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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를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002-07-02 11:51:19   read : 209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무엘하 7:1-3, 18-29 // 2002-06-30

    사무엘하 7장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거할 처소, 즉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2절 말씀에 다윗의 이런 마음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함께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자신은 왕궁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는 반면, 하나님의 궤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휘장 가운데 그냥 있었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심히 아름다운지라 나단 선지자도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라고 다윗의 생각에 동조합니다. 보세요.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갸륵합니까? 다윗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받은 바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한 나라의 왕이 되고 나서야 그것에 만족해서 감사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1.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감사할 수 있을까요?

    ⑴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을 인생의 주관자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22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러므로 주는 광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는 참 신(神)이 없음이니이다." 다윗이 평생에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인생을 이끌어왔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이나 하듯 본문 1절 말씀은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힘든 나날을 살아왔는지를 잘 압니다. 실제로, 다윗의 주변에는 그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울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었고 국가적으로는 블레셋과 같은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자 호심탐탐 기회만을 엿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위협적인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역경을 통해서 깨닫게 된 사실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뜻대로 살다보면 즐거운 일이 많습니까? 괴로운 일이 많습니까?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내 뜻을 내세우는 것은 곧 집착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이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사명을 주셨다고 하지요. 그래서 간혹 이런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리사욕이 조금이라도 가미된 상태에서 보게 되는 환상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환상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 일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화가 나게 되고 결국 감사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생의 주관자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설사 일이 잘 진행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최선을 다할지라도 결국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⑵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던 반면, 하나님의 뜻은 이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로 하여금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음을 알게 했습니다. 그것은 다윗 왕 자신이 아닌 그의 아들을 통해서 성전을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때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혹시 그 마음에 아들에 대한 시기심 혹은 부러움 같은 것은 과연 없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내 축복은 내 축복이고, 자식은 자식의 복을 누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대에서 더 잘 되면, 당연히 자녀는 그 복을 더 크게 누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바로 복을 이루어 주세요"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바 은혜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의 일을 아들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윗에게 배워야 할 점입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감사하는 생활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할 축복까지도 내가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니, 다른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도 여러분 비교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주된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열등감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어느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열등감을 갖게 되는 이유로써 업무능력이 뛰어난 동료를 볼 때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람이 34%였으며, 얼굴이 예쁜 동료에게 느끼는 열등감은 21%, 학벌이 좋은 동료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은 19%, 회식 자리에서 인기 있는 동료(즉 킹카로 대우받는 동료)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12%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모든 열등감이 비교의식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별 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열등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것은 후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나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획이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따로 있음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열등감을 극복할 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바로 이러한 원칙-즉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자신에게 철저히 적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함께 18절 말씀을 봅시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무슨 말씀인지 아시지요? 다윗은 자신이 이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집안도 그렇습니다.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 저며, 정말 하찮은 집안이 우리 집안입니다. 그런데 저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게 하시다니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라는 표현에는 이런 다윗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그의 고백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그는 자신의 업적을 이루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진다는 사실에만 감사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후대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 자체도 영광스럽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이 자녀대에서 계속되기를 얼마만큼이나 바라고 계십니까? 입술로는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실상 우리들의 삶을 보면 많은 부분에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 일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믿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내 아들 딸들은 공부를 왜 이리 못합니까?', '왜 내 아들만 직장에서 왜 이리 운도 없는 것입니까?', '왜, 내 아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기꾼같은 사람만 만나는 것입니까?' 아마 이렇게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비교하는 사람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⑶ 감사에 대해 훈련받은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란 무엇입니까? 만약, 감사가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만 내 삶속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은 감사가 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그 역경을 이겨나갈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감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몸에 감사가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들여진 습관은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감사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감사가 몸에 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 배우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이라는 책을 쓴 윌리엄 보세이(William Beausay)라는 사람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가 겪은 실패와 좌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이들처럼 불행한 삶을 살 수 없다"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변명은 사절(No Excuse)"라고 써있는 티셔츠를 입게 하였습니다. 그는 가족들이 그 티셔츠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자기 행동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기로 가족들과 약속했습니다. 또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무의미한 변명을 늘어놓을 경우 식구들 중 누구라도 바로 제지할 수 있도록 정해놓았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산 윌리엄 보세이의 가족은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가족들은 쉽게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버릇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또한 푸념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눈감아주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복잡하게 설명하느라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실없이 지껄이는 일도 줄고, 더 나아가 올바른 일을 하는 데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윌리엄 보세이는 우수 인재를 발굴 양성하는 '위너스(Winners)' 그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보세이의 가족이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먼저 가정 안에서 모든 변명과 불평을 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이를 위해 숱한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감사가 몸에 배어 있습니까? 아직 몸에 배어 있지 않다면, 먼저, 불평불만을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에서 차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의 인생을 놀랍게 변화시키십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한 헨리 프로스트(Henry Frost)는 감사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집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 들은 후 깊은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 영혼을 덮었다. 기도를 하여도 그 어두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견디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어두움은 점점 깊어만 갈 뿐이었다. 그런 후 내륙 선교 본부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선교 본부의 벽에 이런 글이 써 있었다. '감사를 연습하십시오.' 나는 그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곧 모든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다시는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 시편 기자의 말이 옳다. '하나님께 감사함이 좋으니이다.'"

