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마리아 찬가 2002-06-07 19:30:26 read : 187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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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이사야 52:7 ~ 10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회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 하신다."하는구나. 성을 지키는 파숫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주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빌립보서 4:4 ~ 7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 1:46 ~ 55
그리하여 마리아가 노래하였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주께서 자비를 기억하셔서,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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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역사를 돌아보면, 역사의 고비마다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들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했던 예언자들도 있었고, 그 사건의 전말을 전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가족, 종족, 혹은 나라를 재정비하거나 다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성들이 주역으로 등장한 사건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왜 하필 여성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리아가 구세주 예수를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그 역사의 고비에는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실 역사적 분기점에서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은 예수 탄생에서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백 년 동안 이집트의 종살이를 하다가, 유월절을 지내고 그 다음날 온 민족이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기마병들이 쫓아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길을 막습니다. 그 상황에서 바다가 갈라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넜고, 뒤따라오던 이집트의 말과 기병들은 몽땅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홍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이 벅차 올랐을 것입니다. 지금 막 바다가 삼킨 이집트의 말과 기병들, 승리자 하나님, 구원받은 우리 백성들, 좌초된 이집트의 권력! 어떻게 이 감격을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출애굽기 15장 21절에 보면 아론의 누나 미리암이 모든 여성들과 함께 소고, 당시의 악기를 들고 춤을 추었습니다. 여인들이 다 나와 춤을 추면서, 이집트 기마병들이 물에 수장되고 자기 민족이 구원받은 감격을 이렇게 두 줄의 시로 노래합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그분은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
이 짧은 가사 속에는, “우리는 승리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찬양하여라. 이집트는 망했다. 우리는 건짐 받았다.”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 두 줄의 찬송이, 이집트 탈출 곧 이스라엘 백성의 실질적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때 부른 신앙고백적 찬송입니다. 여성들이 나와서 선언할 때는, 그냥 말로 하지 않고 찬송으로 합니다. 시로 합니다. 아름다운 찬송, 아름다운 시 한 편이 되어 나옵니다.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세우고, 드디어 왕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정시대를 연 인물은 사무엘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이 사무엘을 잉태한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부요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도 하신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그분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이 기초 위에 올려놓으셨다.” 사무엘상 2장 1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말씀이 한나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반은, 기초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그 기초를 잃으면 망합니다. 기초를 잃지 마십시오. 모든 땅덩이는 주님이 세우신 기초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 있는 마리아의 찬가는 신약에서 부르는 여성의 찬가이자, 모든 찬송 시의 극치에 이른 찬양입니다. 한나의 고백을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기초, 이 세상의 기초, 모든 인간들의 기초가 든든합니까? 그 기초가 주님이 세우신 것입니까?” 마리아의 시대에는 기초가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역시 당시의 세상이 흔들리고 가치관도 혼동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망하는 것 같이 느꼈을 것입니다. 기초가 없는 것 같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기초를 세우려고 했지만, 사무엘로는 안 됩니다. 모세가 전해 주었던 율법의 기초도 지금은 무너져 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땅의 기초가 다시 든든해지겠습니까? 인간사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결단하십니다. “세상의 피조물 중 누구도, 어느 것도 기초가 될 수가 없다면, 나 스스로 기초가 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가마!”
‘예수의 오심’이 뭡니까? 대림이 뭡니까?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삶의 기초가 되려고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여 구세주를 낳으려고 하던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기초는 형편없이 무너졌습니다. 역사가들의 글을 보면, 당시 유대 땅을 지배하던 헤롯 대왕은 순수 유대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교하고 용맹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과 타협하여 로마 황제로부터 팔레스타인의 통치자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상당히 재주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유대인들은 유대 혈통도 아닌 헤롯을 왕으로 임명하는 데에 반대했습니다. 그의 즉위를 반대하는 시위도 많았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헤롯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몇 가지 정치적 계책을 만들었습니다. 유대교의 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 등 지배층으로 구성된 산헤드린이라는 의회,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회와 법원, 입법 기능과 사법 기능을 합한 기관입니다만, 그 산헤드린을 해체하고 철저하게 헤롯 대왕 중심의 새로운 기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헤롯판 유신체제 선포였습니다. 이 시도가 백성들의 엄청난 반발 때문에 불발로 끝났습니다. 산헤드린은 그대로 존속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것입니다.
