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로 구간 ‘장기려路’ 지정 기념식이 고신대복음병원(원장 이상욱) 주관으로 26일 오전 장기려기념암센터 중앙로비에서 개최됐다.
명예도로 ‘장기려로’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성산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서구 탑스빌에서 알로이시오고교까지 822m 구간에 지정됐다. 고신대복음병원은 지난해 말부터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기 위한 도로명 지정을 추진했고, 부산시 도로지명위원회와 서구청 도로지명위원회 등에서 결의 후 지난 3월 확정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부산광역시 보건·토지 관계자와 박극제 서구청장, 문철호 부산 MBC 대표이사, 장기려 박사의 유일한 혈육인 장여구 교수(서울백병원)와 제자 및 후학들, 손봉호 교수(장기려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서구 국회의원)은 축전을 보냈다.
1부 기념식에서는 손봉호 교수와 장여구 교수의 기념사, ‘장기려로’를 승인한 박극제 구청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손봉호 교수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장기려 박사”라며 “기독인으로 청렴하고 사랑을 베풀며 살았던 박사님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새기고 계승하자”고 했다. 장여구 교수는 “생전 할아버지가 계실 때 명절마다 병원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며 “할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부산시에서 소중한 선물을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극제 서구청장은 “장기려 박사님은 서구의 자랑이자 부산의 자랑,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위인”이라며 “이번 ‘장기려로’ 지정을 계기로, 장 박사님의 숭고한 나눔 정신과 인술을 후세가 오래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욱 원장은 “신망애(信望愛)로 대표되는 박사님의 뜻이 이제 복음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과 장기려로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병원 제공
2부 제막식에서는 ‘장기려로’ 지정을 기념해 병원 입구에 설치된 기념비 제막 순서를 가졌다. 장기려 박사 기념비에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선한 의사로 일생을 사시며, 고신대복음병원 초대 병원장으로 봉사하신 성산 장기려 박사’라는 문구와 동판 초상화를 새겼다. 제막식 후 내빈들은 장 박사가 생전 생활하던 고신대복음병원 옥탑방 사택을 견학했다.
장 박사는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천막을 치고 피난민과 가난한 사람을 무료로 진료하는 인술(仁術)을 펼쳤다. 이 같은 봉사정신으로 국민훈장 동백장과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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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 ‘연탄교회’ 세웠어요
연탄은행, 1호 교회 설립 예배… 선한 영향력 주는 교회될 것 다짐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주민들이 1일 연탄교회 설립 예배 도중 일어서서 ‘연탄교회 고백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연탄교회는 주님과 구성원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중략) 가난해도 당당하게 성실히 살아갈 것이며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연탄교회 고백 선언문)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작은 교회가 둥지를 틀었다. 교회 명칭은 ‘연탄교회’. 10년 넘게 마을 주민들을 섬기고 있는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이 주민 상당수가 연탄을 사용하는 동네임을 감안해 지은 이름이다.
연탄교회 설립 예배가 열린 1일 오전 백사마을 입구.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교회는 잔칫날처럼 붐볐다. 낡은 전파사 건물을 개조한 50㎡(약 15평) 정도 되는 예배실과 바로 옆 ‘사랑방’은 마을 주민들과 방문객들로 빼곡했다.
허기복 목사가 연탄난로 모양의 단상 앞에 섰다.
“연탄 나눔뿐만 아니라 영과 육을 함께 돌보는 통합적 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이곳 주민들의 환경과 문화에 적합한 복음 프로그램을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연탄은행은 지난해 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으로부터 ‘좋은 교회상(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300만원을 교회 설립 종잣돈으로 삼았다. 앞으로 연탄교회에선 매주 ‘수요 예배’ ‘금요 성경공부’를 갖고 격주로 ‘건강 교실’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교회에서 20m 정도 떨어진 연탄공방에서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연탄 찍기’ ‘달고나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교회의 ‘연탄갤러리’에서는 백사마을의 일상과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한다.
허 목사는 “앞으로 부산과 전북 전주, 경북 포항 등 일부 지역 연탄은행들도 연탄교회를 설립할 예정”이라며 “마을 사랑방이 될 뿐만 아니라 선교와 나눔, 봉사를 실천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설립예배에선 ‘섬마을 목사님’이 설교자로 등장해 의미를 더했다. 전남 완도군 청산면 대모도에서 9년째 섬김 목회를 이어오고 있는 한정배(모도교회) 목사는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처럼 순수한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 달라”면서 “연탄교회가 전하는 선한 영향력이 ‘나비 효과’처럼 널리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첫걸음을 뗀 연탄교회를 향해 주민들은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백사마을에서 21년을 살다가 1년 전 인근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간 김종복(78) 할아버지는 “아내랑 둘만 살아 많이 외로운데, 이제 여기 오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예배 때 기도를 맡은 이승련(82) 할머니는 “연탄교회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주는 곳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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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피켓 들고 퀴어 퍼레이드 참석한 목사
미국 포틀랜드 '게이프라이드'서 행진...성 소수자들, 눈물 흘리며 "고마워요"
이은혜 기자
올해로 16회를 맞은 한국 퀴어 문화 축제는 예년과 달리 개신교의 조직적 반대에 직면했다. 6월 13일 열릴 예정이던 퀴어 퍼레이드는 날짜를 변경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28일로 옮겼다. 같은 날, 인근에서 퀴어 퍼레이드 저지 연합 예배를 예고한 개신교 측과 충돌이 예상된다. (관련 기사: 한국교회 22개 교단장들, 퀴어 퍼레이드 저지 총공세 예고)
미국에서는 6월을 '퍼레이드의 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회 변화에 힘입어 교계에서도 성 소수자를 목사로 세우고 교인으로 인정하는 등 분명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둘러싼 신학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관련 기사: 팀 켈러 vs 토니 캠폴로, 동성 결혼 찬반 대립)
여러 의견이 공존하는 미국에서 한 목사가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한 소감을 썼다. 지난 6월 15일, <미디엄>이라는 매체에 올라온 글은 <허핑턴포스트>, <소저너스> 등에도 잇따라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 목사는 '복음주의언약교회(Evangelical Covenant Church)' 교단 소속이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월드비전 선교사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하다 2014년 귀국했다. 그는 아내 사라와 함께 미국 동부 포틀랜드(Portland) 시에 '그리스도교회(Christ Church)'를 개척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에서 그와 교인들은 한 가지 사항에 동의했다. 성 소수자를 교인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 교회에서 성 소수자들은 다른 교인처럼 교회학교 교사로, 행사 자원봉사자로, 성찬 예식을 돕는 사람으로 활동했다. 그리스도교회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적인 필립스지만, 퀴어 퍼레이드에 직접 참가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지역 교회에 다니던 친구가 필립스와 아내 사라를 초대한 것이다. 교회에서 성 소수자를 만날 수는 있었지만, 한 번도 퀴어 퍼레이드에 간 적이 없었던 필립스는 용기를 내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 목사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2014년 미국 포틀랜드 시에 그리스도교회(Christ Church)를 개척한 그는 성 소수자를 온전한 교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 소수자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하기로 한 그지만 퀴어 퍼레이드에 행진자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미디엄> 기사 갈무리)
