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4:1-11
한국 교회에 초기 어느날, 선교사 한 사람이 시골길을 짚차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짐을 지고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나고 그 할머니가 너무 피곤해 보였던지 이 미국 선교사는 문을 열어서 이 할머니를 차에 태웠습니다.
한참을 운전하고 가는데 이 할머니가 끙끙대는 소리에 이 앞에 운전하던 선교사가 고개를 돌려봅니다.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여전히 맨 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서툰 한국말로 말합니다. "할머니, 그 왜 무겁게 짐을 지고 계십니까?"
"저 혼자 타기도 미안한데 짐까지 실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웃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자에게 안식을 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짐을 하나님 앞에 맡기질 못하고 힘겹게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경이 너무 예민해서 조금만 어려워도 무력감에 열등감에 빠져서 살 때가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탄식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피곤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삶의 여유라곤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쟁 시대 속에서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몸부림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복잡한 삶의 현실이 우리를 편히 휴식하도록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긴장의 삶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할 것인가?
쉬는 것이 좋긴 좋은데 어떻게 쉬어야 될 것인가?
참된 휴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늘 긴장과 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 마음속에 성공과 출세를 향한 욕망이 항상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생 길에 말려들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피곤하여지기 시작하고,
결국 의욕을 잃게 되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과 정신은 언제까지나 긴장과 스트레스를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를 못합니다.
계속 긴장하고 살다보면 우리의 몸도, 정신도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스트레스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이 스트레스로부터 해방하기 위해서 '휴가를 가고
여러 가지 레크레이션, 취미활동과 여행을 통하여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많은 노력들을 벌입니다
사람이 긴장만 하고 살아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바하의 음악을 듣지만 자기네들끼리 있을 때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다."
무슨 말입니까? 바꾸어 말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찬송가를 즐겨 부르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세상 유행가 음악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경건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하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쌓여있던 긴장도 풀어야 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보면 한 번 연주를 하고 나서 꼭 바이올린 줄을 풀어줍니다.
줄을 풀어주지 않고 계속 강하게 조여 놓기만 하면 나중에는 탄력을 잃고 제대로 음을 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번 조였다가는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긴장과 집중 뒤에는 휴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안식은 열심 히 일한 다음에 찾아오는 안식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하나님께서 창조를 위해서 온 힘을 다 기울이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다음 드디어 7일째 되는 날 주님께서 안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일하고 난 다음에 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후에는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일과 쉼의 균형이 잘 이루어질 때 보다 활력있고 능력있게 됩니다.
진정한 휴식, 참된 휴식은 열심히 일한 다음에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려는 것은 잘못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제 휴가철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 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돌아올 때면 새로운 힘을 얻고 옵니까?
사실은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훨씬 더 지쳐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까?
여러분 휴가는 오락이나 노는 게임으로 생각하고 번잡한 곳을 찾으면 오히려 휴가가 사람을 더욱 짜증나게 만들고 피곤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휴가는 주님과 함께 하는 안식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첫 번째 휴가는 나름대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휴가를 평소 삶과 분리되어서 생각하면 휴가가 끝났을 때에 평상으로 돌아오는게 두렵습니다.
휴가는 삶에 현장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평소 생활과 이어지는 연속성으로 생각하고 새롭게 준비되고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바쁜 세상에 나 자신의 정체도 모르고 삶에 진지하고 거룩함에 이르는 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휴가를 통하여 거룩한 삶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삼아 보는 것입니다.
처음 출애굽한 1세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속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거룩함이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전10:1-11절에 보면 그들이 들어오지 못한 이유가
그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였습니다.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조금만 어려워도
애굽의 노예생활 동안에 먹고 살았던 양파, 오이, 시금치, 배추 등을 더 그리워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위기가 닥친다고 해서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의심과 원망과 세상생활로 돌아가기를 그리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1세대가 물러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새로운 2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우선 분명하고 거룩한 목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너희 소유물로 취하고 너희 집들과 나의 전을 세우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며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들려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목적없고 무계획적인 생활을 버리고 이번 휴가를 계기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새로운 삶을 도모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주변에는 아직도 40여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번 휴가를 통하여 욕심과 의심과 걱정을 요단강에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죄는 인간에게 육체적인 고통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와 더불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영적 투쟁을 다한 후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안식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굽은 길을 만들어 그 길을 밟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은 후에도 가나안 여러 족속과 전쟁을 해야 했듯이 성도는 안식을 위해 내 마음에 개으름과 죄악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나를 어렵게 하는 주변 사람을 원망하거나 경쟁자로 바라보지 마세요.
하나님이 사랑하도록 나에게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일과 삶은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만들지 않습니다.
영적인 거룩함에 이르는 안식은 놀랍게도 나를 위한 것보다도 남을 위해 살 때에 거룩한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번 휴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장개업하는 것입니다.