두 번째 시도는 무자비한 숙청이었습니다. 자기를 반대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관리들, 유대교 혈통을 지닌 고위관리, 공무원들을 3천 명이나 살해했습니다. 당시에 3천 명이라면, 굉장한 숫자입니다. 그 좁은 나라에서 3천 명이라니 말입니다. 헤롯 대왕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처를 살해했습니다. 자기 장모도 죽게 했습니다. 자기 장자도 죽였습니다. 차자와 삼자도 죽였습니다. 헤롯이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이 죽은 뒤에 슬퍼서 곡하는 소리가 온 유대 땅을 뒤덮게 하기 위해서, 유대의 모든 가정에서 한 명씩을 다 죽이라는 살해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헤롯에 관한 이야기는 이것들 외에도 숱하게 많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즉위 때부터 반대를 받은 헤롯, 하나님은 그를 인정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라 이름하는 아기가 마구간에서 태어나자, 헤롯 왕은 패악한 조치를 취합니다.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것입니다. 나 외에는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다는 발악입니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와 변화 속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구세주가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예수를 잉태한 심정을 마리아가 “마리아 찬가”에 담았습니다. 천사가 와서 마리아에게 선포합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아 기뻐하여라. 처녀가 잉태했다고 살해당할 것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아라.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임마누엘!” 사실 마리아의 심정은 매우 고달픕니다. 당시의 법으로는, 결혼한 여인이, 남편이 보기에 처녀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을 하면, 그 여성을 자기 집 대문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성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여인은 처녀가 아닙니다.”라고 호소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읍 사람들은 돌을 들고 나와 이 여인을 쳐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처녀가 애기를 가졌다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마리아와 남편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멸시하고 억눌렀던 갈릴리라는 비천한 곳 출신입니다. 지역만 아니라, 신분도 비천한 사람들입니다. 마리아는 천한 집 여성이었고, 그 정혼한 남편 요셉도 하류층 신분의 목수였습니다. 시골의 목수는 그 당시 직업치고는 하류의 직업이었습니다. 두 하류층 인간들이 이제 막 약혼을 했는데, 하늘 뜻이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라는 구세주를 낳게 합니다. 한번 인간적으로 돌아가서, 내가 마리아라면 하고 생각해보십시다. 이런 사회적 법규와 제도와 질서와 정치현실과 경제현실 속에서 내가 지금 마리아라면, 내가 지금 메시아를 잉태했다고 하면, 천사가 와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그렇게 선포한다고 하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고 답변하시겠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약혼한 여인이 와서 “당신과 상관없이 내가 성령으로 임신했으니, 당신도 내 운명과 함께해주십시오.” 하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변할 수 있겠습니까?
천사의 말은 이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마리아야, 기뻐하라.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사람들의 돌에 맞을지언정, 낳아라.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동정녀 마리아! 어떻게 임신이 가능합니까? 하긴 요즈음은 인공수정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역사의 틀을 바꾸시는데, 그 역사의 틀을 바꾸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의 그릇에 담겨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기적이든지 우리가 볼 때 기적이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기적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일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현실이 아닙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인간적 눈으로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화적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렇게 태어난 예수가 이천 년 동안 엄청난 역사적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그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 예수 때문에 오늘 경동교회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예수 때문에 무수한 사람이 죽었고,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도 사실 아닙니까? 핍박받은 교인들, 죄를 용서받고 새로 거듭난 사람들, 신앙과 관련된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오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하는 신화적 표현 속의 그 사건을 통해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결단 있는 답변입니다. 생사를 건 답변입니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저한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마리아를 통해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고 합니다. 아주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납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에서 하늘이 지금 잉태됩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노래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엄청난 혁명적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힘센 분이 나한테 일을 벌이셨습니다. 그 이름은 거룩하고, 그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고,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십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십니다. 주여 말씀하신 일을 이루소서.” 나는 질그릇항아리가 되어 당신의 높으신 뜻을 담겠나이다. 나를 그릇으로 써주십시오.
