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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목자의 양치기
    2002-06-07 19:03:58   read : 1657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4월 29일
    010429.ram(LOAD:74)




    구약의 말씀 : 에스겔 34:11~15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좋은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서신서의 말씀 : 베드로전서 5:1~4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그들을 잘 감독하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 요한복음 10:11~16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 떼가 될 것이다.



    ===========================================================



    우리가 지금 부활을 지난 두 번째 주일로 모였습니다.
    부활이 있기 전에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하고, 부활이후에 믿는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그것은 심리적 차이만이 아니라 인간의 결단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차피 십자가는 꼭 져야지만,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다시 산다는 보장이 담보되지 않았을 때의 심정과, 부활 이후에 사는 우리들처럼 십자가를 질망정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로 가면 반드시 부활의 생명이 있다라는 확증을 받은 우리들과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차이 있을 것입니다. 이천년전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매년 부활절을 맞습니다만, 부활의 기쁨, 그것은 다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길, 그 길을 가볍게 만들고 보람 있게 만드는 확신있는 사건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곳곳에서 십자가를 경험합니다. 제가 어젯밤에 TV를 통해 들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마침 KBS 위성방송을 통해 미국 ABC방송에서 하는 추적 60분과 같은 비슷한 사건보도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6살난 아이를 죽인 살인범이 체포됐습니다. 아리조나 법정에 세워졌습니다. 검사는 이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변호사는 사형구형을 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결국 지법에서 사형 언도까지 내려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형집행입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변호하는 중에 재판부에 안을 내기를 "이 사람은 아무래도 정신상태가 올바른 사람 같지 않으니 정신 감정의뢰를 해야되겠습니다는 것입니다. 재판부의 허락을 맡아서 네 사람의 정신과 의사가 정신감정을 해 본 결과 이 사람은 정신이상자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흉측하게 생긴 얼굴이 애처로왔습니다. 문제는 아리조나주 법에 의하면 사형언도를 받은 사람도 정신이상으로 판명될 경우엔 집행을 못한다는 규정입니다. 검찰측에서는 사형언도 받은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든 사형집행을 하기 위해서 단죄를 하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에게 다시 위임을 합니다. 이 사람을 고쳐내라는 것입니다. 한 의사가 병 고치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당연히 고쳐야지요. 그런데 고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 고쳐야 합니까? 고쳐 놓아서 사형집행 하려고, 죽일려고 병고치라는 것입니다. 이 의사가 인터뷰에 나와서 하는 말이 "나는 의사로서 이 제안을 받을 수가 없다. 이유는 생명에 관한한 만사를 제쳐놓고 생명을 위하겠다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가 어떻게 죽일 것을 알면서 죽이라고 병고쳐 주느냐 , 의사 협회에서로부터 제명을 당할 것이고, 의사면허증도 박탈당할 것이다. 법원의 명령에 따를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검사측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아리조나주에 있는 1400명 정신과의사에게 편지를 냈습니다. 이런 조건인데 누구든지 병고쳐 주시오." 한 사람도 응답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할 수없이 수소문 끝에 법원을 돌아다니면서 정신 감정을 하는 의사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사람이 두 번, 사분씩 만나고 감정을 이렇게 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신 이상자가 아니다. 정신병을 가장한 것 뿐이다'라고 이 사람에게 사형을 집행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아리조나주 대법원이 사형언도를 하고, 거기에 따르면 이 사람이 사형 집행을 받아야 합니다.

    변호사 이야기, 검사 이야기, 의사 이야기, 오늘 사회의 단면도입니다.
    그래서, 여성 변호사는 연방법원에 상고하겠다고, 이 사건 하나가, 사형제도의 존속이냐, 폐지냐의, 이 논쟁에 또 다른 불을 붙인 것 같습니다. 아리조나 검찰은 죽인자는 반드시 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고, 변호사는 처벌하고 싶으면 사형대신 종신형을 언도하여 처벌하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연방법원 판단에 맡기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리조나 법정의 비극은 죽인자를 어떻게 죽일까에 대한 관심이지, 살인자에게 죽음을 당한 열 여섯, 젊은 꽃다운 청춘의 아이는 다시 살아 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처벌을 놓고 논란 할 수 있으나,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세상 법정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도, 변호인도 판사도, 검사도 ...

    제가 이 사실을 어제 들으면서 빌라도 법정을 생각해 봤습니다.
    빌라도 법정에 예수라 이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끌려 왔습니다. 검사역을 맡은 대제사장과 유대교는 이 사람한테 하나님을 훼방하는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 말을 오늘 용어로 해석하면, 정신병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훼방함으로 정신이 병자가 된 자, 고로 이 사람은 극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아리조나 법정에서는 살인자가 끌려나왔습니다만, 빌라도 법정에는 사람을 죽인 자가 아니라,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사람, 기적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 사람이 정신병자라는 이름으로 끌려와서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아리조나 법정이 어떻게 판결하든 간에 부활사건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는 억울하게 재판을 받았으나, 죽임을 당한 어린양 예수가 다시 살아서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리는 선한 목자올시다. 선한 목자는 이렇게 죽임을 당하면서, 양을 보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속에 목자는 항상 야훼 하나님이셨고, 양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관리하고 외부의 침략이나 고통으로부터도 양들을 보호하여 양을 우리 안에 잘 보호하여 축복 주는 것이 야훼 하나님 목자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 그래서 목자 되신 여호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하다'! 그렇게 불렀습니다. 선한 목자! 그 목자는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칭호입니다. 아무나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예수그리스도는 선한 목자가 되어 양들을 인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를 찾아와서 영생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부자 청년이 "선한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 받을 수 있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예수의 답변입니다.

