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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여호와 앞에 나올 때(주제:감사)
    2002-07-29 19:05:50   read : 1751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시100:1-5 2001.7.1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맥추 감사절은 구약성경에 나오
    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중 하나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
    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
    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
    이니라” 출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
    절을 지키라”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인 칠칠절
    과 추수감사절인 수장절과 유월절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출
    애굽기23:14-15절에서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매년 3차례식 절기를 지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로 말씀하신 절기가 무교병의 절기,
    즉 유월절을 말합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될 때, 애굽에 내린 마지막 10번째 재앙인 짐승이나 사람 등 첫
    새끼를 죽는 재앙이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건너 뛰어 재
    앙을 면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스
    라엘의 전통적인 유월절은 지키지 않습니다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
    국의 유월절은 8.15 해방절이기 때문에 8월 둘째 주일에 8.15해방기
    념주일을 지키는 것이 일종의 유월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
    게 보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명하신 3대 절기를 다 지킨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비록 우리가 보리농사를 짓지 않지만 보릿고개를 겪
    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이 나라에 산업화를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리는 것은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 같은 경우에는 늦은 비
    라도 주셔서 90년만에 찾아온 가뭄을 해갈시켜 주신 것을 생각하면 정
    말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 가정적으로 감사의 일들이 다르겠
    습니다만, 온 국민이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려운 가정들도 많습니다. 사업이 어렵고 힘든 가정
    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좋은 일만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
    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렇듯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히
    전교인 출석주일로 지키면서 그 동안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게을
    리 했던 분들까지도 함께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
    는 하나님께만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가 하나
    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이 곳
    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어떤 모
    습으로 나아와야 할까요?
    여러분, 모처럼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어떤 모습으로 갑니까? 찡그
    린 모습으로 갑니까? 무뚝뚝한 모습으로 갑니까? 장관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회의를 할 때 보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의 간부사원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 보면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남북간의 적십자 회담이나 연락관 회의를 할 때 보면 모두가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물론 너무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간사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어떤 모습으로 오기를 원할까요?

    첫째, 기쁨으로 나가야 합니다. 2절에 보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1절에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고 했
    습니다. 즐겁다는 것은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즐거운 모습으로 기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
    이 교회 나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즐겁고 기쁜 마음으
    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그저 그런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출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합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남편이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
    다.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도 웃음을 선사하
    는 모습이 좋지 않습니까? 웃음은 실로 큰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
    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강조
    한 것이 기쁨입니다. “기뻐해라. 항상 기뻐해라”입니다. 우리가 기
    쁨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
    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새번역성경에 보면 “기쁨을 오직 주
    님에게서만 찾으라”입니다.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
    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이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
    리가 기쁨으로 나올 때 하나님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예배
    를 드리려 오실 때든지, 기도하러 오실 때든지 항상 기쁨으로 나오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기쁨으로 나가셔서 하나님의 은
    총과 여러분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셔야 합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고 했
    고, 4절에서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시
    95: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
    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
    하여 즐거이 부르자“고 했습니다. 찬양하는 마음은 역시 기쁜 마음입
    니다. 물론 마음이 슬퍼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괴로워도 찬송
    을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된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올 때 찬송하면서 나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차를 운전해 오실 때 소리내어 찬송 부르며 오시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교회에 나오시는 길에 소리내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입술로 찬송을 부르면서 교회를 향하여 걸어올 때 얼마나 좋습니까?
    비록 슬픈 일이 있더라도,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찬송을 부르십시
    오. 찬송을 꼭 기쁜 일이 있어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학하다가 문제를 키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고난중에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크
    리스찬이라면 고난 중에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부를 기분이 나야 찬송을 부르지요? 라고 반문하시는 분 계십니
    까? 기분이 좋아야 부르는 찬송은 온전한 찬송이 아닙니다. 기분 좋
    을 때 누가 찬송을 부르지 못하겠습니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기분
    이 좋지 않을 때에 오히려 찬송을 더 잘 부릅니다.
