이나 되었을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한 부분을 들으면서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어, 그 분만을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분께서 나의 죄를, 심지어 나의 죄까지도 다 도말 하셨으며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강하게 찾아왔다."
이런 은혜의 체험을 통해서 웨슬리는 이제는 종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으로 바뀌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子女)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자는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입니다"(갈 4:4-7).
이렇게 볼 때, 종과 자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종은 자기가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보여야만 안정하게 살 수 있지만, 자녀는 자녀의 신분을 가졌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안전한 것입니다. 종은 일을 잘못하면 그 자리가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나 자녀는 실수를 하게 되면 부모를 속상하게 해 드렸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 있고, 꾸중을 들을 수는 있지만, 버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만한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 각자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심으로써 죄 씻음 받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갑시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양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455장 1절).
2.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5:33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또 빌립보서 4:9에 보면,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평강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한 것은 몇 군데 더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1절에 보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평강의 하나님'이라고만 하지 않고,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실정이 그 당시에 평강 뿐만 아니라 사랑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같이하고 화목 하는 곳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3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고, 14절을 보면,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러니까, 용서하고 나서 사랑을 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화를 품으면 자신에게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의학자들에 의하면, 마음에 화(anger)를 품고 있으면 정신건강에도 안 좋고, 육체 건강에도 해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엡 4:26)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주간에『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저자는 블란서에서 플럼 빌리지라는 수도공동체를 만들고, 종교를 뛰어 넘어서 살고 있는 틱 낫 한이라는 수도자입니다. 그는 의미 있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의 수도 공동체에서는 '씨앗을 골라 물 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 곳 사람들은 우리 마음을 밭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밭 속에는 아주 많은 씨앗이 있다고 합니다. 기쁨, 사랑,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씨앗이 있는가하면, 짜증, 우울, 절망 같은 부정적인 씨앗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부정적인 씨앗이 아닌, 긍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려고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평화의 길이며, 행복을 만드는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화(anger)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으면, 그 고기에 화가 들어가 있고,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가두어 놓고 잠도 안 재우고 키운 닭의 고기나 달걀을 먹으면 우리 속에 화가 쌓인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채소나 과일도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재배한, 유기 농으로 생산된 것들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음식을 잘 씹어먹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 다섯 번쯤 차근차근 씹은 후에 삼키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먹으며 음식이 입안에서 액체가 될 때까지 씹으면 장에서 영양소가 더 많이 흡수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먹으면 몸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속에는 지금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까? 기쁨, 사랑,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짜증, 우울, 절망 같은 부정적인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인생을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려면, 우선 부정적인 씨앗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야 되고, 거기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자신을 아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못 낫다고 생각합니다. 바보라고 느낍니다. 이런 사람은 남과 자주 비교하며, 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혀 지냅니다. 제가 오래 전, 전문 대학 교목을 할 때 만난 어떤 학생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 자기가 들어가고 싶던 대학 교문 입구에 가서 그 학교 다니는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쳐다보곤 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나 옥스퍼드 대학교를 가도 행복하지 못할 겁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 받은 경험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깊고 메마른 우물 속에 빠졌습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른 그 사람은 벽을 기어오를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 그의 신호 소리를 듣고 구출해 주러 올 것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우물의 벽을 두드렸습니다. 마침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벽의 반대쪽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군가 그의 신호를 들은 것입니다. 그 불쌍한 사람은 이제 구조를 받았다는 생각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내가 있는 곳이 발견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우리의 소리를 들어주고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와 똑같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따뜻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listener)가 없으면 자신을 사랑 받는 존재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돼, 너 그러다가 어떻게 대학 갈려고 그러니, 이 바보야! 정신차려" 라고 하지말고, "얼마나 힘드니, 조금 자고 해라, 넌 잘 해낼 수 있어"하며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 때 아이는 자신이 사랑 받는다고 느낍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떤 소리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봐"라고 합니다. 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또 어떤 소리는 "너를 진정으로 걱정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소리는 "성공도 하고, 인기도 끌고, 권력도 잡아야 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소리가 아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는 작고 세밀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기도란 "나의 사랑하는 자야"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여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의 속삭임을 받으면, 그 상처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라고 어떤 시인은 말했습니다.
3. 성령의 교통하심(사귐)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영어 성경에는 "the communion of the Holy Spirit" 또는 "the fellowship of Holy Spirit"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교제' 또는 '성령의 사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즘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고생의 6.4%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중 상당수가 "15∼17세에 이성친구와 처음으로 성 경험을 가졌으며, 또 그들 중 12%가 "내가 소속된 학급에 돈을 매개로 성관계를 갖는 속칭 '원조교제'를 하는 학생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원조교제 이유가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요즘 영화배우 겸 감독 이 경영(42세)씨가 10대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매스컴이 야단입니다. 이씨는 지난해 KBS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아내와 딸을 버리고 가출한 상태에서 23세의 스포츠댄스 강사와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46세 전자회사 사장 역으로 출연한바 있습니다. 드라마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는 잘못된 교제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교제는 순간적으로는 쾌감을 줄지 모르나, 결과는 매우 파괴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참으로 건전한 교제가 참으로 아쉬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전한 교제라도 사람과의 교제는 실망을 안겨 주기 쉽습니다. 그리고 별로 얻을 것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과의 교제'가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靈性) 생활이요, 기도 생활입니다. 성령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①교회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교회를 떠남으로 해서 주님과 더 가까워졌다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나보았습니다. 교회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곧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 귀 기울인다는 뜻이요, 교회 생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에 적극 참여하고, 은혜 받는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올 때에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성령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②책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가능하면, 성경을 쓰는 것을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지난번에 돌아가신 원 태월 권사님은 간 경화증에다가 당뇨까지 겹쳐서 말도 못하게 힘든 상황에서 성경을 다 쓰셨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쓰면서 힘들 때는 잠깐 누웠다가, 정신이 좀 들면 다시 일어나 썼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신·구약을 다 쓰고, 지난 연합 속회 때는 상을 받았습니다. 성령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③우리 마음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가장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그분은 고함치지 않으십니다. 억지로 밀고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열기를 그분은 기다리십니다. 이제 우리 마음에 계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삽시다. 10분도 좋습니다. 그분과 매일 단둘이 10분만 보내도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성령과 교제하는 생활을 합시다. 그 때 얼굴이 빛나고, 생명력이 넘치고, 희망이 생기고, 보이지 않던 미래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삼위일체주일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교제)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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