가장 높은 예수는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납니다. 기독교 복음은, 성탄절의 복음은 완전히 낮고 천한 곳에서 울려나옵니다. 그렇다면 조금 높은 데 있는 것은 아예 필요 없습니까? 성서에 있는 또 다른 이야기에 눈을 돌려보십시다. 마리아가 잉태하기 몇 달 전, 또 다른 한 여인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잉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엘리사벳입니다. 엘리사벳은 본래 제사장의 딸입니다. ‘제사장의 딸’은 유대 사회에서 최상류층에 속한 사람입니다. 결혼한 남편도 아버지와 똑같은 제사장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가랴입니다. 마리아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지만, 엘리사벳은 가장 존경받는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도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낮은 신분의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셨지만, 그분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은 가장 높은 출신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엘리사벳이 잉태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잉태했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와서 사가랴에게 “네 아내가 잉태할 것이다.” 하고 전해 주었지만, 유대적 합리주의와 유대적 율법과 인간의 최고 지성을 갖추었던 이 사람으로서는 천사의 말을 도대체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을 낳을 수 없었던 자신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안 믿었던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믿지 않은 대가로 사가랴는 이런 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믿지 않는 그대에게 나는 오늘 다음과 같은 벌을 내리노라. 주둥이 다물어라!” 그 순간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합리주의만을 말하는 그대 입으로는 이제 하나님의 기적을 말하지 못한다. 그 대신 하나님의 뜻은 그대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대 아내의 몸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다.”는 뜻입니다.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하여 낳았습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길닦이 선지자가 높은 신분의 여인에게서 태어나고, 예수라 이름하는 구세주가 비천한 신분의 여인에게서 태어납니다. 양극의 두 사람을 연결시킨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 한번 들어보십시오. 마리아가 소문을 듣고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입니다. 엘리사벳은 예루살렘의 성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천한 곳 갈릴리에서 살던 마리아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적대관계에 있는 수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낮은 여자가 높은 여자를 찾아왔습니다. 가장 높은 이를 잉태한 낮은 신분의 여자가, 그보다 조금 못한 이를 잉태한 높은 신분의 엘리사벳을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고, 그대의 태 속에 있는 열매도 복을 받았습니다. 나도 성령으로 잉태했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의 어머니께서 나한테 오시다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당신같이 비천한 사람이 나를 찾아오다니 어찌된 일입니까?’가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 같은 사람을 찾아오시다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찾아가야 할텐데, 도리어 예수께서 세례요한을 찾아오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는 말입니다. “그대가 문안하는 말씀이 내 귀에 들렸을 때, 내 태 속에 있는 아기가 기뻐서 뛰어 놀았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세례 요한이 뛰어 놉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는 여자는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 둘이 이제 아기들을 낳으면, 이 세상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복받은 여인들입니다.”
사무엘을, 모세를, 또 다른 많은 사람을 보냈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기초가, 도덕적 기반이, 윤리적 기반이, 신앙적 기반이 전부 다 무너지는 것을 보고, 다른 것으로 기초를 세울 수가 없어서, 직접 내려오시되 무너진 가장 깊은 현장에 오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데, 바로 무너진 세상에 다시 기초를 놓으시려고 오시는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가슴속에 새로운 신앙을 분출시키려고 오십니다. 도덕이 무너진 곳에는 새로운 도덕을 세우려고 하나님이 오십니다.
21세기를 구가하면서도, 부정부패는 더욱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오늘 현실 속에서 도덕은 급격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경제는 살아 있습니까? 사회 구조는 살아 있습니까? 우리의 도덕과 심령은 살아 있습니까? 무너지고 나면 어떡합니까? 하나님이 오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무너진 바로 그곳에 육신을 입고, 더러움과 비천함을 입고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가장 비천한 사람도 아니고, 중산층이거나 그 이상인 우리들은 무얼 해야 합니까? 최소한 세례 요한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일 수는 있습니다. 기초를 세우려고 다시 오시는 예수를 증거하는, 우리 가슴과 몸으로, 손과 발로 증거하는 세례 요한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어머니는 세례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리아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협동,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협동입니다.
오늘 기초가 무너진 곳에 신앙의 기초, 하늘의 기반, 생명의 기반이 다시 오셔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를 잘하도록 좋은 방책을 제공한다든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전략을 세워주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업무가 아닙니다. 예수의 업무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람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단, 그 기초는, 기반은 땅이 되어 오신 하늘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반이니, 기초를 다시 닦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기초가 서야 사람이 삽니다. 가정이 삽니다. 나라가 삽니다. 이 세상이 삽니다.
성찬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과 피에 동참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초를 다시 닦는 상징입니다.
2001년 성탄은 전쟁으로 찌든 이 세계에, 평화의 기초가 다시 놓여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패와 좌절로 얼룩진 이 사회에, 21세기의 성탄은 새로운 도덕적, 윤리적, 신앙적 기반을 새로 놓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로 찌든 여러분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하신다면, 그리스도의 오심은 여러분의 실존의 새로운 기반이 되실 것입니다. 기반을 새로 만드십시다.
우리는 다 우리 속에 무언가를 담는 항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아리를 보지 않고, 항아리 속에 담긴 내용물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예수가 담을 항아리로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한테 새로운 기반을 제공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의 생명의 기초로 다시 오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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