필립스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까지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성 소수자를 위한 공개 행사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같은 교단 선배와 동료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가 속해 있는 교단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공개된다면, 교단 내에서 매장당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빨간색 스톨을 목에 두르고 피켓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그가 든 피켓은 행진하기 전 동료 목사에게 건네받은 것인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권리와 평등을 무시했던 사람들의 편협하고 판단하고 기만하고 조종하는 행동을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사과합니다."
그는 행진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성 소수자들이 자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그동안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한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목사 스톨만 보고 혐오를 표해 왔던 기독교인으로 오해하면 어쩌지', '내 사과를 받아 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고 했다.
그러나 행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동이 차올랐다. 함께 행진하던 성 소수자와 지지자들은 필립스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성 소수자 중 일부는 눈물을 닦으며 "고마워요", "당신의 사과를 받아 줄게요"라고 말했다. 필립스는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선글라스를 낀 게 다행일 정도로 눈물이 계속 쏟아졌어요. 그들의 용서와 관용은 내가 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제가 미처 헤아릴 수도 없는, 그들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도 내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필립스는 모든 행진을 마치고 자긍심(Pride)을 느꼈다고 했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 소수자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행진이라 '게이 프라이드(Gay Pride)'라고도 불린다. 성 소수자가 아닌 자신도 동일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는 '사랑이 이긴다(Love wins)'는 문장이 실제로 이뤄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이라고 했다.
그동안 성 소수자 교인들을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했던 필립스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받아들인다'는 단어를 쓰는 것이 그들을 온전하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음을 알았다고 했다. 신실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동역자'가 아닌 '받아들여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고백했다.
퀴어 퍼레이드를 경험한 필립스는 앞으로의 목회가 더 기대된다고 했다. 목회자로서 퍼레이드에 참여했던 성 소수자들과 다시 만나 더 깊은 영적인 대화를 이어 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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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든 목회자를 ‘담임’으로 부르셨을까요?”
빌립보서 설교집 2권 발간한 100주년기념교회 정한조 목사
▲정한조 목사는 빌립보서가 ‘그냥 읽어도 은혜가 되는 성경이라 오히려 부담될 수 있겠다’는 질문에“모든 목사나 성경이 마찬가지겠지만, 자신 있어서 설교하는 본문은 단 하나도 없다”며
“빌립보서 설교는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려 가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함몰되지 않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매주 주시는 말씀들과 은혜를 나눈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이하 100주년기념교회) 정한조 목사가 최근 빌립보서 설교집 1·2권 <합당하게 생활하라>와 <이것들을 생각하라(이상 홍성사)>를 펴냈다. ‘선임목사’로서 담임목사의 안식월 동안 했던 설교를 엮은 책들이다. 한국교회에서 소위 ‘부교역자’가 주일 공예배 설교를 오랫동안 맡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설교집까지 발간한 것은 더욱 이례적이다. 본지는 이에 정 목사를 만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눴다. 다음은 정 목사와의 일문일답.
- 책 서문에서도 언급하셨지만, 부교역자로서 주일 대예배 설교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빌립보서 강해로 두 권짜리 설교집까지 내셨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집회로 출타하거나 잠시 유고가 생기면 외부 강사를 많이 데려오는데, 저희 교회는 선임이라는 이유로 저를 세워 주셔서 개인적으로 매우 감사드립니다. 인간적으로는 감사했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형편없는데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게 됐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중 마지막이고, 사적 애정이 많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사역 중심, 목적 지향적이던 모습보다, 사람을 배려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의 별명이 ‘기쁨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제게는 빌립보서를 생각하면 늘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죄수가 됐지만, 바울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함몰되지 않고, 그리스도께 매여 있고 붙잡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게 굉장히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사로잡고 세속적 가치관 속으로 빠뜨리려 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천국 영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다, 빌립보서가 연결됐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나면 영원한 호흡을 하게 되니, 빌립보서를 나누면 유익하리라는 것입니다. 설교집이 책으로 나온 것은 설교를 잘해서라기보다, 출판사에서 예쁘게 봐 주셨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출판사에서 애를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담임목사님처럼 순서대로 설교하니 본문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본문을 창문 삼아 다른 본문들을 함께 보고, 세상 이야기들도 살피며 준비합니다. 설교는 제 모든 인생의 총체입니다. 본문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 결과가 이번 주에 나타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주일이나 수요일에 설교를 맡은 교역자들은 교회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설교 준비를 합니다. 저도 주일에 설교가 있을 때는, 그 전날 토요일에는 교회로 출근하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 그동안 주신 내용을 원고로 옮깁니다.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고된 과정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룻 만에 하는 설교가 준비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지난 제 삶과 사역, 묵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 빌립보서는 짧은 분량(4장)인데 오랜 기간 설교하셨습니다. 성경 본문은 66권이나 되는데, 교인들이 편식할 위험은 없을까요.
