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예배문화’를 논하려면 두 가지를 말해야 한다.하나는 예배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예배 이후의 예배’ 즉 삶의 차원에서 구현되는 예배이다.
이 두 가지는 언뜻 보면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예배가 어떤 신학과 형식에 의해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형성하며 그들이 삶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예배가 가치있고 진실하게 드려지는 예배인가 아니면 형식적이고 율법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인가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역사적 신학적 정체성에 있어서 19세기 미국의 ‘노방전도집회’를 계승하고 있다.실제로 19세기 미국교회에서 드려졌던 예배순서와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순서는 거의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바로 이 노방전도집회가 한국교회의 ‘예배’와 ‘예배 이후의 예배’ 즉 ‘예배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규정한다.
먼저 ‘노방전도집회’는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집회다.여기에는 예배학적 원리에 맞는 예배당 구조나 공간 구성은 물론 예배학적 원리에 맞는 예배의 형식과 구조조차도 들어있지 않다.그저 사람들을 모아놓고 복음의 기초적 도리를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가 바로 그러하다.
예배당은 천편일률적으로 ‘민방위교육장’(앉아서 듣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과 같은 구조이며 예배 형식은 논리나 구조가 결여된 채 찬송 기도 설교 등을 적당히 버무려놓은 형태를 띠고 있다.이런 예배에는 정교한 ‘구속사의 요약’이나 ‘하나님 경외’ 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신비’와 같은 예배학적 이념이 들어있지 않다.
예배의식의 우아함이나 상징의 풍부함과도 거리가 멀다.오직 설교라는 이름하에 외쳐지는 구호만 있을 뿐이며 그것도 봉사 헌신 전도 등 목사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만 울려퍼질 뿐이다.
또 하나 ‘노방전도집회’는 그 중심과 지향점이 ‘사람’에게 있다.왜냐하면 ‘전도집회’는 ‘사람’을 대상으로 “너희가 어떻게 해야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고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한국교회가 기독교 전파 100주년을 이미 넘겼지만 예배는 여전히 이 범주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예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분이 이렇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는 “여러분이 저렇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는 식이 대부분이다.이렇게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늘 예배에서 “어떻게 하면 무엇무엇을 받을 수 있다”(그것이 성령이든 복이든 건강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고 배우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내가 무엇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된다.따라서 그들의 기도는 대부분 “나에게 무엇무엇을 주시옵소서”하는 내용 일색이다.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예배는 보다 더 예배학적 원리에 충실한 예배가 돼야 한다.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가 녹아있는 예배,창조와 구원의 진리와 약속을 잘 선포하고 요약하는 예배,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예배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예배는 보다 더 성서에 충실한 메시지,보다 더 예배학적 원리에 충실한 예배의 구조,보다 더 풍부한 상징으로 채워진 예배의식과 예배공간을 가져야 한다.이것이 바로 예배 참여자들로 하여금 예배의 본질을 접하게 하고 그들의 삶과 문화를 바꾸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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