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제목설교가 좋습니까, 아니면 강해설교가 좋습니까?”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강해설교가 성경적인 설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런지 강해설교의 강좌들은 여러 곳에서 개설되는데 제목설교 강의는 찾아볼수가 없다. 과연 강해설교가 더 성경적인 설교인가?
여기서 대답하고자하는 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목설교건 강해설교건 설교의 외형적인 형태일뿐이다. 어느 쪽이건 완전히 성경적일수도 있고 전혀 성경적이지 않을수도 있다. 아무리 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설명하면서 설교해도 비성서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게되면 물론 비복음적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느 형태의 설교이건 복음을 전하기 좋으면 된다. 형태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커피잔과 바가지는 그 용도가 다르다. 옹달샘에서 아름다운 커피 세트를 꺼낸다면 이상해진다. 마찬가지로 설교의 여러 형태는 상황에 따라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다.
여기서 설교의 일반적인 형태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요즘 사람들이 분류하는대로 제목설교와 강해설교를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외에도 분류하는 방법은 많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좀 더 자세히 분류해서 여러 다른 형태들을 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몇 번에 걸쳐 그들을 이용해 만든 설교의 예를 들겠다.
제목설교란 설교의 내용이 제목에 의해서 대표되는 것이다. 즉 그 제목에 해당 설교의 욧점이 실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교 후에 제목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제목을 따라서 내용을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제목은 논지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진다. 그리고 나머지 내용들은 다 여기에 연결되어 있다.
설교의 역사를 보면 다른 형태에 비해서 제목설교의 숫자는 가히 압도적이다. 유명한 설교의 대부분은 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요즈음에 와서야 제목보다는 본문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제목설교는 효과면에서나 보나 빈도에서 보나 대단히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제목 설교는 성경의 어떤 특정한 본문과 분석적인 관련이 없는 주제나 개념에서 출발한다. 먼저 제목이나 논지가 떠오른 다음 거기 해당되는 본문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설교가 본문에 의해서 지배를 받기 보다는 설교자의 생각하는 메시지대로 만들어진다. 설교도 통일성을 유지하기가 쉽다.
제목 설교는 유익이 많다. 우선 절기에 맞추기가 좋다. 조직신학적이거나 교리적 또는 윤리적 교육적인 주제를 잡는데 유리하다. 또한 상황에 맞추어서 필요한대로 주제를 정할수도 있다. 때마다 마음에 영감이 떠오르는대로 제목을 잡을 수 있다. 자유스럽다. 원하는대로 제목과 주제를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만약 설교자가 성경에 친숙하지 않다면 더우기 개신교 신앙원리 또는 복음의 원리를 잘모르고 있다면 큰 일이다. 그야말로 자기 멋대로 말하는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대로 설교가 주어질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설교가 그렇게 작성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제임스 스투어트는 비성경적인 제목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신선한 말씀의 풀을 원하는 하나님의 배고픈 양들이 시사적 문제에 관한 설교자의 주장으로 먹여진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그야말로 시대나 상황에 대한 목사의 진단 이나 듣다가 간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양식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목설교가 비성서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설교자가 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면 그것도 복음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아무 걱정할게 없다. 해당되는 귀절을 본문으로 뽑아내지 않아도 설교의 내용은 계속 성경 내용을 근거로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포괄적일 수도 있다.
반면 강해설교는 본문을 의지하고 거기서 설교의 내용을 뽑아낸다. 그러므로 내용이 언제나 본문과 일치해야 한다. 그 성경귀절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각각 단어의 분명한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에는 문맥 연구를 철저히 한 다. 그리고 거기서 주는 교훈을 오늘의 삶에 적응시켜서 설교한다.
성경 귀절에다 자기의 상황을 관련시키는 것이므로 잘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리고 설교자가 옆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설교자의 개인 사상만 듣는 위험도 줄여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강해설교만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강해설교도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본다. 그저 본문을 붙잡고 설교를 진행할뿐이지 전혀 복음과 관계가 없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전체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윤리적 교훈으로 그칠 수 있다. 또한 너무 단어 연구에 치중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도외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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