    17세기에 유럽은 30년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학하고 절망하며 좌절
    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데, 놀라운 것은 그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리어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송가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환켄나우어’라는 음악가가 있는데,
    그가 30년 동안 전쟁 당시에 불려졌던 찬송가들을 수집해 보았더니
    32,000여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웨첼’이
    라는 음악가가 다시 수집해 보았더니 55,000여곡이 되더랍니다. 성도
    들이 평화스러울 때 부르지 못하던 찬송이 오히려 30년간의 전쟁속에
    서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샘솟듯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
    러분이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실 때나, 기도하러 오실 때에나 아니
    면 구역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에나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찬송하며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본문에 보면 감사함으로 들어가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찬
    송하는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께 찬송하려면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50:1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려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감사함
    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러 나올 때부터 감사한 마음으
    로 나와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할 때 “감사함을 넘
    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말을 한 마디 하더라도 우리가 좋은 말을 해
    야 합니다. 엡5:4절에 보면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
    러운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
    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감사는 마음의 음악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여러분들
    이 잘 아시는 대로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어떤 마을에 도착하니 나병환자 10명이 먼발치
    에서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습니
    다. 즉 자신들의 질병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고
    쳐주셨습니다. 그런데 10명 중 한 명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례했다’는 말씀을 새번역 성
    경에는 ‘감사했다’고 번역했습니다. 은혜를 사례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감사하러 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열사
    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아홉사람은 어디 있느
    냐?” 감사하러 온 자에게 비로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이 이방인 외에는 ...” 감사하러 온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온전한 고침
    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러 온 이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
    면, 이 사람은 육신적 고침과 영적 구원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감사하는 마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 좌절
    하게 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
    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
    님은 여러분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와야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
    기 때문입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게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주신 선
    물을 받는 손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
    으면서 입으로 나오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아무리 장작을 많
    이 쌓고 석탄을 많이 채굴해도 타지 않으면 불이 아닙니다. 종은 소리
    를 낼 때에 종입니다. 소리를 내기까지는 쇠붙이에 불과합니다. 감사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
    러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
    오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에 감사라는 단어에
    는 'remember'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
    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이 내
    게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그것의 반대가 무
    엇입니까? 배은망덕이지요. 나는 그처럼 애쓰고 수고했는데 상대편이
    잊어버리면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망덕입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
    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해야될 민족입니다. 사
    실 우리 나라는 봉건 이씨 왕조, 그 다음이 식민지생활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방하자마자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
    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서울시내 전체가 몇 개 건물 외에는 다 산
    산이 부서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까? 우리가 자본
    력이 있었습니까? 자원이 있었습니까? 기술력이 있었습니까? 마케팅
    이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여기까지 왔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해
    야 됩니다. 그리고 또 내 개인의 삶 속에 함께 하신 그 축복들을 헤아
    려가면서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주
    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고 할 때 어느정도로 감
    사해야 하는가? 가장 구체적인 감사의 삶을 살다가 간 우리 나라 위
    대한 인물속에서 직접 감사의 글을 기록해 놓은 분이 손양원 목사님
    의 감사문입니다. 이 분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
    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그 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1년 반밖에 형기가 아니었는데 형기
    마친 다음에도 전향하지 않는다고 그 분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1945
    년 8월 20일 지나서 죽이기로 작정했는데, 15일날 해방이 되어 감옥
    문이 열려 살아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서 그 분은 서울의 큰 교회
    나 부산의 여러 교회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
    다."하고 다시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방되어 얼마 안 있다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이인제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11장을 설교했습니다. 순교자가 천국에
    서 하나님 앞에 찬송 드리며 탄원하는 기도를 읽으면서 설교했습니
    다. 약사, 애도사, 찬양이 이어지고 드디어 아버지의 답사 차례가 되
    었습니다. 흰 두루마기에 누런 두건을 쓰시고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
    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
    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
    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
    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
    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
    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고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
    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
    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
    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 양아들 삼
    기 전입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
    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
    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
    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감사합니다. 믿음은 감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
    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기쁨으로 나와
    야 하고 찬송부르면서 나와야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까?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에 말씀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
    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는 그분 때문에 이 땅에 왔
    고 그분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찬양
    을 해야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고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
    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물입니다. 내가 내것이 아닙니다. 이사야43:1
    절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
    이라”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왜, 그분의 양이기 때
    문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식이 있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자식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
    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의 인생을 책임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양육
    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찬송
    하십시오.
    1985년경 영락중학교 한 여학생의 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
    께 감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주는 내용의 글입니
    다.
    『버려도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낡고 찌그러진 아
    빠의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습니
    다. 내가 이런 비참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빠가 실직한 이후부
    터였습니다. 아빠의 실직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아빠는
    그 일로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가끔 주무시다가도 몸을 부르르 떨시
    던 모습은 마치 활동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실직 하신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새로 입사하셨습
    니다. 그러나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였는지라 아빠에게
    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었나 봅니다. 입사한지 1개월이 조금 지
    나,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출장근무를 자원하셨고, 회사의
    허락을 받은 아버지는 그 이후 늘 출장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04일이었던 출장이 조금 지나서는 1-2주로 늘어나더니
    요즘에 와서는 한달에 한번씩만 겨우 집에 들어오십니다. 아빠가 출장
    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두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일 걸어
    다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어느 구두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
    습니다. 원래 낡았던 구두가 어느 샌가 뒷굽도 다 닳고 앞은 입을 벌
    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그 낡은 구두를 몇 번이나 수선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수선마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아빠는 가장 값싼 운
    동화를 사 신으셨습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시느라 구두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운동화 역시 한번 출장을 다녀오시면 금방
    낡은 신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
    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빠의 생신 때에는 반드시 구두를 선물해 드
    리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용돈을 따로 받아 모을 현편이 아니
    었기 때문에, 학교 오갈 때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다니기 시작했습니
    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세 2,000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
    습니다. 소복히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중앙청 앞길을 걸어 집으로
    향해 가던 중, 저 앞앞에 웬 키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낙엽을 터벅터벅
    밟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
    가 동생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너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
    니? 넌 아직 어려서 걸어다니면 피곤해 성적 떨어진다고 반드시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잖아?”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난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야?” 나는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했
    습니다. “누나가 다 모을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랬잖아” 갑자기 동생
    이 표정을 바꾸면서 물었습니다. “누나 누나는 얼마나 모았어?”