    "하나님밖에 선한 사람이 없는데 왜 날보고 선하다고 하느냐.." 그 예수님 말씀 속에 선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죄도 사할 수 있는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자기의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만 선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오늘 선한 목자 되신 예수께서 우리한테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보살핍니다."

    그러나 삯꾼은 삯을 받는 삯꾼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진 않습니다. 이스라엘 법전에 보면, 이스라엘 생활법전이라 이름하는 미슈나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삼백마리 양을 기르는 사람은 목자 혼자 다 양을 관리할 수 없으므로 삯꾼을 둘 수 있다. 삯꾼으로 임용된 사람은, 한 마리의 이리가 와서 양을 해칠때는 반드시 이리와 맞서 싸워야 한다. 만일 이리가 양을 해치면 그 손해만큼은 삯꾼이 보상해야 한다" 이것이 미슈나에 있는 법입니다. 단 두 마리 이상의 이리가 와서, 괴롭힐때는 혼자 관여할 수 없으므로 단 두 마리 이상이 이리가 와서 저지른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삯꾼목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받는 보상이 목적이지 양들을 보호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이리가 엄습해 오면 삯꾼 목자는 자기 목숨을 위해서 도망을 갑니다. 한 마리 이리가 올 때만 싸우고 두 마리 이상이 올 때는 양을 버리고 도망가서 목숨을 부지합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 "나는 삯꾼 목자가 아니라 선한 목자올시다. 한 마리가 와도 난 버틸 거고, 두 마리 세 마리가 밀려와도 나는 내가 죽을지언정, 내 목숨을 담보로 내 양을 구해야겠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신 주님, 모든 인간을 위하여 흘리신 주님, 이리떼가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버려서 양떼를 구해야 하는 주님이시기에, 선한 목자라고 이름합니다.

    많은 이리떼와 대결할 수 있는 목자로서의 지도력입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나고 입성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고, 예수께서는 죽을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서신서에 있듯이, 목자가 아니라, 어린양으로 죽었습니다. 아리조나 얘기는 서글프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다룬 사건 입니다.

    신문에 난 이야기 하나 해드려야 겠습니다. 지난 4월 13일 금요일 서양에서는 제일 싫어하는 13에 숫자에다 금요일, 그 날 소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마침 인근에서 구제역이 퍼져가지고, 이 농장에서도 예순 다섯 마리의 소와 양을 모아다가 도살했습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도살했는데, 거기에 생후 5일밖에 안된 이 소도 13일 금요일 기분 나쁜 날에 태어났다고 같이 소와 양과 함께 도살을 당했습니다. 5일이 지난 다음 그날 농장소독을 위해서 방독요원들이 현장을 방문해 보니까, 열흘이 된 이 소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습니다. 신문에 보셨지요. 너무 기뻤했습니다. 모든 소를 독침을 주고 다 죽였는데, 이 생후 열흘밖에 안된 이 송아지가 살아났습니다. 26일날 영국정부에서 국민들의 갸륵한 뜻에 따라서 이 새끼송아지는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송아지는 살려주기로 했답니다. 그 날이 13일만입니다. 난지 13일만입니다. 하나는 이상한 숫자 13일에 다 죽일려고 했지만, 13일에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썼더군요. 이 소는 살아나서 죄 없는 어미 소들의 구제역 때문에 강제로 죽임을 당하려 하다가 기사회생해서 우리들에게 살아났습니다. 기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아니라 어미소들의 잘못된 구제역 질병을 지고 가는 죄 없는 송아지. 국민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러게 써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사조라 이름하는 휘닉스라 이름 지었다는 신문보도입니다.

    세상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길에서 죽어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선한 목자로서 가져야 할 이미지 뿐만 아니라 현실을 우리한테 주었습니다. 예수는 삯꾼 목자가 아닙니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목자입니다. 십자가는 몸을 던져서 양들을 살리려고 한 사건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이 '안다'는 말 희랍어가 많지만 여기 본문에 쓰인 희랍어 '기노스코'(ginosko)라는 말은 들어서 알거나, 책을 읽어서 알거나, 공부해서 아는 앎이 아니고, '함께 살면서 고락을 같이 하면서 몸으로 아는 것' 그런 뜻입니다. 양과 목자는 같이 살면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기 때문에 양과 목자 사이는 신뢰성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선한 목자의 최고의 중요한 덕목은 신뢰입니다. 목자는 양을 믿어주고 양은 목자를 믿어 줍니다. 이것이 선한 목자가 가지고 있는 지도력, 리더쉽입니다. 오늘 세상은 지도자와 백성간에, 위에 있는 분과 밑에 있는 사람들간에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있을 겁니다. 호불호의 관계는 상관없이, 윗사람은 밑에 사람 믿어주고 지도자는 백성을 믿는 신뢰관계가 중요합니다. 좋고 싫고가 문제 아닙니다. 지역의 다름도, 학벌의 다름도, 인종의 다름도, 씨족의 다름도 상관없이, 믿을 수 있는 관계, 믿고 맡길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의 반열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거 없으면, 진실이 보이지 않고, 진실이 없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으면, 그 공동체는 깨집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교회도 가정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된 화해가 필요하지만 그 화해는 진실이 있어야 화해가 되고, 그 화해는 신뢰가 바탕이 됩니다. 신뢰의 요체는 바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그 사실에 있습니다.

