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 2002-06-13 19:57:44 read : 1699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행전 2:21~22 석원태 목사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도 변함없는 향기를 내뿜는다.’ 라는 영국의 격언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상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아마 장미꽃의
장미꽃된 특성과 그 고유한 매력을 두고 한 말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저들의 변함없는 사랑고백에 씌어졌습니다. 우리 신약성경에 100회 이상이나 사용된 매력(칼로스, kalov")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흠정역에는 단순히 ‘good’으로 번역되었으나, ‘진실한 것’(honest), ‘선한 일’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롬 12:17, 고후 8:21). 라틴어에서는 ‘말쑥한 것’, ‘우아한 것’, ‘보기에 멋진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야고보서 2장 7절에는 예수를 가리켜 「그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함으로 예수의 매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세기와 역사 속에서 세계사를 붙잡고 있는 축이, 구심력이, 힘이 바로 ‘예수’라고 하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매력입니다. 우리는 두 번째로 예수가 사람을 이끌고 있는 이적과 표적과 권능을 생각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처음으로 행한 성령 설교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고 하였습니다.
Ⅰ. 예수에게는 큰 권능과 이적(기사)과 표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1. 예수에게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에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에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4절에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8절에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몇 구절에서 주님과 관계된 ‘권능’, 혹은 ‘능력’이란 단어는 두나미스(duvnami")입니다. 능력, 힘, 권력, 세력, 권세 등을 뜻합니다.
폭발하는 불가항력적 힘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예수에게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행동에, 교훈하심에 그리고 병자들을 고쳐주심에, 여러 가지 난제들을 해결하심에 무비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이끄는 그의 독특한 매력이었습니다.
2. 예수에게는 표적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에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2절에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7장 31절에는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7절에는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표적’(세메이온, shmei'on)이란 단어는 ‘신호’, ‘표시’, ‘징조’, ‘군호’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와 내용을 새겨주고, 깨닫게 하고, 간직하게 하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사인(sign)에 해당되는 말로 복음서와 성경에 가득 찬 단어입니다.
3. 예수에게는 이적(기적)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은 믿음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자기를 믿게 하기 위하여 표적과 기사(이적)를 행한다고 하였습니다(마 24:24, 막 13:22).
복음시대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기사와 징조들이 하늘로부터 임할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행 2:19). 여기에 사용된 이적(기적, 기사)이라는 단어는 테라스(tevra")입니다. 그 뜻은 경이로운 것, 경탄스러운 것, 놀랄만한 것, 곧 깜짝 놀랄만한 충격을 받는 내용을 뜻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환희를 불러일으키고 만 경이로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에게 있었던 이 ‘큰 권능’과 ‘표적’과 ‘기사’(이적)는 따로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서로 동질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나타난 그의 초자연적 구원역사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 ‘권능’과 ‘표적’과 ‘이적’이 예수에게만 있었던 생명의 매력이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던 매력의 내용이었습니다.
Ⅱ. 그것은 예수 자신이요, 그의 생애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 스스로가 권능의 본체요, 표적과 이적의 본체였습니다.
그분의 권능과 표적과 기사가 그분의 천지창조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권능(능력)과 표적과 기사의 표현들입니다. 더욱이 예수 자신의 성육강세(成肉降世)가 권능과 표적과 기사였습니다. 구유의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12). 비방받는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34).
그의 무죄의 삶인 33년의 이 지상생애 그 자체가 권능과 표적과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의 사흘만의 부활이, 40일 동안의 부활 후의 증거가 그리고 산채로 하늘에 오르심과 보좌에 앉으심이 권능자체요, 표적과 기적 그 자체입니다. 그의 전 생애가 권능의 생애요, 모든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해버린 충격적 삶이었습니다. 그 자신의 한평생 생애가 사람들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 버린 표적이요, 기적입니다. 도무지 사람들의 마음에서 잊어버리려고 해야 잊어버릴 수 없이 영원히 자리잡아 버렸습니다. 그 예수의 권능과 표적과 기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십자가의 삶’이 예수께서 보여주신 권능과 표적과 기사였습니다. 이것이 그가 우리의 가슴에 담아놓은 매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道)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18).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그 자체는 확실히 하나님의 능력이요, 표적이요, 기사입니다. 예수님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선지자 요나의 표적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지내심과 사흘만의 부활을 나타내었습니다(마 12:38-39).
Ⅲ. 예수께서 행하신 복음 사역(使役)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행하신 3년 간의 복음사역이 권능이요 표적이요 기사(이적)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의 잔칫집에서 행하신 처음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잔치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 표적의 맛을 보고 말았습니다(요 2:1-11). 예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그 남은 것을 열두 광주리에 채웠습니다(요 6:1-15). 예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요 6:16-21). 그리고 노기 띤 바다의 물결과 바람을 명하여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마 14:22-33). 예수께서 방장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렸습니다. ‘달리다굼’ 하셨습니다(막 5:35-43). 예수께서 죽어 그 시체를 관속에 넣어 장사지내러 가고 있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명하셨습니다(눅 7:11-17). 예수께서 죽어 나흘이 되어 무덤에서 이미 썩기 시작하였던 나사로에게,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그 무덤에서 불러내고 말았습니다(요 11:43-44). 그 결과는 모두 살아나고 말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살아나서 말도 하고 음식도 먹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관 뚜껑을 열어제치고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자기 발로 걸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초자연적 권능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이요 기사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놀라고, 믿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벙어리를 말하게 하였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소경을 보게 하였습니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마 11:5). 마태복음 4장 24-25절에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께서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죄인 구원 사역을 위하여 행하신 큰 권능(힘)과 기사와 표적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죄인들의 구주가 되신 증거였습니다. 아니 죄인들에게 매력이었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좇는 결정적인 매력이었습니다. 사람을 그에게로 이끄는 매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영감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기를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전 1:30)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 중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셨다」(행 2:22)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가지고,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 가운데서 증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에게만 있었던 생명의 매력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는 다시 보내신 그의 성령을 통하여 자신이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재현시켰습니다. 십자가의 표적을 구하고 증거하는 사도들의 설교(전도)에 사람들이 예수의 권능(힘)을 받고, 예수의 표적과 기사를 받고, 예수에게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였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고,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물건을 나누는 유무상통의 교제가 벌어졌습니다.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행 2:42-47).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습니다(행 3:6-10). 사도들이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행 4:30). 기도하는 장소에 땅이 진동하면서 무리들이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그 힘이 다시 입을 열어 전도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이 교권주의자를 앞세우고 박해를 하였습니다.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앞세워 교회를 시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 옥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설교를 하다가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복음은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말았습니다(행 9:31). 마침내 예수의 분부대로 예수님의 큰 권능과 기적과 표적이 사울에게 나타나고, 그가 성령에 붙잡혀 땅끝까지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는 역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주장하신 일이었습니다.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가지고 나타낸 복음사역이었습니다(행 9:1-31). 역사 속에 숨쉬고 있는 기독교 2000년의 매력이 무엇인가? 교회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예수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입니다. 교회의 교회된 매력의 정체는 결코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육의 것이 아닙니다. 철학이나 문학이나 과학이나 예술이나 권력이나 재물이 아닙니다. 교회의 교회된 매력은 영적입니다. 구원론적입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나타내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입니다. 이것은 영이요 생명입니다(요 6:63). 교회가 교회되는 그 생명은, 교회가 교회로서 세상에 던질 그 매력은 바로 예수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런 매력이 있는가?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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