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아내가 준 교훈 2002-07-15 15:45:36 read : 154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창 19:15-28 // 2002년 7월 14일
□ 롯의 아내가 준 교훈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창세기 19:15-28>
1. 롯의 아내는 신앙생활에서 실패한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신앙생활에서 멀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한때는 열심히 교회도 나오고, 제법 교회 일에 봉사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점점 세상으로 기울어져 결국 신앙생활에서 낙오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하게되면서 그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롯의 가정이 바로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었던고로 형님의 아들 조카 롯을 양자처럼 들여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낼 때 조카 롯도 함께 하였더라고 한 것을 보면, 자식을 삼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물질적인 번성의 축복을 내려,
처음에는 삼촌 집에서 함께 지내다가 소떼와 양떼가 불어남에 따라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서로 갈라서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을 본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 갈라서자고 하면서,
네가 우편을 택하면 내가 좌편을 택할 것이고,
네가 동쪽을 택하면, 나는 서쪽을 택할 것이니 먼저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롯은 삼촌의 이러한 제안을 받고 소알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소알 들판은 당시 초목이 무성하고 샘물이 많은 에덴동산과 같이 기름진 곳이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알 들판이 있는 곳은 당시 죄악이 관영한 소돔 성에서 가까운 곳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좋은 곳을 택하여 떠난 후, 척박한 돌짝 밭이 있는 땅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아브라함아! 네가 서있는 땅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내가 이 곳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아브라함과 롯의 삶의 방향은 갈라서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 롯은 처음부터 소돔 성으로 들어가지는 아니했습니다.
하지만 소돔 성을 바라보면서 소돔의 풍요로움에 끌려서 점점 장막을 소돔 성 가까이로 옮겼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완전히 소돔성 사람들과 같이 어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주위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멀어지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이 더 크게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들이 더 높이 보일 때 거기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성경에 풀이한 번역에 보면,
"이 악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너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음을 보여줌이 되고, 이 세상이 주는 것은 단지 육체를 즐기는 쾌락과, 눈으로 보는 모든 것에 정욕과, 갖고 있는 소유에 대한 자랑뿐이
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육체적 쾌락 이상의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보는 것에 대한 만족과 소유욕에 대한 충족이 저들의 사는 모든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돈이 있으면 소실을 들이고, 재력의 능력이 있으면 적당하게 바람을 피는 것에 대하여 관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란 말입니다.
롯의 가정이 처음부터 소돔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점점 소돔 성을 향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옮겨가면 서 장막을 쳤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사람들 보면, 처음에 교회에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도 교회 근방에 이사를 하지 않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동네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는 예수 믿는 냄새를 피우지도 않습니다.
가정 예배도 다 사라집니다.
식사 때 기도하던 것도 없어집니다.
찬송 소리도 끊어집니다.
결국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행동하고 생활하게 됩니다.
롯의 가정이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하면,
롯의 사위들이 장인의 하는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고 한 것을 보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심판에 관한 말을 전하는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듯이 오늘의 그리스천 가정에서도 그런 가정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 야 하겠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이 가까왔으니, 이 시대를 따라 살지 말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사위들은 얼마나 그 말씀을 경청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에서 밀려나고,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계승되지 못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인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이 자녀들 눈에 농담으로 느껴질 지경에 이르면 그것은 이미 신앙의 대는 끊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 자녀가 자기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얘기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믿으려면 나는 교회에 안 나간다"고 했더랍니다.
얼마나 자식에 앞에 본이 되지 못했으면 그렇게 말하였겠습니까?
그래서 디모데전서 3:4절에 교회의 감독이 되려면,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유아세례를 베풀 때 부모에게 서약을 받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식을 신앙으로 키우겠다는 서약을 받습니다.
2. 롯의 아내는 말씀을 따르면서도 뒤를 돌아본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신앙생활은 앞을 보고 달리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뒤를 돌아보는 생활이 아닙니다.
뒤를 본다는 것은 옛 생활을 버리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위에서 부른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구습이 어떤 구습(舊習)입니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입니다.
즉 육체적 향락추구입니다.
육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썩어질 육체에다만 공(功)을 들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롯의 아내의 말로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게 된 것은 소돔 성에 두고 온 재물이었습니다.
자기를 즐겁게 해 주었던 것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미련들이 있었기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할 길에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결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앙의 첫 걸음은 떠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첫 걸음은 고향 일가친척을 떠나는 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곳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떠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아직도 구습을 좇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몰래몰래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물어보러 다니는 일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놀음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주초를 끊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댄스홀에 드나드는 일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폭력을 휘두르는 일입니다.
롯의 아내는 끊을 것을 과감하게 끊지 못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친족,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껏 의뢰했던 옛 생활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활 방법이 180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그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했습니다.
죄의 습관의 미련을 끊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을 끊어야 합니다.
3.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은 나처럼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현재 사해바다는(Death Sea) 소돔 성이 있던 곳이란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사해(死海)란 문자 그대로 죽은 바다입니다.
생명이 없는 바다란 말입니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교훈을 찾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나를 본 받으라고 하는 교훈은 못할망정,
죽어서 나처럼 되지 말라고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자색옷을 입고 날마다 연회를 즐기던 부자가 죽어서 하는 말처럼 후회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부자가 뭐라고 하였습니까?
'나는 이왕 이곳에 왔으나, 저 나사로를 보내어 내 형제들이 이런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뭐라고 했습니까?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말을 듣겠느냐?"고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죽어서 후회할 삶을 살지 말고 살아서 나를 본 받으라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죽은 무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두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는 나처럼 살다오지는 말라는 후회로움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람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살다 가야 할 것이라는 그런 교훈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쪽을 택하려고 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7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어서 남길 귀한 본을 남기고 간다면 얼마나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겠습
니까!
우리 모두 롯의 아내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나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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