    2,500원이란 대답을 들은 동생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럼 내가 모은 것과 함하면 웬만한 구두는 살 수 있겠다! 누나 나 그
    동안 2000원 모았어! 잘했지?” 나는 동생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하마
    터면 대로변에서 울음을 터뜨릴 뻔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가 다음 토요일, 동생과 나는 남대문 시장에서 만
    원 짜리 구두를 쌌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며칠 남지않
    은 아빠의 생신을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그날만큼은 꼭 집에 오시기
    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마침 동생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빠가 오늘 못 오신대. 그러니까 구두
    를 드릴 수가 없잖아”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낡아빠진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지금도 어느 길 위에선가를 걷고 계
    실 아빠를 생각하자 어느새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한 방울씩 맺히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뿐, 더 이상 슬픔
    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빠에게 드릴 새 구두가 있었
    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
    다. 별 볼일 없는 아버지, 무능하게만 보이는 아버지, 자신들의 쓸 것
    을 넉넉히 주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들이 고생이 되
    어도 오직 아빠의 구두를 생일 선물하겠다는 그 효성스러운 남매의 모
    습은 이 가정의 희망입니다. 이것은 곧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버스
    를 타지 않고 힘없이 배고픔을 달래면서 터덜거리며 걷는 이 남매의
    모습, 그러나 그들 마음에는 감사가 있었기에 그런 장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 교훈이 있다면 저렇게 가난함 속에서 학자금도 제대
    로 대어주지 못할 정도로, 용돈이라고 받아 본적이 없는, 용돈마저
    줄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도 갸륵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고생
    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버스 탈 돈
    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닌 아름다운 마음이 보입니까? 걸어다니
    면 배도 더 고프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유혹도 더 많이 가질텐데
    도 오직 아버지의 구두를 위해 남매가 서로 의논 없이 모았던 것을 생
    각하면,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죄악가
    운에 두시지 않고 구속의 은혜를 주시고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고 이렇
    게 잘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분을 위해 내가 고통을 당하면서까
    지 힘이 들면서 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해보신 적이 있습니
    까? 내가 쓸 것 덜 쓰고 힘이 들어도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이 남매
    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몇 사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서 예수님 당시에 마리아의 올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을 씻겼던 사실
    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 저의 이름이 주님 오실 때까
    지 전해질 것이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것만으로 기뻐하며 열심히 공부하며, 아버지의
    구두를 선물하는 이 두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
    님이 계심을 믿고 기뻐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단코 낭비할 수 없는 시간들, 세월
    들 아닙니까? 1초 1초가 모여서 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
    자기 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나오실 때, 교회에 예배하러 나오실 때, 여러분의 삶
    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사실 때, 기뻐하는 마음으
    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진
    실된 감사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본문 : 시100:1-5 2001.7.1
    제목 : 여호와 앞에 나올 때(주제:감사)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맥추 감사절은 구약성경에 나오
    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중 하나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
    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
    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
    이니라” 출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
    절을 지키라”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인 칠칠절
    과 추수감사절인 수장절과 유월절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출
    애굽기23:14-15절에서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매년 3차례식 절기를 지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로 말씀하신 절기가 무교병의 절기,
    즉 유월절을 말합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될 때, 애굽에 내린 마지막 10번째 재앙인 짐승이나 사람 등 첫
    새끼를 죽는 재앙이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건너 뛰어 재
    앙을 면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스
    라엘의 전통적인 유월절은 지키지 않습니다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
    국의 유월절은 8.15 해방절이기 때문에 8월 둘째 주일에 8.15해방기
    념주일을 지키는 것이 일종의 유월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
    게 보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명하신 3대 절기를 다 지킨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비록 우리가 보리농사를 짓지 않지만 보릿고개를 겪
    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이 나라에 산업화를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리는 것은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 같은 경우에는 늦은 비
    라도 주셔서 90년만에 찾아온 가뭄을 해갈시켜 주신 것을 생각하면 정
    말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 가정적으로 감사의 일들이 다르겠
    습니다만, 온 국민이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려운 가정들도 많습니다. 사업이 어렵고 힘든 가정
    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좋은 일만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
    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렇듯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히
    전교인 출석주일로 지키면서 그 동안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게을
    리 했던 분들까지도 함께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
    는 하나님께만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가 하나
    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이 곳
    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어떤 모
    습으로 나아와야 할까요?