“처음엔 담임목사님의 안식월(7개월) 동안 빌립보서를 충분히 마치고 시간이 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들이 참 많았다고 할까요? 풍성한 내용을 주셔서 7개월간 1-2장을 끝냈습니다. 이후 담임목사님이 돌아오셨고, 아시는 것처럼 목사님께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과 요양 동안 다시 설교를 맡게 돼 3-4장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집 두 권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 설교는 수술과 요양 기간에 한 것이라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편식의 위험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그것(강해·순서 설교)이 편식을 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절기 때면 목사님들이 선택하는 본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오래 하면 계속 겹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설교하지 않는다면, 제가 과연 어떤 본문을 선택할까요? 한 주간, 또는 최근 읽은 말씀 중 와 닿는 부분을 택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다 보면 제 취향대로 교인들에게 설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서대로 할 경우에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렵거나 피하고 싶은 본문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설교하면서 그 말씀이 진짜 하나님 말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부분만 한다면, 뛰어 넘고 하지 않는 본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범위도 너무 길게 잡으면 그 중 하고 싶은 것들만 할 수 있는데, 차례대로 한다면 모든 말씀이 하나님 말씀임을 굳이 입으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성도님들이 깊이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땅을 깊이 파면 지하수가 다 통하듯, 어느 본문이든 깊이 들어가면 모든 성경이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주성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권을 깊이 있게 설교하는 일이 오히려 편식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는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담임목사님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정한조 목사는 설교 중 ‘예화’의 일부분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를 설명해 준다. 이에 대해“사람들에게 원작이 주는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목사님들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들어 보면 ‘그 책을 과연 읽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읽고 핵심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읽지 않은 분들도 많고 읽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기에 이야기를 되새겨 주면서 본문을 더 뚜렷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 주일 공예배 설교라는 부담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극복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어떻게 극복이 되겠습니까.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30세부터 전임 사역을 시작했는데, ‘빨리 40세가 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 때가 되면 목회나 설교가 좀 익숙해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게으르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준비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40세가 되니 더욱 부담이 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인간의 입으로 전해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인간이 인간의 말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그러시겠지만, 설교 원고가 완성돼도 ‘오늘 준비가 잘됐다’고 생각이 들 때는 없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어렵고, 더 심해지면 밤에 잠이 오질 않고,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그러나 주일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말씀을 전합니다.
예전에 구역장 세미나를 하면서 설교 준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교회 내에서 회자되는 것 같은데요. 한번은 서재에서 수요 설교를 준비하는데 너무 안 풀리고 힘들어 거실로 나왔는데, 문득 주방 쪽 식탁에 간장 한 병이 보였습니다.
순간 ‘저걸 마시고 쓰러지면 오늘 설교 안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웃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많은 분들께서 피드백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 준비하고 전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을 때마다, 어김 없이 여러 교우들께서 문자나 메일을 통해 ‘오늘 설교가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노라’고 피드백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게 그분들의 피드백이라 생각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수고했다’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 교회와 부교역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부교역자 처우(주로 월급·복지) 문제가 한국교회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100주년기념교회는 ‘부교역자’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교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자체가 어렵고 힘들면, 잘 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의 소리는 담임목사와 격차가 커서 나오는 박탈감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담임목사가 용기를 내고 손해 볼 각오를 하면 해소되지 않을까요.
저희 교회도 기본적 호봉이 있지만,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편입니다. 저희 담임목사님은 1988년부터 전임사역을 하셨으니 일반 회사라면 봉급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은,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고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들도 담임목사님이 용기를 내시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처우보다 주목되는 것은 40-50대 부교역자들이 많은 부분인데요. 부교역자 처우가 좋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신대원에 수백 명과 함께 입학할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인데, 일반 회사에서도 모든 입사 직원들이 다 이사가 되고 사장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과장이나 부장을 하다가 마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을 모두 담임목사로 부르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담임목사로, 다른 분은 보통 말하는 ‘목사’로 부름받았을 수 있습니다. 전임목사로 부름받았다면, 평생 전임목사로 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한국교회가 점점 쇠퇴한다는데, 어떤 분은 전임목사로 은퇴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교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교회 정관에서 은퇴에 대해 담임목사 65세, 전임목사 60세로 정해 놓은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 목사님은 제네바에서 담임목회를 하시다가 귀국 후 다시 전임목회를 하고 계신데, 결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어렵지 않았습니다(웃음). 목회가 목사의 어떤 능력을 토해내는 현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르심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곳으로 부르셨다면, 전임이면 어떻고 담임이면 어떤가 생각했습니다. 도시면 어떻고 농어촌이면 어떤가, 그게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담임목사가 오랫동안 부재하고 강단을 비워도 교회가 흔들림이 없는 것은, 성도 수준이 높아서인지요 아니면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인지요.
“저희 교회 큰 특징 중 하나가 상임위원회 제도입니다. 저희는 작년까지 일반 교우님(장로)이 상임위원장을 대행하셨고, 담임목사님은 교회의 여러 결정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잘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상임위원회는 장로교회로 치면 당회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소수의 장로들에게 교회의 모든 권한이 주어진 당회 구조는 권력화되고 서열화되기 쉬울 텐데, 결정 구조가 크면 클수록 투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상임부서가 49곳 있고, 각 부서 팀장과 전임 교역자 29명, 사무장 1명까지 총 79명이 상임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매달 모여 교회의 살림을 이야기하고, 결정사항이 있으면 회의록을 만들어 운영위원인 306개 구역장들에게 메일로 발송해 구역 식구들과 나누도록 합니다. 성도님들이 구역 공부만 나오시면 교회의 모든 결정들을 다 알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고 봅니다.”
