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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찾으심
    2002-06-06 13:49:55   read : 1207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누가복음 15:1-10

    2002. 2. 10.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세 번이나 보잘 것 없는 초가집으로 찾아갔다는 뜻입니다. 이는 삼국지에서 제갈양이 유비 현덕에게 제출한 '출사표'에 나오는 말입니다. 중국의 삼국시절의 유현덕이 와룡강에 숨어사는 제갈공명을 불러내기 위해 세 번이나 그를 찾아가 있는 정성을 다해 보임으로써 마침내 공명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자기 신분과 지위를 잊고 세상 사람들이 대단치 않게 보는 사람을 끌어내다가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겸손한 태도와 간곡한 성의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삼고초려’는 바로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찾고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역대 권력자들은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심지어는 간교한 사람도 이용하며 자기의 정권을 유지해 왔습니다. 정권말기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신을 장관으로 청한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래도 들어가고 싶으시겠지요? 하지만 일 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여기에 우리를 영원히 찾으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강권적으로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두 개의 비유를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 하나는 백 마리의 양 가운데 한 마리가 멀리 도망갔기에 찾으러 나서는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집안에서 잃은 한 드라크마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양은 자기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도망간 것이요, 드라크마는 어떻게 하다보니 잘못하여 잃어버린 경우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찾는 주인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두 비유가 나란히 놓여진 이유는 상호 연결되어 해석되어 그 영향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언제간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언급할 때도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비유의 공통요소인 잃어버렸다가 찾으시는 역사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기의 백성을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남자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골짜기도 내려가고 언덕 위에도 올라갔고 물도 건너고 절벽에도 매달렸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았습니다.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평민들의 집구조를 보면 그렇게 깨끗한 삶을 유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외양간이 바로 문턱에 있고 부엌이 거실삼아 연결된어 있는 집의 구조를 볼 때 그들의 방은 그렇게 정갈하게 정리된 삶을 살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자기의 집안을 싹싹 쓸면서 그 잃어버린 동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동전을 찾았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찾았습니까? 이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아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목자와 그 주인에게 중요했습니다.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이기에 비율로 보면 일백분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 양 한 마리 자체가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인이 찾던 한 드라크마도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 여인의 지참금이었기에 중요했습니다. 열 개 가운데 하나이기에 비율로 따지면 십분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동전 하나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지구 상의 60억명 가운데 하나라서 60억분의 일에 해당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 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매우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마태복음 18:1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데는 남자나 여자 구별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인 두 비유를 보면 앞에는 한 남자 목자가 그 주인공으로 소개하고 다음 비유는 한 여자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짝을 지어 남자와 여자에 관한 비유가 나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남자나 여자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남자나 여자 모두를 똑 같이 찾고 계심을 말해 줍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성(性)의 문제를 초월합니다.



    또한 중요한 점은 찾음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게 되자 이것을 어깨에 메고 와서는 자기의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양을 때리며 몰고 와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터인데, 그것은 목자가 어깨에 메고 오니 얼마나 큰 대접을 하는 것입니까? 또한 여인도 잃어버렸던 한 드라크마를 찾으니 자기의 벗과 이웃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은 찾은 것보다 쓴 것이 더 많이 들겠다고 말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찾은 금액보다 더 많은 경비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비유는 그 즐거움을 가르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도 별로 가치 없는 죄인이지만 우리를 찾으시니 그 이상으로 즐거워하심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한 생명과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온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 스스로도 모범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을 찾아서 나선 분입니다. 자기에게 와서 제자로 삼아달라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뜻하지도 않은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찾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세상의 선생님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선생님은 제자들이 찾아와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할 때 생각해 보고 제자로 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제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는 예수님도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무도 가난한 어부 베드로에게 주목하지 않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주목하셨습니다. 아무도 세리 마태를 주목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민족의 배반자로 여길 때 예수님은 그에게 주목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고 목숨을 다할 때까지 초대교회를 지켜나간 분이었습니다. 세리 마태는 나중에 마태복음이 쓰여지도록 한 분입니다. 그분의 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찾으시는 것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자기의 사람이었는데, 잃어버렸던 사람을 찾을 뿐입니다. 그래서 원래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여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으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을 들에 놓아두고 찾아나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목자가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흔아홉을 위험한 들에 남겨놓고 한 마리를 위하여 찾아나섰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 때문에 아흔아홉을 위험에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이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를 않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된 곳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언하고 설교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에 나타나는 바 목자되신 하나님이 그의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 것과 같은 곳입니다. 그렇기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위험한 곳이 아니라 아주 안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는 잃어버린 양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 멀리 간 사람을 찾아나서는 하나님입니다. 에덴동산에 사람들을 다시 들여놓으시려는 하나님의 정성과 뜻이 여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찾아진다는 것을 가장 행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찾아진 사람들이기에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으나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으신다는 사실로 인해 겸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탓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아서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아는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좋은 예가 있습니다. 만약 바나바가 사울을 찾아내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그렇게 빨리 아니 성공적으로 퍼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갈릴리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억울하게 죽었다는 소문 정도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바나바를 통해 사울에게 전달되었고 사울은 바울로서 자기의 목숨을 다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기독교가 세계를 향하여 높이 날 수 있는 기회와 결과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찾는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찾아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영적으로 살리고 키우고 온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감당하여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일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일 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일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가운데 Times가 사람을 중심으로 일을 한다면, Newsweek는 사건을 중심으로 일을 합니다. 요즈음 인기있는 드라마 ‘상도’도 보면 만상은 사람을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나가고 반면에 송상은 이윤자체를 중심으로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하나님에게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시 여기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교회가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진정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인재를 찾아 그 활동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을 하신다면 내년도에는 교회 안에 있는 귀한 분들을 가능한 한 많이 발굴해 내는데 초점을 맞추어 목회하고자 합니다. 가능하면 많은 분들이 봉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갈 것입니다. 교회 안에 묻혀있는 여러 일꾼들을 제자리에 찾아갈 수 있게 하고자 합니다. 보이는 사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우리 교회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를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일꾼으로 그리고 지도자로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훌륭한 목사를 키워야 하고, 사명에 투철한 신학생을 배출하고, 좋은 장로를 키워나가고, 정직하고 겸손하며 열심있는 집사와 권사를 만들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심령에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심어 양육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보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사람을 키워나가는데 힘을 쏟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교회는 이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내버린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 희망의 대상임을 깨닫고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 .” 이러한 노래가 퍼져나는 교회가 되고 이를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노래 가사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전하고 있지요 . . .”



    대구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찾음을 받은 분들로 복받은 분들입니다. 찾는 자의 기쁨과 찾아지는 자의 행복이 우리 가운데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기쁨을 더 널리 전하며 이 세상에서 복의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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