    여러분, 모처럼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어떤 모습으로 갑니까? 찡그
    린 모습으로 갑니까? 무뚝뚝한 모습으로 갑니까? 장관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회의를 할 때 보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의 간부사원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 보면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남북간의 적십자 회담이나 연락관 회의를 할 때 보면 모두가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물론 너무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간사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어떤 모습으로 오기를 원할까요?

    첫째, 기쁨으로 나가야 합니다. 2절에 보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1절에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고 했
    습니다. 즐겁다는 것은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즐거운 모습으로 기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
    이 교회 나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즐겁고 기쁜 마음으
    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그저 그런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출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합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남편이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
    다.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도 웃음을 선사하
    는 모습이 좋지 않습니까? 웃음은 실로 큰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
    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강조
    한 것이 기쁨입니다. “기뻐해라. 항상 기뻐해라”입니다. 우리가 기
    쁨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
    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새번역성경에 보면 “기쁨을 오직 주
    님에게서만 찾으라”입니다.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
    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이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
    리가 기쁨으로 나올 때 하나님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예배
    를 드리려 오실 때든지, 기도하러 오실 때든지 항상 기쁨으로 나오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기쁨으로 나가셔서 하나님의 은
    총과 여러분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셔야 합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고 했
    고, 4절에서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시
    95: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
    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
    하여 즐거이 부르자“고 했습니다. 찬양하는 마음은 역시 기쁜 마음입
    니다. 물론 마음이 슬퍼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괴로워도 찬송
    을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된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올 때 찬송하면서 나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차를 운전해 오실 때 소리내어 찬송 부르며 오시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교회에 나오시는 길에 소리내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입술로 찬송을 부르면서 교회를 향하여 걸어올 때 얼마나 좋습니까?
    비록 슬픈 일이 있더라도,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찬송을 부르십시
    오. 찬송을 꼭 기쁜 일이 있어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학하다가 문제를 키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고난중에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크
    리스찬이라면 고난 중에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부를 기분이 나야 찬송을 부르지요? 라고 반문하시는 분 계십니
    까? 기분이 좋아야 부르는 찬송은 온전한 찬송이 아닙니다. 기분 좋
    을 때 누가 찬송을 부르지 못하겠습니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기분
    이 좋지 않을 때에 오히려 찬송을 더 잘 부릅니다.
    17세기에 유럽은 30년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학하고 절망하며 좌절
    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데, 놀라운 것은 그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리어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송가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환켄나우어’라는 음악가가 있는데,
    그가 30년 동안 전쟁 당시에 불려졌던 찬송가들을 수집해 보았더니
    32,000여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웨첼’이
    라는 음악가가 다시 수집해 보았더니 55,000여곡이 되더랍니다. 성도
    들이 평화스러울 때 부르지 못하던 찬송이 오히려 30년간의 전쟁속에
    서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샘솟듯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
    러분이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실 때나, 기도하러 오실 때에나 아니
    면 구역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에나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찬송하며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본문에 보면 감사함으로 들어가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찬
    송하는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께 찬송하려면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50:1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려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감사함
    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러 나올 때부터 감사한 마음으
    로 나와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할 때 “감사함을 넘
    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말을 한 마디 하더라도 우리가 좋은 말을 해
    야 합니다. 엡5:4절에 보면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
    러운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
    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감사는 마음의 음악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여러분들
    이 잘 아시는 대로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어떤 마을에 도착하니 나병환자 10명이 먼발치
    에서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습니
    다. 즉 자신들의 질병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고
    쳐주셨습니다. 그런데 10명 중 한 명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례했다’는 말씀을 새번역 성
    경에는 ‘감사했다’고 번역했습니다. 은혜를 사례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감사하러 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열사
    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아홉사람은 어디 있느
    냐?” 감사하러 온 자에게 비로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이 이방인 외에는 ...” 감사하러 온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온전한 고침
    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러 온 이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
    면, 이 사람은 육신적 고침과 영적 구원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감사하는 마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 좌절
    하게 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
    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
    님은 여러분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와야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
    기 때문입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게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주신 선
    물을 받는 손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
    으면서 입으로 나오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아무리 장작을 많
    이 쌓고 석탄을 많이 채굴해도 타지 않으면 불이 아닙니다. 종은 소리
    를 낼 때에 종입니다. 소리를 내기까지는 쇠붙이에 불과합니다. 감사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
    러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
    오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에 감사라는 단어에
    는 'remember'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
