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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산나의 빛과 그림자
    2002-06-07 19:01:48   read : 141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4월 8일
    010408.ram(LOAD:74)



    출애굽기 12:37~42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으로 갔는데 딸린 아이들 외에 장정만해도 육십만 가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다른 여러 민족들이 많이 그들을 따라 나섰고, 양과 소 등 수많은 집짐승 떼가 그들을 따랐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부풀지 않은 빵 반죽으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구워야 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급히 쫓겨 나왔으므로 먹을거리를 장만할 겨를이 없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었다. 마침내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 날, 주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그 날 밤에 주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로마서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칼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1:1~10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 근처인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 길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웬 일이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제자들이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 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타셨다.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분!" "복되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


    오늘은 종려주일, 다른 말로 호산나의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면서, 예수께서 오시는 길, 나귀 타고 오시는 그 길에 임금을 맞이하듯이 옷을 벗어서 깔고, 그리고 종려나무 잎사귀를 끊어다가 그 길을 단장했습니다.

    호산나를 부르던 그 일은 지금부터 2천년 전 일입니다. 2천년 전 근동의 한 작은 나라, 팔레스타인에서 생겼던 조그마한 그 사건이 오늘 2천년 후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역사는 다시 반복이 됩니까? 아닙니다.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은 똑같은 모양으로 지금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늘 팔레스타인을 벗어나서 우리 주변 이야기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최근에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시키는 사건 때문에 주변 국가들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과거에 제국주의를 풍미했던그 시절이 그리워서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해 놓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과거 역사가 당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늘 되살아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혹시 이 나라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너무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과거를 끌어다가 미래의 지표를 삼으려고 하는 것인가, 혹시 섬나라의 고립감 때문에확장의 욕망을 숨기고 있다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과거를 지렛대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느 나라 역사든지 정사(正史)가 있고 야사(野史)가 있습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해석을 담은 야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야사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탓할 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 문제는 그것을 검인정 교과서, 곧 정사의 하나로 정부 당국이 공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인한 그것이 진실로 정사, 주변국가들도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정사인지 그것은 우리의 심각한 질문이자 또 일본인 스스로가 던져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교과서 문제가 제기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연의 일치인 것도 같습니다만, 유명 주간지에서 "일본은 한국이 부럽다."라는 특집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뉴스위크지에 실린 일본 관련 기사의 제목이 "Korea Envy"였습니다. 제가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일본이 기자 두 사람이 특집 기사로 쓴 것인데, 경멸했던 나라 한국, 그 한국의 외국 관광객 중에 최고의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한국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1996년만 해도 35.8 % 정도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금년에는 51.4 % 가량이 한국이 좋다고 한답니다. 왜 좋아하는가를 일본 기자들이 자기들의 관점에서 몇 가지로 정리해놓았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인터넷 초고속 통신망에 가입해 있는 사람이 300만 명이고 일본은 겨우 4만 명에 불과하답니다. 요즈음 벤처기업이 만들어놓은 새로운 주식시장, 우리는 코스닥이라고 부릅니다만, 한국에는 610개의 회사가 상장되어 있는데 일본의 나스닥 상장 회사는 48개밖에 안 된답니다. 한국에는 비디오나 음악이나 영화필름을 만드는 제작회사가 1,000개가 넘는데 일본은 100개밖에 안 된됩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는 영화를 훨씬 더 잘 만든답니다. 과거 일본은 아름다움을, 패션을 찾으려고 하면 미국과 프랑스를 쳐다보았는데 이제는 한국에 주목합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한국의 여성들은 피부 색깔이 희고 고우며 주근깨도 없답니다. 일본 기자들이 그 이유를 캐보았더니 그 아름다움 뒤에는 화장품만이 아니라 김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의 김치 열풍은 건강 때문이 아니라 피부 미용 때문인 듯도 합니다. 한국영화 쉬리가 일본 열도를 열광시키고 있고,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일본 젊은이를 사로잡고 있답니다. 포장마차의 음식 맛과 분위기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이 많답니다. 아름다움, 음식, 물 그런 것들을 가져오고 싶어한답니다. 한국 사람은 좀 터프한 것 같고 라프한 것 같은데 그래도 살 맛 나는 사람들 같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교과서를 왜곡하면서까지 주변국을 침략했던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뉴스위크지의 이 특집을 읽어면서 마지막 한 구절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뭐냐 하면 한국은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할 수 있으나, 일본은 변화하지 않고 있고 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 판단은 미래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건 철저하게 일본인 기자들이 쓴 주관적 견해입니다. 