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토록 사신 주 2002-06-13 20:00:47 read : 1609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예수의 매력(6) -
요한계시록 1:17~18
석원태 목사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열심히 노방전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열심히 그의 전도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청중 가운데서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중간에 나서서 큰소리로,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한 가지를 가지고 있소.”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이슬람교도는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우리 교주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소.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마호메트라고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소. 하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존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의 말은 그대로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 예수께서는 부활하셨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빈 무덤밖에 없는 것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날의 전도는 더 힘이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무덤의 종교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세세토록 사신 영생의 주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만에 장사지낸바 된 무덤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일간 자신의 부활을 스스로 증거하셨습니다(행 1:3). 그 후 수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영으로만이 아닌 영체(靈體)의 영화로운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행 1:10~11).
본문에 보면 그 분이, 예수의 부활증거 때문에 박해를 받아 정배살이를 하고 있던 당신의 제자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서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라고 하는 예수의 자기 선언을 봅니다. 이 말, 곧 ‘세세토록’(eij" tou;" aijw'na" tw'n aijw'nwn)이란 말은 ‘그 세대들의 그 세대들에게까지’라고 번역되는 말인데, 예수 자신의 영존의 본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살아있어’(zw'n eijmi)라는 말도 ‘내가 지금 살아있노라.’고 번역될 말로 그 자신의 자존(自存)성을 강조하고 있는 말입니다.
문제의 초점은 ‘예수께서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이라는 예수 자신의 선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 하반절에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4장 6절과 48장 12절에는 이 말이 ‘성부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8절, 22장 13절에는 성자 예수에 대하여「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영생의 주이신 예수 자신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주!
Ⅰ. 전에도 살아계신 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전에도 있었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 자신의 시점으로 볼 때 이 말은 예수의 과거 존재성을 말합니다.
1. 그것은 예수의 영원 자존성을 말합니다.
바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곧 하나님이신 예수를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영원자존(출 3:14)과 함께 성자 예수님의 영원자존을 말합니다. 그 분은 만물창조에 함께하신 창조자였다고 하였습니다(요 1:1~2).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하신 영원자존자라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죄가 되는 것입니다(요 8:29, 42, 54, 56, 5:17~20).
2. 예수 화육강세의 비하와 부활 영광의 존재를 말합니다.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33년을 거하였습니다. 그 육신의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요 1:14). 그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였습니다(막 10:45).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 40일 후, 하늘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에 좌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롬 8:34, 행 1:3, 9~11). 바로 이것이 화육하신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의 정체였습니다.
Ⅱ. 이제도 살아계신 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이제도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1장 18절에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의 현재성, 현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교회 중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는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으로 다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성령을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다른 보혜사로 우리 중에 오사,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다른 보혜사를 ‘진리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조금 후에’ 다시 와서 우리를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요, 또 그 일로 인하여 우리도 살리겠다고 하였습니다(요 14:16~20).
그분이 살아계신 영으로, 기도하던 다락방의 무리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였습니다.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다시 말하였습니다(행 2:1~11).
그 모든 무리들이 그 분을 영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그 결과 3년이나 그를 따르던 저 갈릴리의 제자들은 불덩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저들의 입에서 예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 터져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복음의 설교에 영혼들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무리의 모임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세우기로 약속하신 교회탄생이었습니다(마 16:18, 행 20:28).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분이 교회 중에 살아계신 표적이 된 것입니다.
살아계신 그 분이 스데반 집사의 마음에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 결과 스데반은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박해자들의 돌에 맞아 죽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다시 사신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행 7:55). 이 광경을 목도한 스데반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고 외쳤습니다. 스데반은 살아계신 그분에게 불쌍한 사람들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영광의 순교를 하였습니다(행 7:59~60). 그 분이 살아계셔서 박해자 사울에게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영광의 빛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아들을 불러주는 음성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회개시켜 이방인의 복음 사도로 임명하였습니다(행 9:, 갈 1:).
그 후에 주님은 바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선교지에서 위험을 느꼈을 때 밤에 주께서 환상 중에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로마로 가던 항해 중에 풍랑을 만난 죽음의 위험 중에도 주님이 그의 곁에 서서 생명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습니다(행 27:23~24). 그가 로마의 감옥에서 예기되는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에도, 주님께서 그의 곁에 서서 바울 자신을 강건케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17).
지금 정배지 밧모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살아계신 주님이 오셨습니다. 실로 영광의 주님으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팔 같은 큰 음성으로 요한을 찾아오셨습니다. 촛대 사이에 살아 임재하신 인자 같은 이로 오셨습니다. 곧 교회 중에 살아계신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제사장이신 주님(발에 끌리는 옷)으로, 왕이신 주님(가슴에 금띠)으로, 거룩하시고 전지하신 주님(흰 머리털, 불꽃같은 눈)으로, 사망을 이기신 승리의 주님(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발)으로, 말씀의 주님(날선 검이 나오는 입)으로, 영광의 주님(해같이 빛나는 얼굴)으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이러한 영광의 정체 앞에서 그만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어 버렸습니다(계 1:12~17). 그때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그의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계 :17~18)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교회 중에 살아계신 주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에 일곱 별(교회의 사자)을 오른손에 붙잡고 임하여 계신 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계 1:20, 2:1)!
Ⅲ. 장차 오실 살아계신 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의 미래성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곧 재림하실 주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수없이 그가 살아서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또 약속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몇 권의 책을 빼고는 빠짐없이 그가 다시 오신다는 재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전능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망과 음부’는 그의 재림과 함께 집행될 최후 심판 곧 둘째 사망의 권세를 뜻합니다. 곧 예수 재림과 함께 악인(불신자)들이 최후로 불못에 던져지는 최후심판 권세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4)고 하였습니다.
‘열쇠’란 그의 절대하신 주권적 통치권을 가리킵니다. 바로 예수의 최후 심판 권세를 뜻합니다. 그분의 엄위하신 심판 때문에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4:11).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어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계 20:10).
뿐만 아니라 세세토록 살아있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구원이 세세토록 미치게 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 51:8)고 예언함으로 택함받은 성도의 영원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9절에 나타난 영물들도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13절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과 22장 5절에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세토록 살아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는 영생의 삶, 영생의 나라가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주와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셰익스피어는 진토로 화한지 벌써 오래입니다. 그가 누운 에이번 무덤에서 그는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쉘리도 그리스와 이태리에서 잠들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에 묻혀버려 소식이 끊어진 지가 세기를 넘었습니다. 이 지구를 찾아왔던 그 수많은 영웅들과 호걸, 가인들과 재사들이 무덤으로 가버린 이후 돌아올 줄 모르고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 그 분은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나를 찾아 무덤으로 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여기 무덤에 머물지 않고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르기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그러나 이제 산 자가 되었노라. 세세토록 살아있어 너희에게 약속한 세상 끝날까지 임마누엘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주! 과거에도 사신 자존의 주! 현재에도 살아계신 임마누엘의 주! 장차 다시 오사 세세토록 왕노릇 하실 주! 바로 이것이 우리의 생존의 힘이 아닌가! 예수 죽음을 통하여 나온 부활의 생명!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진리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망할 수 없고, 교회가 이 세상에서 무덤이 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이유가 아닌가! 바로 이것이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불사적 생명의 매력이 아닌가!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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