    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이 내
    게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그것의 반대가 무
    엇입니까? 배은망덕이지요. 나는 그처럼 애쓰고 수고했는데 상대편이
    잊어버리면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망덕입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
    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해야될 민족입니다. 사
    실 우리 나라는 봉건 이씨 왕조, 그 다음이 식민지생활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방하자마자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
    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서울시내 전체가 몇 개 건물 외에는 다 산
    산이 부서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까? 우리가 자본
    력이 있었습니까? 자원이 있었습니까? 기술력이 있었습니까? 마케팅
    이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여기까지 왔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해
    야 됩니다. 그리고 또 내 개인의 삶 속에 함께 하신 그 축복들을 헤아
    려가면서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주
    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고 할 때 어느정도로 감
    사해야 하는가? 가장 구체적인 감사의 삶을 살다가 간 우리 나라 위
    대한 인물속에서 직접 감사의 글을 기록해 놓은 분이 손양원 목사님
    의 감사문입니다. 이 분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
    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그 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1년 반밖에 형기가 아니었는데 형기
    마친 다음에도 전향하지 않는다고 그 분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1945
    년 8월 20일 지나서 죽이기로 작정했는데, 15일날 해방이 되어 감옥
    문이 열려 살아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서 그 분은 서울의 큰 교회
    나 부산의 여러 교회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
    다."하고 다시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방되어 얼마 안 있다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이인제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11장을 설교했습니다. 순교자가 천국에
    서 하나님 앞에 찬송 드리며 탄원하는 기도를 읽으면서 설교했습니
    다. 약사, 애도사, 찬양이 이어지고 드디어 아버지의 답사 차례가 되
    었습니다. 흰 두루마기에 누런 두건을 쓰시고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
    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
    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
    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
    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
    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
    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고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
    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
    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
    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 양아들 삼
    기 전입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
    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
    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
    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감사합니다. 믿음은 감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
    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기쁨으로 나와
    야 하고 찬송부르면서 나와야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까?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에 말씀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
    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는 그분 때문에 이 땅에 왔
    고 그분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찬양
    을 해야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고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
    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물입니다. 내가 내것이 아닙니다. 이사야43:1
    절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
    이라”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왜, 그분의 양이기 때
    문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식이 있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자식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
    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의 인생을 책임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양육
    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찬송
    하십시오.
    1985년경 영락중학교 한 여학생의 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
    께 감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주는 내용의 글입니
    다.
    『버려도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낡고 찌그러진 아
    빠의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습니
    다. 내가 이런 비참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빠가 실직한 이후부
    터였습니다. 아빠의 실직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아빠는
    그 일로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가끔 주무시다가도 몸을 부르르 떨시
    던 모습은 마치 활동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실직 하신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새로 입사하셨습
    니다. 그러나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였는지라 아빠에게
    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었나 봅니다. 입사한지 1개월이 조금 지
    나,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출장근무를 자원하셨고, 회사의
    허락을 받은 아버지는 그 이후 늘 출장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04일이었던 출장이 조금 지나서는 1-2주로 늘어나더니
    요즘에 와서는 한달에 한번씩만 겨우 집에 들어오십니다. 아빠가 출장
    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두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일 걸어
    다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어느 구두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
    습니다. 원래 낡았던 구두가 어느 샌가 뒷굽도 다 닳고 앞은 입을 벌
    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그 낡은 구두를 몇 번이나 수선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수선마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아빠는 가장 값싼 운
    동화를 사 신으셨습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시느라 구두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운동화 역시 한번 출장을 다녀오시면 금방
    낡은 신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
    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빠의 생신 때에는 반드시 구두를 선물해 드
    리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용돈을 따로 받아 모을 현편이 아니
    었기 때문에, 학교 오갈 때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다니기 시작했습니
    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세 2,000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
    습니다. 소복히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중앙청 앞길을 걸어 집으로
    향해 가던 중, 저 앞앞에 웬 키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낙엽을 터벅터벅
    밟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
    가 동생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너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
    니? 넌 아직 어려서 걸어다니면 피곤해 성적 떨어진다고 반드시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잖아?”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난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야?” 나는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했
    습니다. “누나가 다 모을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랬잖아” 갑자기 동생
    이 표정을 바꾸면서 물었습니다. “누나 누나는 얼마나 모았어?”
