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스타디움)의 경기자들 2002-06-18 15:12:17 read : 2042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린도전서 9:24~27 // 2002-06-16
Ⅰ. 2002년 피파(FIFA) 한일월드컵이 우리를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 지구촌의 축제인 2002년 피파 한일월드컵(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이 새천년, 새 만남, 새 출발(New Millennium, New Encounter, New Start)이라는 이념으로 한국 서울과 일본 요꼬하마를 비롯한 두 나라 20개 도시에서 한 달 동안(5월 31일-6월 30일)의 대장정에 돌입하였습니다.
줄리메(Jules Rimet) 회장이 1926년 피파 총회에서 제1회 피파 월드컵을 개최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이래 1930년 우루과이에서 월드컵 경기가 처음으로 개최되었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13개 나라가 16번의 월드컵을 개최하므로 72년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31일, 한국 수도 서울에 위치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 화려한 막을 올린 21세기 첫 월드컵, 2002년 피파 한일 월드컵은 21세기 최초의 월드컵이고,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이며, 또한 최초의 2개국(한국, 일본) 공동개최라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축구의 진흥과 우호 증진 그리고 평화에의 기여라는 3대 목적 아래 가장 모범적인 월드컵 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대회는 다섯 가지 에센스(Essence)를 내걸고 있습니다. 첫째, 동서양의 문화접목을 위한 문화월드컵(Encounter), 둘째, 지구촌 환경문제를 연구하고 개선하는 환경월드컵(Environment), 셋째, 정보기술과 시스템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정보월드컵(Empowering), 넷째, 세계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제월드컵(Efficiency) 그리고 다섯째, 지구촌 가족 모두 서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친밀해지려는 관광월드컵(Entertainment)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금번 대회는 지난 2000년 3월부터 11월까지 무려 198개국이 참가한 지역예선을 통과한 32개국(아시아 2팀, 아프리카 5팀, 유럽 14팀, 북중미 3팀, 남미 5팀, 전 대회우승국 프랑스, 개최국 한국과 일본)의 선수와 임원 1600명이 각각 자국을 대표하여 참가하였고, 피파 관계자와 보도진 그리고 유명초청인사들 11270명이 대거 참석하였습니다.
총 360만 명의 관중규모를 자랑하며, 연인원 600억여 명이 TV를 시청하면서 월드컵 경기를 응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욱이 2000년 12월, 네덜란드 명장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한국 대표팀은 1년 7개월 동안의 각종 훈련을 통해 16강을 목표로 월드컵을 준비해왔습니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5회 출전에 4무 10패의 축구전적으로 한 번도 승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한국이 지난 6월 4일, 부산 경기장에서 북구의 강호 폴란드와의 일전에서 2:0이라고 하는 쾌승을 거둠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Ⅱ. 그리스도인은 운동장(스타디움)의 경기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감의 사람 바울은 자신을 위시한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 된 사람은 모두가 영적으로 지구라고 하는 큰 스타디온(stavdion)에서 경기하는 사람들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을 의미하는 스타디움(Stadium)은 본래 200M의 공간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였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사회의 중요한 사회생활의 한 분야가 이 운동장(경기장)을 중심하고 벌어졌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외에서는 매 3년마다 올림픽과 같은 이스무스(Isthmus)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경마, 경주, 마차경주, 레슬링, 권투, 음악, 또는 시 경연 등이 벌어졌고, 후대에 가서는 짐승과의 격투 종목이 신종목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당시 헬라 도시들 간에는 중요한 올림픽 경쟁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바울은 그 시대의 그러한 스타디움의 경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스타디움의 경기를 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유로 적용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스타디움(운동장)의 경기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기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1) 모든 일에 절제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절제’라는 말은 사실상 ‘극기생활’(克己生活)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무스 경기자들은 10개월 동안 죽음에 이르는 훈련을 통과해야 경기장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규약에 복종할 것을 서약해야만 하였습니다. 코치의 지도와 훈련, 식사, 침식, 휴식, 오락 등 일체가 통솔 아래 들어가고, 매도 수없이 맞아야만 하였습니다.
