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1) 2001-12-28 16:33:09 read : 118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디모데전서 4:6-10
일시: 8/26/2001(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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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협성대학교 교수로 있는 친구와 독일의 트리어라는 곳에 가서예배를 인도하고 오페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함께 갔던 한국 유학생이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어떤 독일 사람을 보자 얼른 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파터 독토르'(Vater Doctor)라고 했습니다. 자기 지도교수를 Vater(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독일 대학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승을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있어서 영적(靈的)인 아버지(믿음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들 디모데에게 주는 말씀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젊은 목회자 디모데를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보면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다 되기를 바라면서, 본문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섬기는 자'입니다.
디모데 전서는 이단이 들끓던 에베소 교회에서 어렵게 목회하고 있던 디모데를 격려하며 교회 조직의 효과적인 운영과 올바른 목회 지침을 주기 위해 바울이 써 보낸 목회서신(牧會書信) 중 하나입니다. 물론 수신자(受信者)는 디모데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 6절 중간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좋은) 일꾼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말을 헬라어로는 '디아코노스'(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디모데 전서 3장 8절에 나오는 '집사(執事)'라는 말과 같습니다. 집사란 '섬기는 자,' '봉사자'를 뜻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집사, 권사, 장로 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직책(職責)이나 계급이 아닙니다. 직분(職分)입니다. 교회의 원만한 발전을 위해, 각자의 은사에 따라 직분을 맡긴 것입니다. 직분을 맡은이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은,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을 문자 그대로는 표현하면, '집사(執事)'라고 합니다. 옛날 부잣집에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일꾼인 집사가 있었습니다. 집사의 자세는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디아코노스, 즉 봉사자요,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찰스 웨슬리가 지은 찬송을 부릅니다.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하리"(찬송 372장). 부를수록 은혜가 되는 찬송입니다. 또한 이 찬송은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꾼의 본분임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일꾼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나 교회를 통해 이득(利得)이라도 얻으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3장 8절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디도서 1장 11절에서는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는 자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집안을 온통 뒤엎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생활에 힘쓰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7절 앞부분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속되고, 사악하고, 경건치 않은 것들을 뜻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당시 크게 유행하여 교회를 위협했던 이단(異端)인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무익하고 거짓된 교훈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6절)에 반대되는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생각해 봅니다.
2. "이단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전에 어떤 세미나에 갔더니 좋은 호텔에서 잠자리를 제공하고 밥도 먹여 주면서, 회비가 없다고 하더랍니다.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이단 종파에서 그 세미나 경비를 모두 댔더랍니다. 그러면서 세미나를 주최하는 이가 "돈이 있어야지요? 어느 교회에서 돈을 대 줍니까?"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다시는 그런 모임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보면,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당장 물리쳐야 합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은 이단의 유혹을 물리치는 사람입니다.
3. "불평, 비관적인 생각,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도 있고,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도 편안하지 못하고, 남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도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의 분위기를 깨뜨립니다. 교회에도 기류(氣流)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있습니다. 불평·불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은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를 해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와도 기쁨도 없고 은혜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세요.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들에겐 그늘이 없습니다. 어둠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습니다. 어둡고, 비관적인 생각, 불평·불만,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과감히 버리면 여러분도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들이 될 수 있습니다.
4. "분노와 증오, 그리고 염려를 버리는 것"입니다.
H. C. 매턴이라는 사람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증오(憎惡)를 버리고 걱정을 멀리 하십시오. 단순하게 살면서 조금만 기대하고 많이 주십시오. 사랑으로 삶을 채우고 햇빛을 뿌리십시오.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받고 싶은 대로 해 주십시오. 일주일 동안만 이렇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시편 37편 8절에서 시인은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行惡)에 치우칠 뿐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念慮)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염려입니다. 이런 것을 버리면 금방 행복해 지고,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5.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7절 뒷부분에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경건에 이르는 훈련(訓練)을 하라는 겁니다. 고대 올림픽 경기를 준비하기 위한 훈련은 매우 엄중하여 때로는 훈련 중에 죽는 수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훈련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경건에 이르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심하게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텔레비전에서 해병대 교육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런 청년들이 어떻게 해병대원이 될까" 생각했는데, 그 프로를 끝까지 보고 깨달은 게 있습니다. '철저한 훈련'이 해병대원을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용감하고 늠름한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눈물 나는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한 사람의 해병대원이 탄생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해병이 탄생되는데도 엄청난 훈련이 필요한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군사)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훈련이 없어서 되겠습니까?
옛날 신학교 학장을 지내신 저희 선생님은 신학교 4학년 때 적어도 1년간은 깊은 산 속에 수도원을 짓고 철저하게 영성훈련을 시켜야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엄격한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목회자를 기르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으로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수도회 중에 베네딕토 회(會)가 있습니다. 이것은 6세기에 시작된 수도 공동체인데, 수도자들은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지킵니다. 그것은 <노동>과 <공부>와 <기도>입니다. 우리도 수도자는 아니지만 이 세 가지를 몸으로 실천하면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각자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합시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검은 대지(大地)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어진 현실이 비록 힘겹더라도 받아들이고 아끼고 사랑하라는 얘기요, 또한 어두운 역사를 보듬으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주님이 주신 일인 줄로 믿고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하는 사람이 주님의 좋은 일꾼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지금도 찾으십니다. 요즘 우리 교회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는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일을 대충해 버리고, 또 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일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CBS 영동방송 개국기념 연합성회에 오셔서 말씀을 증거 해 주신 황 대식 원로목사님 말씀에 저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먼저, 귀로 듣고, 다음에, 눈으로 듣고, 그 다음에, 마음으로 듣고, 마지막으로 손끝과 발끝으로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니까 행동과 실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의 1/4이라는 이 나라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고 점점 나빠지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맡았든지 그 일을 최선을 다해, 정성으로 하십시오. 노동의 신성(神聖)함을 몸으로 느끼며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야 할 때입니다.
다음에, 말씀 묵상 훈련을 철저히 합시다.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이 그리스도의 일꾼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는 가장 중요한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편 119:50)라고 한 시인의 말이 저는 너무나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늘 깨어 기도합시다.
구세주이신 예수께서도 열심히 기도하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 홀로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들을 쫓으시느라 피곤하셨어도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그의 얼굴이 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병든 아이를 고치지 못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 주시며, 그들의 실패에 대해 설명하시며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분노하신 것은 기도하는 집을 사람들이 강도의 굴혈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은밀한 중에 기도하고,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는 기도를 하고,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과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처음에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다가 이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기도의 삶이었고,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마땅히 배우고 훈련해야 할 것도 기도 훈련입니다. 즉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는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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