    2,500원이란 대답을 들은 동생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럼 내가 모은 것과 함하면 웬만한 구두는 살 수 있겠다! 누나 나 그
    동안 2000원 모았어! 잘했지?” 나는 동생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하마
    터면 대로변에서 울음을 터뜨릴 뻔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가 다음 토요일, 동생과 나는 남대문 시장에서 만
    원 짜리 구두를 쌌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며칠 남지않
    은 아빠의 생신을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그날만큼은 꼭 집에 오시기
    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마침 동생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빠가 오늘 못 오신대. 그러니까 구두
    를 드릴 수가 없잖아”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낡아빠진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지금도 어느 길 위에선가를 걷고 계
    실 아빠를 생각하자 어느새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한 방울씩 맺히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뿐, 더 이상 슬픔
    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빠에게 드릴 새 구두가 있었
    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
    다. 별 볼일 없는 아버지, 무능하게만 보이는 아버지, 자신들의 쓸 것
    을 넉넉히 주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들이 고생이 되
    어도 오직 아빠의 구두를 생일 선물하겠다는 그 효성스러운 남매의 모
    습은 이 가정의 희망입니다. 이것은 곧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버스
    를 타지 않고 힘없이 배고픔을 달래면서 터덜거리며 걷는 이 남매의
    모습, 그러나 그들 마음에는 감사가 있었기에 그런 장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 교훈이 있다면 저렇게 가난함 속에서 학자금도 제대
    로 대어주지 못할 정도로, 용돈이라고 받아 본적이 없는, 용돈마저
    줄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도 갸륵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고생
    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버스 탈 돈
    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닌 아름다운 마음이 보입니까? 걸어다니
    면 배도 더 고프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유혹도 더 많이 가질텐데
    도 오직 아버지의 구두를 위해 남매가 서로 의논 없이 모았던 것을 생
    각하면,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죄악가
    운에 두시지 않고 구속의 은혜를 주시고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고 이렇
    게 잘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분을 위해 내가 고통을 당하면서까
    지 힘이 들면서 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해보신 적이 있습니
    까? 내가 쓸 것 덜 쓰고 힘이 들어도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이 남매
    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몇 사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서 예수님 당시에 마리아의 올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을 씻겼던 사실
    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 저의 이름이 주님 오실 때까
    지 전해질 것이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것만으로 기뻐하며 열심히 공부하며, 아버지의
    구두를 선물하는 이 두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
    님이 계심을 믿고 기뻐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단코 낭비할 수 없는 시간들, 세월
    들 아닙니까? 1초 1초가 모여서 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
    자기 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나오실 때, 교회에 예배하러 나오실 때, 여러분의 삶
    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사실 때, 기뻐하는 마음으
    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진
    실된 감사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본문 : 시100:1-5 2001.7.1
    제목 : 여호와 앞에 나올 때(주제:감사)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맥추 감사절은 구약성경에 나오
    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중 하나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
    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
    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
    이니라” 출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
    절을 지키라”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인 칠칠절
    과 추수감사절인 수장절과 유월절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출
    애굽기23:14-15절에서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매년 3차례식 절기를 지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로 말씀하신 절기가 무교병의 절기,
    즉 유월절을 말합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될 때, 애굽에 내린 마지막 10번째 재앙인 짐승이나 사람 등 첫
    새끼를 죽는 재앙이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건너 뛰어 재
    앙을 면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스
    라엘의 전통적인 유월절은 지키지 않습니다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
    국의 유월절은 8.15 해방절이기 때문에 8월 둘째 주일에 8.15해방기
    념주일을 지키는 것이 일종의 유월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
    게 보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명하신 3대 절기를 다 지킨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비록 우리가 보리농사를 짓지 않지만 보릿고개를 겪
    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이 나라에 산업화를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리는 것은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 같은 경우에는 늦은 비
    라도 주셔서 90년만에 찾아온 가뭄을 해갈시켜 주신 것을 생각하면 정
    말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 가정적으로 감사의 일들이 다르겠
    습니다만, 온 국민이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려운 가정들도 많습니다. 사업이 어렵고 힘든 가정
    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좋은 일만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
    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렇듯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히
    전교인 출석주일로 지키면서 그 동안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게을
    리 했던 분들까지도 함께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
    는 하나님께만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가 하나
    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이 곳
    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어떤 모
    습으로 나아와야 할까요?
    여러분, 모처럼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어떤 모습으로 갑니까? 찡그
    린 모습으로 갑니까? 무뚝뚝한 모습으로 갑니까? 장관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회의를 할 때 보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의 간부사원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 보면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남북간의 적십자 회담이나 연락관 회의를 할 때 보면 모두가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물론 너무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간사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어떤 모습으로 오기를 원할까요?

    첫째, 기쁨으로 나가야 합니다. 2절에 보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1절에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고 했
    습니다. 즐겁다는 것은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즐거운 모습으로 기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
    이 교회 나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즐겁고 기쁜 마음으
    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그저 그런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출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합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남편이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
    다.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도 웃음을 선사하
    는 모습이 좋지 않습니까? 웃음은 실로 큰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
    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강조
    한 것이 기쁨입니다. “기뻐해라. 항상 기뻐해라”입니다. 우리가 기
    쁨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
    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새번역성경에 보면 “기쁨을 오직 주
    님에게서만 찾으라”입니다.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
    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이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
    리가 기쁨으로 나올 때 하나님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예배
    를 드리려 오실 때든지, 기도하러 오실 때든지 항상 기쁨으로 나오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기쁨으로 나가셔서 하나님의 은
    총과 여러분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셔야 합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고 했
    고, 4절에서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시
    95: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
    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
    하여 즐거이 부르자“고 했습니다. 찬양하는 마음은 역시 기쁜 마음입
    니다. 물론 마음이 슬퍼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괴로워도 찬송
    을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된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올 때 찬송하면서 나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차를 운전해 오실 때 소리내어 찬송 부르며 오시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교회에 나오시는 길에 소리내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입술로 찬송을 부르면서 교회를 향하여 걸어올 때 얼마나 좋습니까?