그 당시 극기하는 훈련생활에 대하여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경기에 승리하려면 젊은이들은 많이 참아야 하고, 많이 노력해야만 한다. 그는 더위와 추위를 겪어야 하고, 사랑과 술을 끊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기록하기를 ‘경기자들은 얼마나 그 얼굴에 주먹을 맞아야 하며, 그 몸 전체가 얼마나 맞았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고문들을 영광에의 갈망 때문에 참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약한 선수는 전투에서 이길 수 없고, 연습을 게을리 하는 선수는 경기에 나갈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절제’라고 하는 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신앙의 경기장에 나서기 위하여 자기를 이겨야 되고, 무수한 신앙의 시련들에서 인내해야 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외적으로 닥치는 모든 환난을 이겨내는 연단을 받아야 된다고 한 것입니다.
2) 목적 있는 향방을 정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경기하는 자가 목표 있는 달음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기가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축구하는 모든 선수의 목표는 오직 ‘골인’하는 것입니다. 골프하는 사람은 오직 ‘홀인’하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달리는 마라톤 선수도 오직 지정된 한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경주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는 ‘푯대이신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이신 예수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좇아감이라고 하였습니다(빌 3:13, 14). 향방이 분명하지 않을 때 그 달음질은 사실상 무의미하고 헛된 것입니다. 그 달음질은 중간에 표류하고 말 것입니다.
2. 우리는 운동장에서 싸움하는 전사(戰士)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고린도전서 9장 26절 하반절에서 27절 상반절에 말하기를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스타디움에서 경기하는 신자들을 ‘싸움하는 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허공을 치는 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 말은 ‘권투 경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 같습니다. 주먹으로 상대를 쳤으나 맞지 아니하고, 공중으로 스윙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급소를 모르거나 따라 미치지 못하여 공연히 헛손질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쳐야 할 처음의 적수가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고전 9:27)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친다’는 말은 ‘눈 밑’+‘친다’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권투하는 선수가 눈 아래 급소를 치면 상대방의 얼굴이 푸르게 멍이 들고 마침내 넘어져 버리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 몸을 자기가 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몸은 육체, 살크스(savrx)가 아닌 소마(sw'ma)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을 가리킵니다(고전 6:19). 값으로 산 것이 된 의의 병기를 가리킵니다(고전 6:20, 롬 6:13).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을 시키는데 성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게 하는 데 성공하는 것입니다(롬 6:13).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말대로 하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히 12:1)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27b).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와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흥분시키는 2002 한일 월드컵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쟁입니다. 조그마한 둥근 공 하나를 두고 전 지구촌의 가족이 일종의 운명을 거는 듯한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축제는 마지막을 향할수록 그 흥분의 도가 더하여집니다. 그 이유는 우승, 곧 승리라고 하는 결과 때문입니다. 이기는 나라, 챔피언의 나라가 누구인가 하는 데에 사람들의 마음이 쏠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여기 지구라고 하는 하나님의 둥근 스타디움(운동장)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경기하는 자들입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역사의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들입니다. 달리기를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싸움하는 영적 전사(戰士)들입니다. 그 결과는 이기기 위함입니다. 이기기를 위해서 다투는(경쟁) 자라고 하였습니다(고전 9:25). 그 이김의 결과는 상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9:25).
그 상은 당시 고린도의 이스무스 경기장의 승리자들에게 주는 솔잎으로 만든 면류관이나 올림픽 경기의 승자들에게 씌우는 월계관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들은 썩을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긴 영적 전사들에게 주는 것은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약 1:12).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2:19). 의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8). 영광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5:4). 썩지 않는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9:25).
오직 상 얻는 자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고전 9:25). 절제하는 삶, 극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닌 자신을 쳐서 복종을 시키는데 성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운동장(스타디움)의 경기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얻는 진리, 곧 이신득구(以信得救)를 가리킴이 아니라 이행득상(以行得賞)을 가리킵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가는 성화의 진보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 후에 따라오는 사랑의 실천으로 말미암는 축복의 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여러 도시의 스타디움에서 벌어지고 있는 2002년 피파(FIFA) 한일월드컵의 경기를 통하여 지구라고 하는 둥근 운동장에서 영적 경기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된 자신의 모습을 일깨워보는 축복의 계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국 죽음을 통하여 생명이 나오고, 자기희생을 통하여 영광의 결실이 오고 만다는 하나님이 정한 생명의 법칙을 다시 배우고 깨닫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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