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아야 산다 2002-05-28 14:10:12 read : 243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55:1-9 // 2002/05/19
아마 요사이도 그런 분이 계실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졸고 큰소리치는 분들 말입니다. 왜
큰소리치시냐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도다"는 시편에 있는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교회에서 조는 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줄 알았습
니다. 사실 이 말씀의 본뜻은 무엇입니까?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맡기었더니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사실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내가 살아야겠다는
마음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말한다면 은혜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말
합니다. 누가 어떻게 지내세요? 하실 때 "저 은혜로 지냅니다."
이런 대답은 하나님 때문에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가 어떻게 주어지는 줄 아십니까?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선물을 받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살아야 할 모습입
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들이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까? 심령이 가난한자와 애통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한 팔복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자와 그리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
였습니다. 즉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거지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자에게만 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4편 18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왜 다윗이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비록 세상에는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어린아이 같은 가난한 모습이었습니다..
야이로를 보십시오. 회당장이었습니다. 아쉬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체면, 지위를 집어던지고 예수님께 나오지 않습니까? 그
래서 구원을 받잖아요.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난한 마음을 가질 때 사용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알려면 가난한 마음을 가져본 분만이 압니다. 은혜가 얼마
나 큰지 말입니다. 인간은 본래 교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금 교만해질까봐 철저하게
가난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고난만이 은혜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가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또한 애통하는 자가 복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애통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보이기 때문에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보입니까? 구원을 받으면 이웃이 보입니다. 혼자 잘먹고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웃
이 보입니다. 왜 청년들이 힘든지 압니까? 자기만 보이는 겁니다.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시
기이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요사이 임권택 감독이 만드는 취화선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감독의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냥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겠지요. 어떻게 붓을 잡았는지 어떤 사람
들을 만나고 보았는지 그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서
로 보는 모습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애통해하는 사람들입
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보면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그리고 나면 집중력이 생기게 됩니다. 즉 애통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집중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은 집중력입니다. 예수님에게 집중할 것인가? 텔
레비전에게, 자녀에게, 공부에게, 돈에게 집중할 것이냐? 분명히 이러한 싸움입니다. 영적싸
움입니다. 신앙은 집중력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어떻게 판단합니까? 할 수 없습니
다. 열심히 교회를 나오는 분이 믿음 좋습니까? 아니라구요? 좋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
까?
신앙은 집중력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에게 집중을 하고 있다는 애통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예배. 수요, 철야예배를 나오는 분들이 믿음이 좋은 분들이에요. 사실 믿음
에 집중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집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분명히 경고했지만
그는 부인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나 요사이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강
조하는데도 말입니다. 왜요? 마귀는 예수님 재림하실 사건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마지막에
마라나타 라고 분명히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라고 하였지만 우리의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애통해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벌써 제가 옛날 이야기를 해야 될 나이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참 발씻기를 싫어했습니
다. 발을 닦으면서 욕먹는 것이 발가락만 닦는 것입니다. 발뒷꿈치를 닦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잔소리를 듣습니다. 도대체 왜 제가 그렇게 엽기적으로 발을 씻을까요?
옛날에는 뜨거운 물이 없었습니다. 찬물로 세수를 했습니다. 아니! 집안에 물을 놓고 자면
완전히 꽁꽁 얼었습니다. 그래서 그 얼음물에 발을 씻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발은 환경이 좋아야 씻는 것인데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요사이도 그런지 모르는데 초등학
교 때 발 검사를 합니다. 소위 때 검사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대단합니다. 정말 두께가 몇 센티가 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하튼 자기 때를 보
고충격을 받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면 모두 발을 닦습니다. 자기의 더러운 모습을
양말을 벗음으로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영혼의 때를 씻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가 그 은혜
를 알려면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아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오늘 이사야는 말합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주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
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통해서 받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값없이 은혜를 마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헐몬의 이슬처럼 넘치는 은혜, 성령의 기름 부으
심을 예배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은혜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경험을 넘어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고 느낀 것 이상을 알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을 보지 못하고 미국이 있다는 것을 확
실히 믿고 죽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던 당시에도 미국은 일고 있습니다. 반면에 천국에 대해
서는 믿지를 못합니다. 참 우습지 않습니까? 피차 가보지 못했는데요.
저는 외국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함으로 넓어집니다.
수지에만 있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넓은 것을 보아야 나를 넘어갈 수 있어요.
왜 그렇게 여행이 좋을까요? 내 경험을 넓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갇혀 지내
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이 힘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도들은 내가 경험한 목사만큼 살기
를 원합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내 경험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알지 못하는 일이 달려온답니다. 우리에게 온대요. 그래서 우리를 영
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경험한 것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을 보면 코제트라고 하는 고아 소녀가 나옵니다.
불쌍한 고아입니다. 지금은 양부모가 돌아보아 주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업신여김 받고 가정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정말로 어렵게 겨
우겨우 살아가는, 갖은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나 뒤에 장발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부자가 저의 후견인이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할 때 이 아이는 그 때부터 신
바람이 납니다. 거침없이 활발하게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후견인이요, 그리스도께서 내 후견인입니다. 성령이 이것을 증거해 주실 때 우리는 신바람
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오직 그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
러므로 어떤 고난을 당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
랑하시기 때문에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병들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실패
했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눈앞에 십자가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
랑하는 아들에게 주시는 십자가로 그렇게 믿기에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와 관계없습니다. 20세인데 60세 이상의 삶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50대이지만 20대
젊음을 가지고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받아야 젊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저희 나라 선교사 중에 50-60대 선교사님들이 많아 지셨습니다.