가끔 식당을 가다보면 신장개업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뀐 식당을 목격하게 됩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식당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낡은 식탁들이 새것으로 바뀌고 새로운 벽지를 바르고 이전보다 훨씬 더 밝아졌습니다. 메뉴도 다릅니다 맛도 다릅니다
장소는 똑같지만 모든게 새롭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들어오셨음으로
모든게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자 경영자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지휘하시고 감독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우리의 삶을 주인이 되시고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을 때에
바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였고, 구속의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휴가 때만 안식을 누리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안식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그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준수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찾아야 합니다.
안식을 경험했던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복된 약속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을 위해서 일을 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도 쉴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신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즐겁게 일하는 성도는
매일 매일 안식을 누리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불만이시며 불평이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고
하나님이 이 일을 내게 맡기셨다는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소명감을 가지면 일에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고, 일을 하면서도 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업과 사업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고 마음을 다해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하고 있는 그 일을 재미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하면 피곤합니다.
취미로 그 일을 할 때는 기쁨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낚시를 해도 피곤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을 취미로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아하시기를 바랍니다. 취미로 생각하고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감당하는 그 모든 일에서 나는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누리면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롭게 신장 개업한 식당처럼
기대와 흥분과 잔치처럼 매일 매일을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하루 하루를 진정으로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것있습니다.
순종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순종이란 머슴처럼 사는 것입니다.
머슴처럼 순종하며 살면 참 평안이 있습니다
시골 머슴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머슴은 시키는 대로 일을 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점심시간이 되면 음식을 보냅니다.
옷이 떨어지면 옷도 줍니다 때대면 품삯도 줍니다.
주인의 말대로만 하면 모든 것이 편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자꾸 이유나 핑계를 대고 의견을 내놓고 하면 갈등이 생기고
불행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욕심대로 살면 좋을 것 같지만 .
복잡합니다. 피곤합니다. 고통이 옵니다 마음에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움직이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깊은 안식속으로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비록 손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원하는 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삶속에 참된 행복과 안식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이 우리를 안식으로 인도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진정한 안식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40년을 살면서 꿈에도 그리워하던 곳은 가나안 땅이었다.
가나안이야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이요 그곳에 가면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질 못하고 계속 전쟁과 기근에 시달렸고 끝내는 망했습니다.
결국 가나안 땅이 안식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진정한 안식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기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안식에는 이 안식이 있고 저 안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안식이 있고 저 세상에서 누리는 안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안식은 순간이고 잠시 뿐이며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휴가를 가지만 오히려 더 피곤을 가져옵니다
이 땅에는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저 안식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갈등과 질병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휴식을 아무리 거창하게 취하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잘 놀고 쉰다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안식에서 참된 안식을 깨달을 때에
이 세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무엇인가?
고후4:16-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니 이것을 인식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헛된 세상 부귀 영화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때로 힘들고 괴롭거나 고난이 와도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은 진정한 안식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안식입니다.
이 땅에는 언제나 전쟁, 기근, 질병, 분쟁, 시기, 미움 등이 상존하는 곳이며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나라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잠시 잠간이요 이곳에서 진정한 안식을 찾지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은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하고
진정한 안식은 주님이 오시는 날 이루어지는 영원한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안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날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다 마음 주지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라는 것이다.
이제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휴가철을 맞아 새로운 영적인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휴가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못 읽었던 성경도 읽고, 그 동안 많이 못한 기도도하고,
번잡한 곳보다 조용한 곳을 찾아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영적인 만남의 시간을 통하여 영혼을 소생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질 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서로간에 관계가 바르게 되어질 때 서로 만족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상호관계가 깨어 져 있다면 서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형성되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평안을 우리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휴가철을 맞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들로 하여금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것은 곧 그분을 표현하고, 또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계7:15-17)계시록 말씀에도
하나님의 통치를 100% 받는 나라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천국이며 이 천국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을 주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인 클레이 풀이라는 교수가 예수 믿게된 이야기입니다.
이 교수님이 사귄 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여동생이 소문이 나기로
밝은 얼굴을 가진 훌륭한 음악가이며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 교수님은 기대를 하고 친구를 따라서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실망을 했습니다.
엄청나게 화려한 집 인줄 알았는데 아주 가난하고 초라한 집이었다고 합니다.
들어가서 친구의 동생을 보는 순간 두 번째 실망을 했습니다.
그 여동생이 기형아로서 팔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얼굴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열악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명랑하고 밝은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수는 그 소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안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얘기하기를
'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이 눈으로는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읽을 수 있고, 아름다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고,
뿐만 아니라 나는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나는 입이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며
더욱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힘이 되어 주시는 나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수님은 이 소녀를 통하여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안식을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꾸만 주위에 일어나는 사탄의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곳간에 곡식이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만족하리라고 고백했던 하박국 선지자를 우리는 잘 압니다.
하박국 선지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고 얼마든지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항상 좋은 점 보다 나쁜점 열악한 상태와 상황을 보고 근심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안식 저밖에 있던 우리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이 땅에 살 때뿐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끝나는 순간도 하나님과 동행하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안식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나아 갈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히 참아 기다리라.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모든 것 맡기고 진정한 안식의 휴가를 보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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