그걸 받고 안 받고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이런 견해를 통해서 "지금은 변화해야 합니다. 변해야 삽니다."라고 자국민에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미래를 향한 변화여야지, 과거 지향적 변화여서는 안 됩니다. 일본 교과서의 변화는 잘못된 방향의 변화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서는 나를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지금은 변화할 때입니다. 변화를 하되 완전히 변화할 때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의 첫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할 때가 지금입니다. 복음을 믿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때가 지금입니다. 가까이 온 하나님나라 복음을 들고 내가 지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입성합니다. 내가 아니라 내가 안고 오는 하나님나라를 지금 맞이하십시오. 하지만 변화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근본부터 뒤바꾸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변화 없이 어떻게 하나님나라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변화의 복음을 가지고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합니다. 결단의 때는 오늘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오늘부터 한 주간 내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오면 세상이 바뀐다는데, 인간도 바뀐다는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담화와 토론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십자가 형틀에서 예수가 죽어가는, 미래의 변화의 복음이 십자가에서 달려서 여지없이 죽어가는 그런 역사가 연출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다음주 부활의 주일에는 변화의 나라, 변혁시키는 힘인 그 하나님나라가 승리하여서 우리 앞에 부활로 다가옵니다. 오늘이 그 출발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복음을 들고 오실 때, 변화의 복음을 들고 오실 때, 모든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찬송이 있습니다: "호산나". 오늘 우리 성가대가 부른 찬송입니다. 호산나라는 말의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구세주여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소원을 담은 감탄사입니다. 호산나는 우리말로 "만세"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에서 오신 이여, 만세!" 모든 사람이 만세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 만세의 뜻은 각자 다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주목한 유대교 사람들을 서로 입장이 다른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자기 나라가 없었습니다. 식민지라는 정치 경제적 제약 속에서 유대백성들은 자기들 나름의 체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의회 기능입니다. 로마는 이 기능을 유대인들에게 맡겼습니다. 의회 중에 가장 큰 의회를 '산헤드린'이라고 불렀습니다. 산헤드린은 우리말로 하면 국회입니다.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른바 국회의장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거기에 문중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대지주 계급들, 그리고 율법학자들, 율법학자들은 소시민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모여서 산헤드린이라는 이름의 국회를 구성했습니다. 이들의 "만세"는 무슨 뜻이었겠습니까? "지금이 좋사오니, 지금 국회의원들이 되어 좋사오니, 우리는 기득권이 있사오니, 호산나 예수 만세,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사두개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옛날 사독 제사장의 후예들인데 성전 중심의 제사권을 장악하고 동시에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관청에 가서 행정관료 노릇을 한 사람들로서 요즘말로 하면 관료 계급입니다. 이들은 특히 부활 사상 같은 것은 거부합니다. 일체의 변혁이나 변화는 거부합니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입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오십니다. "호산나! 우리는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변화가 아니라, 현재의 체제가 잘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이 분들의 호산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이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욕합니다만, 당시의 바리새파 사람들은 요즈음 말로 하면 진보적 지성인 계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평민들, 소시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소농, 수공업자들을 대변하면서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윤리적 규범을 가지고 당대 평민들의 인기를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소시민들의 메시아 사상을 설파했습니다. 부활사상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회원이 6천 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지식인 계급이 6천 명쯤 모여서 진보적 운동을 형성했다고 하면 엄청난 힘입니다. 이 사람들이 외친 호산나는 무슨 뜻이었겠습니까? "메시아가 오셔서, 부활이 이루어져서 이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 주옵소서. 호산나!" 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제일 진보적인 소리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바리새파 사람
    들을 욕합니까?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결점이 있었습니다. 진보 사상도 좋고 지성도 좋고 메시아 사상도 좋고 부활도 좋았지만 그들은 자기들만이 그 땅의 지도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 자기의를 내세웠습니다. 독선과 오만의 지성인 계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와는 사사건건 부딪혔습니다. 오늘의 바리새파는 어디 있습니까? 무엇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다른 한편에 율법학자 그룹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는 다양한 계층에서 나온, 요즘
    말로는 법조인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헌법이나 형법이나 민법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제한성 때문에 성서 말씀에 쓰여진 율법만을 대변했습니다. 그 율법은 생래적으로, 변화를 몰고 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만 철저하게 해석해주고 그걸 가지고 재판에 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외침은 이랬을 것입니다. "모세 율법이여 부활하소서, 만세."

    에세네파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현재의 세상이 완전히 타락했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떼를 지어서 광야로 나갔습니다.

