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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자녀를 위해 울라
    2002-07-29 19:15:35   read : 143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잠1:7-9,눅23:26-31 2001.10.21


    정확하게 수학능력 평가시험이 오늘까지 16일 남았습니다. 수험
    생인 고3학생들과 부모님들은 지금 하루 하루 살얼음판위로 걷는 심정
    으로 보냅니다. 한국에 사는 한 매년 입시전쟁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성적이 보통인 부모님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
    래서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냅니다. 반면에 성적이 상위에 있는 학생들
    과 부모님들이 안절부절합니다. 내신성적에 신경써야 하고 모의고사
    에 신경을 써야 하고 본시험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는 3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밥맛이 없고 잠도 안오고 쉽게 말씀드
    리면 입시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제가 잘 알고 있는 다른 교회 다니
    는 분의 기도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지금 고3 딸 때문에 울고 있
    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해서 제가 울고 있다는 그
    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딸이 2학년까지 아
    주 공부를 잘했는데, 3학년이 되어서는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중 상위 학생들은 놀다가 열심히 공부하니가 성적이 올라가는
    데 자기 딸은 오히려 성적이 전에 보다도 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서 딸도 답답해하고 어머니도 너무 안타까와 엉엉 울었다는 것입니
    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어머니가 울겠습니까? 본인은 얼마나 힘이 들
    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12등은 올라갈 자
    리가 없습니다. 정상에 있는 아이가 어디로 올라겠습니까? 점수의 오
    차는 시험을 칠 때마다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
    니 환산해 보니 평균 90점이 넘는 학생을 두고 울고 있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엄마 아빠는 학교 다닐 때 평균 90점이
    넘어 본적이 있느냐? 90점 넘는 과목이 몇 과목이나 되었느냐고 반문
    하면서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평균 90점이 넘으
    면 100점짜리와 별로 차이가 없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343장
    찬송가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를 불러주면서 우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운다고 되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인도받아 가면
    되지’라고 하면서 몇 마디 위로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혹시라도 성도 여러분들 중에 고3 수험생을 두고 안타까와 눈물을
    흘리는 분 계십니까? 아니면 우시면서 자녀들의 시험을 지켜본 경험
    을 가지신 분 있습니까? 사실은 3학년이 아니라도 공부 안하니까 속
    이 얼마나 상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렇게도 울
    면서 안타까와 하면서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어떤 인간을 만들기 위
    함입니까?
    하나님은 세상 모든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
    씀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훈계를 잘 듣고 가르침의 법을 떠나지 말
    라고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지식의 근본인 가장 으뜸되는 여호와
    를 경외하는 신앙훈련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그 신앙훈련
    을 잘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여호와
    를 경외하는 믿음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모
    든 지식의 으뜸되는 여호와 경외하는 신앙을 위하여 우리가 우는 경우
    는 별로 없고 공부 못하면 그것 때문에 우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년전에 강북고등하교 기독교학생써클에서 강북고등학교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 결과의 자료가 입수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
    면 첫 번째 질문이 ‘교회에 가본적이 있는가?’ 여기에 69%가 “예”
    라고 응답했습니다. 가본 경험이 있는 69% 되는 학생들에게 ‘교회에
    또 가고 싶었는가?’라는 질문에 73%가 싫다고 응답했습니다. 거기에
    서 다시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착하다
    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도 77%가 아니라도 대답했습니다. 기독교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에 대해서는 공자와 같은 사상가라고 대답
    한 학생이 60%나 되었고 부처같은 사람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26%였습
    니다. 구세주라고 응답한 학생은 14%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청소년들
    의 현실이요 여기에 나의 아들 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믿
    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구별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
    다.
    우리는 지금 교육을 받아야만 하고 교육을 시켜야만 합니다. 그러
    나 “어떤 교육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합
    니다. 세계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어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
    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공부와 행복이 정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것은 요즘 젊은이들
    이 쓴 책 제목입니다. 행복이 성적순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부가 가
    장 쉬웠다고 하는 것도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우리가 울되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해 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쓸데없
    는 것으로 운다면 챙피한 일입니다. 정말 울어야 할 일을 가지고 울
    때는 가치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는 기쁨을 단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를 위해 눈
    물을 흘리면서 양육한다면 결단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무엇을 위한 눈물이어야 하는가?
    오늘 신약의 말씀 누가복음 23장 내용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
    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 군병들이 예수님이 도저히 십자가
    를 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을 대신 짊
    어지게 했습니다. 거기에 백성들이 따르고 있고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우는 여자들의 큰 무리가 함께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면서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
    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너무 안타까와 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고 했
    습니다.