- 한국교회에서 100주년기념교회가 갖는 위치, 그리고 이 교회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교회는 구성원들을 위해 시작되지만, 저희는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1차로 한국교회 양대 성지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 선교 100년의 정신을 계승하고 200년의 비전을 함양하는 일이 목표입니다. 저희는 그것들을 위한 길을 닦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1차로 구성원들을 섬기고, 한국교회를 섬기고, 한국 사회를 섬기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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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선 '주여 주여', 교회 문만 나가면 '죽여 죽여'
신앙인은 불 받을 게 아니라 말씀을 받고 그대로 살 일이다
김정주
얼마 전, 임신한 아내가 구운 감자가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냉장고에서 감자를 꺼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을 최고치로 올린 다음 얇게 썬 감자를 올려놓으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아내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센 불로 하지 말고 약한 불로 해야 돼!"
이유인즉, 센 불로 감자를 구우면 표면은 순식간에 타들어가 빨리 구워지는 것처럼 보이나 막상 먹어 보면 속이 하나도 안 익어 생감자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센 불에다 굽는 게 아니라 약한 불에다가 천천히 구워야 감자 표면도 타지 않고 속도 잘 익어 잘 구워진 감자가 된다고 했다.
비단 감자만이 아니라 생선도 그러하다. 센 불에다 고기를 고문하듯이 단시간에 굽다 보면 겉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지만 막상 먹어 보면 물컹한 게 회 맛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진짜 고수들은 센 불과 약한 불을 적절히 사용해서 고기를 굽는다. 그렇게 센 불과 약한 불을 오가며 정성 들여 구운 고기는 육즙이 살아 있어서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고기의 육즙이 크도다’라는 찬송을 부르게 만든다. 아무튼 요리를 할 때 겉이 아닌 속까지 푹 익히려면 약한 불을 잘 사용해야 한다.
불로~ 불로~ 불로~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1년에 많게는 6번, 적게는 2번 정도 부흥회를 열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부흥회에 참여하면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흥회에 참석하는 교인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부흥강사 목사님은 엘리야 선지자.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는 것을 보여 주려고 저토록 애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 볼 정도로 부흥회 때마다 센 불이 임하는 것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부흥회의 알파와 오메가는 불로 시작해서 불로 끝날 때가 많았다.
찬송도 불이 꼭 들어간 찬송이어야 하고, 말씀도 불같은 말씀이어야 하고, 기도도 불이 임하는 기도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부흥회의 열매는 불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야 했다. 그렇게 불같은 부흥회가 잘 마쳐지면 그 부흥 강사 목사님에게는 불의 종이라는 칭호가 하사된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그런 불의 종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을 보았다. 이러한 부흥회의 불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의 겉은 엄청나게 뜨거워진 것 같고 당장 오대양 육대주라도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달려갈 것 같은 기세를 보이는데, 교회 주차장에서는 겉이 노릇노릇 익은 얼굴로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다투기 시작한다.
주차 안내를 하는 나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열불을 낸다. 여전히 같은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이간질하고 미워한다. 이간질하는 모습을 보는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세상이 아닌 가정에 돌아가서 불(?)을 쏟는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볼 때는 “주여 주여” 하는데 교회 밖에서 사람들이 안 볼 때는 “죽여 죽여” 한다.
센 불의 부작용
이상했다. 왜 그러는 걸까? 내가 센 불에 조리한 감자 요리처럼, 겉은 센 불에다가 구워 가지고 바싹 익은 듯하고 심지어 탄 흔적도 보이지만, 속은 전혀 익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고 뜨거움을 주장하는 불의 종(?)이 있어서 센 불을 불러일으켜 뜨겁게만 달구면 사람들이 그 뜨거움 속에서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혹시 속고 속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오히려 이러한 뜨거움 속에는 텅 빈 공허함이 따라올 때가 많았다. 실컷 달아올랐기는 한데 정작 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신앙적인 감정 잡기에서 나온 영적 애드리브 같은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불 받았는데도(?) 지독하게 변화되지 않는 센 불의 악순환들에 질리기 시작했다. 약한 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약한 불이!
약한 불이 무엇인가? 철저하게 성경의 본문을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약한 불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대단해 보이지 않고, 소위 말하는 센 불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이 약한 불에는 센 불이 갖지 못하는 힘과 능력이 있다.
▲ 불같은 말씀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불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 아닌 성령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어야 한다. 불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상식이 회복된 사람들이 나타나야 한다. (사진 제공 김정주)
천천히
이 성경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성경에서부터
신학을 타고
전개될 때에
그 말씀 자체에서
능력이 나타난다
약한 불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을 정확하게 가열하여서
푹 익게 만든다
겉의 변화는
안의 변화를
보증하지 않지만
안의 변화는
겉의 변화를
보증한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 센 불이
화력이 세 보이지만
약한 불이
진짜 화력인 것이다
불을 힘입어
사자처럼 외치지 않고
말씀을 힘입어
소녀처럼 수줍게 전할지라도
본문을 통과한
설교자와 그렇지 않은 설교자의
외침은
확연한 울림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찬양으로
분위기를 잡지 않아도 된다
(물론 찬양이 분위기를 잡는 시간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불같은 말씀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불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 아닌
성령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어야 한다
불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상식이 회복된 사람들이 나타나야 한다
사람들이 설교자를 기억할 때에
불의 종이 아닌 주의 종
말씀의 종이라고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나는 집회를 마친 뒤에
사람들의 내면은
고기 뷔페 가서
3시간 쉬지 않고 먹은 것처럼
진리로 말미암은
포만감을 느낀다
변화되어야 한다고
굳이 협박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이 꿈틀거리면서
그 사람의 존재를 변화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상식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이다
약한 불이 그립다. 목회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잔인하게 사형시킨 성경 말씀이 아닌, 성경 말씀에 의해서 오히려 목회자가 처절하게 못 박혀 순교당하고 나오는 진리. 그 진리에 순교당한 설교자의 설교가 듣고 싶다. 성경을 읽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나누는 성경 독후감 나눔 시간이 아닌,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자체를 배우는 성경 공부 시간을 갖고 싶다.