    두 번째 요체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알고 아들이 아버지를 알 듯이 그렇게 목자와 양이 서로 안다는 예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의 말씀에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는 십자가라는 희생제물 속에서 한 몸이 되셨습니다. 너와 내가 아니고,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적인 우리"입니다. 세상 양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가 될 정도로 신뢰가 담보되어 있고, 희망도 나눴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우리공동체"의 현장입니다. 진정한 선한목자적 리더쉽은 너, 나의 구분이 아니고, 너, 나가 합친 우리의 결속된 공동체입니다. 잘못을 꾸짖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잘못을 고쳐주는 선한목자의 지도력입니다. 권위에 의존하여, 부하를 부리고 누르는 지도력이 아니라, 협동에 의존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선한목자적 지도력입니다. 일을 시키면서 고역스럽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드는 지도력이 아니라, 신명나고 행복하게 만들고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선한목자적 리더쉽입니다. 그 리더쉽의 본산이 십자가요, 십자가의 리더쉽이 옳다고 증명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마지막으로 선한목자는 "양의 문"이라 했습니다. 양이 우리에 있으면 우리를 향해서 들어가는 것은 정문을 통해서만 들어갑니다. 예수의 경고입니다. 누구든지 양의 우리에 들어가서 양을 보호하러 가는 사람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만, 양을 잡아먹거나 해를 끼치려고 하는 사람은 담을 넘어 들어가든지, 양의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문은 선한목자의 문이요, 자신이 양의 문입니다. 미래의 세계, 하나님 나라를 가고 싶은 사람은, 양의 문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가야 합니다. 예수의 문을 열고 들어 가십시오. 예수의 문이 아닌 다른 곳을 거쳐 들어가려는 사람은 양을 잡아먹으려 하는 도둑이거나, 강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가겠다는 사람, 양의 문을 벗어나서 도둑처럼 강도처럼 새치기로 갈 수 없습니다. "새치기 신앙" 버리십시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부활로 갈 수 있다고 하면, 십자가 없이 부활로 가고자 하는 "무임승차"도 안됩니다. 고난이 있을 때 고난을 배척하면서 어떻게 기쁨이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선한목자를 따라 가십시다.

    선한목자는 우리 속에 요즘 말로 부정부패라 이름하는 이리떼가 오면 선한목자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부정부패를 끌어안고 투쟁하고 그 속에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합니다. 굉장히 투쟁적 선한 목자입니다. 독재의 이리떼가 제 3세계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시킵니까? 독재라는 말굽이 들어오면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독재와 싸웁니다. 그리고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사회를 선물로 주십니다. 착취라는 이리떼가 오면 삯 받는 목자는 도망갈지 모르나 선한 목자는 착취구조와 싸워 이겨서 몸이 찢어질망정 많은 사람들을 구해냅니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선한목자는 오늘, 질병이라 이름하는 이리떼가 찾아온 사람에게 그 사람을 피하지 않고 질병을 끓어안고, 함께 아파하며 건강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죄악에 물든 우리 속에 들어오면 죄악을 마다 아니하고, 죄악 속에 함께 신음하면서 죄악을 이기고 용서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래서 죄 많은 곳에 은혜가 있다고 할겁니다. 외로움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고독의 악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외로워하는 사람 속에 친구가 되어주시고 그 속에 사랑을 심습니다. 좌절이라는 이리떼에게 휘몰리는 사람에게 좌절의 사슬을 끓고 희망을 심어 주십니다. 오만이라 이름하는 질병에 허덕이는 이리떼에게 밟힌 사람에게는 오만과 함께 싸우며 겸손이라는 미덕을 주십니다. 선한목자는 심지어 죽음이라 이름하는 최악의 순간까지 들어 오셔서, 죽음과 싸워서 이기고 부활을 약속으로 주십니다. 선한목자의 위대함과 헌신적 사랑이 거기에 있습니다. 선한목자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아멘 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뒤바꾸어서 미래의 희망찬 상황으로 바꿔서, 하나님 나라로 끌고 가는 인도하는 선한목자입니다. 그 목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기쁜 웃음도 함께 나눕니다. 그 분이 오늘 여러분의 선한목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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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뜬 소경
    고난의 혼을 제거하라
    베델의 감격
    겸허한 자에게 은혜가
    오염된 성전은 허물라
    보물은 값지게 쓰라
    빛의 열매
    일용할 양식
    항존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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