    왜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하는가? 머지않아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하며 얼마나 많은 타락의 길을 갈지 모른다는 것입니
    다. 그때 사람들이 차라리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들이 복이 있다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
    다. 얼마나 인간 세상이 타락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빨리 심판이 왔
    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
    다.
    사실 우리는 좋은 대학에 못들어간 것으로, 원하는 대학에 못들어
    간 것으로 원통해 하며 우는 눈물을 다른 것을 위해 흘려야 할 것입니
    다. 얼마 전에 한 고등학교 학생이 조폭 흉내를 낸다고 하면서 자기
    반 학생을 죽인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일
    들이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종말에 일어
    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
    는가?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떻게 가르치며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심각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모두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대인들의 교육은 세계 모든 민족의 본이 되고 있
    는 것 만큼, 우리도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육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신앙만 가졌다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려움이 없
    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어야 될지도 모릅
    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면 그것
    은 오히려 값진 삶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잡혀간 그 나라
    에서 위대한 인물로 부각된 사람들은 신앙과 일반사회에서 필요로 하
    는 지식이 구비된 자들이었습니다. 다니엘 1장에 보면 왕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니엘 1장 17절 이하에 보면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네 소년에게 하나님이 지식을 얻
    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해 이 네 소년들은 지혜와 총명함이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낫다고 칭찬하면서 특히 다니엘에
    게는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까지 주었다고 했습
    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지만 일반적인 지식과 사회
    를 통솔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는 것도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믿음을 저버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보다 우선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
    실은 세상은 날이 갈수록 악해져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나아가려
    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
    의 삶속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
    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
    라” 고 잠언 1:29, 3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모습이 여호수아에 때도 나타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세겜에다 불러 모아 놓고 고별설교를 통해서 간절하에 호소한
    적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 이하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
    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
    라 /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
    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
    와를 섬기겠노라”
    오늘날 가정에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무엇입니
    까? 자식들에게 좋은 대학을 나오게 하는 것입니까? 많은 재산을 물려
    주는 것입니까? 좋은 배우자와 짝지어 주는 것입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갖추어 주는 일입니까? 물론 이런 것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선물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
    은 신앙 물려주는 것입니다.
    해리슨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곳 두 곳이 있는
    데 하나는 교회도 다른 하나는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신성한 교회에
    서, 가정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으로 양육하지 못하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과연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겠습니까? 누구
    를 위해 울어야 하겠습니까? 「이마일리히」라는 사람이 “요즈음 학
    교는 많아도 교육은 없으며,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없으며, 목사는 많
    아도 목자는 없으며, 교인은 많아도 성도는 없으며 집은 많아도 가정
    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교육학자인 「존 요나하임」교수는
    “히틀러가 이 땅에서 유대인을 완전히 말살시키지 못한 것은 유대인
    의 가정을 깨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가정교육
    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가정 교육을 무슨 근거로 어떻게 시켰는가? 그
    들의 가정교육의 근거는 신명기6장 4-9절 말씀으로써 이를 “쉐마”라
    고 부릅니다. 이 말씀의 시작은 “이스라엘아 들어라”입니다. 여기
    서 “들어라”가 바로 히브리어로 “쉐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이 들어야 할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라. 2)하
    나님이 명하신 것을 마음에 새겨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유대
    인들은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육을 하는
    데 세 가지 중요한 표시가 있습니다. 메주자, 테필린, 치치드입니다.