    비록 슬픈 일이 있더라도,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찬송을 부르십시
    오. 찬송을 꼭 기쁜 일이 있어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학하다가 문제를 키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고난중에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크
    리스찬이라면 고난 중에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부를 기분이 나야 찬송을 부르지요? 라고 반문하시는 분 계십니
    까? 기분이 좋아야 부르는 찬송은 온전한 찬송이 아닙니다. 기분 좋
    을 때 누가 찬송을 부르지 못하겠습니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기분
    이 좋지 않을 때에 오히려 찬송을 더 잘 부릅니다.
    17세기에 유럽은 30년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학하고 절망하며 좌절
    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데, 놀라운 것은 그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리어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송가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환켄나우어’라는 음악가가 있는데,
    그가 30년 동안 전쟁 당시에 불려졌던 찬송가들을 수집해 보았더니
    32,000여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웨첼’이
    라는 음악가가 다시 수집해 보았더니 55,000여곡이 되더랍니다. 성도
    들이 평화스러울 때 부르지 못하던 찬송이 오히려 30년간의 전쟁속에
    서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샘솟듯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
    러분이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실 때나, 기도하러 오실 때에나 아니
    면 구역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에나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찬송하며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본문에 보면 감사함으로 들어가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찬
    송하는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께 찬송하려면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50:1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려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감사함
    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러 나올 때부터 감사한 마음으
    로 나와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할 때 “감사함을 넘
    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말을 한 마디 하더라도 우리가 좋은 말을 해
    야 합니다. 엡5:4절에 보면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
    러운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
    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감사는 마음의 음악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여러분들
    이 잘 아시는 대로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어떤 마을에 도착하니 나병환자 10명이 먼발치
    에서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습니
    다. 즉 자신들의 질병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고
    쳐주셨습니다. 그런데 10명 중 한 명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례했다’는 말씀을 새번역 성
    경에는 ‘감사했다’고 번역했습니다. 은혜를 사례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감사하러 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열사
    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아홉사람은 어디 있느
    냐?” 감사하러 온 자에게 비로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이 이방인 외에는 ...” 감사하러 온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온전한 고침
    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러 온 이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
    면, 이 사람은 육신적 고침과 영적 구원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감사하는 마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 좌절
    하게 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
    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
    님은 여러분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와야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
    기 때문입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게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주신 선
    물을 받는 손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
    으면서 입으로 나오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아무리 장작을 많
    이 쌓고 석탄을 많이 채굴해도 타지 않으면 불이 아닙니다. 종은 소리
    를 낼 때에 종입니다. 소리를 내기까지는 쇠붙이에 불과합니다. 감사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
    러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
    오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에 감사라는 단어에
    는 'remember'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
    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이 내
    게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그것의 반대가 무
    엇입니까? 배은망덕이지요. 나는 그처럼 애쓰고 수고했는데 상대편이
    잊어버리면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망덕입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
    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해야될 민족입니다. 사
    실 우리 나라는 봉건 이씨 왕조, 그 다음이 식민지생활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방하자마자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
    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서울시내 전체가 몇 개 건물 외에는 다 산
    산이 부서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까? 우리가 자본
    력이 있었습니까? 자원이 있었습니까? 기술력이 있었습니까? 마케팅
    이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여기까지 왔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해
    야 됩니다. 그리고 또 내 개인의 삶 속에 함께 하신 그 축복들을 헤아
    려가면서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주
    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고 할 때 어느정도로 감
    사해야 하는가? 가장 구체적인 감사의 삶을 살다가 간 우리 나라 위
    대한 인물속에서 직접 감사의 글을 기록해 놓은 분이 손양원 목사님
    의 감사문입니다. 이 분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
    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그 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1년 반밖에 형기가 아니었는데 형기
    마친 다음에도 전향하지 않는다고 그 분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1945
    년 8월 20일 지나서 죽이기로 작정했는데, 15일날 해방이 되어 감옥
    문이 열려 살아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서 그 분은 서울의 큰 교회
    나 부산의 여러 교회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
    다."하고 다시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방되어 얼마 안 있다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이인제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11장을 설교했습니다. 순교자가 천국에
    서 하나님 앞에 찬송 드리며 탄원하는 기도를 읽으면서 설교했습니
    다. 약사, 애도사, 찬양이 이어지고 드디어 아버지의 답사 차례가 되
    었습니다. 흰 두루마기에 누런 두건을 쓰시고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
    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
    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
    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
    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
    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
    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고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
    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
    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
    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 양아들 삼
    기 전입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
    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
    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
    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감사합니다. 믿음은 감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
    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기쁨으로 나와
    야 하고 찬송부르면서 나와야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까?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에 말씀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
    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는 그분 때문에 이 땅에 왔
    고 그분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찬양
    을 해야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고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
    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물입니다. 내가 내것이 아닙니다. 이사야43:1
    절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
    이라”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왜, 그분의 양이기 때
    문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식이 있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자식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
    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의 인생을 책임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양육
    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찬송
    하십시오.