성도들이 너무 걸쭉한 성경 이야기만 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성도들은 내가 그러하듯 진리에 목말라 있다. 성경을 알고 싶어한다. 그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배우고 알아가고 그 속에서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하게 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약한 불이 그립다. 약한 불의 설교자가 되고 싶다. 성경 66권 중 어디를 펴든지 그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 설교할 수 있는 사람. 어장 관리 하는 목회자가 아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뛰어들어
그대의 월척이 되고 싶다
기다림에 지쳐
점점 돌이 되어 가는
그대의 절망을 녹이고 싶다
그대 낚싯대에
큰 떨림을 전하고 싶다
물빛보다 푸른 희망을 전하고 싶다"
- 김연희, <낚시>
[부탁드립니다]
김파전이 독자분들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파트타임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는 김파전이 한 가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취업 준비생'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김파전이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아 뭐라고 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경험했거나 지금 그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래의 김파전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 주셔도 되고, 메일로 보내 주셔도 됩니다.
20~30대의 가장 아픈 이야기 중 하나 '취업 준비생'. 결혼, 학자금 대출, 재정, 직장 등의 이야기는 했는데 '취업 준비생' 이야기도 꼭 한번 여러분을 대신해 김파전의 입으로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나누고 아파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힘들었던 순간. 아팠던 말. 오해 받아 억울했던 순간.
힘이 되었던 말. 희망이 되었던 말.
교회 생활은 어떤지. 교회는 어떻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사람들이 꼭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
꼭 하고 싶었던 말.
등등…
이외에도 꼭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 주시면 김파전이 읽고 잘 정리해 파전행전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참, 당연히 익명으로 소개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가능한 자세하고 실제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김파전을 응원하는 여러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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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 동성애자가 사는 법 '퀴어 기독교인' 세 명의 삶과 신앙 이야기
이은혜
2015 퀴어 문화 축제가 끝났다. 퀴어 퍼레이드가 진행되던 6월 28일까지, '동성애는 죄'라는 명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이 올라왔고 댓글은 수십 개씩 달렸다. 여러 교단과 단체들은 연합해서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었다.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 퀴어 문화 축제 역사상 한국 기독교가 공동으로 대응한 것은 처음이었다.
양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정작 기독교인 동성애자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에서 게이·레즈비언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퀴어 퍼레이드가 있기 이틀 전, <뉴스앤조이>는 세 명의 '퀴어 기독교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세 명 모두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차세기연)'에서 활동하고 있다. 차세기연은 성 소수자의 동등한 인권을 지지하는 기독인이라면 동성애자뿐 아니라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곳이다.
'안개(남)'는 올해 서울의 한 신학교를 졸업했다. '리무(남)'는 현재 재학 중인 대학교 내 성 소수자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레송(여)'은 직장에 다니면서 차세기연 운영 위원을 겸하고 있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신앙적인 배경이 다른 세 명의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세 분 다 기독교인이라고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셨나요?
레송: 모태신앙이에요. 가족들 모두 교회에 다니고 있고요.
안개: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가족 모두 교회 열심히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에요. 리무네 친척 중에는 목사님도 있어요. 모태신앙도 못 고치는 동성애인 셈이죠. (웃음)
- 그럼 지금도 모교회에 다니세요?
리무: 아니요. 지금은 다 떠나서 두 명은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 다니고, 한 명은 그냥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 쾌활한 리무 씨는 중학교 때 아웃팅당한 경험이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성격 좋고 활발해 친구가 많은 그였는데, 하루 아침에 돌변한 친구들은 그를 '게이 새끼'라고 불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다니던 교회를 떠나신 특별한 계기나 사건 같은 게 있었어요?
리무: 딱 어떤 사건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고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어렸을 적부터 다니던 교회를 다녔어요. 서울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교회인데요. 지금도 저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그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예전에 한창 보수 기독교계에서 차별금지법·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운동할 때, 그 교회에서도 로비에서 반대 서명을 받더라고요. 그걸 보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설교 시간 동성애자 혐오 발언도 자주 들었는데요, 그런 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결국 못 참고 나오게 된 거죠.
레송: 저는 어렸을 때 장로교 교회에 다니다가 감리교 교회로 옮겼고, 이후에는 이곳저곳 교회를 옮겨 다녔어요. 설교 시간에 동성애 혐오 발언이 심해지면 못 견디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대형 교회를 선호했어요. ㅅ교회에 다니다 예배 끝나고 나오니까 로비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자 친구가 다니던 ㅂ교회에 잠시 다니다가, 그 후에는 ㅇ교회로 옮겨 갔어요.
회사에서 아웃팅(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경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할 때였는데요, 회사 앞에 ㅇ교회가 있었어요. 그때는 정말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만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회사 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새벽 기도 갔다가 출근하고 그랬죠. 회사 끝나고 나면 집에도 못 가겠더라고요. 집에 가면 괴로운 마음에 언제 목을 맬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회사 끝나면 ㅇ교회 저녁 예배에 갔어요, 성경 공부도 하고 그랬죠. 한 반 년 동안 그렇게 다녔는데, 거기서도 동성애 혐오 설교의 수위가 높아지더라고요. 더 듣고 있다가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 지를 것 같아서 나왔어요. 그 교회는 지금 퀴어 문화 축제 반대에 앞장서고 있어요.