    메주자란 문에 다는 표시입니다. 메주자는 히브리어로는 ‘문기
    둥’이란 뜻입니다. 신6장9절에 보면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메주자는 작은 상자로서 그 속에는 양피지에 하나님의 말
    씀을 기록하여 두루말이로 말아서 넣어서 오른쪽 문기둥에 눈높이 정
    도의 높이에 고정시켜 놓은 것을 말합니다. 메주자는 만든 재료들은
    유리, 주석, 구리, 나무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부자들은 녹
    슬지 않는 금속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하면 이 행사
    를 제일 먼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들어가고 나오면서 메주
    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는데 요즘은 입맞춤으로 대신하
    고 있습니다. 이들은 메주자를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방과 집과 마을
    의 문설주에 설치했으나, 창고, 화장실, 목욕실, 옷장, 베란다 등의
    문에는 설치하지 않았고, 회당에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메주자는 수
    천년을 내려오면서 유대인과 그들의 집을 보호했고 오늘날도 유대인들
    은 메주자의 거룩하고 신성하며 복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테필린은 이마와 팔뚝에다 하는 표시입니다. 기도문으로써 메
    주자보다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신명기6:8절에 “네 손목에 메어 기
    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이것은 항상 하는 것이 아니
    고 기도할 때만 묶고 있었습니다. 낮기도 시간에만 주로 묶고 아침기
    도나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된 날에는 묶지 않았고 저녁기도에는 묶지
    않았습니다. 테필린은 메주자와는 달리 반드시 가죽이나 양피지로 만
    든 상자를 사용했고 그 속에 역시 말씀을 네 구절을 적은 것을 두루말
    아서 넣어주고 상자를 이마나 왼팔손목에 맬 때는 상자가 가슴을 향하
    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우선은 팔은 어떤 폭력적 무기가 아니라 하나
    님이 제시하신 말씀으로 무장되었다는 뜻이고, 이마에 있는 테필린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의 중심에 그리고 내 영이 이 말씀과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을 낮기도 할
    때마다 묶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치치드가 있는데 이것은 옷에 다는 표시입니다. 치치드의
    성서적 근거는 민수기 15장38-4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
    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치치드)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
    의 술에 더하라 /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
    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
    게 하기 위함이라 /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
    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
    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 오늘날은 예복을 치치드라 부르지 않고
    탈리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겉옷이란 뜻입니다. 양털이나 비단으로
    짠 천으로 만든 것으로 머리와 어깨까지 완전히 덮히도록 풍성하게 만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탈리티는 남성들이 기도할 때에 착용합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탈리트라는 옷을 착용하도록 하고 경
    건한 유대인들은 항상 입고 다닙니다. 수 천년을 내려오면서 세계 곳
    곳에서 모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은 좀 거추장 스러운 치치드
    를, 탈리트로 단순화 시켜서 보존해 옴으로써 오늘의 유대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들
    은 메주자 테필린 치치드 이 세가지 신앙의 표시를 통한 가정에서의
    교육은 세계속에서의 유대인으로 자리재김을 하게 한 중요한 교육수단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누구인가? 아버지가 이방인이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
    면 그 자녀들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크리스천입니
    까? 어머니가 크리스찬이라면 그 자녀들은 크리스찬이라고 말할 수 있
    습니까? 이스라엘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정에서 끝납니다. 그러
    나 오늘 우리의 교육은 가정에서 모두 내몰아 학교로 학원으로 갔습니
    다. 거기에서 교육이란 어떤 교육입니까?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
    외하는 교육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정부는 오히려 기독교정신으로 세워진 사립학교에도 성
    경과목을 폐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다른 사람들이
    나 가문은 이방신을 섬기든지 조상신을 섬기든지 오직 자신과 자기 집
    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
    외하는 신앙훈련을 부지런히 시키지 않으면 정말 울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땅을 치며 통곡할지도 모릅니다. 왜 내가 그 때 교
    회에 데리고 가지 않았던가? 라고 말입니다. 왜 내가 공부만 시켰던
    가? 공부 못하면 꾸중하고 공부 잘하면 자녀가 원하는대로 다 사주면
    서도 신앙생활 못하면 꾸중도 별로 하지 않고 ‘때가 되면 하겠지’라
    는 막연히 믿음 좋은 척 했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그들이 원하는 것
    이 무엇이든지 다 사주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수1:7-8 "오직 너
    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
    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
    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
    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 이런 의미에서 본
    다면 대학에 합격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결혼을 잘하느
    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느냐 못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의 인생, 자녀의 인생, 즉 온 가족
    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것이냐, 말 것이냐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요단강을 건너는냐 못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
    려한 인생을 살았더라도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면 말짱 꽝입니다. 좋
    은 음식을 먹었느냐 못 먹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좋은 옷을 입었
    느냐 못 입었느냐, 좋은 학교를 다녔느냐 못 다녔느냐가 아니라 문제
    는 요단강을 건넜느냐 못 건넜느냐 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아모리 사람들과 싸운 기브온 전투가 있는
    데 해가 모자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실한 종 여호수아를 돕
    기 위하여 짧은 해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기브온과 아얄론 골짜기
    에 머물도록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라”고 하였습니다. 무엇
    을 위하여 태양이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무엇을 위하여 길
    어야 합니까? 무엇을 위하여 영화로워야 합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무엇을 위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합니까? 무엇을 위하여 자녀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야
    합니다.
    빌립보2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죽는 것
    이 좋다 죽어서 빨리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사아서
    해야 할 이 일도 버릴 수 없다. 나는 이 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죽어서 가는 것은 나 혼자에게 유익하지만 내가 살아 있으면 나는 고
    달플지 몰라도 너희 모두에게 유익이 되니까 내가 살아 있겠다’ 적어
    도 내가 오래 사는 목적이나 내가 영화롭게 되는 목적이 이 정도는 돼
    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자녀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자녀가 잘돼서 고
    개 쳐들고 한번 의시대 보려는 것입니까? 결혼시킬 때 그야말로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하기 위함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
    할 때, 울어야 할 때 왜 울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
    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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