    요즘 말로 수도원 운동 같은 것입니다. 4천 명 정도가 함께 공동생활을 했다고 하니 큰 세력을 형성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독신생활을 하면서 흰옷을 입고서 노동과 명상을 통해 신앙의 순결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먼발치에서 나사렛 예수가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호산나! 이 땅이 은둔의 나라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바람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젤롯당이 있었습니다. 열심당원들입니다. 이들은 메시
    아 사상을 가장 정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소농들을 중심으로 로마에 대한 "납세 거부 운동"도 벌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 기원후 68년 로마에 대항하여 일어나 예루살렘을 점령한 일까지도 있었습니다. 점령하고서 젤롯당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었습니다. 로마 관청에 보관하고 있던 노예 문서, 빚 문서를 탈취하다가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과격한 혁명적 그룹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계급이 없는 사회, 신정정치를 주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유컨대 러시아의 볼세비키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여러 부류들이 예수께서 입성하시던 날 호산나를 불렀습니다. 이들의 호산나는, 합창의 소리는 같았으나 속뜻은 다 달랐습니다. 2001년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입성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계층에 속하십니까? 어떤 계층에 속하고 싶으십니까?

    우리의 호산나는 무슨 뜻을 담은 호산나입니까?

    예수께서는 감람산에서 체포를 당합니다. 대제사장 그룹들이 와서 예수를 체포하여 성전 옆에 있는 재판소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저택으로 송치해 갑니다. 거기서 심문을 합니다. 두 가지 죄목이 걸렸습니다. 성전을 모독한 죄, 신성을 모독한 죄, 두 가지 죄로 고소를 당합니다. 재판은 산헤드린 의회가 담당합니다. 거기서 유죄가 선고되면 예수는 즉석에서 돌에 쳐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산헤드린의 결정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예수를 여기서 재판하지 말고 로마관원에게 넘기자는 결의를 합니다. 재판유예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예수가 끌려 왔습니다. 산헤드린이 빌라도 앞에 나와서 검사 역할을 하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호산나를 불렀던 사람들이 증인 노릇을 합니다. 검사 측 논고는 이렇습니다. 첫째 이 예수는 백성을 선동하고 국가 전복을 꾀한 죄를 범했습니다. 둘째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는 납세 거부 운동을 벌였습니다. 셋째 자칭 왕이라 칭합니다.

    빌라도가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질문은 예수를 고소한 모든 죄목을 집약한 것입니다. 예수의 대답입니다. "그것은 네 말이다." 영어 성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You said so." 내가 말한 게 아니고 네가 그렇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빌라도는 젤롯당, 과격한 혁명당의 당원인 바라바를 풀어주는 대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게 합니다. 그전에 빌라도가 말합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그 책임은 그대들이 져야 한다." 그리도 물로 손을 씻습니다.

    이런 고난의 현장을 향해서 오늘 자기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호산나 부르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한가지 대목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마지막 보시면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모든 백성들의 공통된 꿈 과거에 다윗이 이루었던 통일된 우리 민족, 독립된 우리나라,그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이제 다시 임하게 되었으니 만세. 이런 백성들의 회한 속에 예수께서 오십니다. 사람들은 아마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신화적 존재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너무 거대해서 어떻게 칠 수가 없다.

    돌팔매로 무장한 다윗은 역부족일 뿐입니다. 이렇게 믿던 백성들에게 다윗과 비슷한 인간 예수가 와서, 메시아라고 자청하는 사람이 와서 골리앗과 같은 로마제국을 어떻게 물리치고 다윗의 왕국을 만들 수 있을까 의심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것처럼 골리앗이 너무 거대해서 칠 수 없다가 아니라, 골리앗이 너무 거대하여 내가 던지는 돌이 빗나가지 않겠다. 이렇게 다윗이 되어서 예수의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 다윗의 왕국을 만들려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만들려 한다. 팔레스틴 땅을 넘는 나라, 지금이 아닌 미래까지 연결된 하나님나라를 만들려고 왔다. 그 만들려고 온 나는 지금 도살당한 어린 양처럼 끌려가고 있노라. "지금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다. 바꿔라. 몽땅 바꿔서 회개하고 믿으면 하나님나라를 선물로 줄 것이다. 이 약속은 금요일에 처절한 죽음의 형태로 나타나고 주일날 아침 부활절 여명이 되면 기적처럼 부활의 모습으로 입증될 것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예수께서 입성하십니다. 우리가 부르는 호산나의 노래, 하늘나라로 주파수를 맞추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내일 이루어질 우리 미래가 좋사오니 그나라를 지금, 오늘 시작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바꾸십시오. 몽땅 바꾸십시오. 열린 마음으로 하늘나라를 오늘부터 받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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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의 교회
    용서하라- 잊지말라
    악마와 싸우려면
    향기로운 제단
    눈뜬 소경
    고난의 혼을 제거하라
    베델의 감격
    겸허한 자에게 은혜가
    오염된 성전은 허물라
    보물은 값지게 쓰라
    빛의 열매
    일용할 양식
    항존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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