    1985년경 영락중학교 한 여학생의 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
    께 감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주는 내용의 글입니
    다.
    『버려도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낡고 찌그러진 아
    빠의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습니
    다. 내가 이런 비참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빠가 실직한 이후부
    터였습니다. 아빠의 실직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아빠는
    그 일로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가끔 주무시다가도 몸을 부르르 떨시
    던 모습은 마치 활동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실직 하신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새로 입사하셨습
    니다. 그러나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였는지라 아빠에게
    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었나 봅니다. 입사한지 1개월이 조금 지
    나,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출장근무를 자원하셨고, 회사의
    허락을 받은 아버지는 그 이후 늘 출장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04일이었던 출장이 조금 지나서는 1-2주로 늘어나더니
    요즘에 와서는 한달에 한번씩만 겨우 집에 들어오십니다. 아빠가 출장
    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두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일 걸어
    다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어느 구두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
    습니다. 원래 낡았던 구두가 어느 샌가 뒷굽도 다 닳고 앞은 입을 벌
    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그 낡은 구두를 몇 번이나 수선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수선마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아빠는 가장 값싼 운
    동화를 사 신으셨습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시느라 구두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운동화 역시 한번 출장을 다녀오시면 금방
    낡은 신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
    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빠의 생신 때에는 반드시 구두를 선물해 드
    리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용돈을 따로 받아 모을 현편이 아니
    었기 때문에, 학교 오갈 때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다니기 시작했습니
    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세 2,000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
    습니다. 소복히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중앙청 앞길을 걸어 집으로
    향해 가던 중, 저 앞앞에 웬 키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낙엽을 터벅터벅
    밟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
    가 동생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너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
    니? 넌 아직 어려서 걸어다니면 피곤해 성적 떨어진다고 반드시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잖아?”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난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야?” 나는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했
    습니다. “누나가 다 모을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랬잖아” 갑자기 동생
    이 표정을 바꾸면서 물었습니다. “누나 누나는 얼마나 모았어?”
    2,500원이란 대답을 들은 동생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럼 내가 모은 것과 함하면 웬만한 구두는 살 수 있겠다! 누나 나 그
    동안 2000원 모았어! 잘했지?” 나는 동생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하마
    터면 대로변에서 울음을 터뜨릴 뻔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가 다음 토요일, 동생과 나는 남대문 시장에서 만
    원 짜리 구두를 쌌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며칠 남지않
    은 아빠의 생신을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그날만큼은 꼭 집에 오시기
    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마침 동생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빠가 오늘 못 오신대. 그러니까 구두
    를 드릴 수가 없잖아”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낡아빠진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지금도 어느 길 위에선가를 걷고 계
    실 아빠를 생각하자 어느새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한 방울씩 맺히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뿐, 더 이상 슬픔
    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빠에게 드릴 새 구두가 있었
    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
    다. 별 볼일 없는 아버지, 무능하게만 보이는 아버지, 자신들의 쓸 것
    을 넉넉히 주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들이 고생이 되
    어도 오직 아빠의 구두를 생일 선물하겠다는 그 효성스러운 남매의 모
    습은 이 가정의 희망입니다. 이것은 곧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버스
    를 타지 않고 힘없이 배고픔을 달래면서 터덜거리며 걷는 이 남매의
    모습, 그러나 그들 마음에는 감사가 있었기에 그런 장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 교훈이 있다면 저렇게 가난함 속에서 학자금도 제대
    로 대어주지 못할 정도로, 용돈이라고 받아 본적이 없는, 용돈마저
    줄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도 갸륵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고생
    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버스 탈 돈
    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닌 아름다운 마음이 보입니까? 걸어다니
    면 배도 더 고프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유혹도 더 많이 가질텐데
    도 오직 아버지의 구두를 위해 남매가 서로 의논 없이 모았던 것을 생
    각하면,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죄악가
    운에 두시지 않고 구속의 은혜를 주시고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고 이렇
    게 잘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분을 위해 내가 고통을 당하면서까
    지 힘이 들면서 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해보신 적이 있습니
    까? 내가 쓸 것 덜 쓰고 힘이 들어도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이 남매
    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몇 사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서 예수님 당시에 마리아의 올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을 씻겼던 사실
    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 저의 이름이 주님 오실 때까
    지 전해질 것이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것만으로 기뻐하며 열심히 공부하며, 아버지의
    구두를 선물하는 이 두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
    님이 계심을 믿고 기뻐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단코 낭비할 수 없는 시간들, 세월
    들 아닙니까? 1초 1초가 모여서 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
    자기 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나오실 때, 교회에 예배하러 나오실 때, 여러분의 삶
    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사실 때, 기뻐하는 마음으
    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진
    실된 감사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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