은퇴하구 선교사역을 하십니다. 얼마나 젊게 사시는 지 모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을 아시지 않습니까? 미국 최악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나
이든 것의 미덕'이라는 책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헤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운동
을 통해 완전히 은혜 받은 성공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은혜 받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대통령보다 은혜 받은 자의 모습으로 더 아름답게 살고
있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배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면 목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
고 말씀합니다. 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희교회는 그
렇게 전도를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설교도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고 계십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매일 전도해도 교회가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렇
게 교회를 성장 시켜 주는 것을 볼 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
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
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던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께서 택해 주셨다는 사실! 그
래서 과실을 맺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은혜는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시더라고요!
우리가 아는 대로 베드로는 갈릴리의 어부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사람을 가리켜 '아그람
마타'라고 하였습니다. 글도 모르는 불학무식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인데 예수
님의 제자가 되었고 다혈질이라서 늘 앞서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실 때,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는 아주 초라한 인간이 됩니다. 어찌 이럴 수
가 있습니까?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잡아떼고, 맹세하고, 저주하고- 아주 형편없이 되
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을 받게 됩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삼천 명
앞에서 전도합니다. 어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령의 역사입
니다. 스데반의 얼굴, 천사의 얼굴입니다. 여러분, 얼굴은 마음의 창문입니다. 성령 받고 못
받고는, 은혜 받고 못 받고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밝은 얼굴이것이 중요한 것입니
다. 소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얼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얼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얼굴
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입니다. 또한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전 미
문이라고 하는 곳, 거기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베드로는 언제나 처럼 보았습니다. 전에도
많이 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전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생명력이 작
용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낙심함도 없습니다. 미워하
는 사람도 없습니다. 담력과 용기로 충만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할 때, 그 생명력
이 작용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흘러 넘치는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그러면 내 영
혼이 삭막해집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시각에 일을 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왜 돈벌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변화가 됩니다!
셋째로 그렇다면 은혜를 어떻게 받을까요?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본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중요합니다. 저희교회에 중보기도학교, 제자훈련 성경공부, 리
더쉽 훈련 등등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안됩니
다.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많은 교회가 다른 것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기도와 말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냥 엎드리고 말씀을 보라는 것입니다.
8,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
니라"
게다가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방법은 말씀과 기도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말씀과 기도밖에 없습니다. 방법이 너무나 쉬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설교 말씀을 듣는 것도 내가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하는 엔진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이끌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히스기야 기도'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의 중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기도가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 관한 글이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새 지도자가 되면서 그 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받고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게 다음과 같은 확신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7절에서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
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기에서 '담대함'이란 주저하거나 겁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란
큰 담력과 아주 강한 결단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런 담대함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넉넉히 이기게 되고, 승리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의 삶
은 심판에서 영생으로, 정죄가 긍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을 얻고자 하
는 자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은혜를 더욱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나약하고 연약한 모든 인생에게 놀라운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 수 있는 문을 활짝 개방해 놓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
니라"
미국의 16대 링컨 대통령이 취임식 연설에서 한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
습니다. 그는 취임식 연설에서 "지금 저는 역대의 어떤 대통령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는 전임 대통령들이 항상 의지했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이 일들을 이루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그 분을 의지합시다. 또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다함께 이 일의 성취를 위해 하
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참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러분!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복음을 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방가보면 대부분 미션 스쿨을 나왔습니다. 그때 채플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
교든지 대학교든지 하물며 신학교도 채플시간은 난장판입니다. 아예 화장하는 학생, 수다떨
고 웃는 학생, 조는 학생은 고맙구요. 버티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말
씀이 들어가서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곳에서 변화되는 사람이 있고 새로운
식구들을 보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얘기하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
서는 하늘로 다시 가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하늘에서 비가 내립니다! 비유를 들잖아요! 토지
를 적시고 싹이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 먹는 자에게는 양식
을 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입에서 나간 말씀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
고 건질 사람 다 건지고 변화시킬 사람을 다 변화시키고 열매맺을 사람을 다 열매맺고 돌아
간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은혜가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 될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자기자신, 가장 소중한 자기건강, 자기가 지
금 처하고있는 이 현실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도 은혜 될 수 없고 복
도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멀리서 부러워할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행복하지 못
합니다. 다른 사람은 나만 같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나는 나 됨에 대한 만족이 없습
니다. 은혜가 은혜 되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로 느껴야합니다. 은혜로
감격해야합니다. 그리고 은혜로움 그 안에서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 된 현실을 보
면서 은혜 앞에 자기자신을 위탁해야 됩니다. 이 큰 은혜에 사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은
혜에다가 자기 운명을 그냥 던져버리고 삽니다. 바로 그러한 생이 그리스도인의 생이요 바
른 생이요 행복한 생입니다.
유능한 헬렌 켈러 여사를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는 삼중 장애자입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불행을 딛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
나 그는 훌륭하게 귀중한 일들을 많이 하며 심지어는 저술까지 하면서 살았습니다. 말년에
어떤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아왔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은 없습니까?" 헬렌 켈러 여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제
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것으로 만도 시간이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께 대
한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
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요."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은
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남들은 그를 불행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아는 사람입
니다. 세상 떠날 때에 그는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이 어찌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릴
때에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 바닥으로 다 스며드는 것 같잖아요! 헛된 것 같지 않습니
까! 그런데 적시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변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