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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생명 되어
    2002-06-06 13:57:55   read : 151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막 10 : 13 - 16 2002. 4. 28




    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엘리어트(T. S. Elliot)는 그의 시 ‘황무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일부를 인용해 보면,




    4월은 잔인한 달

    라일락 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없는 뿌리를 따뜻이 해 주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마른 뿌리로써

    작은 생명을 길러주며

    여름은 우리를 급습해 왔다(이하 생략)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읊어질 때 우리들은 긴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가 진행되면서 그 잔인함은 생명의 움틈으로 인해서 입니다.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비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새’ 신(新)자가 붙는 계절은 오직 봄밖에 없습니다. 새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워도 새겨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색합니다. 새롭게 생명이 태어나는 계절이기에 이러한 글자가 붙을 수 있을 것입니다.




    4월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적인 새생명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한 어린 생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줍니다. 한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여러분들도 한 번 어린아이의 입장에 서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마음이 긴장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어린아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서 부모에게 의지하여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표현을 빌면 그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같이 어른이 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어린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각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왔습니다. 이는 어린아이란 아버지의 손에 전적으로 매달려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이끌려 올 때, 그 어린아이는 평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가 전적으로 매달리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께 나오지 않았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나왔다 하더라도 이는 어머니에 이끌려 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의 귀족 출신인 프레마난드(Premanand)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자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종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몰래 집으로 숨어들어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데 대해서는 몹시 마음이 상했지만,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감출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자기가 뱃속에 있을 때 한 전도자가 종종 와서 어머니에게 쪽복음서를 주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읽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치는 않았지만, 때때로 빌기를 태어나는 자기의 아들이 예수와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곤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 이상의 사랑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 이야기에 나타난 바와 같이 뱃속에 있는 어린아이에게까지 모르는 사이에 태교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시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한 분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들의 바램이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했는데, 바램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표현을 빌면 예수님께서 자기의 아이를 만져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만져준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요 애정의 표현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이는 바로 축복을 비는 행위입니다.

    여러분들을 교회로 인도하신 분들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인도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따뜻한 은혜의 손길로서 만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분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어린아이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미국 씨애틀지역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저의 주변에 시온장로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김경천 목사님이 작은 간증을 들려주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오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악수를 한다든지 혹은 포옹을 하면서 인사를 나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오더니, 자기가 이제 진정 예수님을 믿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고 대답하면서 그 사정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에 이민을 와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한국사람을 만나러 교회에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마다 자기 아이가 교회에 가기를 좋아하고 꼭 목사님을 만나야 한다기에 지난 2년 동안 아이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그러는 가운데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아 이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까지 맡아주시는 목사님으로 인해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아이 때문에 또 다른 심령 아빠를 하나님께 인도한 경우입니다.

    저도 교회에서 저에게 다가온 어린아이를 만져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또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주는 제가 좋아 가까이 오기도 합니다. 어떤 어린아이는 제가 예배 후에 악수를 하고 있으면 자기도 내 앞에와 악수를 하고 가기도 합니다. 또한 저는 엄마나 할머니에게 안겨있는 갓난아이를 보면 가까이 가서 안고 기도해 줍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어떤 엄마들은 자기의 아이를 안고 제게 와서 기도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아이와 부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줍니다. 그 아이가 지혜와 믿음 가운데 건강하게 자라서 이 나라와 민족 더욱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훌륭한 일꾼이요 지도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줍니다. 제가 어린아이들이나 갓난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어른들도 마치 어린 심령과도 같이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올 때 문제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그 어린아이와 아버지가 누군가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과로하게 일하는 예수님의 상태를 걱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이끌고 오는 아버지들을 꾸짖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꾸짖다’라는 행위를 위해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epitimao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을 때 사용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쫓을 때 꾸짖듯이, 제자들이 어린아이와 그 아버지를 꾸짖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제자들의 잘못이 크겠습니까? 어린아이와 그 아버지는 정말로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다가 예기치 않은 문제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제지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당하게 되면 매우 곤욕스럽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정말 치료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기껏 마음을 잡고 하나님 앞에 왔는데, 그것도 앞선 믿은 믿음의 선배로부터 가당치도 않는 일을 당하고 마음이 황당해지는 경우를 당하게 되었다면, 이는 정말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경험일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우리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주신 ‘아버지’라는 작은 잡지를 읽다가 어느 한 교인의 간증에 눈이 멈추었습니다. 그는 시드니에서 ‘아버지학교’ 개설을 위해 멀리까지 가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성도들과 함께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은혜의 바다로 막 들어가려는 찰라, 누군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 아닌 질문을 하는데 그만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들은 성도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들이 아닙니까?”라는 말로 시작해서 목사들에 대한 비판을 한참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학교 모임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에 그 모임을 인도하던 장로님이 이에 대해 부드러운 답변을 해서 지나갔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질문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질문한 그 사람은 목사로부터 심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당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사람이 교회에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해외에 있는 이민교회의 경우에는 더 합니다. 이는 자격없는 목사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정말 자기가 살기 위해 평신도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 다음 모임에서 질문을 했던 사람의 모습이 바뀌어져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형제를 찾아가 그 마음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나중에 은혜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 형제의 말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아직도 몰랐을까요? 저의 성장과정 속에서 겪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육신의 아버지와의 삐뚤어진 관계는 영적인 아버지 되어야 할 목사에게까지 삐딱하게 보게 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학교가 진행되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떤 신앙적인 경험을 통해 마음에 회복을 느낀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치료하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문제를 당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한 모습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그의 제자들에게 오히려 분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을 오히려 책망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들을 자기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강하게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제지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오히려 예수님이 우리를 맞이해 주십니다. 우리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축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어떠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더라도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 말씀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 말씀 더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에 약간 번역상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당시에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아직 독립되지 못한 존재들이기에 무시를 당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우리는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신앙에 있어 순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됨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며 어린아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구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축복을 받은 아이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다. 아마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평생 동안 아니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는 그 대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의 표입니다. 성전을 봉헌하고 우리는 좀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교회의 주춧돌이 되고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그 순간을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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