    성도 여러분,

    혹시 최근에 여러분의 영적 생활에 어두움의 그림자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또는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해주신 일들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며 당신을 버리지 아니하셨음을 알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할 때, 그것이 어떠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십니다. 안정을 찾게 하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주십니다.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영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부를 성공으로 이끌어 갑니다.



    2.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⑴ 감사한 일이 있을 때 바로 고백해야 합니다.

    미시간 주 앞바다에 풍랑이 일어나서 배 한 척이 파손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수영선수가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가서 무려 스물세명이나 구조했고, 신문에는 이 사건을 아주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토레이(R. A. Toray)목사님은 이 사건을 설교시간에 했는데, 설교가 끝났을 때쯤 해서 한 노인이 토레이 목사님께 와서 "제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토레이 목사님은 너무나 반가워서 예배 후에 사무실에 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차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토레이 목사님은 "당신이 그때 겪었던 일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노인은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한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도 온 일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누가복음 17장에도 나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낫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이 보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가던 도중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명 모두가 고침을 받았는데, 막상 주님께 찾아와 감사의 말을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단 한명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머지 아홉 명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정말 나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싶어 먼저 그 길로 의사와 제사장에게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 중에는 혹시라도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며칠 두고 봐서 정말 나았으면 그때 가서 감사의 표현을 해야지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걸렸던 병이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을 것이라 추측하여 병이 난 것을 우연으로 돌렸는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먼저 그것을 확인하고자 집으로 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 병 걸리기 전에 같이 살았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궁금해서 그들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뭐, 예수님께서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굳이 감사의 말을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이 아홉 명의 사람들은 이와같이 말하면서 그 즉시 예수님께 가서 '감사하다'고 고백할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감사할 기회를 놓치면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시 감사해야 감사할 수 있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감사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분명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건만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면서 모든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크고 중요한 일에는 감사의 표현을 잘 하지만,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할 기회가 있다면 그 즉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든 이웃들에게든 가족간에도 즉시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⑵ 감사는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법에는 주은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줄 경우에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줄 것을 명시하는 법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법이 감사하는 생활에 대해서 어느 정도가 의무규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법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가 너무 삭막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되지 않습니까? 왜 감사가 의무가 되어야 합니까? 얼마나 감사하지 못하고 살면 법조차 그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인가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 말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우선 뭐든지 "네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성공하는 사람들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이 말은 그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겸손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고맙다"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감사하다는 것 아닙니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인상을 좋게 만듭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갑니다. 이것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법입니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언젠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행복하게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자발적인 감사의 표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건과 상황이 좋기만 하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다시 한번 다윗의 삶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쓴 시편을 보면 우리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감사는 자발적인 감사였습니다. 시편 18편의 표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입니다. 그 시편 18편에서 다윗이 뭐라 고백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1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니이다." 다윗은 감사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시편 34편 2절에서 자신은 여호와만을 자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시편 56편은 어떻습니까? 이 시편 56편은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혔을 때에 쓴 시입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께 서원한 그대로,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감사의 제물을 드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다윗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았기 때문에 감사의 제물을 드리겠다고 고백한 것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감사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까? 수없이 많은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으면서도 제대로 감사해 본적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에 전혀 인색하지 않았던 다윗의 모습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비록 남들보다 적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보다 건강이 좋지 않아도, 다른 집 자녀들보다 내 자식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더라도, 예수 믿는 내가 세상 사람들보다 승진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그 누구의 인생과도 비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참된 감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감사를 깨닫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자발적인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발적인 감사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6-17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無酵節)과 칠칠절(七七節)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서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산제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에는 정말 반 년 동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감사 예물을 드릴 때 헌금봉투에 꼭 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고백은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더 큰 복으로 여러분의 삶에 다가가실 것입니다. 우리 춘천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통해 더 큰 축복의 현장으로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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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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