- 리무 씨 말을 들어 보면, 10대 때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은데요, 그때 이야기 좀 해 주시겠어요?
리무: 저는 제가 중학교 때부터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알았어요. 다른 친구들이 예쁜 여학생을 찾을 때, 저는 잘생긴 남학생에게 눈길이 갔죠. 중1 때 성격이 소극적었는데, 2학년이 되면서 반장이 되고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자연스레 대인 관계가 넓어지고 친구도 많아지더군요. 위기는 중3 때 찾아왔어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제 성적 지향을 들켰고, 학교에서 왕따가 됐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성격 좋고 친구 많은 학생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게이 새끼'가 됐더라고요. 학교에서 단체로 여행을 갔는데 얼마 전까지 같이 밥 먹고 장난 치고 놀던 친구들이 '넌 남자 좋아하는 새끼'라면서 자기 근처로는 오지도 말라고 하더군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 후로는 저 자신을 숨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일부러 여자 친구도 사귀어 보고요. 이렇게 내 자신을 둘로 나누다 보니까 자기혐오도 심했죠.
고등학교 때도 위기가 찾아왔어요. 중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급생이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등학교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더라고요. 원래부터 학교 생활에 별 미련이 없었기 때문에 이참에 커밍아웃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날부터 누군가 '너 게이야?'라고 물어보면 아무렇지 않게 '응, 나 게이야'라는 대답을 반복했어요. 그렇게 1년을 보냈더니 적어도 동급생들은 제가 게이라는 걸 알더라고요. 그 후로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도 저랑 친해지려고 한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죠.
▲ 안개 씨는 서울에서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신학교에 진학한 후에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안개 씨는 신학교를 졸업하셨잖아요. 그러면 신학교 가기 전에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셨나요? 어떻게 신학교까지 가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안개: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이 야한 동영상 보는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는 죄라고 생각했어요. 또래 남학생들이 수련회 가서 은혜받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야한 영상을 지우잖아요.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도 그런 것처럼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죠. 같은 맥락으로 신학교를 간 거에요. 신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신앙생활하면 이 감정들이 다 사라질 거라고 믿었죠. 어렸을 때부터 '동성애는 죄'라고 배웠기 때문에 더욱더 제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변하지 않는 삶을 살다가, 군대 다녀오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동안 막연하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 온 것 자체에도 회의가 드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과 싸웠어요. '싸웠다'는 표현이 맞을 거에요. 정말 울고불고 몇 날 며칠을 기도에만 매달렸어요.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현실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기도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응답을 받은 거죠. 정말 신비한 체험이었는데요, '그래도 내가 널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렇게 듣고 나니까 모든 게 정리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가 동성애자여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고백하려고 했는데요. 그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깨끗하게 접었죠. (웃음)
- 레송 씨는 힘들게 대형 교회를 다녔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지금은 어떤 교회를 다니세요?
레송: 오래 전부터 알던 목사님이 있었는데요. 8년 정도를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아웃팅을 당해서 회사를 떠나야 했을 때도 '왜 떠나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대로 이유를 말할 수 없더라고요. 그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셔서 그곳에 다녔는데요. 어느 날, 새벽 기도를 가다가, 문득 이제는 제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목사님한테 '사실은 나 여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다'고 고백했더니 예상대로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죠.
충격을 받으시긴 했지만, 그분은 교회 일부 성도들에게 동성애자에 대해 교회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느냐고 물었대요. 다행히 목사님이 대화했던 교인들은 '예수님이라면 동성애자를 보고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주제로 의견을 나눠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들은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동성애자를 정죄하거나 밀치지 않고, 안아 줬거나 손을 잡아 줬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던 분들이었대요. 감사한 일이죠.
그 후 이 목사님이 동성애가 무엇인지 배우려고 관련 세미나도 다니고, 저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목사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후에는 교인들에게도 하게 되더라고요. 1년 동안 교인들 한 명 한 명에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단 한 명의 교인이라도 절 거부하면 떠날 각오로 했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공포감을 느꼈죠. 다행히 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주셔서 매주 감사했어요.
▲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운영 위원으로 활동 중인 레송은 회사에서 아웃팅으로 나와야 했던 때를 고백했다. 그녀는 교회에 있지 않으면 언제 목을 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다른 퀴어 기독인들이 들으면 부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떠나신다고요?
레송: 어느 순간 목사님이 저를 불편해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교회니까 매주 새로운 신자가 오면 서로 소개를 하는데요. 그때마다 저를 '동성애자'로 소개하는 것에 목사님이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너를 동성애자로 보는 것이 싫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건 저를 부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또 다른 교인들도 저라는 사람은 인정해 주시지만, 다른 성 소수자나 사회 약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때면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 한국 기독교인들이 '정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들 몸을 사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월호 때도 그렇게 유가족들이 원했는데, 결국 대다수는 가만히 있었는데요. 이런 것과 성 소수자 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세요?
안개: 저는 같다고 봐요. 한국 기독교인들은 말로만 사랑하는 것 같아요.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게 잘 보이지 않아요.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칼에 찔리고 있으면, 강도의 손에서 그 칼을 빼앗아서 부러뜨리던가 아니면 최소한 그 사람이 해를 안 당하게 같이 찔리던가 하는 게 사랑 아닌가요? 그냥 옆에 서서 '어떡해, 칼에 찔리고 있어. 어떡해' 발만 구르면서 보기만 하는 건 방관하는 거죠. 바로 옆에서 사람이 칼에 찔려 죽어 가고 있는데 옆에 서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래도 우리는 저 강도와 다르지' 하며 만족하는 거에요. 이게 '착한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중립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화가 나는 거는요. 칼에 찔려 죽은 우리가 서서 구경하던 사람에게 '왜 거기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우리를 사랑한다면서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구경하던 사람은 '왜 화를 내고 그래? 우리가 너희를 찌른 건 아니잖아. 강도한테나 뭐라고 해'라고 대답하는 상황이에요.
