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성도 2002-06-18 14:52:51 read : 1661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전도서 3:12-13 // 2002/6/9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구약성경의 신명기 33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을 빌면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는 감격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 믿어 구원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이 세상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는 줄 믿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천지와 만물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예비해주셨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별 어려움 없이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 장면을 깊이 묵상을 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과 우리 인간들이 행복을 만끽하며 살수 있도록 행복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13에서 좬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좭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명령과 규례는 모두 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행복한 자가 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동시에 소원입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인간이 어느 순간엔가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우리 인간의 행복을 빼앗아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죄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는 그 순간 행복이 달아납니다. 야고보서 1:15을 보면 좬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좭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죄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읽어버린 우리의 행복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좬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좭는 말씀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은 좬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곳좭 좬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는 곳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좬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곳좭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연로하신 분들은 뵙게 되면 이곳 저곳이 쑤시고 저리고 아프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아픈 데가 없습니다. 죽음도 없습니다. 따라서 슬픔도 없고 곡할 일도 없습니다. 또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등불이나 햇빛이 쓸데없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천국이 왕들만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의 눈치볼 필요도 없고, 먹고 살 걱정도 없고 마치 왕처럼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부럽습니까? 마찬가지로 천국도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모두가 다 왕노릇하며 행복하게 사는 곳입니다. 천국은 한마디로 행복이 넘치는 곳으로,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24을 보면 예수님께서 좬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좭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선포일 뿐만 아니라 이미 천국을 소유하고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7:20-21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좬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지마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순간 이미 우리 안에 천국이 임하게 되므로 고난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을 맛보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항상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겠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연 무엇이 문제입니까.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항상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1.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가 되었을 때,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오늘 죽을 먹어도 내일 먹을 것이 없는 그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받아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고, 잠을 자도 좋고 안 자도 좋고 이 기쁨은 은혜를 받아 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런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은혜 가운데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돈이 많아야 하고 무병 강건해야 하며 권세와 명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해도 행복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고 큰 고민이 있거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그리고 늘 원망불평이 많고 마음에 분노와 증오심이 가득찬 사람에게는 돈이나 권세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늘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되면? 쥱 자신의 좌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할 때 죄사함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쥲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쥳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어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이때의 행복감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는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지만 그의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여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마음의 평안함을 잃지 않으며 잠시 후에 만날 주님을 생각하면서 오직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2.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실 날이 가까이 왔을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이대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부부지간에도 서로 서로 발을 씻어주며 섬긴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아마 가정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누가복음 10:30 이하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의 곁을 지나갔지만 모른척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고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을 치료하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강도와 같이 남을 해코지하는 못된 사람과 강도를 만나 큰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 옆에 사람이 죽어가도 모른 척하는 이기적인 사람과 어려움 당한 사람을 도와주며 사는 이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네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중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남을 도우며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되고 행복한 국민이 됩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낯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찾아온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을 천사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우연히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평소에도 이런 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롯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그 동네에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기는커녕 모두 달려들어 그들을 괴롭히고 성폭행하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은 백성들이나 그런 나라는 지옥과 다름이 없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 중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을 가리켜 [G 세븐]이라고 합니다. G 세븐에 속한 선진 7개국은 경제력이 막강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식 수준이 높은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도 8번째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경제 대국을 꿈꾸고 있지만 경제력만 키운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이 선진국에서 본받아야 할 부분은 자원봉사활동입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는 온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50만개 이상의 [비영리 자원봉사단체]가 있어서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과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들은 온 가족이 함께 나서는 봉사를 통해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사람을 사랑하는 법”과 “이웃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세계 제일의 나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작은 차로 미대륙을 횡단해 본 적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곳곳에 휴식할 수 있는 쾌적한 장소가 나타납니다. 대개 우리나라의 휴게소는 영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 많지만 그곳은 전혀 다릅니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밥도 해먹고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 그곳 사무실을 방문해 보면 자원봉사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도나스 같은 빵과 커피를 준비해 놓고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성에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는지 모릅니다. 남을 섬기며 사는 그들의 얼굴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합니다. 우리 교회의 호스피스 봉사대원들도 이와 같습니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늘 기쁨이 충만합니다. 해본 사람이 아니면 그 기쁨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3.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는 자가 더 큰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면서 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됩니다. 마치 갈릴리 바다와 사해 바다처럼 확연히 다릅니다. 사해바다는 갈릴리로부터 받기만 하고 물을 흘려보내지 않다 보니 그곳에는 생명체가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해 쪽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갈릴리 바다는 물고기가 살아 있습니다. 누가복음 6:38을 보면 좬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좭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언제나 이상하게도 주는 자보다 항상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접받으려고 생각했다가 상대편으로부터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면 자연히 기대가 무너지게 되므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예 받을 생각을 안 할뿐만 아니라 있으면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사람은 항상 큰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항상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늘 찬양하며 떡을 떼며 자기 소유와 재물을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와 같이 베풀며 나누어주며 살 때 행복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다해보고 육신의 향락을 누리며 살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탄식하며, 살아있는 것 자체를 한스러워했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은 좬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좭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전 3:12-13). 그렇습니다! 행복은 세상 향락을 추구하고 잘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며 기쁘게 사는 삶입니다. 록펠러 재단은 뉴욕 시민의 전기료와 수도료의 40%을 대납해준다고 합니다. 얼마나 큰 부자이기에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결코 자기 혼자만 잘 살겠다고 재물을 쌓아놓지 않았습니다. 여느 갑부처럼 한푼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다가 말라죽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록팰러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물질을 가지고 일평생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성전도 4000개 이상 지어바쳤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행복자입니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성도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며, 내게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과 풍성히 나누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길 뿐만 아니라 실천에 옮기며 날마다 천국을 맛보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약글 : 우리가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소원입니다. 그러나 죄와 탐심이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항상 행복을 누리며 살려면 성령의 은혜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히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나누어주며 살 때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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