저는 이 지점에서 침묵하는 그리스도인들한테 정말 화가 나요. 차라리 칼로 찌르면, 하지 말라고 저항할 수 있죠.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가서 제가 '당신 왜 가만히 있냐'면서 때리면 저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잖아요. 가만히 서서 발만 구르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세월호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 세월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얼마 전, 고 육우당 추모제에도 세월호 유가족이 오셨다면서요.
안개: 예, 지난 4월인데요, 그때 유가족 한 분이 오셔서 지지 발언을 해 주셨어요. 사회 약자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성 소수자가 장애인, 미혼모, 이주 노동자, 불법 해고자 등이 투쟁하고 집회하는 현장에 함께하는 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외받고 차별받는, 폭력의 피해자인 사람들이 느끼는 연대감 때문인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아팠는데, 당신은 얼마나 아팠어요?'라는 마음이 소수자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성 소수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교회 공동체가 아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겪은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교회를 원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지금 한국교회는 자신들을 향해 혐오 발언을 계속 내뱉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신앙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세 명 모두 답은 비슷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하나님뿐이었다.
퀴어 기독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원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다르다. 누구는 자신을 숨기고 신앙생활하기를 원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교회에서 커밍아웃하고 신앙생활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콕 집어서 성 소수자만을 위한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를 원한다. "아, 하나님 왜 저는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라는 기도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 생활의 기쁨을 알기에, 이들은 더더욱 교회를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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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판결 후 미국사회와 교회
지난 27일 미국 뉴욕주 맨해튼 8번가와 인근 거리에 동성 결혼을 허용한다는 미국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동성애 깃발이 미국 국기와 함께 걸렸다.
세계 경제의 심장인 미국 뉴욕에서 한인 교회 성도들이 세계복음화를 외치며 3일간의 집회를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6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하늘길 약 1만1000㎞를 날아가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기자가 접한 첫 소식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허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에는 “대법원 판결로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튿날 뉴욕의 중심 맨해튼 거리 곳곳에는 성조기와 함께 동성애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이 나란히 걸렸습니다(사진). 깃발 아래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물었습니다.
“연방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브루클린에 거주한다는 한 중년 여성은 “판결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불과하다”면서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들이 오래 전부터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왔고, 우리 사회는 이미 그 권리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퀸즈 지역에 사는 한 청년은 “이제 트랜스젠더도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주일을 맞은 28일(현지시간) 한인 교회 중에서도 보수적인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주일예배 어느 순서에서도 동성애와 관련된 메시지나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교민들을 수소문해 다른 한인 교회의 상황을 물었지만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얘기만 들려왔습니다. 6월 28일을 ‘동성애 조장 반대, 행동의 날’로 선포하며 대대적인 대응에 나섰던 한국교회의 모습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때 한인 교회 한 곳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설교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재빨리 걸음을 옮겨 설교 막바지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강단에 선 목회자는 담임목사가 아니라 3일 동안 집회 강사로 초청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였습니다.
관계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습니다. 강단에 오르기 5분 전 소 목사가 예정된 설교를 포기하고 동성애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예배 후 만난 한 성도는 “평소 갈급함이 있었던 동성애에 대한 설교를 듣게 돼 기뻤다”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다른 성도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최근 동성애를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면서 “이제 크리스천 부모로서 성경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건국의 기본 정신은 영국 국교회의 탄압에 맞서 경건함과 금욕주의를 기본으로 삼았던 청교도 정신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기본 정신을 상실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상실의 시대를 향한 비판정신마저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인천공항을 향해 1만1000㎞를 다시 날아가기 전에 미국 땅에 남겨두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성경적 메시지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여전히 그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혹 보면 "성경만 있으면 되지 복잡한 신학이 왜 필요한가?"라고 하시며 신학무용론을 펼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심정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그것은 그다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성경을 보다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신학이 있어도 성경을 들고 이상한 주장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하물며 체계적인 신학 연구마저 없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이는 마치 자연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과학과 실험적 검증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와 신학은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단을 운영하는 교회법 자체가 신학과는 결코 분리할 수 없슴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이 잘못되면 교회를 오류로 이끌 수 있고, 반대로 교회가 변질되어도 신학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신학의 시녀화
중세 교회가 바로 그런 실제적인 경우입니다. 사도들의 신학을 물려받은 신약 초기 교회와는 달리 본격적인 교황적 교권의 부패와 함께 신학의 변질도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마리아 숭배, 성인과 성당과 성지 중시 사상, 제사장적 사제직, 직분 계급화, 미사의 화석화, 그리고 신도 우민화 등이 모두 그런 것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세 교회의 부패한 교권은 마침내 교조적인 신학 논리를 동원하여 '종교재판소'를 운영하며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무분별한 '마녀사냥'과 '종교살인까지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건전한 신학을 지녔던 정통 교단이라도 일단 교회가 변절하기 시작하면 결국 신학도 동반하여 타락하게 됩니다.
한국의 주요 교단들을 전반적으로 볼 때 '성경신학', '조직신학', 그리고 '역사신학' 등은 비교적 정통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실천신학'에 문제가 많습니다. 심지어 주일에 본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불륜에 비유하는 대단한 목사도 있습니다. 신론과 구원론은 그런대로 잘 가르치는데, 교회론이나 목회론에 엉터리가 많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조금 심하게 극평을 하자면 상당수의 교회들은 일단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지극히 성경적인 구원론으로 신도들에게 건전한 교회라는 좋은 인상을 주고 깊은 신뢰를 얻은 후, 그 다음엔 비성경적인 교회론이나 은사론으로 교인들을 유도하여 그들의 주머니를 알뜰하게 털어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보면 멀쩡한 정통 교단의 교회들조차 엉뚱한 사역을 하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서는 아주 멋진 설교를 은혜롭게 잘 하십니다. 그것만 보면 틀림없이 훌륭한 개혁 교회의 경건한 목회자답습니다. 신학적으로 큰 하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매우 개혁적인 교단들조차도 목회 독재나 교회 세습에 대해 방관하거나 침묵하는 곳이 많습니다. 진정 성경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행위이지요. 특히 세습을 자행한 파렴치 목사들의 그 허접한 세습 논리를 따르자면, 차라리 베드로의 아들이나 후손을 대대로 교황이나 교단 총회장으로 추대해야 옳을 것입니다.
개신교의 변절
그나마 세습은 약과입니다. 이제는 헌금 남용, 공금 횡령, 성추행, 성직 매매, 표절, 거짓말, 장부 은익, 황제식사, 사치골프, 이벤트예배, 그리고 무분별한 은사 집회 등 감히 상식을 넘는 목회자들의 비행에 대해 구경만 하고 있는 교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는 항상 치리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 비리 목사가 제대로 치리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가재는 게 편이니까요.
이들 부패 세력은 언제나 어설프게 변조된 신학을 방패로 들고 나와 자신들의 변태적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옹호합니다. 어떤 목사는 '목사에게 특별한 성직권이 있다'는 중세적 궤변을 늘어놓는가 하면, 다른 목사는 '목사는 하나님께서 직접 치리하시니 교인들은 간섭하지 말라'고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교인은 의무적으로 헌금만 하면 되지 담임목사가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지 볼 권리가 없다'는 뻔뻔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학의 '시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신학이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패거리로 공조하고 급조한 '개똥신학'입니다. 분명히 신학교에서는 멀쩡한 개혁신학을 배웠건만, 막상 목회 현장에 와서는 터무니 없는 잡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비하하는 개똥은 철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개혁신학이라고 해서 천하무적은 아닙니다. 천사가 타락하면 사탄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신학도 일단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면 불과 몇 세대를 못 버티고 순식간에 개똥신학으로 변질합니다.
필자는 작금의 '한국형 십일조신학'이 그 대표적인 실례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도 유독 한국교회 강단에서만 개나 소나 모두 나서서 '현대 십일조가 교인의 의무'라고 겁 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진리와 진실에 눈을 감고 무식이 철철 흐르는 상업적 '어용 신학'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은 부패한 귀족 목사들이 그동안 자기 교인들을 꾸준히 맹신화하고 사병화한 덕분에 많은 교회에서 그들의 억지가 그냥 그대로 무마되고 용인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오늘날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유창하게 하고 교인들의 존경도 받는 어떤 목사들이 실상은 교회 돈을 열심히 뒤로 챙기는 고도의 직업적 종교사기꾼인 이유입니다.
주일에 형님 목사의 교회에 가서 고작 설교 4번 하고 400만 원을 받아 가는 것이 과연 양심적인 목회자가 할 짓인가요. 그것도 수 년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목사 일당이 무려 400만 원이나 되는 고수익 직업이 되었습니까?
더구나 그들의 신학교는 더욱 가관입니다. 교단 내의 교권을 장악한 대형 교회 담임목사들로부터 교수들이 자유롭지 못 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교수 임면권을 교권주의자들이 쥐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보십시요. 소수의 양심적인 신학자들 외에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교회 부패에 대해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비록 답답해서 속이 터지더라도 입만 잘 다물고 있으면 그래도 연봉은 제 때에 나오니까요. 이게 요즘 바른 말을 하는 신학자들은 자꾸 뒤로 밀리고 껍데기 신학자들이 득세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슬픈 대세는 누구도 막기 힘든 상황입니다. "한국교회가 자정능력을 잃었다"는 말이 나온지도 이미 오래이니까요. 따라서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매우 험난한 미래가 한국교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른 신학이 교회를 정도로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부패한 교회가 신학을 오염시키고 있는 안타까운 형국이지요. 어떤 목회자들은 신학을 사욕에 따라 자의로 해석하며 교인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그저 종교적 제도에만 익숙한 무속적 신도로 우민화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신학의 결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현재의 비관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마냥 구경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결국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최후의 승리를 하게 될 것이니까요. 필자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답답하고 어두운 여건 속에서라도 성도들은 결코 '신앙의 본질'을 잃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실 진리는 단순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우리는 신앙 생활을 마치 구약의 율법처럼 지나치게 매뉴얼화하고 형식화하여 교회당과 예배 속에 가두고, 신학을 너무 난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히 반성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세기의 신학자라 불리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가 시카고신학대학에서 은퇴 강연을 마쳤습니다. 비록 그의 신학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찬반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가 통찰력을 지닌 매우 뛰어난 신학자임은 분명합니다.
당시 그 대학의 학장은 학생들에게 "박사님은 매우 피곤하셔서 학생들의 질문을 다 받을 수가 없으니 내가 대신하여 딱 한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졌습니다. "박사님, 바르트 신학의 요점을 한 마디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물음은 수만 페이지의 복잡한 내용이 담긴 신학책들을 저술한 바르트에게 결코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은 20세기 최고의 신학자가 들려주는 자기 신학의 핵심을 듣기 위해 바짝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때 바르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배우고 아는 모든 신학, 아니 성경의 교훈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Jesus Loves me this I know, For the Bible tells me so."
바로 그것은 우리말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은>이었습니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배운 이 찬송가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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